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디지털줄자 대박 낸 노하우
인천측기 은희송 대표
미국서 30만개 팔리는 디지털줄자 ‘eTape16’
‘머리로 계산하지 않고 필기도구가 없을 때도 언제든 자를 활용할 수는 없을까?’ 인천측기 은희송 대표는 이러한 생각으로 국산 디지털줄자 개발을 시작했다. 때는 3년 전, 미국의 한 업체에 샘플 제품을 받고 싶어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측량기를 제조하고 판매하고 있다. 디지털줄자도 만들어보고 싶어 샘플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미국 판매자와 몇 번의 만남을 통해 측량기 전문업체로서 쌓아온 노하우로 신뢰를 얻어 개발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이듬해 5월 라스베가스에서 열릴 하드웨어쇼에 인천측기가 개발한 디지털줄자를 출품하겠다는 소식을 받았다. 1년밖에 남지 않은 시간, 은 대표는 개발팀과 함께 머리를 싸매고 연구에 몰두했다.
“모든 측정제품이 그렇듯 디지털줄자는 정확도가 생명입니다. 오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수없이 수정을 반복했죠. 보통 다른 제품들은 몇 번을 빨리 당겼다 풀면 오차가 생기기 마련인데, 저희는 수십 번 측정해도 동일하게 정확한 값을 측정해낼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였어요. 기한 안에 개발하려고 밤을 새며 어렵게 작업했습니다. 결국 0.3mm의 오차로 1mm의 오류도 발견할 수 없도록 만들어냈습니다. 10만대에 1대의 불량이 있을 정도로 불량률도 거의 없고요.”
피트, 인치, 센티미터 등 나라마다 각양각색인 치수도 바로바로 변환할 수 있는 버튼을 달았다. 가로, 세로 2가지 값을 저장할 수 있는 듀얼메모리 기능, 중간 값을 자동으로 계산하는 미드포인트, 안쪽/바깥쪽 측정 기준을 설정하는 기능도 추가했다. 2015년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내셔널 하드웨어쇼에 공개된 eTape16는 기존 다른 제품들과의 차별성과 독특함을 인정받아 신제품 우승 상패를 거머쥐게 됐다. 이 상과 더불어 세계 1위의 미국 홈쇼핑 채널 QVC에서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특혜를 얻었다.
“당시 QVC 방송에서 5분가량 방송이 됐어요. 그런데 그 사이 거의 3분 만에 준비해둔 디지털줄자 6천개 전량이 팔렸어요. 1분에 2000대가 팔린 셈이죠. 그야말로 대박이었습니다.”
그렇게 미국에서 잘나가는 제품이 된 eTape16은 이제 연간 30만대가 팔리는 히트상품이 됐다. 인천측기 매출의 30%를 차지하는 효자 상품이다. 제품은 수정을 거쳐 더욱 편리해지고,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도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eTape Construction’이라는 앱을 받아 블루투스를 켜고 작동시키면 줄자로 잰 치수 정보를 모두 저장할 수 있고, 인테리어 할 때 벽지, 바닥지가 얼마나 들어갈 지도 계산이 가능하다.
고객 경험 통해 기기 50대가 500대 매출로
인천측기는 이 외에도 해외 직수입, 국내 브랜드 등 유통하는 측량, 측정제품만 해도 천여가지다. 매년 일본, 중국 등 전시회에 참여하고 트렌드를 파악하면서 끊임없이 신제품을 구상해내고, 더 좋은 브랜드를 찾고 있다. 요즘은 해외에서 수입해오는 제품 중 측량기 위치를 찾는 코리다(KORIDA) GPS 수신기가 인기다.
“GPS 수신기는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휴대폰 지도앱과 같은 원리에요. 컨트롤러와 연결해 정확한 위치를 잡아줍니다. GPS 수신기는 오차가 2~3mm 안에 들어옵니다. 정밀한 측량이 가능하죠. 재작년에 이 제품으로 코리다라는 신생 브랜드를 들여왔어요. 처음엔 중국 브랜드다보니 선입견이 있어 고객들이 사용하질 않더라고요. 사실 안에 들어가는 부품은 전부 미국산이고 중국에서 조립만 한 제품입니다. 저는 이 제품의 품질을 확신할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50명의 고객에게 제품을 일주일 간 무료로 써보도록 제공해줬어요. 이게 한 개당 가격이 무려 1,500만원입니다. 50대 정도만 시중에 보급된다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의 판단은 적중했다. 50대 중 사용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2명을 빼고 나머지 48대가 일주일 뒤 모두 팔렸다. 그리고 이 50대 판매가 지금은 500대로 늘어났다. 미국, 일본 브랜드가 선점하던 측량기기 시장을 뚫고 지금은 코리다가 매출 1위를 차지하게 됐다. 아시아 1위, 세계 3위의 측량기 브랜드가 됐고, 단기간에 성장률 1위를 차지해 수상을 하기도 했다.
측정기 A/S는 우리에게 맡겨라… 모든 부품 보유
제품은 무조건 싼 값에 많이 파는 게 좋을까? 답은 NO. 단순히 인터넷을 보고 싼 제품을 샀다가 A/S를 못 받고 버리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은 대표는 창업 초기부터 A/S에 초점을 맞추고 기술력을 키웠다. 제품 가격은 조금 비싸지더라도 정밀도가 생명인 측정공구를 오래 쓰기 위해서는 A/S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국내에 측정공구를 수리하는 업체는 많지 않습니다. 특히 측정공구 A/S는 숙련된 사람만이 가능해요. 또한 수리를 위한 고가의 장비도 따로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다른 제품들처럼 단순히 부품을 교체하는 작업이 아니라 1000분의 1 이하로 정밀하게 오차를 맞춰내야 하거든요. 저희 직원들도 1년 이상 경력이 되어야 AS가 가능할 정도니까요.”
이곳에는 10명의 A/S 직원들이 매일 50~100개의 제품을 수리하고 있다. A/S센터도 3층 건물로 가게만큼이나 그 규모가 크다. 단, 인천측기에서 유통하고 있는 제품만 A/S가 가능하다. 모든 부품을 보유하고 있어 케이스까지 새 걸로 교체해주면 마치 새로운 제품을 산 것 같은 느낌이다. 특히 보쉬의 측정공구도 이곳에서만 수리할 수 있다. 아직 보쉬 내에서 A/S가 가능한 곳은 없어 이곳을 찾는 고객들이 많다.
잘나가지만 때론 위기도
이렇게 꾸준히 성장해온 인천측기에도 남모를 우여곡절이 있었다. 오래 경영해본 공구상이라면 피할 수 없었던 IMF와 금융위기. 인천측기에도 마찬가지로 큰 타격이었다. 건설회사 등 많은 거래처가 금융위기로 부도를 많이 맞았다.
“당시 이틀에 한 번씩 부도를 맞았어요. 막막했죠. 그 때가 제일 어려웠어요. 그 중 딱 한 군데서만 회사를 청산하면서 미지급했던 금액의 50%를 주시더라고요. 너무 고마웠어요. 그 외에는 채권단도 구성해 최대한 돈을 받아내려 했는데 한 건도 못 받았어요. 빚을 떠안은 겁니다.”
다행스러웠던 것은 부도업체들과 큰 거래는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위험이 분산됐다. 위기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은 있었다. IMF가 발생하기 직전인 1997년도 10월, 해외 수입품 재고가 마침 바닥나 물건을 대량으로 주문한 것이다. 매입금액을 지불한 다음 달, 원-달러 환율이 2배 가까이 껑충 뛰었다.
“가격이 급격히 오른 물건들을 판매하면서 부도로 손해 본 것들이 조금은 상쇄가 됐습니다.”
어쩌면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딱 맞는 듯했다.
칼퇴 독려하는 사장 ‘쉴 땐 쉬고 일할 땐 일하라’
인터뷰를 마치고 매장 안을 살펴봤다. 직원들은 하나같이 밝고 열정이 있으며, 자유로워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모두가 9시 출근에 6시 반이면 퇴근을 칼같이 지킨다고 했다. 은 대표는 절대 직원들에게 야근을 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낮에 일하고 밤에는 쉬어야 한다는 게 그의 철칙이다. 주말과 공휴일에는 당직을 제외하곤 근무하지 않는다. 여름휴가도 주말까지 합하면 일주일 이상씩 다녀온다. 1년에 한 번씩은 체육대회와 야유회로 직원들의 단합을 도모한다. 인천측기의 ‘쉴 땐 쉬고 일할 땐 일하는’ 문화다.
“우리 직원이 영업, 사무, 제조, A/S까지 모두 합하면 40명 정도 됩니다. 경력은 꽤 됐지만 다들 젊습니다. 이 직원들과 함께 오래 가려면 일찍 출근하고, 야근 많이 하는 것보다 휴식도 잘 취하고 열심히 일하기도 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야만 뭘 하고 싶을 때는 열정이 나게 되지, 몸이 항상 지쳐있으면 일에 의욕이 안 나거든요.”
고객 관리와 더불어 직원 관리에도 신경을 쓰는 덕분인지 날로 성장해가고 있는 인천측기. 제조, 유통, A/S까지 해내는 만능 기업으로서, 측정업계 최고의 기업이 되기 위해 40명의 직원들은 오늘도 열정으로 움직이고 있다.
글 · 사진 _ 장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