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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의 역사
거친 표면을 다듬고자 했던 인간의 본능에서 출발한 줄(file)은 정밀 산업의 현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도구로 자리 잡았다. 고대의 원시적 도구에서 오늘날 첨단 소재로 제작되는 줄에 이르기까지. 그 진화 과정을 알아보자.

줄(Files)은 인간이 물체를 다듬고 연마하려 했던 최초의 시도와 함께 시작된다. 원시인들은 돌이나 뼈, 조개껍데기, 심지어는 거칠게 가공된 가죽 위에 모래를 묻혀 표면을 문지르는 방식으로 도구나 장신구를 매끄럽게 다듬었다. 이러한 단순한 연마 도구가 바로 줄의 원형이다. 시간이 지나 금속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더 강하고 정밀한 연마 도구가 필요했다. 실제로 고대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1200~1000년경 청동으로 만든 줄이 발견되었고, 아시리아에서는 기원전 7세기경 철제 줄이 사용된 흔적이 남아 있다.
중세 유럽에 들어서면서 줄은 대장장이와 금속 장인의 필수 도구로 발전했다. 11세기 무렵에는 오늘날의 눈으로 봐도 정교한 철제 줄이 존재했으며, 뉘른베르크·셰필드·렘샤이트 등 금속 가공 도시를 중심으로 줄 제작 기술이 확산되었다. 다만 당시 줄은 여전히 수작업으로 제작된 고급 장인 도구였기 때문에, 일반 대장장이가 쉽게 다루지 못하는 숙련된 기술의 상징이기도 했다. 철을 달구고 두드린 뒤, 치즐(끌)로 하나하나 패턴을 새기는 과정은 오랜 경험과 감각을 필요로 했다.
줄의 진화는 르네상스 시기에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간의 손을 대신해 줄의 패턴을 기계적으로 새길 수 있는 장치를 고안했다. 그의 스케치에는 치즐을 규칙적으로 타격하여 패턴을 형성하는 자동화 원리가 담겨 있었다. 당시까지 줄은 숙련된 장인이 망치와 치즐을 이용하여 하나하나 손수 새겨야 했고, 작업 속도와 정밀도는 사람의 숙련도에 크게 의존했다. 다빈치의 구상은 단순히 제작 방식을 개선하는 차원으로 넘어, ‘정밀 공구도 기계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발상을 처음 제시한 사례이다. 비록 그의 설계가 실제로 구현되지는 못했지만, 이는 훗날 산업혁명 시기에 등장하는 줄 제작 기계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18세기 후반, 다빈치가 꿈꿨던 자동화가 현실이 된다. 최초의 줄 제작 기계가 등장하면서, 줄은 숙련된 장인의 손에서 대량생산 체제로 옮겨가게 된다. 19세기 산업혁명은 이 변화를 가속화했다. 기계 절삭을 통해 줄의 패턴은 일정한 간격과 깊이로 정밀하게 새겨질 수 있었고, 이는 곧 균일한 품질과 높은 생산성을 의미했다.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줄 제조업체가 속속 설립되었다. 특히 미국의 윌리엄 토머스 니콜슨(William T. Nicholson)은 1864년 니콜슨 파일 컴퍼니(Nicholson File Company)를 설립해, 줄 생산에 기계화 방식을 도입하였다. 니콜슨 회사는 이후 해외 시장을 대상으로 한 수출 부서를 운영했으며, 20세기 초에는 40여 개국 이상으로 제품을 수출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줄이 특정 지역 공방의 수공예품을 넘어, 산업용 표준품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줄은 발전 과정에서 형태와 용도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해졌다. 평면 작업에 적합한 플랫 줄(Flat file), 곡선을 다듬는 데 쓰이는 반원형·원형 줄(Half round·Round file), 모서리나 틈새 작업에 유용한 사각형 줄(Square file) 등, 단면 형태만으로도 수많은 종류가 생겨났다. 또한 줄의 패턴을 새기는 방식도 목적에 따라 다르다. 한 방향으로만 절삭한 단일컷 줄은 매끄러운 마무리에 적합하며, 교차 패턴의 이중컷 줄은 빠른 금속 제거에 효과적이다. 거칠게 돌출된 패턴을 가진 줄은 목재나 가죽처럼 부드러운 재료를 빠르게 깎아내는 데 유용하다.


현대에 들어서는 금속뿐 아니라 세라믹, 유리, 복합소재 등 훨씬 단단한 재료를 다룰 수 있도록 기술이 발전했다. 다이아몬드 코팅 줄은 미세한 입자를 이용해 뛰어난 절삭력과 내구성을 구현하며, 고정밀 산업에서도 널리 사용된다. 특히 시계 제작, 금속 공예, 치과 기공과 같은 정밀 작업 분야에서는 바늘처럼 가는 니들 줄(needle file)이 세밀한 마감과 조형을 가능하게 한다. 이처럼 줄의 발전은 단순히 도구의 진보를 넘어, 인류가 더 정밀하고 완성도 높은 가공을 추구해온 역사를 보여준다.
글 _ 이유나 / 자료참고 _ Wikipedia.org, Britannica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