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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발행인 칼럼] 공구 징비록(懲毖錄)

 

공구 징비록(懲毖錄)

 

*징비록 조선 중기 문신 유성룡이 임진왜란 동안에 경험한 사실을 기록한 책. ‘미리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는 뜻이다. 

 

 

유통질서 혼란… 바꿉시다


2012년경 공구업계의 유통질서가 심하게 무너져가던 때였다. 돌아보면 당시는 춘추전국시대 같았다. 대기업인 LG서브원과 코오롱 KEP사가 MRO에서 공구유통쪽으로 들어오면서 시도한 정책이 가격인하였다. 거의 원가수준으로 판매하다보니 모든 가격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따라가자니 이익이 남지 않고 따라가지 않으려니 고객이 도망갔다.
여기에 하나 더해진 현상이 있는데, 전동공구를 비롯한 기업들이 대리점에 매년 목표를 올리도록 요구한 것이다. 매출이 성장하지 못하면 리베이트를 주지 않았다. 받은 목표를 달성하려면 재고가 쌓이고 결국은 가격을 낮추어 파는 방법 밖에 없었다. 이런 현상은 메이커에서 시작해서 도매와 중도매로, 또 납품과 소매까지 이어지며 가격할인 열풍이 이어졌다. 공구업종 지형자체가 바뀔 위기에 처했다. 이런 심각한 상황을 인지해 한국산업용재발전위원회에서는 유통질서특별위원회를 만들었다.

 

호주까지 달려간 이유


2012년 소위원회로 시작해 2013년엔 협회장 체제로 운영되다, 2014년 3월 명예회장이던 나에게 3기 위원장을 맡으라는 요청이 왔다. 문제가 만만해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공구사업을 하고 있으니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내가 먼저 지켜야했다. 그렇게 결심하고 위원장직을 맡았다.
실행위원을 선정하고 협회 임원들과 연합하여 같이 의논을 하면서 제조사와 또 유통업체 그리고 인터넷업체까지 같이 의논을 했다. 또 6개 대형업체들까지 서로 서명을 해가면서 문제를 풀어갔다. 특히나 전동공구 분야에서 앞선 주자였던 보쉬의 경우에는 전동공구 사장이 호주에 있었는데 위원장인 내가 호주까지 가서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대내외 공문을 스물두 번이나 보냈고 많은 노력과 힘을 기울였다. 또 신문사에 알리고 국회에까지 가서 질의를 하고 협력을 받기도 했다.
결의문을 만들어 강력한 실행을 요청했다.  
▲ 그동안의 과다경쟁과 무질서를 철저히 반성하고 상도의를 준수한다.
▲ 최저유통마진을 개선한다.
▲ 가격혼란, 덤핑판매 등 유통질서 파괴의 책임은 제조사에도 있다.
▲ 과도한 매출, 성장목표, 밀어내기식 영업을 지양하자.
▲ 인기 있는 전동공구 끼워팔기 전략 금지.

이외에도 자체적으로 4개의 대형 도매업체가 협약서를 쓰기도 했다. 

 

유통질서특위 기록… 업계 징비록 같아


돌아보니 6년이 지났다. 기록을 A4크기 134페이지 분량의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놓았고, 다시 펼쳐보니 그때의 말과 행동, 또 사회적 분위기까지 알 수 있다. 마치 징비록(懲毖錄) 같다. 당시 문제가 바로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비슷한 일이 닥친다면 어떻게 대처하고 더 나은 방법을 찾을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기록은 우리 업계와 협회의 역사이다. 당시 기록관리를 잘 하였던 협회 유재근 회장, 정병모 수석, 안수헌 사무총장, 이연우 실장께 감사드린다. 
2020년은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전체가 많이 피폐해졌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다시 한번 더 우리자신을 찾아야 하고 돌아봐야 한다. 유통특위 시 강령도 적어두었는데 지금도 유효해 소개코자 한다.

 

 


역사 속에 해법이 있다


최근엔 협회관 건립 2기 위원장을 맡았다. 이것 역시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이 된다. 6년 전 유통특위 시절의 기록물을 보며 어떻게 헤쳐 갈지 힘을 얻는다. 필요하신 분은 한국산업용재협회로 문의하시면 책을 보실 수 있다. 우리가 기록하는 이유는 어제와 오늘의 말이며 행동이 다르지 않는 ‘항구여일(恒久如一)한 삶의 모습’을 위해서이다. 따라서 앞으로 어떤 일이든 멀리 보고, 옳음을 추구하고, 신뢰받는 협회를 위한 일이라면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행히도 우리협회는 평소 사업을 하면서는 서로 경쟁도 하고 갈등도 하지만, 업계를 위해서는 다 같이 단합한다. 대한민국 공구인의 가능성이 아닌가 한다.
함께 가는 2021년이 되길 바란다. 지나온 역사와 그 기록을 바탕으로 ‘무엇이 미래를 위한 길인가’를 알고 가길 바란다.
“내가 역사를 기록하려 하므로 역사는 내게 친절할 것이다.”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역사학자 E.H. 카-
어렵다고, 너무 혼란스럽다는 이유로 의지가 흩어져버리면 안된다. 과거의 기록을 찬찬히 살펴보면 다 방법이 있다. 어떻게 살아왔는가, 어떻게 헤쳐왔는가, 라는 질문으로 우리 공구업의 지나온 역사를 보자. 거기에 2021년을 살아갈 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