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부터 산업용 필터까지
대신철망 김평식 대표
건설, 제조, 농업, 인테리어 곳곳에 철망이?
우리는 대개 철망이라고 하면 고기 굽는 철망 또는 도로 옆이나 휴전선의 철창을 떠올리기 쉽다. 철망업계 경력 20여년의 김평식 대표는 ‘망’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보통 사람들은 생활 속에서 접하는 울타리, 방충망 정도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더 다양하게 사용됩니다. 쉬운 예로 방앗간에서 기름 짤 때 찌꺼기 거름망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건물 울타리 뿐 아니라 가축용 사육망, 도로 펜스, 자동차 필터, 유압기계/에어컨 등 산업용 필터까지 보이지 않게 많은 분야에 적용되고 있어요.”
망은 용도에 따라 구멍의 크기도 다양하다. 1/1000mm인 미크롬
(㎛, 마이크로미터) 또는 인치(inch) 단위를 쓰며 걸러내는 크기에 따라 제품이 나뉜다. 철망은 보통 아연도금철을 사용하며, 정화조 등에서 썩지 않고 녹슬지 않기 위한 용도로는 스테인리스를 사용한다.
“철망은 잘 안 알려져 있지만 없어서는 안 될 산업의 필수품이죠. 철물점에서는 일부 취급하기도 하고, 공구상에서도 거래처로부터 가끔 철망 주문서가 들어오기도 해서 우리 집으로 찾아오시더라고요.”
특히 건설작업 시 펜스 설치는 꼭 필요하다. 공공건물, 안전시설물, 주거단지 등 울타리가 제대로 시공되어 있어야 준공검사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 요즘은 태양광발전소 건설, 도로에 낙석방지 및 동물침입 차단망이 늘어나고, 동물침입에 의한 농작물 피해를 막기 위해 밭 울타리 정부지원이 생기는 등 농촌에서도 많이 활용된다. 그는 인테리어용 시장도 넓어지고 있어 펜스업계의 전망이 밝다고 말했다.
철망은 설치가 어렵고 규격과 디자인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철망 제품은 오프라인 판매로 이뤄진다. 일반소비재가 아니기 때문에 온라인 판매가 어려워 인터넷, 마트 등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요즘 인터넷이 활성화된 공구 판매와는 특성이 다르다. 국내 펜스업체들은 거의 중소규모다.
사장 같은 직원으로 일하다 진짜 사장돼
젊은 시절 군 장교였던 그는 군사분계선 철책을 직접 쳐보기도 했다. 그 후 지인의 요청으로 철망사업을 함께 했다. 영업사원으로 들어가 8년여 간을 일했다. 매입, 매출, 세무신고까지 혼자서 도맡아할 만큼 전문가가 돼 있었다.
“철망은 적용되는 분야도 많고 소모품이라 주기적으로 다시 설치를 해야 해서 회전율도 빠른 편이에요. 전망이 좋을 것 같아 배우기 시작했어요. 철망 일은 단순하게 보이지만 용어 등 전문지식이 있어야 하는 분야고, 섣불리 사업을 시도하기도 어렵거든요.”
그는 그간 쌓아온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돌연 일을 그만뒀다. 2002년 7월, 가게 자리를 얻어 ‘대신철망’을 열었다. 불과 이틀 만의 일이었다.
“저는 한 번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단번에 하는 성격이에요. 이전 직장에서 제가 가게 운영을 많이 도맡아 했고, 거래처와의 관계를 잘 유지해왔던 게 도움이 됐어요. 당시 제가 직원이 아니라 사장인 줄 알던 사람들도 많았거든요. 제 사업을 시작할 때 여러 공장에서 물건을 외상으로 다 채워주시더라고요. 벌어서 갚으라고요. 절 믿으셨던 거죠.”
대전 원동 공구특화거리 초입에 위치한 대신철물. 작은 규모지만 포부 있게 문을 열었다. 아내와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포크레인을 구입해 철망 판매와 함께 직접 시공도 실시했다. 땅을 파고 기둥을 세우는 기초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장비 없이는 구매자가 직접 설치하기 어렵다. 포크레인으로 한 달 동안 직접 땅을 파보며 운전 기술을 익혔다. 기둥을 제대로 설치한 후에는 철망을 볼트로 서로 연결하는 단순작업이 이어진다. 그는 아내와 딸과 함께 야간작업도 많이 해왔다. 어느새 김 대표 가족들은 펜스 시공 전문가가 됐다.
제품은 공장 OEM을 통하거나 직접 디자인 도안을 만들기도 한다. 주로 산업용 제품들은 기능을, 인테리어용 제품들은 디자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약간의 곡선만 넣어도 클래식한 느낌을 살릴 수 있고, 색감에 따라 분위기를 바꿀 수도 있다.
이름 걸고 따낸 경부고속철도 공사
그는 사업초기, 공사예정 업체를 찾아다니며 영업활동을 했다. 현장 공사 담당자들을 만나며 친분을 쌓다보니 좋은 일거리도 자연스럽게 얻게 됐다. 고속철도 호남선 공사 때는 변전실 펜스를 짓고, 이후 광명 ~ 경북 칠곡 구간을 잇는 경부선 펜스까지 단독으로 맡게 된 것이다.
“48억원 규모의 울타리 공사였어요. 사실 철도 전체 시공에 드는 몇천억 비용에서 따지자면 아주 작은 규모지만, 저에게는 가장 큰 공사였죠. 처음엔 좋기보다는 부담감, 두려움이 앞섰어요. 과연 내가 이 공사를 잘 끝낼 수 있을까? 싶었어요. 현장을 뛰어다니고, 사고 나지 않게 항상 주의하고, 자료도 준비하고, 필요한 자재도 파악하는 등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다행히 운이 좋아 큰 사고 없이 잘 마쳤어요.”
현장 업체 12팀을 모아 구간별로 동시에 공사를 진행했다. 기찻길 따라 산 넘고 터널을 건넜다. 완공하기까지 2년 8개월이 걸렸다. 펜스 설치가 끝나고 나면 깔끔하게 정리하고, 잘 관리되고 있는지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은 그가 꼭 해야 할 일 중 하나다. 이후 대신철망에는 큰 공사를 진행했던 이력이 붙으면서 찾는 사람들이 늘었고, 다른 일도 보다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공공기관, 학교, 공원, 병원, 마트, 동물원, 농촌, 펜션, 리조트 등 강원도에서 제주도까지 전국적으로 펜스를 시공해왔다.
장사 노하우는 신용을 지키는 것
김 대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이다. 일은 사람이 주고, 그 일도 사람이 하기 때문이다. 그는 오래 거래할 수 있는
‘장사의 노하우’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 선을 지키는 영업. 그는 거래처와 술자리를 갖지 않는다. 거래처와 술을 많이 마시거나 개인적으로 너무 친하게 지내다보면 꼭 실수나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대신 함께 밥을 먹거나 상대를 잘 챙겨주는 방식을 선택해요. 필요할 때 최선을 다해준다면 다음에도 저를 찾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둘째, 신용을 지키는 것. 큰 대(大), 믿을 신(信)은 대신철망의 모토다. 5년 전 그는 세종시 정부청사 울타리 작업을 맡은 적이 있다. 당시 준공 시기를 맞추기 위해 6개월 기간 공사를 3개월로 줄여달라는 조건이 붙었다. 밤낮으로 쉬지 않고 작업해야했다. 그러던 중 운전사고로 갈비뼈 5개가 금이 가는 사고도 발생했다. 큰일이었다.
“준공 시기를 맞추지 못하면 매일 8억원의 지체보상금이 부과되고, 현장소장이 징계 받을 위기였어요. 이틀 만에 병실을 퇴원하고 두 시간마다 진통제를 먹어가며 공사를 지휘했죠. 그만큼 신용은 꼭 지켜야 된다는 마음으로 일을 진행했어요.”
결국 기간 내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이 약속에 대한 보상은 다른 공사로 계속 이어지게 됐다.
셋째, 매입처로부터는 항상 일정 물량을 주문하는 것. 공사는 주기적으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물건이 갑자기 많이 필요하거나, 적게 필요할 때도 있다. 그때마다 매입처에 들쑥날쑥 주문을 하다보면 서로 예측하지 못한 수량에 곤란할 수도 있고, 매입 단가도 일정하게 유지하기 어렵다. 주기적으로 같은 수량을 주문하다보면 신뢰도 쌓인다. 그는 매입량을 정해두고 남은 수량은 창고에 보관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그는 작년 6월 아내와 함께 ‘대신공구’라는 이름으로 대신철망 옆에 공구상도 열었다. 몸이 아파도 병원 진료비조차 내기 어려울 정도로 어렵게 독립했던 그들의 큰 성장이었다. 공구업계에는 후발주자로 뛰어들었지만, 누구보다 일찍 문을 열고 주말에도 쉬지 않으며 공구를 익히고 있다. 철망 시공에도 용접기, 전동공구 등이 쓰여 서로 보완하는 관계가 되기도 한다. 이제는 전동, 엔진 기계 수리도 자신 있다. 앞으로는 철망과 함께 공구 고객에게도 큰 믿음을 기다려본다.
대신철망
대전 동구 대전천동로 504 / T. 042)223-9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