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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상탐방

[요즘 공구상] 사회적 기업 꿈꾸는 철물박사

 

철물과 공구로 성장하는 사회적 기업 꿈꿔요

 

경기 인천 철물박사

   

  

  

  

 

공구와 철물은 아주 가까운 품목이다. 바늘 가는데 실이 따라오듯 철물을 다루는데는 공구가 필수다. 경기 인천의 ‘철물박사’는 80명의 직원과 9개 매장 규모를 자랑하는 철물 및 공구 유통기업이다.  

 

 

전국 최고의 철물유통상사 


경기도 인천에 위치한 철물박사는 철물 분야에서는 전국 최고를 자부한다. 철물박사가 운영하는 매장은 구월, 공구, 작전, 주안, 송도, 심곡, 청라, 고양, 울산 총 9개 매장이다. 철물박사 본사를 비롯한 9개 매장에서 80여명의 직원들이 일사 분란하게 작업을 한다. 철물박사 본사에는 전국에 유통되는 각종 철물과 공구들은 직원들의 손으로 하나하나 바코드 작업화 되어 출하된다. 철물로 전국 제일이 된 김성주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제가 세운 철물박사는 일본 ‘도큐핸즈(TOKYU HANDS)’를 많이 참고하며 세운 기업입니다. 도큐핸즈는 기발하고 재치 넘치는 아이디어 제품이 가득하죠. 그래서 구경하는 것만으로 즐거워요. 인테리어 소품뿐만 아니라 DIY 제품 종류가 많아서 손님이 끊이지 않는데 저도 그런 느낌의 철물점을 가지고 싶었어요. 가구 인테리어 철물을 취급하면서 한국에도 일본 도큐핸즈와 같은 기업이 나올 수 있다 생각했어요. 골목길에는 공구상과 함께 철물점도 간간히 보이잖아요? 동네 철물점 수준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거듭 찾는 철물 체인점이 전국에 퍼지길 희망해요. 동시에 직원들이 행복한 사회적인 좋은 기업을 꿈꾸고요.”
철물박사는 1990년도부터 인천지역의 오프라인 매장에서 철물 및 가구부속을 유통해왔다. 철물 업계에서는 최고로 통한다. 구하기 어려운 어떤 철물도 이곳에서는 구할 수 있다. 철물 판매에 도움되는 공구도 취급하는데 몇 년 전 부터는 전문적인 공구매장도 운영하고 있다. 

 

 

바코드로 9개 매장 유통관리 


과거 공구에 바코드가 없었던 것처럼 철물은 지금도 바코드가 없는 상품이 대부분이다. 볼트나 너트처럼 주문 제작되는 것도 많은 것이 철물이라 바코드 관리가 어렵다. 그런데 철물박사는 별도의 바코드 부착 팀을 운영하면서까지 바코드에 집착한다.
“만약 바코드가 없었다면 9개 매장에 유통되는 철물 재고관리가 어려웠을 겁니다. 그만큼 철물도 공구만큼 다양하고 분야가 깊습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철물이 제작 되지만 인천과 가까운 중국에서 더 많은 철물이 제작되어 수입됩니다. 원래 인천이 가구산업이 발달 된 지역이거든요. 인천항을 통해 목재가 들어와 다듬어진 큰 나무판에 손잡이를 달면 나무문이 되고 경첩으로 널빤지를 조립하고 손잡이 달면 가구가 되는 거죠. 그래서 철물 수요가 많고 또 종류도 가구 수 만큼이나 다양해요. 인테리어 업자분들이 철물과 공구를 많이 찾죠. 너무 종류가 다양하니 바코드로 관리를 해야 9개 매장 제품 판매와 수익 분석이 가능합니다. 철물은 제조공장에서부터 바코드가 부착되는 경우가 드물어 저희가 직접 일일이 바코드를 붙이죠.”
철물박사가 주로 유통하는 품목은 크게 손잡이, 도어부속, 가구부속, 욕실, 화장실, 목조주택, 선반, 수납, 간판쪽 철물이다. 수 만개의 품목이 철물박사 본사 창고에 정리되어 보관되고 있으며 9개 매장에 바코드가 붙여져 유통된다. 철물에는 없는 바코드 시스템을 접목하기 위해 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였다.        

 

   

IMF로 넘어지고 ‘나까마’로 도약


처음부터 김성주 대표가 9개 매장을 가지고 시작하지 않았다. 철물박사도 시작은 작은 가게였다. 거기다 다른 공구상 사장님들과는 달리 30대를 넘어 공구 철물 유통업을 접한다.
“집이 가난했고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잘 안되어 처음에는 양돈업을 했어요. 그런데 양돈업도 규모가 있어야 하거든요. 돼지를 100여마리까지 키웠는데 힘들더라고요. 돼지 분뇨를 처리하는 것도 쉽지도 않고요. 자본을 더 투자해서 양돈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어요.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속칭 노가다라고 하죠?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는데 공사장 근처 철물점 사장님이 손이 떨린다고 영수증에 대신 글씨 써 달라 하시더라고요. 제가 대신 영수증에 싸인 해주던 인연으로 가족의 돈을 빌려 그 철물점을 인수하게 되었죠. 그렇게 각종 철물과 함께 공구를 팔게 됩니다. 어떻게든 잘 해보려고 이곳저곳 영업도 했는데 IMF 때 크게 넘어졌어요. 몇 년을 고생하며 모은 자산도 거래처 부도로 사라졌죠. 그때 이런 방식으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중국에 가게 됩니다.”
그는 철물을 하되 동네 철물점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팔릴 것 같은 다양한 철물을 수입해 전국에다 팔겠다는 생각을 한 것. 직원 2명을 고용해 가게를 맡기고 김성주 대표 혼자 1톤 트럭에 철물과 공구를 싣고 전국을 돌며 철물을 판매한다.

 

 

직원과 함께 성장하는 철물박사


스마트폰, 네비게이션도 없던 시절 김대표는 혼자 종이지도를 보면서 전국 팔도를 다닌다. 벽돌처럼 커다란 피쳐폰을 품에 끼고 낯선 모텔에서 잠들면서 그는 진하게 장사를 한다.  
“일종의 투자를 한 것입니다. 내 가게를 남에게 맡기고 전국을 돌며 영업하는 것은 쉽지 않아요. 중국에 가서 물건을 주문해서 들여오고 그 물건을 받아 판매하려면 직원을 고용해서 믿고 맡겨야 합니다. 내 몸이 가게에 없으니 가게 생각과 불안감은 떨쳐 버릴 수 없죠. 그래도 직원을 믿고 맡겨야 해요. 전국을 다니면서 영업을 했어요. 몇 달 시간이 지나니 주문이 들어오더라고요. 자금이 순환 되면서 쌓이니 철물점 지점을 늘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 일해 철물점을 새롭게 내고 직원도 그만큼 고용을 하고요. 반복되는 것이죠. 그러면서 직원들도 성장하고 수입품목도 다변화 됩니다. 수입을 전문으로 하는 무역부서도 생기고요. 사무실도 커지고 매장이 더 늘어나고 공구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매장도 세웠죠. 홈씨씨 같은 대기업에서 연락이 먼저 와 매장을 세운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렇게 일하다보니 9개 매장을 관리하게 되었어요.”

 


80여명 직원들의 아이디어와 현장 목소리는 철물박사의 자산이다. 여러 사람이 모이니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며 성장을 거듭하게 된다. 인터넷 홈페이지와 블로그로 고객을 응대하고 유튜브 채널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시작했고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유튜브 채널 철물박사TV는 구독자 20만명이 넘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철물 박사가 사회적인 기업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시골에 가더라도 철물과 공구가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매되었으면 해요. 적정마진을 받지만 비싸지 않는 제품을 파는 회사가 사회적 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골이나 외딴 곳에서도 철물박사에 가면 바가지를 쓰지 않는 거죠. 그리고 직원이 우리 회사를 다니면서 행복하게 성장하기를 희망합니다. 돈을 생각했다면 직영 매장을 늘리기보다 부동산을 사서 임대업을 했겠죠. 하지만 철물과 공구 품목을 늘리고 매장을 늘리는 것이 회사가 성장하는 길이라 믿었어요. 직원이 믿고 다닐 수 있는 회사는 성장하는 기업이니까요. 더불어 사회적인 기업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철물박사의 주력은 철물이지만 취급하는 공구 품목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제 공구상은 대형화와 온라인이 대세라지만 철물박사 같은 체인점도 하나의 대안이 될 것이다. 직원과 손님이 행복한 철물박사 지점이 더욱 많아지길 기대한다.

 

글·사진 _ 한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