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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이영문의 공구업계 진단


“다시 발 뻗는 대기업… 이해 부족으로 고전할 것”

이영문(前 KeP 사업본부장, 現 크레텍 전무)의 공구업계 진단





LG 서브원, 코오롱 KeP를 거쳐 크레텍으로 온 이영문 전무. 업계 외부의 시각과 내부의 관점을 동시에 갖고 있는 그에게 우리나라 공구업계의 현재, 그리고 나아가야 할 미래에 관한 진단을 들었다.


공구계 뛰어들었던 대기업… 업력 부족으로 퇴장
 
7~8년 전 서브원이나 전무님이 계셨던 KeP, SK MRO korea 등 대기업들의 공구유통업계 진출이 활발했던 적이 있었죠. 대기업의 시각에서는 우리나라 공구유통시장의 어떤 메리트를 보고 들어왔던 건가요?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은 서브원이나 KeP 등은 본질적으로 유통회사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한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상품을 대신 구매해 주는 구매대행업체였어요. 제조사에서 물건을 구매해 소비자에게 마진을 보고 판매하는 것이 유통업이라면 구매대행업은 한 회사로부터 구매 위탁을 받아 싸게 판매하는 유통업체를 골라서 대신 납품해주는 일을 합니다. 때문에 마진을 남겨 이익을 보는 것이 아니고 수수료를 받는, 말하자면 서비스업이라 할 수 있어요.
그런 구매대행업체들이 왜 공구 유통 시장으로 뛰어든 건가요?
그렇게 기업으로부터 위탁을 받아 구매대행을 하다 보니 ‘대행만 할 게 아니라 직접 팔면 돈 벌겠네?’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유통까지 겸하면 수수료뿐만이 아니라 마진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래서 뛰어든 거예요. 예를 들어 상품을 포장하는데 사용하는 스트레치 필름을 LG전자만 하더라도 1년에 몇 십억 원 어치 구매합니다. 과거에는 스트레치 필름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업체를 선정해 “네가 판매해. 나는 구매 업무만 대신할게” 라고 지시했던 서브원이 직접 제조사로부터 구매해 판매까지 나선 거죠. KeP도 마찬가지고요.
그렇게 들어왔던 업체들이 지금은 왜 시장에서 전부 철수한 건가요?
들어오고 보니까 이쪽 시장이 사실은 레드오션이었던 거예요. 처음에는 구매대행의 주요 품목인 공구 품목의 유통시장에 진입함으로써 사업의 시너지를 좀 일으켜야겠다 했던 건데 그러기엔 너무나 경쟁이 심했던 거죠. 시장의 상황에 대한 판단을 잘못했던 겁니다. 그러다 보니 시너지도 생각한 만큼 일어나지 않았던 거고요.
레드오션의 한가운데에 있는 크레텍에 와서 본 공구업계의 모습은 구매대행사에 있었을 때와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큰 차이가 있어요. 우선은 기존의 업력(業力)이라는 것부터 크게 차이가 나죠. KeP는 철수하기 직전까지 따져 봐도 유통을 한 시간이 4~5년밖에는 안 되는데 크레텍은 40년이 넘잖아요. 그러니까 기존의 유통 채널에서 갖고 있던 업력이나 상품관리 능력은 하늘과 땅 차이인 거죠. 서브원이나 KeP가 아무리 대기업의 자본을 가지고 투자를 한다 하더라도 비길 수가 없었던 거예요. 게다가 직원들, 특히 유통인력들의 경험도 유통 채널에 대한 이해도 떨어지다 보니 ‘이래서 구매대행사들이 유통 쪽에서 경쟁하기 힘들었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다른 점이 보였어요. 국내 시장의 사이즈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국내 시장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씀은, 그럼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말인가요?
네. 제조와 유통 둘 다 마찬가지예요. 먼저 제조부터 말하자면 현재 우리나라의 공구나 MRO 이쪽의 제조업이 현재 많이 죽어있습니다. 일부 절삭 분야의 제조사들은 조금 살아있지만 수공구나 기타 공구 제조사들은 우리나라에서 제조하는 제품들이 거의 없어요. 전부 다 중국으로 갔죠. 유통은 그나마 크레텍 등 몇몇 업체들이 꾸준히 성장해 왔지만 시장의 파이가 커진 게 아니고 시장 지배력이 커졌을 뿐입니다. 내수 시장의 파이가 커졌기 때문이 아니에요.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게 ‘국내시장만으로는 이제 안 되겠구나’하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수출을 생각하게 된 겁니다.
 
국내 시장에는 한계가… 해외를 바라봐야
 
말씀하신 절삭 업체들, 와이지원이나 대구텍 같은 회사들은 지금 수출도 많이 하고 있는데요.
그렇죠. 만약 그런 회사들도 내수만 보고 있었다면 이만큼 성장하지 못했을 거예요. 지금 우리나라의 GDP가 3만 불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경제 발전을 막 시작한 1972년도에는 87달러에 불과했던 것이 말이에요.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해 올 수 있었던 건 다른 게 아니라 수출을 기반으로 한 제조업 덕분이었죠. 우린 내수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공구는 내수 시장만 보니까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요. 제가 서울 중구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과거에 봤던 청계천 을지로 인근의 공구상들 모습이 지금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정말로 우리나라 공구 제조업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수출이 필수적일까요?
발전이 아니라 우선 말라가고 있는 우리나라 공구 제조업을 어떻게 살릴 것이냐. 살리려면 결국은 소비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국내 공구 소비는 중국에서 넘어온 공구들이 꽉 잡고 있으니까 우리나라 제조사들이 커질 수가 없단 말이죠. 거기서 살아남은 업체들은 커갈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용접기 업체들 같은 경우는요. 그런데 그 회사들도 내수만 봐서는 성장에 한계가 있어요. 수출에 기여를 하고 있는 제조업체들만이 더 성장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다면 해외 수출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한데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해외 수출을 할 수 있는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겠죠. 그런데 경쟁력에서 제품의 품질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가격경쟁력이 필요합니다. 해외에 나가면 무엇보다도 저렴한 중국 제품하고 싸워야 하는 거예요. 그런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수출에 있어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조업체 말고 공구 유통업체의 발전 과제는 그럼 무엇일까요?
저는 우리나라 공구 제조업이든 유통업이든 과제는 동일하게 수출이라고 봐요. 지금 우리나라 공구 유통회사들 가운데 수출하는 회사가 어디 있어요. 한 군데도 없어요. 사실 저는 KeP에 있을 때 수출을 기획도 했었고 시도도 했어요. 실현은 못 했지만 결과적으로 내수 시장만 바라보고 있는 유통업체들은 성장의 한계를 갖고 있을 수밖에 없고 이것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수출로 눈을 돌려야 하는 거예요.

 
B2C에 집중한 해외 유통사… 우리는 B2B공략으로 해외 진출해야
 
유통업체의 입장에서는 수출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요?
우선은 세계시장을 하나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세분해서 분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유통업이 진출할 수 있는 지역을 찾아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가격경쟁력 그리고  구색경쟁력이에요. 다양한 상품을 많이 갖고 있는 게 중요하죠. 그리고 세 번째는 정보경쟁력이에요. 상품을 쉽게 검색하고 쉽게 들어와 볼 수 있게끔 하는 것. 수출을 준비하는 유통업체들은 그렇게 세 가지를 갖춰야 해요.
중국에는 알리바바가 있고 또 미국이나 일본에는 아마존이라는 거대 유통업체들이 버티고 있는 상황입니다. 공구유통업체가 외국으로 진출하기에는 장벽이 너무 높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존이나 알리바바의 상품 구색을 보세요. 공구가 과연 얼마나 되나. 거의 대부분이 소비재나 생활용품같은 B2C(기업과 개인 간의 상거래)성격이 강한 상품들이에요. 그런데 공구 유통업체들이 다루는 품목은 B2B(기업과 기업 간의 상거래)적인 산업용품이죠. 아마존이 아무리 세계 최대의 유통상이라도 전문적인 산업용품, B2B에 필요한 품목들은 그렇게 많이 취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B2B쪽에 집중을 해서 수출 전략을 세우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죠. 이마트 롯데마트가 세계 10여개국에 진출한 것처럼 그렇게 경쟁이 심한 소비재 생활용품을 갖고도 해외 진출에 성공했는데 우리는 왜 수출을 못하겠느냐 이거죠. 지금 세계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산업용품은 대부분 중국산이에요. 우리도 중국산을 갖고 와서 다시 재수출한다면 원가경쟁력은 떨어질 수 있겠지만 마진을 조금 적게 보더라도 상품 구색을 갖추고 고객의 편리한 쇼핑을 위한 인프라를 갖추고 또 인터넷과 모바일 검색을 통한 손쉬운 접근이 가능하게만 한다면 충분히 수출이 가능하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공구 유통업체들이 수출 역량을 키워야 한다 하셨는데 최근 또다시 국내 대기업이 공구업계로 발을 뻗고 있습니다. 거기에 먼저 대응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저는 그 업체가 고전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 지금 그들이 갖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살펴보면 도매쪽보다는 소매쪽에 가깝게 맞춰져 있어요. 일반 개인들의 구매량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과거 들어왔다 철수한 구매대행업체들은 그래도 기본 물량을 소화할 만한 납품처는 이미 갖고 있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들은 판매할 기본 물량조차도 없어요. 대놓고 파는 거예요. 그러면 가격경쟁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물건을 싸게 어디서 사요? 기존 대리점들을 갖고 있는 제조사들이 싸게 팔지도 않는데. 
 
공구 유통시장, 자금력보다 경험과 고유의 채널 관리력이 좌우
 
그러고 보면 어느 공구상에 가 봐도 대표님들은 공구에 대한 지식을 면밀하게 다 갖고 있는데 그런 부분에서도 부족할 것 같긴 합니다.
그렇죠. 그건 경험 미숙에서 나오는 건데 지금 공구 품목이 수만 가지가 넘습니다. 그걸 어떻게 다 핸들링할 수 있겠냐는 거죠. 또 엔드유저들에게 판매하기까지의 노하우나 판매 방식의 차별화도 눈에 띄지 않아요. 그냥 건물에 큰 가게 차려놓고 “와서 사가세요”하는데 과연 누가 거기서 살까요? 그런 부분은 꾸준히 쌓아 온 노하우가 축적이 돼야지 하루아침에 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하는 거죠.
그렇다면 소규모 공구상 대표님들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까요?
어느 정도 시장을 잠식하긴 하겠지만 크게 염려가 되지는 않는 첫 번째 이유는 그 업체는 우리나라 공구시장의 유통채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는 겁니다. 포지셔닝을 보면 참 모호해요. 그 큰 덩치를 가지고 납품을 할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소매를 보면 엔드유저들에 영업도 많이 할 것 같지 않고. 도매 쪽도 보자면 온라인 주문 시스템이 그렇게 활성화된 것 같지도 않고 취급 품목도 많지 않고. 그 업체의 플랜은 전국에 100여개 매장을 내겠다는 건데 숫자가 많다는 게 별로 중요하지 않거든요.
두 번째 이유는 무엇인가요?
두 번째는 자금력이 시장을 지배하는 구조가 아니다. 공구 유통시장의 차별화된 경험과 고유의 유통채널 관리력, 그리고 공통적으로 필요한 물류정보나 인프라가 아직은 성숙하지 못했다. 7~8년 전 구매대행 업체들이 기존 납품처라는 플러스 알파를 가지고 들어왔었는데도 힘들어서 발을 뺐는데, 지금 그들은 단순히 ‘유통’이라는 그 자체만을 보고 품목을 선정해서 들어왔어요. 자본의 우위는 점할 수 있어도 그것만 갖고는 안 되는 거죠.

 
다가온 4차 산업혁명시대… 공구계도 IT적응 필요
 
다들 하는 말이 4차 산업혁명시대가 도래했다 합니다. 공구업계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4차 산업혁명이란 한 마디로 ‘유비쿼터스’라 할 수 있습니다. 공구업계로 전환해서 말을 하자면 언제 어디서든지 내가 필요한 때에 물건의 정보를 얻고 구입까지 할 수 있는 세상이라는 거죠. 바로 공구를요. 그런데 아직 공구는 산업용품이다 보니까 소비재나 생활용품에 비해서 덜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이 부분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겁니다. 결국은 정보싸움이에요. 지금 아마존이 그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상품 때문이 아니라 갖고 있는 정보력 때문입니다. 우리도 언제 어디서든지 소비자들이 공구에 대한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IT기반의 체제를 갖추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공구업계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공구업계의 도약을 위해서는 제조든 유통이든 세계 시장을 쳐다봐야 한다. 세계 최대의 시장 중 하나인 미국에서도 공구 제조하는 회사가 그리 많지 않아요. 다들 수입해 오는 거죠. 70~80년대 우리나라 경제 성장이 수출을 통해 이루어졌던 것처럼 제조가 됐든 유통이 됐든 제2의 도약을 꿈꾸는 공구계는 수출에 눈을 뜨고 세계로 나아갈 거라 저는 전망합니다.
 
글_이대훈·사진_이창우(유씨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