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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상탐방

전남 영암 한일상사 이봉준 대표


젊은 날엔 마도로스, 지금은 봉사하는 공구인


전남 영암 한일상사  이봉준 대표


부인과 함께 빈곤노인 위한 하모니카·기타 공연
매년 목포해양대학·전남예술고에 장학금 전달도




가족 보고 싶어 마도로스 포기…
육지로 올라 공구상 문 열어


마도로스. 이름만 들어도 바다 물결에 비쳐 잘게 부서지는 햇살과 갈매기의 우아한 날갯짓, 대양을 항해하는 외항선의 묵직한 뱃고동 소리가 떠오른다. 낭만(浪漫)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직업이 바로 마도로스다. 전라남도 영암군 한일상사의 이봉준 대표는 대형 외항선의 기관장으로 전 세계 대양을 항해했던 사람이다. 1974년, 목포해양고등전문학교(현 목포해양대학교) 기관과를 졸업하고 바다에 나가 십 수 년간 마도로스 생활을 하며 젊은 날을 보냈다. 그러던 그가 과거의 직업과는 전혀 다른 공구상 운영으로 인생의 지침을 돌린 이유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제가 배를 타던 때에는 1년은 배를 타야 한 달 휴가를 줬어요. 총각 시절에는 혼자 사니까 배를 타는 게 재밌기만 했는데 결혼을 하니까 그렇지 않더라고요. 제가 아이도 빨리 못 가졌어요. 결혼한 지 4년 만에 딸을 낳았는데 그 딸아이도 제가 배를 타고 필리핀에서 미국으로 건너가던 중에 낳았다고 연락을 받은 거예요.”
곁에서 품어야 할 가족이 생기자 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 결국 적게 벌지라도 가족과 함께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품고 뭍으로 올랐다. 88년, 부동산에 내놓아져 있던 목포 선창의 작은 공구상을 친구들의 소개로 매입해 자리를 잡았다. 그 후 네 차례 이사를 거쳐 현재 전남 영암군 대불국가산업단지 인근에서 한일상사를 운영중이다.
 

아내는 하모니카 자신은 기타 연주…
좋아하는 모습 보면 가슴 먹먹해


봉사와 기부를 하는 사람들은 꼭 금전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 넓디넓은 대양을 바라보며 가슴의 크기를 키웠던 덕분일까? 언제나 웃는 낯으로 사람을 대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이봉준 대표는 20년 전부터 꾸준한 기부와 봉사를 행하고 있다. 매년 모교인 목표해양대학교와 한국폴리텍대학, 전남예술고등학교에 장학금을 기부하고 있는 그. 또한 작년부터는 아내와 함께 빈곤노인들과 어려운 이웃을 위한 공연에도 참가해 악기 연주 능력을 기부하고 있다.
“공연을 시작한지는 얼마 안 됐어요. 경로당이 있는 주민센터나 마을 회관을 방문해서 아내는 하모니카 연주와 난타 공연을 펼치고 저는 기타 연주를 담당하고 있죠. 저희 어머니 아버지 같은 나이드신 분들이 좋아하시는 걸 보면 참 제가 다 고마워요.”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이봉준 대표도 공구상의 문을 연 처음부터 공연 봉사를 다닐 만큼 생활에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유는커녕 과거 기관장으로 있을 때보다 한참이나 줄어든 수입 때문에도 힘들었고 해 본 적이 없던 매장 운영의 미숙함은 그를 괴롭혔다.
외항선의 기관장은 기본적으로 엔지니어다. 외부와 떨어져 있는 독립 공간인 배가 항해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의 유지 보수를 맡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양한 공구에 익숙해져 있던 그였다. 하지만 외항선 기관장으로 하던 일과는 전혀 딴판인 공구상 운영은 막막하기만 했다.
“공구는 익숙하니까 처음에는 쉽게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공구상을 운영하는 건 그것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공구 판매를 위해서 영업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도 몰랐고 하다못해 세금계산서 발행도 몰랐던 대표. 하지만 그는 다시 배로 돌아가지 않겠는 굳은 결심이 있었다.
“우리 배타는 사람들한테는 자격증(면허증)이 있어요. 해기사(海技士) 자격증이라고. 그 면허증만 있으면 아무리 큰 배라도 승선할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어요. 그러니까 배 타던 사람들은 육상에 내렸다가 적응이 안 되면 또 배를 타고 나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나는 그 때 아내한테 무슨 이야기를 했냐면, 나는 그걸 찢어버렸다. 배수진을 치고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마음으로 간다. 이 사업에 내 모든 정성을 바쳐서 올인하겠다. 그게 제 마음이었어요.”
그런 마음을 하늘이 알아줘서일까? 한일상사 근처에 대불국가산업당지가 조성됐다. 1,114만 평방미터 면적의 대규모 산업단지다.


꼼꼼함이 성공의 기본…
공유하는 자세로 더불어 삶이 필요해


대불단지의 주요 입주 업종은 조선 관련업이다. 지금 한일상사의 주요 납품처는 조선 업체와 해외에서 들어오는 외항 선박이다. 그러는 데는 대표의 과거 외항선 기관장으로서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외항 선박에 납품을 하려면 항만청으로부터 물품 공급업 허가증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견적이나 뭐다 전부 영어나 일본어로 해야 해요. 외국어로 된 견적서를 외항선 측에 넣고 발주를 하고 납품을 하려면 또 대화도 해야 하니까 말을 못하면 못할 일이지. 또 배를 타고 다니는데 어떤 공구가 필요할지 알아야 견적서도 넣는 거 아니겠어요?”
영어나 일본어에 능통하지는 않지만 대화에 필요한 정도는 한다는 이봉준 대표. 그는 지난 10월에도 대불공단에 들어온 일본 외항선에 일주일 동안 3천만 원의 납품 실적을 올렸다. 외항선이 아닌 조선소의 공구 입찰도 배에 대해 알고 있는 대표가 유리하다.
대표의 디테일하고 꼼꼼한 성격도 매출에 도움이 됐다. 사전에 정확하게 준비하고 물건을 가지고 가는 덕분에 한일상사가 납품하는 물건은 리젝트(반품)가 거의 없다. 리젝트가 없다는 것은 더군다나 해외의 외항선에 납품하는 회사로서는 정말 중요한 것이다. 우리나라 국적의 배가 아닌 경우, 세관에 신고하고 처리하는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 반품이 들어오면 전 과정을 다시 진행해야 한다.
“저는 엔지니어라서 그런지 정확하지 않은 걸 싫어해요. 수천억 원의 선박이 움직이고 있는데 거기에 천 원짜리, 백 원짜리 볼트 하나가 잘못 사용되면 엔진이 멈춰버릴 수도 있는 거예요. 그만큼 작은 것에도 소홀할 수가 없는 거죠.”

삶의 방향을 전환해 이제는 안정기에 접어든 대표는 공유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배려가 공구상인들에게 필요한 덕목이라고 말한다.
“혼자는 절대 살 수 없어요. 더불어 살아야 해요. 공구상도 밀집된 동네가 오히려 장사 잘 되잖아요. 사회의 일원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의식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자신만의 성공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함께 나아가기 위해 기부와 봉사를 하고 있는 이봉준 대표. 그가 걸어가는 길의 끝에서 맞는 길로 왔다고 확신하기를 기원한다.

글 · 사진 _ 이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