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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상탐방

[밀착동행 공구상 24시] 삼천리종합상사 이병헌 대표



이대훈의 기자노트
이병헌 대표. 그의 하루를 따라다니며 느낀 점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직원 생각을 알뜰히도 하는 대표’라는 것이다. 직원들 힘들까 주문 전화를 자기 휴대폰으로 당겨 두고, 직원들 피곤할까 영업도 하지 말라 하고, 또 경리 직원이 있는데도 자기가 받은 주문은 직접 주문서를 작성하고, 지게차로 물건 내리는 일도 자신이 직접. 거기다 직원들에게 쓸데없는 지시는 한 마디도 없다. 그래서일까? 삼천리종합상사 직원들의 일하는 모습에서 왠지 모를 리듬감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직원들의 꿈의 직장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는 대표. 삼천리의 직원들이 살짝 부러웠던 취재였다.
 


 

아직 밤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시각. 아산시 배방읍 삼천리종합상사 이병헌 대표의 손길은 벌써부터 바쁘다. 어서 이 곳 본점의 문을 열고 작년 오픈한 천안 산업기자재유통상가의 
2호점 셔터를 올리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본점 매장을 둘러싸고 있는 천막을 걷고 직원들이 하나 둘 출근하자 곧장 차를 타고 천안점으로 이동한다. 차로 5분 거리.
“용접기 수리 전문가 한 분과 힘을 모아서 2호점 문을 열었어요. 자리가 좋아 유통상가를 방문한 사람들 눈에 잘 띄거든요. 그래서 요즘 신규 거래처 주문은 전부 2호점에서 받아요.”
공구상을 차리기 전, 국내 유명 용접봉 제조사에서 12년을 근무했던 대표. 처음엔 용접용품 특화 공구상으로 가려 했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며 오랜 시간 쌓은 공구상 인맥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 종합상사로 방향을 돌렸다. 그래도 용접기자재가 판매의 중심이다.
 

#AM 8:30
차 안에서 주문전화

본점으로 돌아가던 중 전화가 걸려 왔다. 거래처에서 온 주문 전화다. 사무실 전화를 대표 자신의 휴대폰으로 당겨둔 탓에 거의 모든 주문전화는 그의 휴대폰으로 온다.
“통화가 곧 영업이거든요. 모든 제품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정확히 제공할 수 있는 거죠. 사무실로 걸려오는 전화도 직원들에게 받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야 직원도 편하고 제 마음도 편하거든요.”
전화로 받은 주문 품목은 그러나 매장에 재고가 없는 품목. 그래도 대표는 알겠다고 말한다. 핸들을 돌려 도착한 곳은 한 아파트단지 옆 공구상. 반갑게 인사를 하며 들어가  공구상 사람에게 품목이 있느냐 묻고는 그가 꺼내 온 물건을 얼른 차에 싣는다.
“근처 몇몇 공구상과 약속을 했어요. 자기 가게에 재고가 없는 품목은 재고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서로서로 있는 재고를 나눠서 팔자고요. 그래야 거래처도 잃지 않을 수 있죠.”
공구상을 차린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오랜 영업 경험에서 비롯된 인맥이 이런 쪽에서도 역할을 한다. 다시 차에 시동을 걸었다.


#AM 9:30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

본점으로 돌아오자 잠시 후, 납품할 물건이 유통업체로부터 도착했다. 보루방(드릴링 머신)이며 무거운 용접봉이며 그 외 각종 겨울 상품들이 한더미. 달려 나온 직원들은 지게차로 물건을 내린다. 삼천리종합상사의 직원은 이병헌 대표와 경리, 용접기 수리 기술자 둘, 매장을 관리하는 대표의 동생과 물건 납품(배송)을 전담하고 영업도 하는 직원 넷까지 총 아홉 명이다.
“충청남도 전역에 납품을 합니다. 동서남북으로 나눠서 서쪽은 당진에서 석문, 동쪽은 음성에서 진천, 북쪽은 서해대교가 뚫린 경기 평택에서 둔포 그리고 남쪽은 공주에서 보령까지 하고 있어요. 초기에는 저랑 동생 둘이서 하던 납품인데, 거래처가 점점 많아지다 보니까 납품만 전문으로 하는 직원들을 뽑은 거죠.”
그는 직원들의 배송 노선도를 직접 짠다. 12년 영업하며 돌아다닌 덕에 지역별 배송 순서가 한눈에 보인다. 그리고 각 지역의 이동 소요 시간도 머릿속에 모두 그려져 있다.
배송표를 정리하는 동안에도 전화는 쉴 새 없이 울린다. 거래처에서 오는 긴급 주문 전화다. 삼천리의 배송 시작 시간은 오전 열 시. 거래처는 배송 전까지 주문을 완료해야 당일에 받을 수 있다. 열 시 까지가 하루 중 삼천리종합상사가 가장 바쁘고 정신없게 움직이는 시간이다.
 



배송표를 네 명의 직원에게 나눠주고, 각자가 맡은 남품물건을 트럭에 싣고 오늘 하루의 배송이 시작된다. 오늘은 배송량이 많아 대표도 당진 쪽 배송을 나눠 맡았다.
“여기 아산 배방이 교통의 요충지예요. 시화나 안산도 교통이 편하지만 그 쪽은 경쟁이 너무 심해. 그래서 고향인 공주 근처이기도 한 아산에 공구상을 차린 거죠.”
납품가고 있는 자동차 안에서도 대표의 휴대폰은 쉼이 없다. 삼천리의 총 거래처는 무려 300여개. 그 많은 거래처로부터의 전화가 전부 그에게로 쏟아지는 것이다.
교통의 요충지라고는 하지만 아산으로부터 당진까지는 상당한 거리. 배송가는 길 중간 중간에 있는 다른 거래처들을 들러 판매한 물품의 확인 및 미팅을 진행한다. 그에게 있어 배송길은 곧 영업길인 셈이다. 그렇게 전반적인 영업도 그의 몫이다.
“직원들이 영업도 하긴 하지만 막 주문 받아오라고는 절대 안 해요. 그냥 납품 갔다가 그쪽에서 또 필요한 거 있으면 받아오라고 하는 거지. 아유, 직원들이 힘들어 자기들한테 영업까지 맡기면. 그래서 제가 영업도 다 해요. 그리고 우리는 소매는 전혀 없어요. 거래처를 만드는 것이 12년 영업하면서 제가 배운 거죠. 그래야 직원들도 편해요.”
그에게는 남다른 영업 방법이 있다. 용접 공구의 임대 요청이 들어와 배송이 잡히면 낡은 임대 공구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질 좋은 메이커의 신품을 가져다주는 것. 그렇게 새 공구를 받아 사용해 본 거래처에서는 품질에 만족해 곧 구입 문의가 들어오기 마련이다.


#AM 11:00 
현장에서 사업 아이디어

배송과 함께 영업은 계속된다. 원래 성격이 그런 것인지 아니면 회사 영업사원 시절에 익힌 것인지 그가 가진 소위 ‘말빨’은 상당하다. 영업하러 거래처에 방문하면 제품에 대한 불만 섞인 말도 들려오는 것은 당연한 일. 그래도 전혀 대수로울 것 없다는 듯 거래처 사람을 상대한다. 
배송을 다니면서도 그의 눈은 쉬지 않고 주위를 탐색하는 중이다. 새로운 사업 아이템은 뭐 없을까, 머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 사업의 다각화를 위해 판매 확장 품목을 페인트로 정한 것 역시 이런 탐색으로부터 나온 결과다.
“주 판매 품목인 용접봉의 거래처는 주로 철강회사거든요. 그런데 납품하러 다니다 보니까 페인트 통들이 많이 보이는 거예요. 철골이나 빔에 칠하기 위한 페인트더라고요. 양이 상당해요. 그걸 보고 페인트도 판매해야겠구나 생각이 든 거죠. 현장 영업이 이래서 중요하다니까요.”
거래처 담당자와의 이야기를 마치고 공장을 빠져나오려는데 공장 한켠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한 근로자가 부른다.
“어이 이 사장, 좋은 안전화 있나?”
낡은 안전화를 새로 구입하려는 근로자다. 대표는 그의 주문을 듣고 다음 번 납품하러 올 때 가져다 준다 말한다. 이처럼 거래처의 관리자만이 아닌 거래처 모든 직원들은 물론 심지어 청소 아줌마까지도 고객으로 만드는 그다.

 
#PM 12:00
곰탕 한그릇에 정보 나누고

바쁘게 여러 군데 거래처를 다니다 보니 어느새 열두 시. 점심시간이다. 여유롭게 식사를 즐겨도 좋으련만 점심도 그냥 먹는 법이 없다. 오늘의 식사 상대는 과거 다니던 직장의 동료. 세상을 살아가는 건 다 인맥이라 말하는 그다. 옛 동료를 만나 요즘의 용접봉 판매 추세나 가게 확장을 위한 부동산 이야기 등을 나누며 이병헌 대표는 곰탕을 뚝딱 비운다.
곧장 다시 납품 배송의 재개. 잠깐 커피라도 한 잔 하면서 여유를 즐길 수도 있을 텐데 그가 가진 하루 생활계획표엔 ‘쉬는 시간’이란 없다.
“제가 배운 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밖에 없어요. 현장을 열심히 돌아다녔던 것이 저의 큰 힘이죠. 다른 기업들을 보면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사람도 있을지 몰라도 저는 정말 무일푼에서 시작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욕심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저 열심히 일하고 직원들이 편한 꿈의 직장으로 만드는 것이 제 목표예요.”

#PM 13:00 
배송지에서 새 제품 홍보도

대표가 오늘 배송을 나온 목적은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새로운 브랜드의 연마석 판매다. 기존의 거래처들이 사용하는 모 브랜드의 연마석은 품질은 좋을지 몰라도 납입가가 비싸 팔아도 이익률이 그리 높지 않다. 그래도 그 품질 때문에 거래처에 납품하던 대표였다. 하지만 새 브랜드의 연마석은 납입가가 저렴한 반면 품질은 오히려 더 좋다. 기존 브랜드와 새 브랜드의 연마석 둘을 들고 거래처에 들른 그는 직접 비교해보라 건넸다. 현장에서의 품질 비교를 통해 새 연마석을 ‘영업’하는 것이다.
“저는 절대 속여서 팔지 않아요. 물건을 파는 건 나를 파는 것과 똑같거든요. 신뢰가 없으면 절대로 장사 오래 못 합니다.”

#PM 14:00
직원 근무복 구입

배송 하랴 영업 하랴 바쁘게 거래처를 다니던 중 잠깐 짬이 났다. 한 근무복 매입처로 향했다. 추운 날씨에 직원들에게 입힐 조끼를 사기 위해서다. 직원들이 원하는 직장을 만들기 위한 작은 노력이다. 하지만 꼼꼼한 성격에 아무 옷이나 구입하는 것은 아니다. 겉옷 안에 입을 수 있도록 얇으며 활동하는데 불편하지 않은 조끼가 바로 대표가 원하는 것. 그 조끼를 찾기 위해 시간을 들여 여러 벌을 입어보고 비교하는 그였다.




오늘 하루의 배송을 마치고 매장으로 복귀했다. 충남 전역으로 배송 갔던 직원들도 어느덧 다시 한자리에. 비로소 숨 좀 돌리는 시간이다. 삼천리종합상사는 마감업무의 시간이 매우 빠르다.
다음 날 납품을 위해 배송 중에 계속해 전화로 들어왔던 오더와 배송 가서 받은 추가 오더 건을 입력한다. 새로운 주문 전화도 걸려 온다. “내일 오전 중에 보내드릴게요.” 고객과의 작은 다툼도 있다. “어떻게 더 싸게 해드려요. 저희가 얼마나 싸게 파는지 아시면서 그러신다. 앞으로 더 잘 해드릴게요.” 역시 물러서지 않는 그다.
고객들의 주문 입력을 마친 뒤에는 매장의 재고파악 작업이 이어졌다. 우편 보내러 갔던 문총무도 돌아왔다. 경리 업무를 보는 문총무가 입사한지는 이제 2주일 째. 공구상 일이 처음인 그녀는 아직 배울 것이 많다. 그래도 참 똑 부러지게 일하는 그녀다.
“참 신기한 게 회계하고 서무업무 할 줄 아는 직원이 필요하다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고 주변에서 문총무님을 소개해 주더라고요. 지금 제가 바라는 직원은 다 왔어요.”
펄펄 끓어오르던 물이 차분하게 식어가듯, 오전의 분주함과는 다른 차분하고 조용한 삼천리종합상사의 오후 시간이다.

#PM 16:30
틈새시간 직원 교육

재고파악 작업을 마친 뒤 이병헌 대표는 경리 문총무의 교육에 들어갔다. 용접용품의 모양이며 명칭 제품번호 적재위치 등 매장에 적재된 공구에 대한 전체적인 교육이다. 공구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그녀를 위한 공구 교육. 이런 여유시간이 나는 날도 흔하지 않다.
그 사이 아이가 독감에 걸려 병원에 갔다가 늦게 출근한 정대리가 도착했다. A형 독감에 걸렸다는 아이. 늦게 출근한 만큼 더 힘을 내서 일하겠다는 그였다.
정대리와 함께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됐다. 다음 날 배송할 물건을 미리 꺼내는 작업이다. 매장과 창고 면적이 좁아 안쪽에 들어 있는 제품을 꺼내기 위해선 많은 작업이 필요하다. 지게차는 필수. 꺼낸 공구를 다음 날 배송을 위해 정리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꺼낸 용접선을 주문들어온 길이에 맞게 자르고 업체별 주문 품목을 박스에 담고 그리고 매장 외부에 꺼내 뒀던 공구를 다시 안쪽으로 들인다. 이 과정에서 대표는 직원들에게 닦달하거나 지시하지 않는다. 직원들이 알아서 필요한 업무를 진행할 뿐이다.

#PM 18:00
지시사항 ‘영수증 꼭 챙겨라’

어느새 밖에는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하루 업무의 막바지. 문총무는 조금 일찍 퇴근하고 대표와 남은 직원들은 다음날 배송준비를 계속한다. 사원별 배송 분류표 작성을 완료한 대표는 직원들에게 중요한 사항부터 사소한 것까지 지시사항을 전달한다. 오늘의 지시사항은 영수증 이야기다.
“식당에서 밥 먹고 카드로 결제하면 창피하더라도 꼭 영수증 달라고 해. 그래야 세금 낼 때 정확히 내지. 그리고 우리 점심 시키는 식당 어디지? 거기다가도 영수증 안 가져오면 안 시킨다고 말하고. 꼭이야.”
 
#PM 19:00 
직원들 퇴근시키고
 
겨울철 짧은 해는 완전히 졌다. 그와 함께 삼천리종합상사의 업무도 종료다. 대표는 이른 아침 걷었던 가게의 천막을 다시 덮는다. 이 밤, 잘 자라고 매장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것만 같다. 삼천리종합상사 근처에는 다른 가게가 없어 이 시간이면 고요함이 느껴진다. 직원들도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퇴근하는 직원들의 자동차 후미등을 바라보며 대표는 생각이 많은 것 같다.
“이렇게 또 하루를 보냈네요. 오늘 하루도 정신없이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직원들 마음은 어떨지 솔직히 모르겠어요. 저 친구들도 더 좋은 회사 더 큰 회사에 다니고 싶을지도 모르는데. 삼천리를 그런 회사로 만들어 줘야겠죠? 그게 제 목표예요.”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향하며 대표는 바빴던 오늘 하루를 마감한다.

 
글·사진_이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