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구상탐방
충북 음성 대광종합건재
처음에는 소액 거래로 긴장을 푼 뒤 큰 금액의 구매를 요구하는 ‘대리구매’ 사기. 
대광종합건재 임태원 대표는 큰돈 벌 급한 마음에 앞서 무엇보다 의심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난 8월 8일.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의 철물점 대광종합건재에 상품구매 문의 전화가 걸려 왔다. 처음엔 수도꼭지를 구매하고 싶다는 전화였다. 금액은 약 10만원 정도로 크지 않았다. 견적서를 보내달라는 말에 대광종합건재 임태원 대표는 곧장 작성해 보내 줬다. 견적서를 받은 사람은 “돈은 월요일 오전에 보내주겠다”고 답장한 뒤 다음날, 사업자등록증과 비슷한 관공서의 증명서인 고유번호증을 보내오더니 사실은 자기가 음성읍 행정복지센터 구매팀 공무원이라며, 60kg짜리 소화기 14대를 구입하려 한다는 말을 꺼냈다. 급하다며 수도꼭지보다 먼저 소화기를 구해 달라는 것이었다.
“저도 아는 근처 청주시의 소방용품업체 명함 사진을 보내주더라고요. 이 업체에서 구매해 달라면서요. 먼저 구입해 놓으면 추후에 자기들이 결재를 해주겠대요. 그런데 아무리 봐도 사기 같더라고요.”
우선 전국 행정복지센터에는 구매과라는 부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고유번호증에 찍힌 ‘충청북도 세무서’라는 인장도 거짓이었다. 음성군은 충북세무서가 아닌 충주세무서에서 관리한다. 이상함을 감지한 임태원 대표는 사칭범을 추궁했고, 그 뒤로 더 이상의 연락은 없었다.

단박에 대표가 대리구매 사기 전화임을 눈치 챌 수 있었던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작년 11월에도 군부대를 사칭하며 “부대에서 쓸 천만원 상당의 삽과 식품이 필요하다”는 전화를 받은 적 있다. 그 사칭범은 심지어 가게에 한 번 찾아왔던 적도 있었다. 수법은 소화기 대리구매와 동일했다. 정말 군인처럼 ‘다나까’체로 눈이 올지 몰라 구입하려 한다며 삽 60자루를 준비해 달라고 했다. 역시나 우선 크지 않은 금액의 거래 요청으로 사기의 운을 띄운다. 그러고는 삽은 가지러 오지 않고 전화로 대량의 전투식량을 구입해 줄 수 있느냐며 요청이 들어온다. 이것 역시도 ‘급하다’는 말이 앞에 붙는다.
“거래하던 전투식량 업체에서 갑자기 가격을 올렸다고 부대 중대장이 화를 내며 거래를 끊었대요. 그런데 자기는 급하게 구할 곳을 못 찾겠다며 저보고 그 업체에서 구입해 주면 나중에 자기가 돈을 더 쳐서 결재해 주겠다는 거예요. 금액이 너무 커서 못해드리겠다고 했더니 전화를 끊더라고요.”
지난 5월에도 대광종합건재로 비슷한 전화가 걸려 왔다. 어머니가 받은 전화에, 이번에도 군부대라며 수백만원 상당의 무전기 구매를 이야기했다. 역시나 처음에는 소량의 물품 구매 요청이 시작이었다.


올해 8월의 행정복지센터 소화기 대리구매의 경우, 구입해 달라 했던 60kg ABS소화기는 한 대에 120만원. 14대면 1700만원이나 되는 큰돈이다. 그리고 작년 11월의 전투식량 구매 요청은 한 상자 15만원짜리 전투식량을 100상자 구입해 달라 했으니 1500만원이나 되는 역시 적지 않은 금액의 구매 요청이다. 그렇게 구입해 정상적으로 납품했다면 최소 1~200만원의 목돈을 한순간에 벌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하지만 사칭범 측에서 보내 온 계좌 혹은 보내준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해 말하는 계좌로 돈을 입금하면 그걸로 끝. 대포폰으로 전화해 대포통장으로 입금받은 사칭범들은 곧장 잠수를 타버린다. 경찰도 잡을 수가 없다.
대광종합건재 임태원 대표는 대리구매 사기를 피할 방법으로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이야기한다.
① 보내온 명함에 휴대폰 번호만 적혀있다면 의심하라
군부대나 공무원이라면서 이 업체에서 구입해 달라며 명함을 보내오는 경우가 있다. 업체 명함에 지역번호가 적힌 전화번호는 없고 휴대폰 번호만 있는 경우에는 의심할 필요가 있다.
② 공무원이라며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온다면 의심하라
관공서나 군대에서는 결코 개인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오지 않는다. 자기가 앉아 있는 자리의 담당 전화기로 전화를 건다.
③ 관공서 구매팀이라는 말은 믿지 말라
전국 어디든 군청이나 행정복지센터 등에는 ‘구매팀’이라는 팀은 없다. 보내온 공문에 구매팀이라 적혀있다면 사기다.
④ 짧은 시간 큰돈 벌 욕심은 버리는 게 좋다
예사롭지 않은 큰돈을 이야기한다면 먼저 의심하고 정말 그 관공서나 군부대에서 구매하려는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또한 관공서의 경우 천만원이 넘는 큰 금액은 전화로 거래가 불가능하다.


처음부터 큰 금액의 대리구매를 이야기하는 사칭범은 없다. 처음은 무조건 소규모의 제품 구매 의뢰다. 그럼으로써 확신을 먼저 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꼭 꺼내는 말은 ‘급하다’는 말. 공구상이나 철물점을 오래 운영해 온 나이 많은 대표분들 같은 경우는 돈 벌 생각보다 ‘내가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에 구매해 주는 분들도 많을 거라고 대표는 이야기한다.
철물점이나 공구상들은 관공서나 군부대와의 거래가 사실 예삿일이다. 그런 공공기관을 단골로 둔 철물점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대리구매 사칭범들은 철물점·공구상을 타깃으로 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적지 않은 금액의 거래가 잦은 철물점을.
대광종합건재 임태원 대표는 큰 금액 거래가 잦았던 철물점이나 공구상 가운데 경기가 나빠져 장사가 잘 되지 않는 매장의 경우는 특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특히나 여러 명의 직원을 둔 매장인 경우 더더욱.
“직원들 많은데 장사 안 되면 얼마나 골치아프겠어요. 그럴 때 대리구매 전화 한 번 오면 매출 올릴 수 있다는 생각이 앞서니까 당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사기라는 게 그래요. 정말 장사 안 되고 목돈이 필요할 때, 그런 때 딱 전화가 와요. 그러면 정말 사리분별이 힘들어지죠.”
이야기하는 동안 수차례, 대표는 철물점 공구상들에 대한 우려를 이야기했다. 절대 대리구매 사기를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할아버지 대부터 3대째 철물점을 운영해 왔기 때문일까, 대표는 나이 많은 대표님들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도 높였다.
“어르신들은 급하다는 사람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에 당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의심부터 하시고 또 ‘공구상 사기’나 ‘철물점 사기’같은 검색어로 인터넷 검색도 해 보세요. 그러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을 겁니다.”
글·사진 _ 이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