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구상탐방
올해 기대되는 공구상 5
“동남아에서는 한국 공구가 최고!”
서울 (주)디앤씨툴
제 51회 무역의 날 ‘100만불 수출의 탑’ 수상
“지금 동남아시아 쪽은 인프라, 그 중에서도 특히 전기가 부족한 상황이에요. 발전소를 계속 짓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공구 활용 범위가 넓습니다. 앞으로는 한국 공구를 더욱 알릴 수 있는 대리점도 열 계획이고요.”
지난 12월 5일, 무역의 날을 맞아 대통령이 직접 수여하는 ‘100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한 디앤씨툴 서상대 대표. ‘아쉽게도 200만불 상은 없었다’고 농담을 던지는 그는 앞으로 500만불, 1000만불의 공구수출을 꿈꾸고 있다.
그가 처음부터 무역을 시작한 건 아니었다. 대학 졸업 후 자리 잡은 첫 직장에서 전공을 살려 2년간 기계설계 일을 했다. 그러다 돌연 회사를 그만뒀다. 사업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 인터넷 쇼핑몰을 열고 많은 상품을 구비하고 있다는 의미로 ‘다사와(Dasawa)’라는 상표를 만들었다. 인터넷 판매 첫 달 매출은 150만 원에 불과했지만, 이후 세 달 만에 1,000만 원을 달성하며 7배 가까이 증가시켰다. 가장 대박 났을 때는 언제였는지 물어봤다.
“6년 전쯤 인터넷으로 콤프레샤 판매를 할 때였어요. PC방 같은 곳에서는 컴퓨터 먼지 제거를 위해 공기를 압축해서 내뿜는 콤프레샤라는 기계를 사용하는데요. 한 가지 단점은 공기 분사 과정에서 물이 생긴다는 거예요. 저희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수분분리 배출장치를 끼워서 서비스로 판매했어요. 장치를 썼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비교해 설명했고요. 그랬더니 하루에만 1톤 트럭 2대분의 물건이 판매됐더군요. 전국에 있는 모든 PC방이 우리 물건을 사갔나 싶을 정도로 깜짝 놀랐어요.”
슬슬 인터넷 장사에 재미가 붙을 즈음, 더 좋은 물건을 판매해보고 싶은 마음은 그를 중국으로 이끌었다. 국내 오퍼상들에게는 고객이 원하는 제품 수정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현지를 파악해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중국에서 공구 전시회가 있다는 정보를 얻고 무작정 중국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그는 전시된 공구 제품을 가리키며 현지 직원들에게 서툰 영어로 주어도 없이 ‘하우머치?’하고 물어봤다. 제품을 소비자 요구에 맞게 변형할 수 있는지도 겨우 물어봤다.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게 그는 발품 팔아 알게 된 중국회사와 직접 거래를 시작하게 됐다. 좀 더 싸게 구입할 수 있고, 좀 더 좋은 제품으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게 됐다.
수출은 2007년부터 시작했다. 그 때도 중동에 기회가 있을 것 같다는 마음만으로 무턱대고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났다. 잘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2억 원 가량의 손해 뿐. 그야말로 낭패였다.
“싼 가격의 제품들만 갖다 주면 잘 팔릴 줄 알았죠.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어요. 그 나라(사우디아라비아)의 특성을 잘 몰랐던 거죠. 어떤 물건이 현지 시장에 잘 맞는지, 물가는 어떤지, 전력 수급 상황은 괜찮은지 등을 알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팔다보니 투자비용을 다 날린 거예요.”
그 후 충격으로 1~2년 동안은 수출을 쉬었다.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었다. 국내 판매만 할까 싶었다. 그러나 내수시장만 파고들기에는 경기가 좋지 않았다. 매출 상황은 점차 나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만났던 거래처 직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필리핀에 있으니 한 번 만나자는 얘기였다. 도움의 손길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이때다 싶어 그날 바로 비행기를 탔다. 중동에서 만난 인연 덕분에 서 대표는 다시 수출할 기회를 발견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알던 한 분이 필리핀에 있는 한 플랜트 공사현장의 현장소장이 된 거예요. 공구를 수입할 만한 업체로 디앤씨툴을 다시 불러줬어요. 행운이었죠.”
그렇게 그는 필리핀 경제자유구역인 수빅에 위치한 플랜트 공사현장으로 납품을 시작하게 됐다. 동생 상철 씨가 운영하는 의류기업이 무역을 담당하며 서로 도움을 줬다. 디앤씨툴의 수출 비중은 5~6년 전만해도 전체 매출의 10%를 웃돌았지만, 2년 전부터는 매출의 4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2013년 7월부터 2014년 6월까지 1년간의 수출액을 계산해보니 285만불이었다. 이 수출액을 바탕으로 이번 무역의 날 수상에 이르게 됐다.
아직 42세의 젊은 나이지만 인연을 맺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 진취적으로 도전하는 그의 태도는 디앤씨툴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비결이다. 매일 아침 6시에 매장 문을 열고, 고객을 위해 늦은 밤 연락도 귀찮아하지 않는 성실함도 갖췄다. 2015년 그의 다짐은 다음과 같다.
“장기적으로는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외국에 나가서 제대로 팔 수 있는 사람이 될 거예요. 외국 시장에서 살아남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외국의 특성을 잘 알고, 공구에 대해 진심으로 열정 있는 사람만이 이 일에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필리핀에서 기반을 다지고 앞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동남아 시장에 디앤씨툴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주)디앤씨툴 경영 노하우
1. 인연이 중요하다. _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라. 첫 거래처들과 좋은 인연으로 지금도 도움을 주고받는다.
2. 앞서나가라. _ 생각보다 행동이 중요하다. 이러한 나의 성격이 수출시장을 개척하는 데 밑바탕이 됐다.
3. 피드백을 빨리 줘라. _ 고객만족은 빠른 피드백에 있다. 우리는 고객의 수정사항을 제조사에 문의해 바로 반영한다.
4. A/S에 신경 써라. _ 제품만 판매한다고 끝이 아니다. 수리까지 잘 하는 것이 경쟁력이다.
5. 기계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_ 공구를 매입할 때 기계에 대해 알면 잘 팔릴만한 물건이 보인다.
글 _ 장여진·사진 _ 박성언
상주에서 시작해 김천 찍고 온라인까지
경북 상주/김천 (주)한국테크원
다각화로 마르지 않는 우물 찾기에 성공
오래된 공구상이라고 모두 장사를 잘 하는 업체는 아니다. 오히려 오래되었다고 방심하다가 사세가 기울어지는 경우도 흔하다. 또 내가 원조라고 콧대 세우다가 후발 주자에게 추월당하는 것이 바로 공구업이다. 상주에서 시작한 (주)한국테크원은 설립된지 10년도 안된 젊은 신생 업체지만 여러모로 기대되는 공구상이다. (주)한국테크원은 공구뿐만이 아니라 안전용품, 도로시설물, 인테리어 용품까지 취급하지 않는 품목이 없다.
장사를 함에 있어서 동업은 해서는 안되는 금기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보증서지 마라’ 정도는 아니지만 ‘형제끼리도 동업은 절대로 하지 마라’, ‘동업은 반드시 깨진다’, ‘동업하면 돈도 잃고 친구도 잃는다’는 말들을 종종 듣는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어서일까. 장사에서 동업은 금기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속설을 여지없이 부셔버리는 공구상이 바로 (주)한국테크원의 김희섭, 김창환 대표다. 두 사람은 우정으로 똘똘 뭉쳐 순식간에 대형 공구상을 2개나 만들어 냈다. 김희섭 대표의 말을 들어 보았다.
“제가 상주에서 시작을 했다가 김천지점은 작년에 오픈을 했습니다. 경북 상주가 고향이에요. 그래서 고향 덕을 많이 봤습니다. 남들보다 빨리 성장할 수 있었죠. 예전 업체에서 함께 일을 하던 분이 바로 동업하는 김창환대표님입니다. 저랑 의견을 하나로 뭉쳐 한번 크게 해보자고 의기투합을 했지요. 그때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일을 했습니다. 말 그대로 집팔고 차 팔고 해서 일을 시작한 것이죠. 상주에서 시작할 때는 조그맣게 시작을 했지만 둘 다 돈 욕심은 없고 일 욕심이 있었어요. 지금도 저희는 직원들보다 월급을 더 적게 가져가니까요. 버는 족족 재투자를 하는 거죠. 지금은 상주에 이어 김천지점까지 안정화를 이룬 상태지만 장기적으로 더 많은 지점을 만들 생각입니다.”
(주)한국테크원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밝다. 급격하게 성장하였지만 직원들을 위해서라도 더욱 더 크게 성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래에 대한 청사진은 초창기 때부터 그려져 있다.
“상주에서 힘을 기르고 김천에 진출을 하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그래서 다음번 진출할 때는 큰 문제 없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경험이 있으니까요. 이렇게 점포를 늘려가는 것을 처음부터 꿈 꾸었습니다. 큰 그림을 그리고 단계별로 하나 하나씩 진행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재고나 부도어음에 대한 위기는 느끼지 않습니다. 경영을 하다 보면 그런 일들이 생깁니다. 그러나 재고는 결국 내가 나중에 팔게 되는 물품으로 자산이라고 생각 합니다. 부도어음은 경영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일이구요. 다만 직원만큼은 소중하게 여겨야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희는 (주)한국테크원의 직원들이 저희 회사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몇 년 이렇게 일을 한 이후에는 다시 다른 지점을 세울 때 직원을 관리자로 내세울 예정입니다. (주)한국테크원의 도전은 계속됩니다.”
글, 사진 _ 한상훈
“한 번 더 힘낼 겁니다. 난 아빠니까요”
전남 광주 대마종합상사
지난 15년 허허벌판서 세운 기록, 가족응원 얻어 제 2도약
광주 시내는 밤새 내린 눈이 채 녹지도 않았는데 평동산업단지 인근 공구거리는 아침부터 깨끗하다. 새벽부터 눈을 쓸고 그 위를 사람과 차량이 연신 오갔음을 짐직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유독 사람들 출입이 많아 눈에 띄는 한 곳이 바로 대마종합상사다. 평동산업단지 형성 초기, 장사에 문외한이던 조상록 대표가 허허벌판에 입주해 일으킨 상사다.
15년 경력도 아직은 짧다는 조 대표를 만나 새해 남다른 각오를 들어봤다.
전라도 광주 서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평동산업단지. 시외로 진출하는 길목이자 시내로 들어오는 교통요지다. 기아자동차 협력업체와 건설철골업체가 주로 입주해 있다. 10여년 전 이곳에 단지가 들어설 초기에 입주한 대마종합상사는 이 지역 대표 공구상 중 하나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평동산단은 광주에 몇 안 되는 제조단지 중 하나예요. 공장에서 필요로 하는 소모성 자제를 납품하는데, 틈새를 잘 끼고 있는 덕분에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죠.”
조상록 대표가 처음부터 공구상을 마음먹었던 것은 아니다. 건설사 전기담당 사무직으로 일하던 중 외환위기가 터졌다. 당시 평동산업단지가 조성된다는 소식을 들었고 새로운 산업단지에서 필요로 하는 일을 하면 먹고 살 길이 있을 거 같았다.
“처음에 10년을 계획하고 들어왔어요. 처음 몇 년만에 기반을 잡는다는 건 말이 안 되고요. 10년 이상만 하면 뭐가 되도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아내의 응원이 컸다.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허허벌판에 6평 가게에서 기꺼이 남편과 함께 했다. 가게 이름은 고향인 영광군 대마면의 이름을 따 ‘대마’로 지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았다.
“산업단지 형성 초창기에는 건설사 납품이 많았어요. 대형 건설사는 1, 2년씩 장기 공사를 하지만 소형 건설사는 두세 달만에 완공하고 떠나버려요. 그 중 악덕기업은 의도적으로 돈을 떼먹고 증발해버리는 거죠. 지금까지 피해액만 다 모으면 몇 억 되고도 남아요.”
업체를 검증할 방법이 없었던 당시에는 매출의 5%는 아예 사라지는 돈이라 여겼다. 그가 생각해도 참 ‘무식’한 방법이었다고. 그래도 그때의 노고가 있었기에 지금의 대마가 있다. 당시 거래처를 만들기 위해 회사소개서를 만들어 직접 들고 한곳 한곳 찾아다니며 매출처를 뚫었다.
“그렇게 4~5년을 다녔는데 어느 순간에는 고객이 직접 거래하자고 찾아오더라구요. 그러면서 직접 다니지 않아도 저절로 매출처가 늘기 시작했죠.”
현재 거래 중인 매출처는 150여 곳. 모두 공들인 시간의 결과물이다.
“장사에서는 신뢰가 생명이죠. 필요하다는 물건은 다른 지역에 가서도 사와서 공급해요. 천원짜리 제품이라도요. 이런 작은 행동이 나중에 큰 거래로 이어지더라고요.”
최근 거래처 관리 방법 중 하나는 핸드폰을 잘 활용하는 것이다. 핸드폰에 업체, 부서, 성명, 직책, 특이사항을 다 입력하는 것은 기본.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카카오톡이 대국민 메신저로 자리잡으면서는 이것 또한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카톡으로 궁금한 사항을 물어오는 사람도 있고, 필요한 물건이나 견적 의뢰를 하는 경우도 있어요. 저도 실시간으로 답하고요. 아무래도 의사소통이 빠르니까 반응도 좋죠.”
조상록 대표의 부지런함과 부단한 노력으로 오픈 2년만에 현재 위치로 가게를 옮겼다. 이후 거듭 가게를 넓히고 2층도 올리고 창고도 만드는 등 지역을 대표하는 공구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직원 수도 현재 4명. 이들에게 아직은 부족할지 몰라도 지역에서 최고 대우를 해 주고픈 것이 조 대표의 마음이다.
부부의 성실함에 하늘이 도운 것일까. 공구상을 운영하던 중 연달아 희소식이 생겼다. 세 살 터울로 딸이 생긴 것. 결혼 9년만에 생긴 소중한 아이들이다.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기뻤다며 당시를 회상하는 조상록 대표. 밖에서는 매장을 진두지휘하는 ‘사장’이지만 집에 가면 ‘딸 바보’로 변한다. 사진을 보여 달라니 최근 정동진에 온 가족이 다녀온 사진을 보여주며 연신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큰 애가 초등학교 5학년, 작은 애가 2학년이예요. 큰 애는 영어를 잘하는데 커서 의사가 꿈이래요. 작은 애는 춤추는 걸 좋아하는데 애교가 장난이 아니예요.”
아이들을 위해 새해도 승승장구에 도전하는 그의 최종 꿈은 뭘까.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가게를 더 넓혀서 외곽에 대형공구상을 열고 싶어요. 혼자가 안 된다면 뜻 있는 3~4명이 모여 자신만의 강점 있는 품목을 합작해 품목별로 운영하는 방법도 어떨까 생각해요.”
공구상 경력 15년차, 그래도 ‘갈 길이 아직 멀었다’는 조상록 대표의 앞날을 응원한다.
대마종합상사
경영 노하우
1. 거래처 신뢰 관계가 우선 _ 신뢰는 말이 아닌 행동, 그리고 오랜 시간으로 공들인 노력으로 형성된다. 그러면 어느 시기 척! 하면 착! 알아들을 정도가 된다.
2. 거래 관계도 ‘스마트’하게 _ 예전처럼 전화나 팩스만 붙들고 있는 시기는 지났다. 핸드폰에 담당자 특이사항까지 전부 입력해 관리하고 카카오톡으로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해야지 남보다 앞선다.
3. 재고 관리가 생명 _ 재고를 풍부하게 두는 게 가장 중요하다. 손님이 헛걸음 하지 않도록. 물건이 없으면 조금 손해 보더라도 빨리 구해서 공급해야 다음 거래로 이어진다.
4. 직원복지에 민감하라 _ 공구업계 직원 복지는 아직도 부족하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늘 염두에 두고 노력하는 자세를 잊지 말라. 휴무 날짜는 반드시 지키자.
5. 직원은 대마종합상사의 보물이다
글, 사진 _ 배선희
무실역행의 자세로 내년에도 대박을
대전 미래금속
아침형 영업으로 새벽 손님 끌어들이는 전략 성공
대전시 대덕구 오정동 공구 상가가 밀집한 공구 거리에서 매일 아침 6시 30분이면 문을 여는 공구상이 있다.
미래금속이 바로 그곳. 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고객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새벽부터 문을 열기 시작한
박창덕 대표(54)에게 2015년 을미년 성공 노하우를 들어봤다.
박 대표는 배관 자재를 취급하던 풍산 금속에서 20년간 근무한 후 동 스탠, 배관 관련 노하우를 살려 매장을 열게 된다. 사업 초기 동 스탠, 배관 자재, 밸브류 등을 취급하는 30평 규모의 작은 매장에서 시작해 3년 전 140평 규모의 대형 매장으로 이전하면서 공구를 같이 취급하게 된다. 한 매장에서 배관 자재 뿐만 아니라 공구도 같이 구매할 수 있는 원 스톱 구매 시스템을 갖추면 더 높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공구 판매는 매년 최소 10% 이상 매출 증가라는 성과를 가져다 줬다.
“사업 한지는 만 7년 정도 됐습니다. 3년 전 140평 매장으로 이전하면서 공구를 같이 시작하게 됐죠. 배관 쪽은 20년간 근무했던 노하우가 있어서 걱정이 없었지만, 공구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어서 확장 초기 걱정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한 자리에서 배관과 공구를 모두 구매할 수 있게 되자 더 많은 고객들이 찾아주시게 됐고, 처음의 우려와 달리 공구 판매도 제대로 자리를 잡게 됐습니다”
사업 초기 박 대표는 발로 뛰며 영업과 배달을 담당하고 아내인 이정순(52)씨는 매장관리를 하면서 매장을 운영해 나갔다. 이때부터 박 대표의 아침형 영업이 시작된다. 이른 새벽부터 공구와 자재를 필요로 하는 고객들에게 빠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시작된 아침형 영업은 주요했다. 새벽부터 매장을 여는 곳이 드물었기 때문에 박 대표의 매장은 나날이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아침 6시 30분에 매장 문을 열어서 저녁 8시 30분에 문을 닫습니다. 14시간 동안 매장을 운영하는 것이죠. 이렇게 이른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매장을 운영하니 새벽 고객과 저녁 고객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14시간이나 매장을 운영하는 것이 버겁기도 했지만, 아내와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걸어간다는 마음으로 매장을 운영해 나가니 부부간의 금슬도 좋아지더군요. 저희 미래금속이 급성장하게 된 최고의 비결은 바로 아침형 영업과 부부간의 금슬이죠”
박 대표의 사업이 탄탄대로만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직장 생활만 20년을 하다가 사업에 뛰어들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던 것이다. 특히 수금 문제와 악성 채권 문제가 미래금속의 발전에 걸림돌이 됐다. 동관 배관 자재의 특성 상 건설 현장에 납품이 많았고 거래 금액이 큰 만큼 업체가 부도가 나면 미수채권 문제가 여지없이 불거졌다.
“사업 초기 수금 문제로 여러 번 위기를 겪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저를 지탱해줬던 건 하루 종일 함께 동고동락하는 아내였죠. 이후 주변 선배님들의 조언과 여러 사례들을 참고했습니다. 외상매출을 줄이고 거래회사에 대한 신용조사라든가 거래회사에 대한 정보를 철저하게 분석함으로써 부실채권을 줄이고 현금매출 위주로 매출을 조정해나갔습니다. 그 방법이 위기를 극복하는 탈출구가 된 것이죠”
사업 시작 7년 만에 다섯 배 이상의 매출액 달성이라는 고성장을 이룬 박대표는 2015년 을미년에 도약하기 위한 자신만의 5가지 성공 키워드를 소개했다.
첫째, 책임 있는 자세. 세워놓은 방침(아침 6시 반에 매장을 오픈 한다 등)이나 고객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고객이 제품 교환을 요구하거나 환불을 요구할 때도 정해진 방침에 따라 고객의 요구 사항을 들어준다.
둘째, 정직. 제품의 정보, 유통 과정, 가격 등 고객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정직하게 제공한다. 가격이나 정보를 속여서 눈앞의 이익을 쫓는 것은 결국 자멸하는 길이라고 박 대표는 힘주어 말했다.
셋째, 무실역행(務實力行) 하는 자세. 실질을 중히 여기고 실천에 힘을 다한다는 무실역행의 자세는 직원 교육과 매장 운영, 고객 응대에 있어서 정성을 다한다는 박 대표의 정신이 담겨 있다.
넷째, 고객과의 신뢰와 소통. 고객들이 제품을 구매하고 사용함에 있어서 고객의 어려움이나 궁금증을 듣고 해결하는데 총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A/S 등 구매 후 관리에도 만전을 기해 고객과의 돈독한 신뢰 관계를 구축해 나간다.
다섯째, 아내와의 금슬. 올해로 결혼한지 36년째가 됐는데, 늘 변함없이 내조해 주는 아내 덕에 지금까지 성장해 왔다고 박 대표는 아내에게 공을 돌렸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박대표의 성공은 아내와의 사랑과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2015년 을미년에도 박 대표는 새벽에 매장을 오픈 하며 고객들에게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책임과 정직, 신뢰와 부부간의 돈독한 금슬을 바탕으로 박 대표는 새해에도 무실역행(務實力行)하는 사업 운영을 다짐했다. 미래금속의 앞날은 밝아오는 을미년 새해의 해처럼 밝다.
글, 사진 _ 채승훈
원스톱 구매 대형매장 관리비법 있죠
창원 마창종합공구
25평에서 270평으로 이전 80% 매출 성장, 올해 2호점 계획
경남 산업의 중심도시 마산, 창원에서 두 번의 이전 후 고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공구상이 있다. 바로 마창종합공구. 마창종합공구가 어떻게 고도의 성장을 이룩했고, 유독 내년이 기대되는 이유를 옥강무(54) 대표에게 들어봤다.
옥 대표는 ROTC 복무 후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5년간 근무하다가 전동공구로 유명한 힐티로 이직을 하게 된다. 전공이 건축이다 보니 건설현장에 납품을 많이 하는 힐티와 궁합이 잘 맞았고, 영업사원으로 승승장구하던 중 IMF 외환위기 때 회사가 인원 감축을 많이 하고 사무실까지 폐쇄하는 상황에 이르자 A/S 매니저로 보직을 바꾸게 된다. A/S 매니저를 하면서 익힌 기술들은 훗날 공구상을 하는데 좋은 밑거름이 됐다.
“IMF 외환 위기 때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많이 해고가 됐습니다. 해고된 후배 직원 중 한 사람이 보험으로 이직을 했는데, ‘하던 일과 연관이 없으니 공구상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 후배가 공구상을 시작하게 됐고, 5년간 사업이 지지부진하자 제가 나서서 인수하게 됐죠. 저도 제가 공구상을 인수하게 될지는 몰랐습니다”
옥 대표는 인수 후 위치가 좋지 않다고 판단, 창원공구 상가 내에 있는 25평 매장으로 이전하게 됐고 2010년까지 7년 동안 이 작은 가게에서 아내인 김용순(53)씨와 공구상을 꾸려나갔다.
“제가 주로 현장 영업을 하고 나머지는 아내가 다 처리를 해 주었지요. 돈 관리부터 매입과 전화 받는 것까지 아내가 도맡아서 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라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전화하던 아내가 10년이 지나니 저보다 공구를 더 잘 아는 공구도사로 거듭나더군요”
부부가 합심해서 공구상을 운영하자 그 결과는 놀라울 정도였다. 2011년 두 배로 큰 50평짜리 가게로 옮긴 것은 물론 2013년에는 건물 부지 150평 건평 270평의 대형 매장으로 이전하는 초고속 성장을 하게 된 것이다.
“매장의 규모가 작으면 한계가 있습니다. 구색도 갖추기 힘들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도 힘들죠. 현재 매장으로 옮기면서 2만 5천여 개의 상품 구색을 갖추게 됐고, 매출액은 80%이상 성장했습니다. 거의 모든 공구를 총망라해 원스톱 구매가 가능하게 한 것이 고속 성장의 비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08년도에 리먼 브라더스 금융 위기가 왔을 때가 가장 큰 고비였다고 옥 대표는 회상했다. 마창공구가 한창 내실을 다지고 기반을 잡던 시기 건설업계 쪽으로 거래를 많이 하던 옥 대표는 수금문제로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주요 고객이 건설업계다 보니 수금 문제가 많이 발생하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외형을 줄일 수는 없었죠. 위기를 기회로 삼고 제품과 소비자를 다양화했습니다. 기계 공구가 마진은 낮아도 현금 거래가 많아서 예측과 대응이 잘 된 점도 주효했고요. 이렇듯 외형 성장과 제품 다양화로 금융위기 시기를 잘 넘긴 것 같습니다.
옥 대표는 금융위기 시기를 거래처 구조 조정 시기로 잡았다. 수금이 잘 안되는 악성 업체를 법적인 조치를 취해가면서 정리하자 1년 여간은 어려움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소비자가 다양화되고 수금 거래처가 양질화되면서 경쟁력이 높아지는 반사 이익도 누리게 됐다.
25평 작은 소매점에서 270평의 대형 매장으로 이전하기까지 열 배가 넘는 고성장을 거둔 옥 대표는 2015년 을미년 성공을 위한 노하우를 5가지로 요약해서 설명했다.
첫째, 가격 정찰제를 무조건 실천한다. 처음 온 손님과 때로는 문제가 생기기도 하지만 고객에게 충분한 설명을 통해 이해를 시키고 판매를 한다. 이는 온라인 저가 판매, 밀어내기 판매 등 유통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공구 유통업계가 상생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조치라고 옥 대표는 힘주어 말했다.
둘째, 고객 응대 방법을 직원들에게 확실하게 교육한다. 고객이 만나는 직원이 마창종합공구의 얼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고객이 어떠한 요청을 해도 친절하게 상담할 수 있도록 예절 교육과 제품 교육을 철저하게 시키는 것이 두 번째 노하우. 이는 친절과 정확한 지식 없이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공구상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대목이다.
셋째, 재고관리를 철저하게 한다. 고객이 한 곳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원스톱 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악성 재고가 쌓이지 않도록 늘 조금 부족하게 재고를 관리하는 것이 세 번째 노하우. 구색은 모두 갖추되 판매될 양을 조절해서 원스톱 구매와 악성 재고 방지를 동시에 실현하는 옥 대표만의 노하우다.
넷째, 직원에 대한 신뢰. 직원들 교육은 철저하게 하되 자유롭게 맡은 업무를 할 수 있도록 간섭하지 않는다. 교육을 철저하게 한다고 해서 사사건건 직원이 하는 일에 간섭하면 직원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 옥 대표의 신념이다. 또한, 회사 회식 때는 직원들의 가족을 초청해서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사람들과 일하는지 알 수 있게 해 늘 가족 같은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도 옥대표의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섯째, 고객에게 진심으로 대한다.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고객을 속이지 않고 진심으로 대하면서 한 단계, 한 단계 고객과 신뢰를 쌓아간다는 것. 이렇게 신뢰가 쌓인 고객은 반드시 다시 마창종합공구를 찾게 된다고 한다.
이렇듯 옥 대표는 5가지 노하우와 신념을 바탕으로 25평 창고 매장에서 270평 대형 매장의 오너로 우뚝 서게 됐다. 공구상을 한지 12년째가 됐음에도 자신은 사업 체질이 아니라면서 겸손하게 대답하는 옥 대표. 2만 5천여 품목을 갖췄으면서도 안전용품, 청소 용품, 철물에 대해서는 구색이 부족하다면서 2층 매장을 정리해 좀 더 많은 구색을 갖추고, 을미년 새해에는 제2의 마창종합공구를 오픈하고 싶다고 옥 대표는 힘주어 말했다. 2015년 을미년에도 마창종합공구는 옥 대표 내외의 따뜻한 부부애와 가족 같은 업무 분위기로 승승장구해 나갈 것이다.
글, 사진 _ 채승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