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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강의실]강철제련의 역사
적절한 강도·신장률을 갖춘 강철
강철의 제련은 고대국가 국력의 기본이었다. 고조선과 부여를 거쳐 고구려의 중기갑부대 ‘개마무사’와 관련해 철(鐵)에서 강(鋼)으로 발전하는 단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고자 한다.
탄소함유량에 따라 달라지는 철
철은 함유된 탄소량에 따라 순철, 연철, 강철, 주철로 나뉘는데, 탄소가 없고 다른 이물질도 적어 철의 순도가 99.99%이면 순철, 탄소함유량이 0.1%이하면 연철, 0.1~1.7%이면 강철, 1.7이상이면 주철(선철)이라고 한다. 탄소함유량은 철의 성질을 좌우하는데 탄소 함유량이 높으면 강도는 강해지는 반면 신장률이 낮아지고 반대로 탄소함유량이 낮으면 강도는 약해지지만 신장률은 높아진다. 쉽게 말해 탄소함유량이 높을수록 단단해지나 그만큼 탄성이 약해 쉽게 깨질 수 있다. 그래서 고대 무기의 형태인 도검이나 창을 만드는데 연철을 사용하면 휘어지고 주철로 만들면 부러져 쓸모가 없었다. 단단하지만 적당히 인성과 신장률이 높은 강철(鋼鐵)로 만든 무기를 가진 나라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밖에 없었다. 강은 연철과 주철의 중간에 위치하며 적절한 강도와 인성(靭性)을 가지고 있어 현재 부품으로 사용되는 철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강(鋼)의 제조법
A연철의 제조법은 앞서 이야기한대로 산이나 강가의 모래에서 채취한 철광석 또는 사철을 돌과 흙과 진흙으로 굴뚝을 만들고 그 아랫단에 바람 넣어주는 파이프를 연결한 제련로를 만든 뒤 굴뚝 밑바닥에 숯을 깔아서 예열한다. 온도가 제법 오르면 숯과 철광석을 1대1 비율로 굴뚝 위를 통해서 넣어준다. 그러면 내부에서 온도에 의해 숯이 타기 시작하는데, 불완전 연소를 하면서 일산화탄소를 내뿜어 철광석(산화철) 내의 산소를 빼앗아간다. 그래서 철광석이 완전히 녹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차츰 순수한 철로 변해간다. 이렇게 얻어진 철이 괴련철(연철)이며, 이는 화학적 반응을 이용해 상대적으로 저온에서 철을 제련 가능하므로 고대시대에 널리 퍼진 방식이다.
인류 최초의 강철 제조는 연철 가공
연철을 강철로 만드는 방법은 연철을 목탄으로 눅눅해질 정도(약 800~1000℃)까지만 달군 뒤 숯가루를 뿌린 후 크게 기술이 필요 없는 단조로 처리했기에 인류가 가장 먼저 강철을 생산하는 방법이 되었다. 또한 선철을 강철로 만들기 위해서는 저온(약 400℃이상)에서 가열한 후 공기를 불어 넣어 주면서 역시 단조로 처리하였는데, 이를 탈탄법이라 하고 고대 중국에서는 단조의 횟수에 따라 백련법, 천련법이라 불렀다. 보통 연철에서 강철을 만들면 아무래도 탄소함유량이 좀 낮은 저탄소강이 제조되었고, 선철에서 강철을 만들면 탄소함유량이 높은 고탄소강이 되었다.
그에 반해 선철을 만드는 방법은 상당히 어려웠기 때문에 시기적으로도 늦게 개발되었다. 온도를 높일 수 있는 제련로와 무엇보다 복동식 풀무(밀 때와 당길 때 모두 공기를 불어내는 풀무)의 개발, 그리고 숯과 철광석을 함께 넣어주면 철이 용융되는 온도를 낮출 수 있다는 것 을 발견한 것이 선철을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이다. 철광석을 높은 온도에서 탄소와 함께 넣어 주면 철이 녹아 나오는데 그걸 식히면 탄소함유량이 높은 선철이 된다.
고조선 시대의 철기 도입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철기가 도입된 시기에 관하여 북한에서는 BC8~7세기라고 하지만 남한에서는 대체로 위만조선 이전에 철기가 도입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철은 BC8-7세기에 이미 압록강과 두만강유역에서 생산되었으며, 연철 단계는 BC8~7세기, 고온환원법의 발전된 방법은 BC3~2세기에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중국 연(燕)나라에서 전파된 발전된 방법 이전에 독자적인 제철기술이 함경도지방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위만조선 시기 고조선 지역에서 철기가 보급된 것은 사실이며, 사회 전반적인 철제 농기구와 무기가 제작되는 등 철기문화가 사회의 발전 및 생산력의 증가를 가져왔다. 학자들은 고조선 지역에서 발견되는 강철의 비율을 볼 때 고조선 장인들이 제련로 안의 온도를 적어도 1400℃도 정도 유지한 상태에서 철을 14~16시간 정도 녹여냄으로써 질 좋은 강철을 생산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고조선 장인들이 이와 같은 철을 생산할 수 있었던 것은 제련로의 완벽한 설계, 연료와 탄소 공급원으로서의 숯의 사용, 효율적인 송풍관 등의 덕분이다.
고조선과 부여의 뛰어난 강철제련
고조선의 강철이 주목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고조선에서 생산된 강철은 당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확보하지 못한 고온의 용광로에서 얻은 질 좋은 것으로 그 연대도 무려 BC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것이 고조선이 강력한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고 추론하는 근거다. 부여 영역에는 오늘날의 길림성, 흑룡강성, 러시아의 하바로프스크 일대 등 철 생산지가 많다. 무산군 범의구석 유적에서도 연철제품이 발굴됐고 이들은 BC7~5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곧바로 다음 단계인 선철 생산 단계로 이어진다. 강철은 BC2~1세기에 제련됐는데 무산군에서 발견된 강철 도끼는 탄소가 1.55%, 규소가 0.10%, 망간이 0.12%, 연이 0.07%, 유황이 0.08%였다. 이 도끼는 탄소의 함유량이 1퍼센트 이상인 매우 단단한 극경강으로 부여 사람들이 제품의 용도에 맞게 철을 자유자재로 다루었음을 보여준다.
고조선과 부여의 제철 기술이 고구려로 전승돼 각종 장비를 질 좋은 철로 만들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추론이다. 2001년과 2004년 아차산 제4고구려 보루에서 출토된 철기를 대상으로 금속학적 미세조직을 분석한 결과 연철을 대상으로 한 침탄제강법과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관강법(灌鋼法)으로 강철을 만든 흔적이 발견됐다. 이는 고구려에서 고대 철기기술의 양대 산맥으로 볼 수 있는 두 가지 제강법은 물론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제강법을 사용하여 각 제품에 알맞은 철기를 제작했음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고구려 독자의 철강 기법으로 여러 가지 철기를 만들었다는 뜻이며, 고구려의 철기문명 수준이 매우 뛰어난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철갑옷을 입고 있는 고구려 개마무사
1949년 발견된 안악3호분에는 250여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대행렬도가 그려져 있은데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모습은 온 몸과 말을 갑옷으로 중무장한 중기병들이다. 이들이 바로 고구려 군대를 최강으로 이끈 개마무사들이다. 자세히 보면 이들이 입고 있는 갑옷은 마치 생선의 비늘처럼 수백여 개의 작은 쇳조각(미늘)을 조금씩 겹쳐서 이어지도록 만들었는데 이를 찰갑이라 한다. 이는 남해지역의 가야나 고대 서양에서 발견된 판갑보다 월등히 가볍고 활동성과 방어력이 뛰어난 것이다. 또한 말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투구뿐만 아니라 눈을 제외한 온몸을 찰갑으로 두르고 있어, 적군이 말을 쏘아 넘어뜨리기도 거의 불가능하게 했고 심지어 꼬리까지 철제품으로 장식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찰갑으로 무장한 중기병들은 전면전이 발생할 경우 탱크와 같이 앞장서 적진으로 파고듦으로써 적의 대열을 파괴하고 공격루트를 형성하는 돌격대의 역할을 하거나 퇴각하는 적의 후미에서 섬멸전을 펼칠 때 중심역할을 하였다.
특수강 수준의 제철 기술이 있던 고구려
고구려는 전쟁이 있을 때마다 중무장한 개마무사를 5천에서 1만기씩 대량으로 동원했다고 하며 특히 광개토대왕 시기에는 5만여 기의 철기병과 보병을 신라로 보내 침략한 왜구를 물리치게 했다는 기록도 있다. 고대 국가에서 이는 실로 엄청난 규모다. 고구려 동천왕이 철기병 즉 개마무사 5천 명을 동원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그들을 무장시키기 위한 철의 양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개마무사 1인당 말 갑옷 40kg, 장병의 갑옷 20kg, 기타 장비를 포함하여 10kg을 휴대한다고 해도 최소 70kg의 철이 소요된다. 이를 5천 명에 적용해 단순 계산하더라도 350톤의 철이 필요하며 예비량을 가정하면 최소 500여 톤이 필요하다. 500여 톤이 그다지 많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약 1800년 전에 이 정도로 많은 양의 철을 생산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아차산 보루에서 발굴된 화살촉을 분석한 결과 탄소함유량 0.51%의 특수강 수준의 철을 만들 수 있었던 기술을 갖추고 있던 고구려. 적군의 화살은 고구려만큼의 위력이 없었고, 고구려군의 갑옷은 특수강 수준이었으니 아무리 활을 쏴대도 갑옷을 뚫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렇게 고구려의 뛰어난 제련기술이 바탕이 돼 막강한 군사력을 갖출 수 있게 되었고, 중국의 여러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글 _ 크레텍 윤인준 수석연구원 / 정리 _ 이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