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장 푸는 미얀마,
투자 기회의 허와 실
동남아의 최빈국 미얀마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11년 출범한 민간 정부가 ’12년 4월에 민주선거를 치루고 개혁 개방을 표방하는데 화답하여 서방의 제재 조치들이 거의 해제되고 외국기업들의 진출이 가시화되는 조짐이다.
미얀마는 풍부한 저임 노동력과 원유 및 가스, 광물자원 등의 투자 장점을 갖고 있다. 외국인투자기업들이 이러한 장점을 활용한 결과 에너지를 위시한 인프라 업종과 경공업으로 양극화된 투자 양상이 관찰된다. 본격적인 제조업투자가 행해지기에는 항구, 도로, 전력 등의 산업기반시설이 따라주지 못하고 낙후된 금융시스템, 부패와 비효율 등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총인구 5천500만명의 잠재소비시장이 있지만 실제 구매력 계층은 양곤, 네피도, 만달레이 등 3개 대도시에 국한되는 한계를 갖는다.
때문에 개혁 개방에 나선 미얀마 시장에 대해서 과도한 기대를 갖기 보다는 동남아 경제권의 분업구도 내에서 제조기지로서의 역할에 우선 주목해야 할 것이다.
/ 최빈국에서 최후의 투자 요지로 부각
미얀마의 개방을 돕기 위한 국제금융기관들의 발길도 바빠지고 있다. IMF와 세계은행(WB), 그리고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이 양곤에 다시 사무소를 개설하고 자문에 착수했다. IMF는 지난 90년대 초 베트남 개방 시에도 경제자문에 나섰던 바 있다.
이에 더해서 ’13년 1월 중 국제채권자 모임인 파리클럽 회담에서는 미얀마 외채의 탕감방안이 논의될 예정이다. 미얀마 외채의 95%를 갖고 있는 일본은 이미 구제 방침을 밝혔으며, 국제기관들도 기존 부채 탕감 및 추가 지원에 나설 전망이다.
미얀마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대한 태도를 보건대 미얀마는 이제 더 이상 ‘고립된 국가’로 남아 있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얀마 정부 역시 본격적인 개방 제스처를 보이면서 외국인투자를 맞이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미얀마 경제에 대한 정확한 현주소 파악이 어려운 것은 군부가 지난 ’98년부터 국민계정 데이터 발표를 중지시켰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얀마 경제의 실상에 대해선 정설이 없다. 예를 들어 미얀마 정부는 2000~2010년 기간 중 평균 GDP 성장률이 10%를 상회했다고 발표했다. 그렇지만 IMF는 같은 기간 미얀마의 성장률을 4%대로 추정했으며, 비관론자들은 2~3%로 더 낮게 본다.
이러한 경제 데이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일본의 JETRO 부설 IDE(Institute of Developing Economies) 소속 경제학자들은 다른 방법을 고안하기도 했다. 위성사진을 통해 야간 (조명)전력의 정도와 분포를 계산, 지역별 경제활동을 추계하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양곤, 만달레이, 네피도 등 3개 도시에서 미얀마 전력소비의 40%를 차지하며 양곤이 22%나 차지한다. 이들 3개 도시의 소득은
국가 평균의 2배 이상으로 추정됐다. 이외에도 중국과 접경 지역의 GDP가 국가평균보다 높고, 태국 접경의 12개 구역 가운데 2개는 국가평균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과 태국 국경지대의 소득이 높게 나타나는 것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고립된 경제권에서도 국경무역이 이뤄졌던, 혹은 외부와 접촉했던 일부 지역에서 소득이 높게 나타났던 것이다.
/ 미얀마 투자의 허와 실
이제 미얀마 국가 전체가 개방의 길을 걷게 되면서 관심은 자연스럽게 경제적 측면으로 쏠린다. 그동안 미지의 시장이면서 자원부국으로 인식되어 온 미얀마가 과연 경제부흥에 성공할 것인지, 외국인기업들에게는 어떤 기회를 제공할 것인지 등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지고 있다.
먼저 미얀마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는 외국기업들에게 어떤 기회요인들이있는가 살펴본다.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것은 풍부한 저임 노동력이다. 미얀마는 태국이나 베트남 보다 커다란 국토면적에 5천500명의 인구가 있다. 지난 수십년간 폐쇄경제를 유지해 온 탓에 1인당 국민소득이 베트남의 56%, 태국의 15%에 불과하다. 소득수준과 임금수준이 대체로 비례한다고 본다면 미얀마의 평균적 임금이 주변국에 비해 싼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미얀마의 최저임금은 월 32달러(수당 및 복지 제외)에 불과한데다, 젊은 인구(15~28세)는 1천300만 명에 달한다. 미얀마에서 노동집약적인 봉제산업이 유망하다는 것은 그만큼 임금경쟁력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미얀마 봉제산업의 최대 수출대상국이었던 미국이 지난 ’03년부터 무역제재를 취하지 않았다면 봉제산업은 지금보다 훨씬 발전했을 것이다.
/ 선도기업에게 유리, 그러나...
미개척시장이라는 점도 미얀마의 장점으로 꼽힐 수 있다. 지난 50여년간 서방기업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미지의 시장이기 때문에 선도 기업(First mover) 전략이 통할 수 있다는 기대이다. 기업간 치열한 경쟁구도가 자리잡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찍 시장에 진입한 기업이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선도 기업은 초기 시장진입에 따르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뒤늦게 진입하여 시장을 잃을 수 있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셈이다. 이미 소비재 부문에서는 식음료 다국적기업들이 빠른 시장 대응에 나서고 있다. '코카콜라'와 '펩시코'는 현지업체와 합작을 통해 시장 진입을 본격화했다.
미얀마 시장 구조가 복잡하게 분화되지 않은 점도 장점이 될 수 있다. 미얀마의 총인구는 5천500만명에 이르지만 구매력을 갖춘 인구는 3개 대도시에 밀집되어 있다. 내구소비재 판매를 희망하는 기업들은 양곤(426만명), 만달레이(101만명), 네피도(99만명) 등의 3개 대도시에 집중하면 가시적 성과를 내기 쉽다.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미얀마의 투자 장점은 풍부한 천연자원이다. 미얀마는 지각구조상 아시아판과 태평양판이 만나는 곳으로 지진이라는 자연재해를 피할 수 없는 반면 원유, 가스전과 풍부한 광물자원(철광석, 아연, 니켈 등)이라는 혜택을 누린다. 미얀마에서 이미 확인된 것만 해도 원유매장량은 5천만 배럴, 천연가스 매장량은 2천832억 큐빅 미터에 이른다. 아직 개발이 본격화 되지 않은 벵갈만 원유/가스전에 대해서도 석유 메이저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다만 천연자원을 채굴하는 사업은 강제노동, 토지몰수, 강제이주 등 인권유린과 연계될 소지가 많아 투자위험을 증폭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경제개혁과 민주화 이행이 변수
투자기회 측면에서 장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외국기업들이 투자진출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장애요인은 신뢰의 문제이다. 아직도 군부의 장악력이 강한 민간정부에서 경제개혁을 시작했지만 지속성 여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남아 있다. 신투자법을 제정하여 외국인투자를 환영하고 경제특구 확대에 나선다고 하지만 구체적 실행방안은 미흡하다는 평가이다. 흔히 이는 개도국에서
관찰되는 문제라고 할 수도 있지만 미얀마에서는 군부정치에서 민주화로 이행되는 과정이라는 변수가 추가된다.
현 집권당인 USDP 내에서도 개혁파와 보수파가 나눠져 있고 개혁파에 속하는 테인 세인 대통령의 지도력에 맞서는 과거 군부 주도의 보수세력이 개혁의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4월 중간선거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야당인 NLD가 후보를 낸 44석 가운데 43석을 차지하면서 약진했지만 차기 의회선거가 있는 ’15년 12월까지는 영향력이 제한될 것으로 예상된다.
/ 인프라 부족 ... 전력난 심각
물리적 투자제약요인으로는 인프라 부족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62년 이후 외부세계에 문을 닫은 미얀마는 도로, 전력, 용수 등 모든 인프라 부문이 낙후되어 있다. 도로망은 경제발전을 위해서 최우선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분야이다. 미얀마 도로의 포장률은 50% 미만에 그치며, 주요 도시를 벗어나면 포장률은 10% 미만으로 떨어진다. 세계은행(WB)에서 발표하는 물류지수(LPI : Logistics Performance Index)에서 미얀마의 수준은 최하위에 머문다. 지난 ’12년 기준 미얀마의 물류지수는 5점 만점에서 2.37점으로 155개국 가운데 129위에 해당되며, 역내 국가 가운데서도 최하위이다.
한편 전력난도 심각하여 미얀마 국민 4명 가운데 3명이 전기가 없이 살고 있다. 전기가 들어와도 정전이 잦으며, 안정적 전력 공급을 위해서는 디젤 발전기를 가동해야 되는 경우가 많다. 디젤 발전 전력 비용은 일반 전력비용보다 4배 가량 비싸다. 종합적으로 보아 미얀마의 인프라 수준은 태국에 비해 10분의 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 투자 양상에서 어떤 특징들이 나타나고 있는 지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인프라 업종의 진출이 가장 빠르게 나타난다. 앞서 지적했듯이 미얀마의 열악한 인프라 수준을 볼 때 제조업 진출 이전에 인프라를 설치하는 것이 우선순위일 것이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미얀마 최대 프로젝트인 다웨이(Dawei) 특구 개발이다. 태국과 이탈리아 합작회사인 ITD(Italian Thai Development)가 주도하는 '다웨이 메가 프로젝트'의 총규모는 500억 달러에 이른다. 이 프로젝트에는 항구, 도로, 공단, 발전소, 상하수도 시설, 통신, 고속철도, 지역개발 등이 총 망라된다. 이 프로젝트는 양국 정부가 합의한 사항으로서 ’12년 아시아 정상회담에서도 재확인됐다. 양국간 합동고위위원회가 설치되고 실무자 회담 등이 시작됐으며, ’15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는 미얀마의 다웨이와 태국 국경을 잇는 도로 건설이 추진 중인데 자금확보에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편이다.
한편 일본 기업들은 규모가 큰 공단 개발에 있어서 컨소시엄 진출로 경제적 부담과 위험을 줄이고 있다. 일본의 마루베니, 미쓰비시, 스미토모 상사 등은 양곤
인근 경제특구 개발에 공동으로 나설 계획이다.
/ 에너지 및 자원개발 투자 경쟁 치열할 전망
둘째, 미얀마의 부존 자원을 채굴하고 운송하는 외국인투자는 기존의 중국 중심에서 다국적기업 참여 구도로 확대될 전망이다. 외국인투자에서 에너지와 중국의 비중은 매우 높게 나타난다. 지난 ’12년 1~7월의 외국인 직접투자 실적은 6억6천만 달러였는데, 원유 및 가스에서 3억7천만 달러, 전력 부문이 1억9천만 달러로서 에너지 비중이 85%에 이른다. 이에 비해 제조업(7천200만달러)과 광업
(2천만달러)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편이다. 국별로는 중국이 1억9천500만 달러를 차지하여 1위이며, 영국(1억4천만 달러), 인도(8천400만 달러), 홍콩(6천300만 달러) 등이 뒤를 잇고 있다. 참고로 누적 집행기준으로는 외국인투자액이 310억달러(’12년 9월 기준)에 이르며, 22개국으로부터 232건의 투자가 이뤄졌다. 그렇지만 중국은 미얀마 시장의 빠른 개혁개방과 서방기업들의 관심에 적지 않이 당황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주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미얀마는 서방의 입김이 미치지 않는 중국의 독무대였다. 중국이 미얀마에 퍼부은 돈만 270억 달러에 달할 정도이며, 그 동안 미얀마의 원유, 가스, 광물 산업을 독차지해 왔다. 미얀마에서 가스전이 개발되면 파이프라인을 통해 중국으로 가는 식이다. 예를 들어 지난 6월 불교-이슬람 종교 및 종족분쟁이 발생했던 서부 Rakhin주의 Kyauk Phu에도 중국으로 향하는 파이프라인 공사가 진행 중이다. 에너지 및 자원 개발 분야에서만큼은 미얀마 군부와 중국이 밀월관계에 있었던 셈인데, ’11년 미얀마 민간정부 등장 이후 변화가 발생했다. 지난 ’11년 9월 미얀마는 중국 자본으로 건설 중인 카친주의 수력발전용 Myitsone 댐 프로젝트를 주민들의 반대를 이유로 중단시켰다. 여기에는 미얀마 수력자원을 착취하는 중국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이 작용한 것이다. 동 프로젝트는 36억 달러 규모로서 중국국영기업의 여러 프로젝트 가운데 최대 규모이다. 따라서 향후 개발 예정인 벵갈만 가스전 투자에 있어서는 중국의 독주가 아닌 다. 국적 메이저 업체들의 참여가 예상된다.
/ 노동집약적 산업 다시 각광
셋째, 노동집약적 봉제산업이 다시 각광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미얀마에는 300개의 봉제공장이 자리잡고 있다. 인근 방글라데시, 인도, 캄보디아의봉제산업 규모에 비하면 매우 초라한 상태이다. 미얀마의 봉제산업은 ’03년 미국의 금수조치로 타격을 입었고 이후 성장이 정체되었다. ’12년에 미국과 EU의 무역제재 조치가 완화되면서 미얀마 봉제산업 부활의 기대가 커지고 있다. 미얀마 봉제업 연합(MGMA)의 회장은 가까운 시일 내에 봉제공장이 1천개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미 서방기업들이 로컬업체들과 협의 중인데다 일본과 태국기업들은 라인을 가동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미얀마의 섬유-의복 수출액은 7억7천만 달러(’11년)이며 주요 수출국은 일본(3억5천만 달러)과 한국(1억8천만 달러)으로 나타나고 있다.
/ 차기 아시아 제조기지로서 가능
미얀마의 최대 장점인 저임노동력을 활용한 제조기지로서 활용방안이 요구된다. 중국은 ’05년 WTO 가입 이후 동남아 일감마저 쓸어가면서 세계 제조기지로서 군림했다. 그렇지만 중국의 임금 상승률은 연평균 10~15%의 높은 수준을 보이면서 중국이 제조기지로서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 따라서 미얀마가 동남아의 새로운 생산기지로서의 가능성을 충분히 갖고 있다. 제조기지로서 미얀마가 유망한 또 다른 이유는 향후 메콩강 유역 경제권의 물류 연결이 더욱 원활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메콩강 유역 지역에는 베트남, 라오스, 태국, 미얀마가 포함되며, 동서 경제 종주지역 계획에 의해 국가간 도로 연결이 이뤄질 계획이다. 또한 남부 경제 종주지역에 의해서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등이 연결된다는 청사진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