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구상탐방
서울 청계천 동아공구 김완용 대표
공구상을 운영하면서 공구인이 가장 힘들게 느끼는 것은 바로 가게 전시와 정리정돈이다. 공구상이 취급하는 공구는 크기와 모양이 다른 것이 수천 가지가 넘는다. 기껏 정리정돈을 하더라도 장사를 하면서 구색이 점점 늘어나고 구색이 늘어날수록 정리정돈과 디스플레이가 무너진다. 그런데 동아공구는 6평의 작은 가게에 수천 가지 제품을 전시하면서 깔끔한 정리정돈을 보여준다. 청계천에서도 정리정돈과 디스플레이 잘하기로 소문났다.
“이 자리에서 일한지는 오래됐죠. 건물 자체도 오래 되었고요. 한국전쟁 끝나고 만들어진 골목이니까요. 매형이 이 자리를 계속해서 일을 하시다가 연세가 있으셔서 그만두시고 내가 인수를 했어요. 인수 받은지 20년 가까이 되었네요. 여기도 처음에는 어느 공구상처럼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았죠. 그런데 저는 아무렇게나 물건을 쌓아놓고 장사를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작은 가게를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손님이 물건을 고르는 것이 편안한 전시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 다른 공구들을 6평 작은 가게에 걸어 둬야 하기에 많은 연구를 했다. 잘 보여지는 공구와 잘 나가는 공구는 무엇인지 또 우리 가게의 주력 상품이 무엇인지 고민을 했다. 3년간의 연구와 더불어 시행착오를 겪다보니 어느새 디스플레이 하나로 손님을 끌어 모으는 가게가 되었다.
매형이 운영하던 가게를 인수한 직후 김완용 대표는 고심 끝에 철망을 벽에 붙이고 고리를 이용해 공구를 걸어 물건을 전시했다. 그런데 얼마 후 ‘스페이스월’과 ‘후크’를 이용한 인테리어가 나왔다. 자신이 추구하는 공구상 경영에 꼭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한 김완용 대표는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해 ‘스페이스월’과 ‘후크’로 가게를 꾸몄다.
“스페이스월과 후크를 이용한 공구전시는 아마 청계천에서 제가 최초일 거예요. 나온지 얼마 안되서 바로 공구상에 적용을 시켰으니까요. 그냥 물건을 쌓아 두면 마음이 불편하잖아요. 밑에 깔려 있는 공구에 충격이 가서 성능에 이상이 있을 것 같고요. 저희 가게가 주로 취급하는 것은 전자제품에 자주 쓰이는 수공구와 측정공구들입니다. 커다랗고 부피가 큰 공구보다는 작은 공구들이죠. 어지럽혀져 있으면 그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요. 거기다 공구라는 것이 자신이 쓰는 공구만 계속해서 쓰게 되니까 저희 가게에 오시는 단골 손님들은 자신이 쓰는 공구가 우리가게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 공구를 납품하는 대형 공구상사 영업사원도 마찬가지죠. 영업사원도 편하고 손님도 편하고 저희도 편하고 다 좋죠.”
깨끗하고 정리정돈이 잘된 매장에 가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동아공구도 마찬가지다. 적지 않은 비용이지만 그만큼 효과가 좋은 것이 바로 ‘스페이스월’과 ‘후크’를 이용한 전시 방법이다. 그렇게 빈틈없는 전시로 믿음이 가면서 알찬 가게로 만들었다.
‘스페이스월’과 ‘후크’를 이용해 전시를 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벽에 걸 수 없는 공구들도 많다. 비트날이나 드라이버와 같은 공구들은 ‘스페이스월’과 ‘후크’를 이용해 전시할 수 없다. 그래서 김완용 대표는 스스로 그것에 맞는 공구전시대를 설계해 만들었다. 손님의 반응이 좋은 것은 물론이다.
“원래 제가 기계공학을 전공했거든요. 그래서 웬만한 공구를 다룰 수도 있고 용접도 할 수 있어요. 설계도 가능하고요. 덕분에 적은 비용으로 내가 직접 공구전시대를 설계하고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3년 동안에는 주말도 없이 일을 해야 했어요. 또 아내와 함께 일을 하는데 아내가 컴퓨터를 잘 다루거든요. 보다 편하게 작업하기 위한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했죠. 일하는 것도 편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높은 곳에 전시되어 있는 공구를 꺼내기 위한 다용도 긴 집게도 직접 만들고 그랬어요. 시중에 나온 집게로는 무거운 공구를 집기에는 불안하더라고요. 선반 위에 경첩을 달고 작은 ‘스페이스월’을 창문처럼 만들어 좁은 공구상을 보다 넓게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김완용 대표는 1983년 청계천에서 공구인 생활을 시작했다. 잠시 형님의 일을 도와준다는 것이 그만 30년의 세월을 훌쩍 넘겨 버렸다. 원래 기계공학을 전공했던 김완용 대표와 공구는 참 잘 맞았다. 그리고 아내의 이해와 배려로 디스플레이에 뛰어난 공구상을 경영할 수 있었다.
김완용 대표는 이런 디스플레이를 위한 노력도 아내인 ‘민순기’씨가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만의 공구 전시대를 짜고 디스플레이에 신경을 쓰면서 가게의 대소사를 아내가 도맡아 했기 때문이다.
“보통 처음에는 깔끔한 전시를 하더라도 나중에 가서는 그 깔끔함이 무너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공구전시는 한번 신경쓰고 마는 것이 아니라 계속 꾸준히 신경을 써야 하거든요. 그런데 품목수가 늘면 새로운 자리를 마련해야 하는데 그것이 보통일이 아닙니다. 고민할 때는 일주일을 고민해서 자리를 만들어야 해요. 그런데 잘나가는 품목은 이왕이면 그 자리 그대로 두는 것이 나아요. 공구가 있던 자리가 바뀌면 단골 손님들이 헷갈려 하니까요. 그래서 처음에 놓는 자리가 참 중요해요. 그리고 한 사람이 온종일 매달려야 디스플레이가 제대로 되는데 그렇게 되면 함께 일하는 직원이나 가족이 힘들지 않겠어요? 저도 함께 일하는 아내가 디스플레이에 신경을 쓰고 돈을 투자하는 것을 이해해 줬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공구상으로 꾸밀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완용 대표는 깔끔한 디스플레이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공구상마다 가게 크기가 다르고 취급하는 품목이 다르고 매출유형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사람이 아닌 주인이 스스로 가게 디스플레이와 정리정돈을 해야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물건이 잘 나가는지는 주인만이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누구나 노력하면 바로 바로 티가 나는 것이 디스플레이기에 성실한 공구상이라면 누구나 디스플레이 고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20년 넘게 디스플레이 고수로 살아온 김완용 대표의 비결이었다.
글· 사진 _ 한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