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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상탐방

칠곡 가산건자재 박준형&박제욱 (십년 이십년 후에도 같이 하고싶어요)


십년 이십년 후에도 같이 하고 싶어요

경북 칠곡 가산건자재 박준형·박제욱 형제





공구 경험 전무한 형제의 공구상 운영

 
경상북도 칠곡군 경북대로 인근에 위치한 가산건자재는 참 특이한 공구상이다. 올해 나이 서른의 형 박준형과 스물아홉 동생 박제욱 두 형제가 작년 9월경 문을 열었지만 둘 다 오픈 전 공구 관련 경험은 전무(全無)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아버지가 공구상 일을 했냐면 그것도 아니다. 부친은 공구와는 거리가 먼 직종의 일을 한다. 공구상 경험도 없고 2세 경영도 아니라면 대체 어떤 계기와 이유로 공구상을 차린 걸까?
“저희가 무슨 철학이 있어서 차린 게 아니라 아버지가 ‘해 볼래?’ 하셔서 차린 거예요.”
형제의 설명은 이렇다. 사업을 하며 두루두루 많은 모임을 다니던 아버지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공구 쪽 일이 사업성이 있어 보였다는 거였다. 그래서 그야말로 도전한다는 정신으로 무작정 시작한 거란다. 그렇게 일을 시작한지 이제 반년. 초기에는 아버지도 매장에 나와 함께 장사했지만 형제는 자신들끼리 해 보겠다며 아버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형이 동생을 믿고 있고 동생도 형을 인정한다는 것을 눈치 챘기 때문일까? 아버지는 형제에게 가게를 온전히 맡겨버렸다. 그렇게 우애와 신뢰 깊은 형제이지만 그래도 장사를 같이 하는데 다툼이 없을 수 없다.
“싸우기도 자주 싸우죠. 그래도 동생이 다른 공구상에서 몇 개월 정도 일하면서 익힌 공구 지식이 있으니까 저는 많이 배워요. 제가 잘 모르니까 동생이 참 답답하기도 했을 거예요.”
“성격이 그렇거든요. 저는 짜증이 나면 표현해요. 형한테 짜증도 아마 자주 냈을 거예요. 그런데 형은 착해서 다 받아주더라고요.”
그래도 아직 서로 마음이 상할 정도로 크게 싸운 적은 없다는 박준형 박제욱 형제. 둘은 사실 중학교 이후로는 한 번도 싸움을 심하게 한 적이 없다는데 거기엔 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탈리아 유학생 형, 중국 유학생 동생

동생 박제욱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중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베이징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 학위를 따 졸업했다. 동생 박제욱이 그렇게 중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형 박준형은 호주로 건너가 한 무역회사에 취직해 회사생활을 하던 중 다시 공부하려는 마음으로 이탈리아 베니스에 있는 카 포스카리 대학교에 입학해 경영 매니지먼트 학과를 졸업했다.
“저희는 어렸을 때부터 10년 정도 따로 살았어요. 서로 해외에서 공부하고 일하느라 일 년에 두세 번 정도 봤을까요? 얼굴을 맞대고 함께 한 시간이 얼마 없는 거죠.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저희는 원래 편한 사이였어요. 사이 안 좋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어린 시절 떨어져 성인이 돼 만난 둘이지만 서로에게 예전의 모습과 성격이 그대로 남아 있어 참 편하다고 말하는 둘이었다.
형제가 함께 운영하는 공구상이지만 둘의 역할은 명확하게 나뉘어져 있다. 형은 배관 관련 물품들과 공구 쪽의 매입과 관리를 맡고 있다면 동생은 목재와 건자재를 주로 담당하고 있다. 그렇게 분명하게 나누어 놓아야 발주나 매입에서 겹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참 동생이랑 일한다는 게 그런 점이 좋은 것 같아요. 온전히 믿고 맡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아요. 신경 쓰지 않고 맡긴다는 게. 금전적인 부분도 그렇고 또 영업적인 부분에서도 그렇고요. 거래처 사람이 왔는데 제가 바쁘면 동생한테 넘기죠. 그럼 전  신경 쓸 일이 없거든요. 그런 게 항상 좋아요.”
“나도 좀 항상 좋았으면 좋겠네. 하하하. 형은 자리 정리를 너무 안 해요. 저희가 계산대를 같이 쓰는데 손님이 와서 물건을 안 사가면 형은 그냥 거기 놔둬 버려요. 그러면 제가 항상 정리를 하는 거죠.”
동생의 농에 은근한 미소를 짓는 형 박준형이었다.

 
힘들지만 내 가게… 언제까지나 같이 하고 싶어
 
가산건자재의 오픈 시간은 오전 일곱 시이고 그때부터 저녁 여덟 시까지가 가게 운영 시간이다. 게다가 일요일도 쉬지 않는다. 공구 업계라면 당연한 일일지 몰라도 다른 업계, 더군다나 일반적인 회사원들에게는 상상하기 힘든 업무 환경이다. 공구상 문을 열기 전 회사에도 다녀 봤고 다른 사회생활도 해 본 형제에게 힘든 일은 아닐까.
“어쩔 수 없는 것 아닐까요? 남을 위해 하는 게 아니라 이건 제 일이니까요. 또 솔직히 공구라는 게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수없이 많은 종류의 공구가 있고 그러다 보니 또 매일 매일이 달라요. 흥미진진하죠.”
공구상 경험이 아주 없다는 형이지만 그건 한국의 공구상에 대한 얘기다. 이탈리아 유학 시절 세계적인 건축·가드닝용품 전문점인 ‘르루아 메를랑’에서도 일한 적이 있으며 ‘브리코’라는 대형 공구상에서도 수개월 간 근무한 적이 있다. 어쩌면 그래서 공구상 일을 시작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이 적었을지 모른다.
“유럽 공구상은 규모가 엄청나거든요. 우리나라 대형마트만한 면적이 다 공구상이에요. 가산건재자를 그런 공구상으로 키우는 것이 저희 형제의 궁극적인 꿈입니다. 그러면서 저도 유럽에서는 어떤 메이커가 유명한지 알고 동생은 또 중국어에 능통하니까 나중에 직접 물건을 수입할 계획도 있고요.”
그런 목표라면 앞으로 공구상 규모가 커지더라도 앞으로 십 년 이십 년 계속해 함께 운영할 계획이냐고 묻자 형제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게 제일 편하다면서 말이다. 지금은 앳되기만 한 두 형제가 40대 50대 됐을 때의 모습이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가산건자재백화점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경북대로 1681(석우리) / T.054)971-3909

글·사진_이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