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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상탐방

정리정돈 잘 돼있기로 소문난 강릉 국제베어링


약국 같은 정갈한 디스플레이 공구상 맞아요?


정리정돈 잘 돼있기로 소문난 강릉 국제베어링




배우 같은 여사장이 운영하는 특별한 공구상

강릉베어링 문을 열고 들어간 첫 소감은 ‘여기가 정말 공구상이 맞나?’였다. 사방 벽면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나무로 된 장식장과, 그 장식장을 덮고 있는 반짝이는 유리문들. 공구상이 아니라 흡사 옛날 한약방에 들어온 것 같았다. 디스플레이 좋다 하는 공구상들 여러 곳을 다녀 봤지만 이런 정도의 공구상은 처음이다. 지독할 정도로 정리정돈 깔끔한 공구상에 어안이 벙벙해 있던 찰나, 국제베어링 문을 열고 한 젊은 여인이 들어왔다. 웨이브 펌을 한 다갈색 긴 머리카락에 배우 같은 외모. ‘누구지? 여기는 공구상인데 잘못 찾아 들어왔나?’ 곧이어 그녀의 입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국제베어링 대표 구수현입니다.” 사람을 두 번 놀라게 하는 곳이다.
올해 삼십대 중반의 구수현 대표는 부친이 1981년에 문을 연 공구상을 물려받은 2세대 공구인이다. 하지만 물려받았다고 해서, 그리고 젊은 여성이라고 해서 그녀의 공구 관련 지식과 능력을 의심하다가는 큰 코 다친다. 2004년부터 아버지의 공구상에 와 운영을 도우며 10년 넘게 공구와 함께 시간을 보낸 ‘마담 툴’이다. 그녀는 2010년 부친이 세상을 뜬 후 2011년부터 대표 직함을 맡았다.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죠. 적성에도 맞는지 모르겠고. 또 그때만 해도 지금보다 사람들의 생각이 닫혀있는 때라서 여자가 공구상 일을 하는 걸 좋게 보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요즘은 남자 하는 일 여자 하는 일 구분두지 않잖아요. 또 하다 보니까 공구상 일에도 재미있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깔끔한 성격의 아버지 닮은 듯 단정한 매장

보통 공구상을 떠올리면 복잡한, 정신없는 등의 단어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공구상마다 매장 안에는 수천 수만 가지의 공구들이 전시되고 적재되어 공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리를 한 번 하려 해도 제대로 하려면 며칠 간 공구상 문을 닫아야 가능할까 말까다. 하지만 국제베어링은 그런 생각을 180° 뒤집는다. 우선 고객이 매장에 들어와 한 바퀴 둘러보면 어떤 공구가 어디에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매장 직원에게 이 공구가 어디 있냐고 물을 필요 없이 필요한 공구를 직접 골라들고 매대에서 계산하면 끝이다. 벽면을 장식장이 덮고 있다고 해도 전혀 정신없는 느낌이 아니다. 부드러운 목재의 질감과 색깔이 마음을 안정시키며 그 위를 덮은 유리는 거기게 깔끔함을 더한다. 대체 누가 이런 공구상을 만들어 놓은 걸까?
“저희 아버지죠 뭐. 저희 아버지가 정말로 깔끔하고 정리 정돈 잘하기로 소문난 분이셨거든요. 대화를 하다가도 탁자에 놓인 수첩이 삐뚤어져 있으면 그것부터 바로잡고, 화장실에 머리카락 한 올 떨어져 있는 것도 못 보는 분이셨어요.”
그런 아빠의 예전 모습이 답답했다는 듯 말하는 구 대표였지만, 그녀의 책상에 놓여있는 책과 수첩, 그리고 볼펜이 각을 맞춰 가지런하게 놓여 있는 것을 보니 피는 못 속이는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국제베어링이 단정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아버지를 이은 대표의 깔끔한 성격 덕분인지 모른다.


 

맨바닥에 공구 놓는 것 못 봐… 깔끔한 매장에 고객 직원 둘 다 만족

깔끔한 장식장 말고도 국제베어링 매장을 둘러보자니 놀랄 만한 것이 또 하나 있었다. 바로 맨바닥에 곧바로 놓인 공구가 단 하나도 없다는 것.
“저희는 한 번도 공구를 바닥에 둔 적 없어요. 장식장에 들어있지 않은 공구들은 전면 벽에 걸어두고요. 특히 수공구처럼 고객분들이 자주 찾는 공구는 전부 다 이렇게 앞에 걸어 둬요. 직접 고를 수 있도록이요. 가게를 찾는 고객분들도 다들 깔끔하다고 말씀들을 해주세요.”
정돈된 매장의 효과는 고객과 직원 모두에게 돌아간다. 깔끔한 매장에 찾아 온 고객들도 좋은 기분으로 만족해 돌아가고 구매 욕구도 상승하며 다양한 상품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직원들은 고객이 원하는 물건을 쉽고 빠르게 찾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매장 뿐 아니라 뒤편의 창고마저도 매장과 다를 바 없이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어 직원의 효율적인 업무를 돕는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공구상에서 함께 일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혼자서 공구상을 운영하게 된 구수현 대표는 힘이 되는 사람들이 곁에 많았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거라고 말한다. 그런데 왜 그녀는 다른 형제들을 대신해 아버지의 공구상을 맡은 걸까?
“저희 집이 세자매인데 제가 막내거든요. 언니들은 다 타지에서 자기 일을 하고 있는데 저는 막내라서 엄마아빠랑 떨어지기 싫은 게 좀 있었어요. 서울에서 1년 정도 생활을 하고 와서 아빠 밑에서 일을 하기로 약속을 했죠. 그리고 아버지가 자수성가하셔서 사업을 이뤄 놓으시니까 누군가가 맡아서 하길 원하기도 하셨고요. 저도 자식 된 도리로 엄마 아빠 밑에서 정말 호위호식하면서 지냈거든요. 그래서 내가 맡아서 해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하게 되었죠.”
올해로 6년째 국제베어링의 대표를 맡고 있는 구수현 대표. 처음에는 그저 얼굴만 비출 거라 생각했다는 주변 거래처 사람들도 지금은 그녀가 대단하다고 말한다. 매장 직원들의 인정은 말할 것도 없다.


 

꿈은 공구 마트 차리는 것… 누구나 쉽게 골라 살 수 있는 마트형 매장으로 꾸미고파

구수현 대표는 오늘도 디스플레이에 대한 생각이 많다. 굉장히 외로운 오너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은 직원들 생각 아니면 ‘어떻게 하면 매장의 디스플레이를 더 좋게 할 수 있을까’ 뿐이다. 구 대표는 과거엔 기름쟁이라고 낮잡아 불리기도 했던 공구상들도 이제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가는 것이 중요하고 또 필요하다 말한다. 공구 진열도 과거처럼 그저 쌓아놓는 데만 급급하지 말고 깔끔한 디스플레이로 꾸미고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차림새도 깔끔한 모습이어야만 변화하는 고객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거라는 말이었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공구상의 진열 모습을 인터넷을 통해 종종 찾아본다는 대표는 그런 매장의 모습을 보며 앞으로 국제베어링이 변화해 나갈 모습을 구상한다.
“외국 공구상을 보면 정말 진열이 달라요. 망치 하나를 놓더라도 굉장히 메리트 있게, 사고 싶게 놓거든요. 저는 그런 사진들을 찾아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을 세우죠.”
구 대표의 꿈은 디스플레이에 주력한 공구 마트를 차리는 것이다. 매장을 찾은 고객 누구나 쉽게 보고 구매할 수 있는 그런 공구 마트를. 그 마트에 아버지 때부터 연을 맺고 찾던 오래된 고객들과 새로이 가게를 찾는 고객 모두가 방문하는 날을 그녀는 꿈꾸고 있다.

글, 사진 _ 이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