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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경영칼럼] 조선의 정도전과 21C 고객만족



조선의 정도전과 21C 고객만족

백성이 뿌리라는 민본사상가, 정도전
요즘 TV에 <정도전>이라는 사극이 한창이다. 변방의 일개 무장이던 이성계가 조선왕조의 창업군주가 되고, 충북 단양의 삼봉 근처에서 도전, 즉 ‘길에서 우연히 얻은(道傳) 아이’가 조선왕조 최고의 재상으로 출세하는 이야기는 흥미진진한 드라마 소재로서 충분하다. 특히 오늘날 정도전은 “조선왕조의 설계자”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는 조선왕조 500년을 넘어 우리 한국인들의 마음 밑바닥에 깔려있는 ‘백성이 나라의 뿌리’라는 민본사상을 체계화시킨 정치사상가이기도 하다.
그러한 정도전의 최후는 비참했다. 1차 왕자의 난(1938년) 때, 정치적 지향점이 달랐던 이방원에게 숙청된 후 무려 467년간이나 역모의 죄를 뒤집어쓰고 지내야 했다. 그 후 1865년에서야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궁궐의 설계자’란 점을 들어 그의 훈작을 회복시켰으나, 이미 그에게는 제사를 지내줄 만한 후손도 없었고 심지어 무덤조차 잃어버렸다는 보고가 올라올 정도였다고 한다.
인간 정도전의 파란 많은 인생이 그런데 그의 훈작이 회복된 지 130여년이 지난 오늘날, 정도전이 다시 조명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정도전이 구상했던 국가경영 방략의 탁월성과, 또 외할머니가 노비라는 세간의 수근거림과 십여 년간의 유배생활의 역경을 딛고 일어난 인간 정도전이 보여주는 인생역전 스토리 덕분일 것이다.
정도전은 당대 최고 학자였던 이색의 문하에 들어가 성리학을 공부하고 과거 급제만 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서자 출신의 똑똑한 젊은 관리’로 살아가고 있었다. 당시 고려 조정은 친원파와 친명파로 나뉘어져 극심한 대립을 이루고 있을 때였고, 삼십대 중반이었던 정도전은 친명노선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정도전에게 조정은 원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영접사로 임명한다. 이에 그는 조정에 자신의 외교적 신념을 피력하다가 결국 유배 길에 오르게 된다. 드라마에서처럼 정도전은 정말이지 꼬장꼬장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것은 여러 사례로 유추가 된다.

유배지 백성들에게서 깨달음 얻어
그런 그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 것은 유배지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이었다. 그는 처음에 자신에게 아무 조건없이 잘 대접해 주는 마을사람들을 의심하기도 했다. 아마 자신이 죄인의 신분이라는 것을 몰라서 그런 것이라 생각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밭가는 농부와 이런저런 자신의 이야기를 하던 중 자신의 생각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늙은 농부가 정도전의 죄목을 발견해 주는 것이다.
농부는 정도전에게 “그 힘이 부족한 것을 헤아리지 않고 큰 소리치기 좋아하고, 그 시기가 불가함을 알지 못하고 바른 말하기 좋아하며, 지금 세상에 살면서 옛 사람을 사모하고, 아래에 처하면서 위를 거스른 것이 그대의 죄목이로다”라고 지적했다. 나중에 조광조가 유배갈 때도 듣게 된 이 말은 이상주의자들이 자주 범하는 실책이기도 하다. 이어 농부는 “그대는 네 가지 죄를 짓고도 죽지 않고 귀양 와 있으니, 나 같은 촌사람이 보아도 국가의 은택이 크도다”고 덧붙였다.

백성의 마음 떠나면 국가도 무너져
이 과정에서 정도전은 언행은 지나치게 거칠고, 미련할 정도로 은 자신의 성격을 실토한다. 한편 유배지에서 만난 백성들에게 참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해타산을 떠나 어려운 지에 놓인 사람을 도와주고, 보잘것 없는 나라의 은혜도 감사 줄 알고, 때와 상황에 맞게 말하고 행동하는 이치를 알고 있는 그들에게서 드러나지 않은 군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 이다.
“대대로 농사짓는 사람으로 태어나 밭을 갈아 국가에 세금을 내고, 나머지로 처자를 양육하는 것을 행복으로 여긴다”는 농부의 말을 들으면서, 정도전은 정치가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를 깊이 깨닫게 된다. 비록 외딴 산골의 어리석은 백성이라 할지라도 정치가 잘 되고 있는지 아닌지를 꿰뚫고 있으며, 그들의 마음이 떠나는 순간 국가도 사직도 곧 무너진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의 첫 페이지에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임금의 자리는 높고 귀한 것이지만 백성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크게 염려할 일이 생긴다. 하층 백성들이 지극히 약하지만 힘으로 위협할 수 없고, 지극히 어리석지만 꾀로써 속일 수 없는 존재이다. 백성들이 복종하는 것과 뒤엎는 것 사이의 간격은 털 끝만큼의 차이도 나지 않는다.”



국가 살리는 것은 백성
회사 살리는 것은 직원
기업은 고객을 근본으로 삼고 받들어야

백성을 근본으로 삼지 않는 정치는 아무 곳에서도 설 데가 없다는 이 ‘경국의 조건’은 정도전이 설계한 궁궐의 구조를 봐도 알 수 있다. 성 밖의 깊은 해자와 겹겹이 쌓인 높은 성곽들로 이루어진 일본 에도성이나 중국 자금성과 달리, 경복궁이나 창덕궁은 궁궐 안 세력과 연계만 된다면 의외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낮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신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 왕들은 여차하면 제거될 수 있다’는 점과, ‘내가 이 나라의 참된 뿌리이기 때문에 상대가 비록 왕이나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언제나 꾸짖을 수 있다’는 한국인들의 강한 비판정신을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 근거할 수도 있다.
600년 전의 인물 정도전은 오늘날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국가와 회사를 살리기도 하고 뒤집을 수도 있는 사람은 바로 대통령이나 사장이 아니라 국민이고 직원들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직시하라고 말이다. 아마 사업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고객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서는 사업이 제대로 될리 만무하다. 고객을 근본으로 삼고 받드는 마음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글 _ 최성문(크레텍책임 전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