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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발행인 칼럼] 세신공구 50년 이야기

 

세신공구 50년 이야기

 

세신공장 생산시설을 돌아보며, 오른쪽이 필자. 

 

 

우리는 왜 공구 하나 제대로 못 만드나?


1971년 공구장사를 처음 시작할 당시 한국에서 생산되는 공구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미군 부대에서 나오거나 일본에서 밀수입으로 들여왔으며 중고공구를 다시 수리하여 팔았다. 제품이 부족한 상황에서 용케 장사는 하고 있었지만 항상 불안하고 답답했다.
중고공구 사기 위해 대구 북성로, 인교동, 칠성동으로 자전거 타고 다니며 몇 개 구하면 좋아라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그때 내게 공구는 보석처럼 반짝였고 보석보다 귀했다. ‘이렇게 좋아하는 공구를 실컷 만지고 만들 수는 없을까?’ 라고 생각했다.

 

한국 최초 수공구, 세신


세신은 1965년 스텐 제품을 주로 생산해오다 1975년부터 수공구 생산을 시작했다. 국내에서 규모를 갖추고 수공구를 생산하는 것은 세신이 최초였다. 몽키, 플라이어, 스패너, 소켓렌치 등 국산공구의 출현은 공구업 하는 사람들에게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 마음 놓고 떳떳하게 팔 수 있겠구나’ 했다.
세신의 인기는 대단했다. 품질도 우수했고 가격도 적절했다. 당시 세신은 국내뿐 아니라 미국 스탠리(Stanley), 일본 KTC사 등에 OEM 공급했다. 수출과 국내판매를 동시에 하고 또 국내 공구시장을 거의 독점했다. ‘세신 없이는 공구상 못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크레텍은 1980년 6월에 세신 대리점이 되었다. 당시 세신대리점이 된다는 것은 큰 자랑이었다. 세신공장의 규모는 창원공장만 1,100명, 스텐공장까지 합하면 종업원 수가 4,000명이 넘었다. 상장기업으로서 대단한 지위를 지녔던 것이다.

 

주인 바뀌며 고초 겪는 세신버팔로를 보며

 

88올림픽 이듬해인 1989년, 세신에 격렬한 노사분쟁이 발생했다. 제품이 정상적으로 공급되지 않고 심지어 생산이 중단되기까지 했다. 무려 3개월씩 공장문을 닫았던 적도 있었다. 매년 노사분규가 생기다보니 그 사이 외국제품들이 들어와 시장에 자리 잡아갔다. 또 생산자동화 설비도 고용유지에 발목이 묶여 개선되지 못했다. 1990년대가 되자 ‘세신 없이는 장사 못한다’던 공구상도 다른 수입제품을 취급하기 시작했다. 세신은 흔들렸고 위기를 맞았다. 
1998년 IMF 때 세신은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부도를 맞았다. 그 뒤 법정관리로 넘어갔다가 2002년 결국 경영권을 넘겼다. 2005년 주인이 바뀌고 2010년 대기업 계열인 K사로 넘어갔다. 한번 어려워진 경영은 되돌리기 힘들었다. 
크레텍은 2012년 문병철 사장으로부터 도와달라는 말을 듣고 자금부분에 협력했다. 2016년 브랜드를 인수하고 다시 공장을 살려보고자 했으나 은행 쪽과 맞지 않아 순조롭게 일이 되지 못했다. 

 

1981년 세신대리점으로서 받은 감사패

 

종합수공구 제조의 세계적 트렌드, 신제조기술


세신이 왜 어려워졌는지 분석해본다. 노조와 경영상의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예전엔 한 공장에서 모든 것을 생산했다. 그러나 품목이 많은 종합수공구 제조의 경우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품질과 가격면에서 좋다. 세계 어디든 그 품목을 가장 잘하는 공장을 찾아 품질과 가격을 확보하는 신제조 기술이 세계 수공구 제조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크레텍은 만반의 준비를 했다. 일부 고객들은 세신이 이제 못 나올 줄 알았지만 크레텍은 전세계 공장을 연결하는 신제조 기술로 세신을 다시 만들어냈다. 특히 세신 공장에서 40년간 일하셨던 기술진의 도움이 컸다. 2022년 8월말 TOOL-K사로부터 재고와 부품 부분 전량을 인수하였다. 그동안 개발되었던 다른 품목과 TOOL-K 제품을 통합해 고객들에게 제공하니 반응도 더 좋아졌다.

 

가장 잘 만드는 전문공장을 찾아라


나는 17살에 발동기를 만드는 철공소에 들어가 기계가공 선반기술자가 되기를 꿈꿨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일로 중간에 그만둬야 해서 공구장사를 시작하게 됐다. 50년이 지나 세신버팔로를 직접 경영하니 기계 제조를 꿈꿨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내 원래의 꿈에 다가간다고 할까. 너무도 원했던 브랜드가 칠순의 내 앞에 다가왔다. 
살아남은 종은 우수한 종도 아니고 강한 종도 아니다. 변화에 적응하는 종이라고 했다. 혼자 만들고 혼자서 팔던 시대는 이제 없다. 자동차 회사도 한 공장에서 모든 부품을 만들 수 없다. 다 만드는 것은 오히려 마이너스다. 각각의 부품과 기계를 전문공장에서 만들어서 결합시키고 조립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현재 세신버팔로를 만드는 공장은 50여 곳이다. 세계 어디와도 손잡고 잘하는 곳이면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해서 더 좋은 품질, 더 좋은 가격으로 공급할 자신이 있다.

 

세신버팔로 50년의 꿈, 함께 응원해주시길


“인생에서 남는 건 무엇일까요? 100년 이상 살아보니 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위해 애쓴 사람, 정의가 무너진 사회에서 정의롭게 살려고 노력한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에도 남는 게 있어요.”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
‘우리 손으로 공구 한번 만들어 볼 수 있을까?’로 시작된 세신버팔로 꿈. 50년을 이어온 꿈으로 이제 새 길을 가고자 한다. 세계 어디 내놓아도 품질에서 가격에서 또 디자인에서 빠지지 않는 대한민국 대표 공구브랜드를 만들어서 공구업계뿐만 아니라 세계시장에 내놓고자 한다. 귀한 것을 귀하게 지키는 것도 경영의 한수이다. 세상에 남길 대한민국 공구 브랜드 하나 잘 만들어서 여러분과 업계에 자부심으로 돌려드리고 싶다. 함께 응원해주시길 부탁드린다.

 

_ 최영수 발행인·크레텍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