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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준의 공구강의실 ② 공구 제조의 주 소재 '철'
윤인준의 공구강의실 ② 공구 제조의 주 소재 '철'
철을 가진 국가가 강대국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자원 중에 철만한 것이 없다는 것은 독일의 사회학자인 엥겔스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우리가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철. 인류는 철과 언제 어떻게 만났을까?
아직 철기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철은 자동차, 선박, 건축물, 각종 생활용품 등 수많은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생수 가격과 비슷할 정도로 싸고 강성이 있으며, 다루기 쉽고 재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현대 문명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금속이다. 따라서 우리 인류는 아직 철기시대에 살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철은 지구 무게의 35%에 이르는 가장 큰 질량을 차지하는 원소이고 또한 지표상에 알루미늄 다음으로 많이 존재하는 광물이다. 또한 지구 중심의 핵은 거의 철 니켈의 혼합된 형태로 존재하며, 외핵의 유동에 의해 자기장이 형성되고, 태양으로부터 오는 강력한 방사선을 비켜가게 해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주고 있다. 이렇듯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철의 도움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으며, 사람의 몸 속에도 작은 못 한 개 정도인 약 3g 정도의 철이 헤모글로빈과 신체 조직의 성분으로 존재한다.
철과의 첫 만남은 운석으로부터
철과 인류의 만남은 기원전 3500년 전으로 추정을 하고 있다. 당시에는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에서 나온 운철을 가공하여 장식이나 도구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운철은 특별히 강도도 높지 않았고 대량생산도 불가능했다. 실제 자연에서 얻어진 철광석을 사용하여 제조한 시기는 기원전 2000년경으로 터키의 아나톨리아 고원지역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히타이트 왕국을 건설한 철기인들은 당시 이집트와 아시리아를 위협할 정도의 세력을 형성할 수 있는 이면에는 철기라는 강력한 무기가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러한 히타이트 철기문화가 해양세력(바다민족)의 침략으로 멸망하고 그 제철 기술은 유럽과 중국으로 넘어오게 된다.
품질 좋은 철의 소유국이 강대국
철기시대에는 고대 국가의 성장과 맞물려 영토 확장을 위한 수많은 전쟁이 일어나게 되고 누가 더욱 강력한 무기를 더 많이 가지느냐에 따라 생존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품질 좋은 철의 소유는 곧 국가의 흥망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많은 수의 군인들을 위한 무장이 필수적이었지만 기존의 철을 만드는 방법으로는 생산성의 한계에 도달하게 되었다. 초기에 제작된 철은 불순물이 많이 섞인 사철(砂鐵)과 목탄을 이용해 낮은 온도로 가열하여 얻어진 괴련철을 수없이 많은 망치질을 통해 무기를 만들었지만 곧 녹여낸 쇳물을 틀에부터 굳히는 주물로 무기를 대량 제작하는 방법이 개발되었다. 그러나 주물로 만든 무기는 철 속에 들어있는 탄소를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이 없어 잘 부러지고 충격에 약한 문제가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쇳물에 황토와 철광석 가루를 넣어 탄소를 태워버리는 초강법과 후기에는 괴련철과 주철을 같이 녹여 주철 속의 탄소가 괴련철로 분산되어 균형을 이루는 관강법이 개발되었다.
고조선의 융성은 질 좋은 철로부터
우리나라의 철기문화 유입은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연나라(BC 3세기)를 통해 한반도 서북부지역을 통해 철기문화가 들어왔다는 것, 또 하나는 위만조선(BC 2세기) 준왕의 남하로 한강 이남으로 유입되었다는 학설이 있다. 그러나 평양 강동군 송석리 1호 석관묘에서 발굴된 철제거울의 제작 년대가 방사성동위원소 분석 결과 BC 3000년 전으로 나타났고, 평양 강동군 항목리에서 출토된 쇠줄칼은 BC 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성분이 요즘의 특수강과 거의 비슷하며 형태 또한 지금 사용하고 있는 줄과 흡사하다.
이로 미루어 봤을 때 우리나라의 철기문화는 그 경로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중국을 거쳐 들어온 주철법보다 훨씬 이전에 강철의 제조법이 사용되고 있었으며, 이는 고조선 시대에 이미 고온의 용광로에서 직접 얻은 질 좋은 강철을 얻을 수 있었고 이것이 고조선이 강력한 국가로 발돋움 할 수 있었다고 추론할 수 있는 근거이다. 다음 연재에는 고조선과 부여를 거쳐 고구려의 전성기에 철의 역할을 살펴보겠다.
글 _ 윤인준 크레텍 수석연구원 / 진행 _ 이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