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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우 전 지식경제부 장관 강연
좌절의 삼수생… 1등할 노력해야 겨우 통과할 팔자
저는 고등학교 때 스스로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까불다가 대학 입시에서 떨어졌어요. 내 생각에 아슬아슬하게 떨어진 것 같아서 재수를 했는데 또 아슬아슬하게 떨어졌어요. 억울하더라고. 한 번만 더 하자. 그래서 삼수를 했습니다. 똑같은 과정을 여러 번 하니까 공부 안 해도 시험점수가 잘 나왔어요. 그러니까 매일 학원가서 놀고 대학 친구들 쫓아서 미팅도 갔어요. 결국 대학입학시험에 또 떨어지더라고요. 심지어 수석 합격할 줄 알았던 2차 대학에도 떨어져. 이건 뭔가 문제가 있다 싶어서 어느 날 어머니가 날 보고니 관상 보는 집엘 데려갔어요. 그리고 왜 이렇게 대학에 떨어지는 지 봐 달라 했더니 하시는 말씀이 “학생은 대학에 갈 운명이 못 돼. 그런데 학생, 올 해 열심히 공부해서 수석합격 할 실력을 쌓으면 붙을 수는 있어. 그게 우리네 삶의 원칙이고 우리가 사는 방식이야” 그러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노력을 많이 하면 겨우 성공한다는 얘기야. 그 때 제 귀에는 붙는다는 말만 들리는 거예요. 그 해에는 정말 죽을 듯이 공부했습니다. 운명을 거슬러 올라가야 되니까. 그 관상쟁이 말처럼 붙기는 했어요. 그 다음부터 제 좌우명이 ‘수석의 실력을 쌓으면 붙기는 한다’예요. 뭔가 일이 안 되고 실패하면 ‘아, 내가 노력이 부족했나보다’ 하고 생각하는 빈도가 일반사람들보다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왕짜증’에서 ‘내 인생의 챔피언’ 되기까지
어느 날 한 국장이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했어요. 4년 전에 중3 딸이 휴대폰을 잃어버린 적이 있어서 전화를 걸어 찾았대요. 그러면서 딸 휴대폰 화면에 떠있는 자신의 명칭을 우연히 봤는데 ‘왕짜증’이었대요. 학원 늦는다고 몇 번 짜증 좀 내고 그랬더니 왕짜증이 뭐냐, 기가 차더래. 야단을 치려다 말고 고1 아들의 호칭도 궁금해져서 몰래 휴대폰을 봤는데, 아버지 이름이 뭐라고 되어 있었게요? ‘그인간’.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대요. 그런데 순간적으로 ‘이 호칭은 아이들이 만든 게 아니라 스스로가 만든 거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거예요. 얼마나 자신이 짜증을 부렸으면, 아이들한테 인간답지 못하게 대했으면 그랬을까 이전에는 잘 해준다는 게 ‘밥 먹었냐, 친구들이랑 빵 사먹어’ 정도가 전부였는데, 반성하고 그 다음부터는 진정한 소통을 하려고 노력했대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딸이 대학에 들어간 뒤 어느 날 ‘왕짜증’에 대한 얘기를 꺼냈어요. “지금 내 이름은 뭐니?” 딸이 아빠한테 딱 보여주는데, 호칭이 뭐라고 바뀌어있었게요? ‘내 인생의 챔피언’. 이 대목을 전할 때마다 내가 다 울컥해요. ‘왕짜증’을 4년 만에 ‘내 인생의 챔피언’으로 바꾸는 데는 얼마만큼의 진정한 노력이 있었을까. 아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저는 속으로 정말 훌륭한 친구다 생각했어요. 상사가, 동료가 또는 아래 직원이 뭔가를 지적했을 때 받아들이면 ‘내 인생의 챔피언’이 되는 겁니다. 못 받아들이면 계속 ‘그 인간’으로 남는 거예요. 회사생활도 마찬가지로 남이 나를 지적하면 그 사람이 무조건 맞을 확률이 큽니다. 멀쩡한 사람한테 ‘너 웃기는 놈이야’라고 하겠어요? 웃기다, 웃기다 생각하다가 웃기다고 얘기하지. 누군가의 지적이 맞다 생각하고 고민하면 승진도 빨리하고 회사도 건성하게 되는 겁니다.
저도 장관 때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기 위해 룰을 하나 정했어요. 비서관, 총무과장, 공보관 세 명에게 매주 목요일에는 내가 듣기 싫어하는 얘기만 하고, 할 말 없으면 차만 마시고 나가라고 했어요. 대통령 말고는 누가 장관을 대놓고 비판합니까. 그런데 룰을 정해도 목요일이 되면 아무 말들을 안 해. 세 번쯤 되니까 비서관은 차만 먹기가 민망했던 모양이에요.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지난 번 어디서 발표를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그걸 예상 밖으로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면 원래는 “그런 의도로 얘기한 게 아닌데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있구나. 다음부터는 내가 조심 해야겠구나” 이렇게 말했어야 맞는 거잖아요.(웃음) 그런데 그런 소릴 듣자마자 저는 “사람들이 내 말을 그렇게 이해 못해? 그러니까 세상 살기 힘든 거야” 이랬다고요. 분명히 내가 비판하라고 했는데 반응이 이러니 비서관이 놀랬죠. 말 던지고 10초도 지나기 전에 후회막급이었지. 그만큼 남의 비판을 정말 듣기 싫은 거예요. 정말 수용하기 쉽지 않습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잘하라… 누가 나를 도울지 몰라
제가 젊은 간부 때, 국장님을 모시고 해외 출장을 다녀온 적이 있어요. 제 상사가 아니고 옆 부서 상사였어요. 그 국장님이 당시 자기 직원 3명에게 “내 개인적이지만 너무나 귀한 손님이 온다. 김포공항에 누가 나가서 이 분을 모셔서 호텔까지 좀 모셔드릴 수 없냐”고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전부 집안 일 핑계 대고 안 된대. 그래도 어렵게 부탁하시는데 다 안 된다고 하면 얼마나 쑥스럽겠나 싶어서 엉겁결에 “국장님, 마침 제가 일요일에 개인적으로 시간이 나는데 제가 가이드를 해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그랬더니 “홍 사무관이 해주면 너무 고맙지” 그러셔. 저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순수하게 해드렸어요. 그런데 한 달 쯤 있다가 대규모 인사이동이 있더니 그 국장님이 제 국장으로 온 거예요. 저는 사무관이었고 같은 직급 중에서도 제일 선임인 수석 자리가 비게 됐어요. 제 경륜이 1~2년 정도 부족했는데도 절 발령하시더라고. 그 분 심정이 되어 보세요. 가까운 사이도 아닌데 스스로 ‘제가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한 직원이 얼마나 기특했겠어요.
그 다음 에피소드로, 한 장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보게 자네들, 내가 좋은 얘기 해줄 테니까 자네들이 이걸 꼭 지키면 성공할 거고 아니면 안 될 거네. 나에게 비가 필요해. 그런데 저기 시커먼 먹구름이 있으니까 비 내릴 것 같다고 막 뛰어가서 그 밑에 딱 서 있어봐. 조금 이따 하늘 쳐다보니까 그 구름은 어디 가버리고 없어. 어느 구름에서 비가 내릴지 모르는 거야. 일상생활도 마찬가지네. 누가 나를 도와줄 사람인지 우리는 몰라. 신만이 아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할까?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성심껏 잘해주게. 또 다른 사람이 오면 또 성심껏 잘해주고. 그러다보면 언젠가 당신이 도움이 필요한 그 타이밍에는 성심껏 잘해줬던 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가 그 자리에 있다 이거야. 그렇게 난 도움 받았어. 세상일이 그런 거네. 그러니 당신네들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할 수 있으면 최선을 다해서 잘 해주고, 도와주고 그러게.”
‘어느 구름에서 비가 내릴지 모른다’. 저는 이 대목이 살아가면서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이 대목을 제목으로 뽑았어요. 마틴루터 킹 목사는 ‘재능이나 지식이나 학력이 성공을 보장하지 않으며 남이 원하는 것을 주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했고, 조지 루카스는 한 수상식 소감에서 ‘저는 주위 사람들을 잘 되게 빌어주고 도와준 경우가 다입니다. 그러다보니까 그 분들이 나를 도와줘 수상하게 됐다‘고 얘기했습니다. ‘주변이 잘 돼야 내가 잘 된다’ 곧 협력업체가 잘 되면 내가 잘 되는 거예요. 결국은 업체에 이익이 떨어지더라도 그들이 커지면 파이가 커지면서 결국 나에게 되돌아오는 몫은 커진다는 거예요. ‘어느 구름에서 비가 내릴지 모른다’는 젊은이 버전으로 정리하면 ‘주고 바라지 말라’고 하죠. 주고 바라면 그 효과는 반에 반으로 떨어진다. 주고 바라지 말면 언젠가는 되돌아옵니다. 영어로 바꾸면 ‘give & no take’라 할 수 있겠죠.
글 _ 장여진 · 사진 _ 이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