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용재관 키다리 아저씨
대구 남일물산 김명구 대표
직원자녀 학비 및 어려운 학생 위한 대학교 기부, 알리지 않고 10년간 지원
고무벨트 제조 30년 이력 … ‘왼손 한 일 오른손 모르게’
대구시 산격동 산업용재관. 이곳에서 남일물산은 규모가 커서, 또 불처럼 돈을 많이 벌어서 유명한 집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남.일. 두 자에 ‘응~ 그 사장님’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남모르게 직원과 이웃을 돕는 그에게 사람들은 ‘키다리’라는 동화 속 별명을 붙였다. 기계와 기름이 뒤엉킨 곳에 핀 이웃사랑 이야기.
우리 직원들 자녀는 내 자녀 … 중고등, 대학 학비 지원
남일물산은 30년간 고무벨트와 컨베이어벨트 등 벨트류를 전문적으로 제조 취급하며 이미 이 분야의 핵심기술을 보유한 업체이다. 이 업체의 김명구(69세)대표의 별명은 키다리 아저씨. 형편이 어렵고 여건이 안 돼 학교를 마치지 못한 직원들의 학비를 지원한다. 직원들이 일을 하면서 야간대학에 가고 싶어 하면 국립대는 100%, 사립대는 50%의 학비를 지원한다. 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자녀 중고등학교 학비도 지원해 왔다. “직원들이 일을 하면서 자녀 학비 걱정 때문에 업무에 집중하지 못할 것 같아서 제가 지원해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의 선행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경남 합천에서 유년기를 보낸 김대표는 유복한 환경에서 남부럽지 않게 자랐다. 김 대표의 아버지는 집에 있는 머슴들에게 많이 베풀었다고 한다. 어려운 형편의 머슴들에게 쌀 가마니도 대가 없이 주는가 하면 특별한 일이 없을 때에도 주변사람들에게 많이 나누고 베풀었다. 그런 모습을 곁에서 항상 지켜본 김 대표는 자연스럽게 자신도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게 되었다.
IMF 위기 속 직원들 “사장님, 받은 월급 돌려드릴게요”
김 대표의 행동은 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직원들은 많게는 25년 적게는 15년 김 대표와 함께 하고 있다. 이직이 심한 동종업계에서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장기근속이다. 김 대표는 “마음에 빚을 지고 있듯이 직원들을 데리고 있는데 직원들이 사장을 잘 믿고 따라준다”며 직원들에게 감사의 말을 돌렸다.
1998년 전국을 강타한 IMF시기 김 대표의 회사도 큰 타격을 입었다. 벨트 제작 주문량도 떨어지고 생산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김 대표의 직원들은 자진해서 월급을 반납했다. 탄탄한 회사들이 무너질 때도 김대표의 회사는 위기를 극복했다.
김 대표와 함께 일했던 직원들은 퇴사 후에도 김 대표를 종종 찾아온다. 명절 때나 시간이 비면 찾아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곤 한다. 김 대표가 그만큼 직원들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아낀 결과일 것이다.
지역 대학교 10년간 장학금 기부 … 형편 어려운 학생들의 꿈 응원
IMF를 무사히 넘긴 이후에는 선행의 손길이 회사담장을 넘었다. 10년 전부터 영남대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 기부를 하고 있다. 그에게 학비를 지원받은 이들은 대부분 국악과 학생들이다. 타과에 비해 국악과가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이 많고 장학금 기부자가 거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뜻 장학금 기부를 결심한 것이다. 부산에 위치한 영산대에도 작년에만 장학금으로 500만원을 기부했다.
김 대표의 부인도 그의 선행에 기꺼이 동감하고 오히려 더욱 격려했다. 또한 김 대표는 성실한 납세의 의무도 이행하여 모범납세상, 중소기업 유공자로 선정되는 등 사회 전반에서 성실하게 활동하고 있다. 김씨는 ‘항상 여유가 있을 때 남을 돕고 베풀어야 한다’ 는 신념을 가지고 살 것이며 앞으로도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마음가짐으로 꾸준하게 선행을 이어나가겠다고 했다.
사실 그는 몇날며칠 이어진 인터뷰 요청을 한사코 거절한 이다. 만나주지도, 사진도 허락하지 않는 그에게, 그간의 알려진 것만 정리해 기사를 싣겠다고 이해를 구했다. 마지못해 허락을 하는 그의 목소리, 지면을 통해 전하지는 못하지만 그 거절과 약간의 허락이 더 따뜻한 진심을 담고 있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