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고 특수부대 특전사를 나온 사람은 남다르다. 그런 남다른 사람이 공구인이 되어 18년의 직원 생활을 보낸 후 신용 하나로 가게를 차려 높은 매출을 올리는 공구인이 되었다. 대한민국 공구업계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면 결국 탄탄한 중산층 이상으로 성장해 남부럽지 않게 산다는 것을 보여주는 멋진 사례다.
특전사 전역 후 공구인의 길로
경기 화성시에 위치한 미래종합공구의 김용일 대표는 이색적인 이력을 자랑하는 공구인이다. 바로 특수전사령부에 입대 하여 특전사로 복무했던 경험이 있다. 6년간 온갖 위험한 훈련을 받고 나와 공구인이 되었다고 한다.
“21살 때 였어요. 군대를 다녀오긴 다녀와야 하는데 이왕 가는 것 남아로 태어나 특전사로 입대해 멋진 군생활을 보내고 싶었어요. 체력이나 키는 자신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지원을 하니 40킬로 모래주머니를 메고 뛰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입대를 할 때는 체력을 많이 봤습니다. 키도 175이상은 되어야 했고 안경을 껴서도 안되고 신원조회도 확실해야 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신원조회가 확실해야 하죠. 대통령을 경호하는 특수한 경호작전도 나가고 비정규전 임무도 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6년간 복무를 하면서 많은 일이 있었죠. 26살 1989년 1월에 중사로 제대를 했습니다. 요즘에는 처우가 좋아서 장기 복무 많이 하지만 그때는 안그랬어요. 그래서 여단에 동기가 한 30명 정도 되었는데 2명 빼고 다 제대를 했죠. 저도 제대 이후 경기도 시흥의 장구공사에서 직원생활을 했어요. 그러다 형님이 경기도 안양의 진흥종합상사를 운영하셨거든요. 제가 또 거기서 직원생활을 오래 했죠. 직원생활만 18년을 했네요.”
특전사로 전역을 한 이후 공구상 직원으로 일을 하면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검소하게 살면서 가게를 차릴 기회도 있었지만 함께 일하는 사장님이나 형님을 배려하다 기회를 놓쳤다. 그러다 마침내 화성에도 공구상가가 생겼고 서둘러 입주를 하게 된다.
신용 하나로 얻은 가게 물건
특전사를 나와 오랜 세월 공구상 직원으로 일하면서 모은 돈으로 가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가게를 채울 물건을 살 돈은 없었다. 백방으로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려고 노력할 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크레텍, 케이비원, 동신툴피아를 비롯한 대형 공구유통사에서 저에게 물건을 빌려 주더라고요. 몇 달의 기간을 주고난 뒤 물건 값을 갚으라는 겁니다. 아무런 담보도 없이요. 가뭄 속의 단비 같은 도움이었어요. 어느 누가 가족도 아닌데 수 천만원 어치의 공구를 담보도 없이 빌려 주나요. 너무 고맙고 제가 지금 이 가게를 10년 째 운영하게 된 것도 다 그런 도움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니 1년 만에 초기 자본금을 다 갚을 수 있었어요.”
단순히 18년간 직원 생활을 했기에 받을 수 있는 도움이 아니었다. 18년 동안 성실하게 일을 했기에 받을 수 있었던 도움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김용일 대표는 다른 곳에 눈 돌리지 않고 공구유통업을 성실하게 할 사람이기에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도움을 받아 가게에 물건이 가득 찰 때 눈물이 나더라고요. 내가 인생을 헛살지는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4개월까지 물건 값을 받으러 가지는 않겠다. 4개월까지는 기다려주는데 그 이후에는 조금씩이라도 갚아라. 그 말을 듣고 내가 실패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초창기에는 일요일에도 문을 열고 밤늦게까지 문을 열어서 손님을 받고 그랬어요. 한 푼이라도 더 빨리 벌어서 도움 주신분들 물건 값 갚으려고요. 보란 듯이 성공해서 신용을 지켜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어요.”
모든 책임은 사장이 진다
신용으로 일으켜 세운 가게라서 인지 미래종합공구는 커다란 위기를 맞은 적이 없다. 경영상 찾아오는 위험은 항상 있었다. 그러나 김용일 대표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위험만 받아들였기에 가게 존재 자체가 위험한 경우는 없었다.
“모든 사업이 마찬가지인데 항상 마음을 긴장하며 살아야 해요. ‘억울하게 부도를 맞아도 내 책임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해요. 이 일이 와이프 끼고 하는 일입니다. 직원이 많으면 2명 3명이예요. 그러니 부도를 맞으면 내 책임인 거죠. 어쩔 수 없는 부도도 있겠지만 그래도 내가 그때 당시 대비 못 한 내 책임인 것이죠. 사업을 해본 사람은 알거예요. 사람이 하다보면 여유가 생기면 딴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과잉 투자를 할 수도 있고요. 다른 곳에 투자를 할 수도 있고요. 저는 그렇게 하지는 않았어요. 필요로 하겠다 싶은 곳에 투자를 했고 투자를 해도 감당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 때 투자를 했죠. 욕심이 과하면 안되요. 그리고 꾸준히 대비를 해서 부도를 맞아도 그렇게 힘들지 않은 거죠.”
공구상 직원생활은 공구에 대해 공부하고 장사기업을 배우는 기간이다. 긴 시간 직원생활 했던 김용일 대표는 어떻게 해야 사업이 잘 되는지 알고 있었다.
남품과 소매는 같이 해야
미래종합공구는 소매를 하면서 동시에 납품도 한다. 각기 장단점이 있기에 동시에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납품과 소매는 항상 따라가야 해요. 물론 납품은 부도 위험성이 따르죠. 납품은 인맥쪽으로 들어가고 그만큼 잘해줘야 하는 것이고요. 소매는 서비스에 직결 되는 것 같아요. 납품이 인맥관리라면 소매는 가게 서비스와 구색이고요. 둘 다 잡기가 힘든데 둘 다 놓치면 안되는 것이 공구장사 같습니다. 납품으로 큰돈 벌고 소매로 푼돈 벌고. 큰돈으로 투자하고 푼돈으로 먹고 살고 그러는 거죠.”
또 하나 그가 강조하는 것은 돈을 가지고 수월하게 시작하는 것 보다 자기가 고생하고 많이 배운 후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사람은 힘든 것을 경험하고 버티어 내면 그보다 덜 힘든 경우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사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특전사를 나와 직원생황을 오래 한 김용일 대표가 우수한 공구상인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필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