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공구와 사람들
안정된 교사직을 목표로 체육교사의 꿈을 키워나가던 그녀에게 인생을 바꾸는 작은 사건이 일어난다. 2003년 대학교 2학년 기말고사를 보는 날, 기계체조를 하면서 왼쪽 무릎 십자인대 2개가 끊어지는 큰 부상을 입게 된 것이다. 1년간 휴학을 하면서 치료에 전념했지만 복학 후 예전처럼 운동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는 걸 깨닫게 된 그녀는 3학년을 마치고 심란한 마음을 달래려 인도로 배낭여행을 떠난다.
“인도에서 더 잘할 수 있는 게 없는지 거듭 고민을 하던 중 건축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여행 중 옛 건축물을 보면서 가슴이 뛰는 감동을 받았어요. 어릴 때부터 사과 궤짝으로 뚝딱뚝딱 책상도 만들어냈을 만큼 나무를 다루는 일에 자신이 있었거든요.”
그렇게 그녀는 목수라는 새로운 꿈을 품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나의 새로운 꿈… 목수
수소문 끝에 ‘통나무집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라는 동호회가 목수가 되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문정씨. 동호회 운영자인 대목수에게 허락을 받고 무작정 전북 무주의 산골로 떠났다. 한 달 동안 마을 입구에 홍살문을 세우는 프로젝트였는데, 막상 가보니 20대는 아무도 없었고, 대부분이 어르신들...여자도 그녀가 유일했다.
“그렇게 숲 속 깊은 곳에서 한 달간 숙식하면서 홍살문을 만드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도중에 제 실수로 손가락이 찢어져서 일곱 바늘을 꿰맸는데 다치는 순간 아픈 것보다 ‘이것 때문에 집에 가라고 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밖에 안 드는 거예요. 그만큼 목수 일이 재미있었고 돈을 주고도 이 일을 하고 싶다는 확신을 얻게 됐죠.”
한달 교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하루도 버틸 수가 없었다. 목수 일을 계속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도편수를 찾아가 처음부터 연장 달라고 안 할 테니 쫓아다니게만 해달라고 하소연 해 현장을 따라다닐 수 있는 허락을 얻어내게 된다. 그리고 곧바로 21채의 집을 짓는 대단위 공사에 합류했다.
“말 그대로 기술 하나 없는 막내였습니다. 새참 나르는 것부터 시작을 했는데, 아침 티타임부터 식사와 간식을 합치면 하루 종일 참 나르는 일만으로도 하루가 벅찼습니다. 기술 안 가르쳐 주는 것에 대한 서러움도 없었어요. 그냥 제가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이 즐거웠거든요.”
그렇게 그녀는 목수가 자신의 천직이라 여기며 한 걸음 한 걸음 목수의 길을 걸어나가게 됐다.
아무리 일이 즐거워도 어쩔 수 없는 어려움들도 있었다. 여자이고, 어리고, 전공자도 아니고...약점이란 약점은 다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너는 결국 못할 거야’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자연스럽게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럴수록 그녀는 더욱 오기가 생겼다.
“저를 기대 없이 보는 분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다행인건 그렇게 기대가 없다 보니 ‘얘가 아직도 버티고 있네’ 하면서 신기해하시는 분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죠. 그 시기를 견디고 나니 오히려 더 존중해주시고 잘해주셨습니다. 제가 무거운 걸 나르면 본인이 들고 있던 걸 놓고서라도 들어주시고 대접을 더 잘해주셨죠. 지금은 여자 목수라고 오히려 치켜세워주신답니다.”
그녀가 여자 목수라서 어려운 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자였기에 건축주 안주인들과 의견을 많이 교류하면서 건축주가 24시간 어떤 동선을 가지고 그 집에서 움직이며,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찾아냈다. 기술적으로도 난간의 나무 손잡이 같은 섬세한 소목 능력이 요구되는 분야에서는 남자 목수들 보다 더 섬세하고 정교한 작업이 가능했다.
“집 짓기에 쓰이는 공구는 다양한데, 통나무를 깎는 엔진톱이 가장 비싸고 엔진톱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분야와 급이 달라집니다. A급 톱사면 인건비도 달라지죠. 제가 가장 아끼는 공구는 도편수님이 주신 끌입니다. 너무 오래 써서 중간에 부러져버렸지만 손때가 가장 많이 묻은 공구다 보니 아직도 작업할 때 가장 애용하고 있습니다. 섬세하고 정교한 작업에는 끌만한 공구가 없죠.”
그렇게 목수가 된지 6~7년쯤 됐을 때, 그러니까 문정씨 나이가 29살이 됐을 때 목수 일을 잠깐 중단한 적이 있었다. 일도 즐겁고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은 맞지만, 나이가 아직 어린데 너무 한 우물만 파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 끝에 그녀는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얻어 무작정 캐나다로 떠난다.
“문득 다른 세상을 보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막상 다른 세상을 보고 살겠다고 떠난 캐나다에서 집 짓는 현장을 찾아 다니고 도서관에서도 통나무집 짓는 책자를 펼쳐보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됐죠. 사실 캐나다가 통나무 건축의 원조거든요. 호텔 주방, 커피숍 서빙을 하면서도 머리 속에는 온통 통나무집 생각 뿐이었죠.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서 2년이었던 예정을 1년 반으로 줄이고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목수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잠깐의 외도를 뒤로 하고 목수로 일한 지 벌써 12년 차가 된 문정씨. 서울 문래동에 자신만의 공방을 마련해 목공예와 인테리어도 하고 있다. 나무, 흙 등을 이용해 집을 짓는 생태건축에 관심이 많은 그녀는 통나무 집 짓는 방법을 일반인들에게 쉽게 전해 ‘저 푸른 초원 위 그림 같은 집들’이 더 많아지기를 원한다.
“집을 짓는 재료에 있어서 나무나 흙 등 생태적인 자재로 지어진 집이 건강에 좋겠죠. 하지만 집이라는 것은 그 안에서 사람이 숨 쉬고 사는 유기적인 공간입니다. 그래서 무엇으로 지었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관리하고 집과 사람 그리고 자연이 어떻게 순환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숨을 쉬는 흙이 사람 몸에 좋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죠. 하지만 흙이란 것은 습을 빨아들이는 성질이 있고, 빗물이나 습기에 상당히 취약합니다. 그래서 흙집은 환기도 자주 시키고 여름에도 가끔 보일러를 돌리며 습을 말려줘야 하며, 해마다 외벽 방수도 신경 써줘야 합니다.” 그 동안 배우고 쌓은 노하우와 좋은 집에 대한 철학을 바탕으로 어릴 때부터 꿈꿨던 부모님의 집을 지어 드리려고 준비 중인 문정씨. 자신의 포부를 당차게 밝히는 그녀의 눈빛이 아침 햇살처럼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