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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상탐방

섬마을 공구상 이렇게 성공했다


섬마을 공구상 이렇게 성공했다


전남 팔금도 신안철물농기계 천세석·문화순 대표



남편은 맥가이버, 아내는 공구전문가

보통의 공구상은 상가의 명의가 아내 이름으로 되어 있다고 해도 대개는 남편이 공구상 운영의 주(主)를 맡는다. 그 예외가 하나 있다. 바로 전라남도 신안군의 작은 섬, 팔금도에 위치한 신안철물농기계다.
신안철물의 문을 통해 매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여주인 문화순(43) 대표가 맞이한다. ‘여자가 공구상을?’하는 생각은 버려라. 그녀는 매장 안에 있는 약 2만여 개 상품의 위치를 줄줄이 꿰고 있다. 위치만이 아니다. 공구의 종류와 명칭도 모르는 것이 없다. 상품 이름만 대면 척척 물건을 찾아 가져다 준다. 그야말로 공구계의 네비게이터다.
그녀가 공구상에서 손님들을 맞는 사이 남편인 천세석(44) 사장은 공구상 옆에 붙어 있는 수리점에서 그야말로 ‘모든 것’을 고친다. 경운기나 트랙터, 심지어는 선박까지 못 고치는 물건이 없는 사장님을 동네 사람들은 맥가이버라고 부른다.
두 부부가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은 섬이 아닌 육지, 그것도 대도시인 광주광역시였다. 그곳에서 탱크로리 운전을 하던 세석씨와 화장품 판매업을 하던 화순씨는 만나 살림을 차렸다. 그런데 운이 따르지 않았다.
“남편이 선후배들이랑 나이트클럽에 투자했다가 쫄딱 망했죠. 그래서 남편 고향인 이 쪽 섬으로 내려온 거예요. 저는 제 평생 섬에서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산더미같은 빚을 지고 신용불량자가 되어 섬에 내려온 것이 13년 전이다. 섬에서 화순씨는 정육점과 함께 하는 고깃집 일을 했고 남편 세석씨는 카센터에서 농기계 수리 일을 시작했다.
그런 사람이 있다. 기계만 보면 다 뜯어보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람. 천 사장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기계란 기계는 전부 다 고칠 줄 알았다. 손을 이용해서 하는 일은 수리, 용접, 요리, 운전 등 전부 다 전문가 수준이다. 잘 고친다는 소문이 나자 카센터에는 도로 위까지 줄을 설 정도로 손님이 많아졌고 그가 받는 월급도 점점 커져 3년 만에 빚을 청산했다.


사업 실패 남편에게 기계 고치는 재주가…

부부가 빚을 다 갚고 독립해 농기계 정비소를 차렸을 무렵, 팔금도 인근의 한 섬에도 공구상이 있었다. 지금은 다리로 연결된 주변 섬들 가운데 유일하게 한 곳 있던 공구상이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적으면 가격은 상승하는 법. 폭리를 취하던 그곳은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도 악명이 높았다. 그걸 본 남편 천 씨는 ‘그럼 내가 공구상을 한 번 해볼까?’ 생각했다.
처음에는 정비소 옆에 진열대를 두고 고작 몇 개의 기본적인 공구들만 들여놓았던 것이 시작이었다. 정비소의 수익이 날 때마다 공구를 사들여 진열대를 채워 나갔고 지금의 신안철물농기계가 만들어졌다.
“저희는 지금도 최대한 저렴하게 팔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도시보다는 비싸죠. 배 타고 들어오는 도선비가 있으니까. 그래도 최대한 낮은 가격으로 팔아요. 또 우리는 정찰제로 가격을 다 붙여 두거든요. 그래서 주변 분들이 찾아 주시는 것 같아요”
정비소 옆에 공구상을 차린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잘 고치기로 이름난 정비소에는 고장난 농기계와 각종 기기들이 매일같이 몰려들었고, 수리하러 왔다가 공구상을 들러 한 바퀴 돌아본 손님들은 공구를 하나씩 집어 구입해 갔다.
“공구상이라는 게 남자들의 백화점이잖아요. 둘러보다가 이게 필요했지 참, 하면서 구입해 가시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아, 이게 되겠구나 싶어서 신제품 나왔다 하면 다 갖다 밀어넣어 두죠”
신안철물의 성공 비결은 정비소와 공구상의 결합만이 아니다. 조립-판매-수리를 한 곳에서 할 수 있다는 것도 성공의 커다란 요인이다. 특히 섬마을에 필요한 농업용 공구 분야는 더더욱 그랬다.
“논이나 밭에 물을 주는 쿨러에 물을 밀어주는 피스톤 펌프라는 기계가 있거든요. 그걸 애기아빠가 조립을 싹 해서 파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손님들이 뭍에 나가서 사게 되면 기계만 갖고 와서 자기가 조립을 해야 하잖아요. 그게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그러니까 좀 싸더라도 섬 밖에서 안사고 여기서 구입하시는 거예요”


 

인근 4개 섬 주민 몰려와… 본의 아닌 독점

이익을 생각하기 보다는, 고객에게 필요한 공구가 무엇일까를 먼저 생각하는 천세석·문화순 부부. 섬 주민들이 배를 타고 나가 거래하던 뭍의 공구상은 이윤을 많이 남기는 데만 집중해 서로 맞지 않는 제품들도 조립해 판매하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신안철물은 그러지 않는다. 손님이 원하는 조건을 따져 상황에 딱 맞는 기계를 조립해 판매한다. 지금은 다들 알지만 처음에는 그 마음을 믿지 않는 주민들 때문에 고민도 많이 했단다.
“처음에는 믿질 않으시는 거예요. 뭍에서는 50만원에 샀는데 너네는 왜 70만원이냐 하는 거죠.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기계들이 서로 맞지 않다 보니까 금방 고장나더라고요. 지금은 주변 분들이 그런 걸 알기 때문에 여기로 찾아오세요”
지금, 다리로 연결된 안좌·자은·암태·팔금 4개 섬의 주민들은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모두 신안철물로 달려온다. 요 근래 잘 나가는 상품은 천 씨가 제작해 판매한 양식장 산소 공급기다. 근처 양식장에 달려있는 산소공급기 중 절반은 그가 만든 것이다. 인근 양식장 뿐 아니라 멀게는 해남에서 까지도 주문 전화가 걸려 온다.
이미 어느 정도 성공의 궤도에 올라 최근 텔레비젼 방송에까지 나온 신안철물농기계 사장님 부부의 꿈은 다른 것 없이 네 아이 잘 키우는 것이다. 특히 둘째, 아홉 살 수민이는 신안철물의 후계자로 벌써부터 지목받았다.
“그녀석이 어린데도 ‘이 철물점은 내가 물려받을 거야’해요. 한 번은 큰애가 여기 내가 할까? 그랬더니 내꺼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그게 웬만한 공구는 다 알아요. 애아빠도 출장갈 때는 걔만 데리고 가고”
앞으로 10년 20년 후에 수민이가 대표로 운영하고 있을 신안철물농기계를 기대해 본다.

글· 사진 _ 이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