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전체메뉴 열기

공구상탐방

공구상에 쎈 여자가 있다, 구례공구철물 은은정


공구상에 쎈 여자가 있다

전남 구례공구철물 은은정 대표





떼인 돈 받으러 왔다가 공구상 차려

구례공구철물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넘치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정신없이 주문하는 손님들의 목소리 사이사이를 높고 카랑카랑한 여성의 목소리가 채운다. 활력 넘치는 은은정 대표의 목소리다.
 
구례공구철물이 잘 나가는 이유를 주변에 물어보니까 제일 먼저 대표님 성격을 꼽더라고요.
-정말? 하하하. 내가 원래 카리스마가 좀 있어. 여기 와서 공구상 하기 전에는 남원에서 수입품코너랑 신발가게를 했었는데 그 때도 내 성격이 호탕하니까 잘 나갔었지.
남원에서 장사하시다가 왜 구례까지 오셔서 공구상을 차린 건가요?
-그 시기가 IMF때였는데 내가 보증을 잘못 서가지고 쫄딱 망했거든. 애기 아빠는 공직에 있을 때였는데 내 돈을 떼어먹고 간 사람이 여기 구례에서 철물점을 하고 있었어. 그 때도 이맘 때였지 아마. 쫓아가 보니까 벌써 도망가려고 준비를 다 해 뒀더라고. 추석 쇠고 도망가려고 준비해 둔 모양인데 나한테 딱걸린 거지. 내가 거기 앉아서 세 달을 있었어. 그런데 보니까 한 달 매출이 3~400정도 올라오는 게 보이는 거야. ‘내가 이걸 해봐야겠다’싶더라고.
그래도 공구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고 또 남자도 아닌데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고민이 많았어. 공구상을 정말 해야 하나 옷가게를 계속 할까 아니면 신발가게로 가야 하나. 그런데 우리 애아빠는 정말 공무원 스타일이고 워낙 성실하기만 한 사람이라 옷장사를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거야. 남자가 할 일도 아닌 것 같고. 그래서 내가 택시를 타고 대구에 있는 유명한 공구상엘 갔었어요. 보니까 대단하더라고. 그래서 공구상으로 결정했어. 없는 물건 하나하나 늘려 가면서 뒤통수도 맞으면서 시작한 게 오늘 여기까지 온 거야.
전에 하셨던 수입양품점 같은 가게는 고객들이 여자잖아요. 그런데 공구상의 고객은 대부분 남자들인데 불편하진 않으셨나요?
-오히려 편해. 여자들은 오면 까다롭게 이것도 따지고 저것도 따지고 하잖아. 그런데 남자들은 안 그래. 필요한 공구가 있고 가격만 맞으면 절대 따지는 법이 없고 안사고 그냥 가는 법이 없어.  나만 해도 옷 사러 옷가게에 가면 아홉 번도 입어보고 열 번도 입어보고 하는데 뭘. 그리고 또 내가 여자다 보니까 남자들이 내 말을 잘 들어.
그래도 처음에 남자 고객들이 여자라고 무시하거나 말 함부로 하는 경우 없었나요?
-있어도 당하지 않지. 내가 소싯적에 태권도도 배우고 구례바닥에서 소문난 사람이야. 하하하. 처음부터 휘어잡은 거지. 나한테 함부로 하면 큰일 나. 또 내가 여자이다 보니까 남자들이 손님이라도 오히려 해주려고 한다니까. 높은 데 있는 것도 키가 모자르다고 하면 화 안 내고 얼른 와서 내려주고. 얼마나 편한지 몰라. 보면 옛날 분들은 여자라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여자인 네가 공구에 대해 뭘 알아?’ 그런데 나는 물건 매입부터 판매까지 전부 다 하잖아. 공구에 대해서 내가 완벽하게 다 알고 있으니까 절대 무시 못 하지.
남원에서 수입양품점이나 신발가게 하는 것보다 여기서 공구상 하는 게 더 편하세요?
-얼마나 편한지 몰라. 난 이게 천직이라고 생각해. 정말로.
 
기 세고 정 많은 성격… 손님 끄는 비결
 
은은정 대표가 가정을 꾸리고 의류장사를 하던 남원과, 공구상을 차린 구례는 지도상으로는 붙어 있긴 하지만 엄연한 객지다. 객지 사람이 와서 차린 구례공구철물이 지역과 융화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업 초기 지역 사람들이 세운 벽 역시도 대표의 화통한 성격에 점차 무너져 갔다.
 
구례에 지금 공구상이 몇 군데나 있나요?
-열세네 군데 될 걸? 인구라고 해봐야 고작 2만5천인데 공구상이 열서너 곳 있다 보니까 여기는 경쟁이 아주 치열해. 또 우리 같은 경우는 고향이 아니라고 사람들이 좀 배척을 했었어. 왜 객지사람을 도와주냐 이거지. 처음에는 그게 참 심했어. 그래도 우리는 큰 공사 현장이 있어서 성공할 수 있었어. 전주-광양간 고속도로 사업, 이쪽 하수관거 사업, 큰 병원이며 체육관 같은 것들이 다 우리가 공구상을 시작했을 때 했던 사업들이거든. 우리는 적기에 시대를 잘 탄 거지.
주변 다른 공구상들도 그런 사업들에 물건 대려고 많이들 했을 것 같은데 어떻게 계약들을 따낸 건가요?
-그런 사업이 시작되면 물건 단가를 넣어달라고 하잖아. 그럴 때 나는 단가를 기가 막히게 잘 넣어 줘. 그런 센스가 있거든. 그래서 계약들을 다 따낸 거지. 또 내 별명이 술상무예요. 하하하. 전주-광양간 고속도로 공사 때부터 내가 술상무라고 불렸어. 거래 했던 사람들 회사 사장들이 오면 술대접 해주고 그랬지. 그 때도 우리 애기아빠는 말이 없고 재미도 없고 그러니까 여사장이 껴야 된대. 내가 또 술도 잘 마신다고 구례에서 소문이 났지. 그렇게 항상 따라다니다 보니까 그런 별명이 붙지 뭐야.
공구상이 천직이라고 하셨잖아요. 생각해 보면 그렇게 한 번 망하고 철물점에 돈 떼어먹힌 게 지금 공구상을 차리는 데 큰 도움이 된 거네요?
-나는 지금도 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면 또 고맙고 그래. 그렇게 돈 떼어먹혀 망하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할까 고민했을 때 그 사람들이 철물점을 안 했으면 이렇게 성공하지 못 했을 거 아냐. 나는 지금도 그 사람 미워하지 않아. 한 번도 원망해 본 적 없어. 그 사람 덕분에 내가 이렇게 공구상에 발을 참 잘 디뎠다, 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때 떼어먹힌 돈도 대표님이 혼자서 투자하셨던 거죠?
-맞아.
남편 분이나 가족들이 원망하지는 않았나요?
-우리 집 애기아빠가 사람이 워낙 좋아서 일편단심 민들레야. 내 나이 열아홉에 애기아빠 만나 결혼해서 지금 파뿌리 됐잖아. 하하하. 애기아빠는 올해 나이가 67이고 나는 58 아홉 살 차이야. 결혼할 때부터 오직 내가 예뻐가지고 그런 걸로 나에게 뭐라고 한 적이 없어. 그리고 내가 세 번을 망했는데 그게 내 팔자로 망한 게 아니라 우리 애기아빠 팔자로 망한 거야. 사주팔자를 보면 우리 남편은 중 팔잔데, 가정을 거느리고 살면 세 번을 엎어야 된다네. 그리고 아들을 두면 안 된대. 지금 딱 그렇게 됐잖아. 세 번 망했고, 딸만 셋이고.
정말 두 분은 인연이신 것 같아요. 남편 분도 대표님과 만났기 때문에 세 번을 엎고 지금 이렇게 튼튼한 가정을 꾸릴 수 있었겠죠.
-과거를 돌이켜보면 정말 수많은 일이 있었지. 96년도에 2억 원을 빌려주면서도 내가 통짜가 얼마나 컸냐면 그냥 종이 한 장에다가 했었어. 이런 종이 한 장에다가 4천만원 빌려주고 2천만원 빌려주고….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어떻게 그랬나 몰라. 내가 그렇게 IMF 직전에 세 번을 망하면서 한 10억 정도 떼였어. 보증 섰다가 다 떼인 거지. 딱 한 건 받았어. 천3백만원. 하하하.

 
공구상은 내 천직… 문만 열면 너무 재밌어
 
1997년 공구상의 문을 열고 올해로 19년째. 그렇게 오래 된 것은 아니지만 대표와 남편의 나이가 있어 후계를 생각해야 할 일이다. 대표 부부의 아래에는 딸만 셋. 은은정 대표는 짊어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딸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직원들의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슬하의 세 따님들 나이는 어떻게 되나요?
-서른일곱, 서른여섯, 서른둘. 첫째는 학교 선생님이고 둘째는 필라테스 강사고. 지금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막내는 다른 일 하고 싶어도 사람이 없으니까 못 나가고 여기서 도와주고 있는 거야. 딸만 셋이다 보니까 물려줄 사람이 없어서 내가 조금 안타까운 면이 없잖아 있어.
그래도 벌써 물려줄 사람을 찾는 건 좀 이른 것 아닌가요? 천천히 생각하셔도 될 것 같은데.
-내가 건강상에 문제가 좀 있거든. 뇌출혈이 올려다 말았어 6년 전에. 지금 뇌 쪽 혈관이 좀 찢어져 있는 상태야. 조금만 더 심했으면 뇌출혈이 올 뻔 했는데 내가 워낙 좋은 일을 많이 했잖아. 10억을 갖다가 사회에 상납을 했으니까. 하하하. 의사 선생님이 그러더라고, 신경을 쓰면 안 된다고. 그런데 그럴 수가 있나. 내가 매장 일을 전부 다 도맡아서 하고 있는데. 신경을 안 쓰려면 공구상을 놔야 돼. 그런데 문만 열면 너무 재밌고 좋은데 어떡할 거야. 그래서 지금 재목감을 찾고 있는 거야.
지금 매장에 있는 직원들도 혹시 후보들인가요?
-직원들이 아니라 우리 가족들이야. 키 큰 애는 우리 첫째 딸 예비 사위고, 작은 애는 우리 조카. 그런데 조카 요녀석은 하나를 알려 주면 열을 알아. 대학교 다니면서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나와서 도와주고 있는 건데도 일을 참 잘 한다니까. 그런데 안타까운게 뭐냐면 나이가 너무 어려. 이제 스물한 살이야. 내가 언제 얘를 다 키우냐고. 예비 사위는 지금 하는 일이 세 개야. 농구 심판도 하고 또 개인사업도 하고 있는데 우리 가게 직원이 없다 보니까 와서 도와주고 있는 거야.
19년 동안 이렇게 성장한 구례공구. 대표님은 어떤 것이 성공에 가장 큰 이유였다고 생각하세요?
-부지런하고 정직한 것. 공구상 철물점 하는 사람들은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 돼. 옛날에는 저녁에 가게 마치고 들어가서 깜빡 자고 밤 열두시에 일어났어. 그래서 새벽 한 시에 가게에 나와서 정리정돈 하고 그랬지. 그러니까 재고도 알고 뭐 완전히 꿰게 된 거지. 그래서 여름에는 가게 문을 네시 반에 열었어. 구례에서 제일 빨리 문 열었던 집이 우리집이야. 왜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하잖아.
네시 반이요? 놀랍네요. 공구상 일이 재미있고 또 판매도 만족스러워서 그러셨나 봐요?
-우리 애기아빠 친구들이 다들 시장 부시장 동장 교장 했던 사람들이야. 우리 애기아빠도 학교 행정실에 있었고. 예전에 우리 애기아빠 넥타이 매고 직장 다닐 때는 그 사람들이 우리 남편을 안쓰럽게 생각했었어. 각시 잘못 만나서 저렇게 고생한다고. 그런데 지금은 봐. 그 사람들 다 퇴직했잖아. 퇴직금 받는다고 해 봐야 얼마나 받겠어. 그래서 나는 전화위복이 됐다 생각해. 이렇게 내 성격에 잘 맞는 공구상 하면서 돈도 벌고 있으니까. 나는 다시 태어나도 공구상 할 거야. 정말로. 하하하.

글·사진 _ 이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