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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상탐방

경남 거제 거제공구

 

섬에는 섬의 공구가 있다

 

경남 거제 거제공구 이선민 실장

 

도(島)내 두 곳의 조선소를 주요 매출처로 하는 거제공구. 2021년 문을 연 거제공구에서 4년째 판매를 도맡아 하고 있는 이선민 실장에게 듣는 섬마을 공구상의 판매 이야기.

 

 

조선소 인근에 위치한 ‘바다 옆 철물점’


경상남도 거제시. 남해의 푸른 물결이 둘러싼 거제도는 아름다운 휴양지이자 동시에 세계적인 한국 조선업의 최전선이기도 하다.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이라는 조선소 두 곳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거대한 선박을 건조한다. 바로 그 조선소 인근에 위치한 거제공구는 섬마을 공구상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품은 공간이다. 2021년 문을 연 거제공구에서 4년째 판매 업무를 도맡아 온 이선민 실장은 누구보다 거제도의 공구 판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거제공구의 주요 고객층은 단연 조선소 근로자들. 조선 작업에 필요한 기본적인 수공구들, 스패너 몽키 복스알 소켓 임팩드릴 다목적 가위 드라이버 등이 주 판매 제품들이다. 섬이 아닌 육지의 공구상 철물점에서는 대개 인테리어 시공이나 건설에 사용하기 위해 위와 같은 공구들이 판매되지만 이곳에서는 선체 안 깊숙한 곳의 ‘조선(造船)’을 위해 수공구들이 사용된다.

 


“조선소에서 사용되는 공구는 사실 육지에서 사용되는 것과 비슷해요. 하지만 쓰임이 조금 다르죠. 조선 현장은 위험도도 높고 세부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작업이 많거든요.”


앞서 말한 기본적인 수공구와 함께 조선 작업에는 여러 종류의 용접 제품들과 특수용접기가 사용된다. 그와 함께 용접에 사용되는 각종 안전복과 안전모 그리고 제조의 정밀도를 향상시키기 위한 치공구들도 사용된다. 바다 옆 철물점에서는 육지에서 보기 힘든 ‘섬 특유의 수요’를 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특별한 수요 가운데에는 라이트라는 품목도 있다.

 

거제공구는 바다로 통하는 하천의 하구와 바로 맞닿아 있다.

 

‘라이트 전문가’가 된 이선민 실장


라이트 역시 거제철물의 주요 판매 제품이다. 조선소 근로자들에게 필수적인 공구이기 때문이다. 거제철물에 방문해 이선민 실장의 판매 모습을 본 사람은 그녀를 ‘라이트 전문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다. 많은 조선소 근로자들이 그녀에게 라이트에 대해 물어보고 상세한 설명을 듣고 구입해 간다.


“조선하는 선체 안으로 들어가면 정말 깜깜하거든요. 그 안에서 일하려면 라이트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해요.”

 


근로자들은 자신이 맡은 공정에 따라 라이트를 다르게 고른다. 밝기가 밝은 것, 오래 사용 가능한 것, 가벼운 것 등 사용자의 목적에 맞는 수요가 분화되어 있다. 덕분에 거제철물 입구 앞,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위치에도 크기와 밝기별로 다양한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특히 많이 팔리는 라이트는 헬멧 장착용 라이트. 그 가운데서도 라이트 헤드가 작게 튀어나온 제품들이 인기가 높다. 헤드가 많이 튀어나온 제품들은 작업 중 부딪힐 위험도가 크기 때문이다.
라이트와 함께 중요한 것이 라이트에 들어갈 배터리다. 거제공구에는 일반 공구상과 달리 라이트와 배터리를 전면에 두고 적극적으로 판매 전략을 펼친다. 그만큼 라이트는 단순 부속품이 아니라 주력 상품 중 하나다.


“충전 시간, 사용 시간 다 물어보시는데, 환경 따라 다르다고 대답해요. 추우면 빨리 닳고, 또 정말 깜깜한 곳에서는 열발산이 커서 배터리가 빨리 닳거든요.”

 

안전모용 라이트도 여러 종류가 진열 중이다.

 

조선업와 건설업 사이 균형 잡힌 판매


아무리 조선소가 있다 한들 거제도의 공구상은 조선소만 바라보고 살 수 없다. 조선소라는 대형 산업이 판매의 중심에 있지만, 건설과 인테리어 수요가 병존해야 판매의 균형이 맞춰진다. 그런데 최근에는 건설 쪽 매출이 좋지 않다고 이선민 실장은 말한다. 실제로 주변 아파트 단지 건설이 한창이던 시기에는 공사팀들이 아침 일찍 필요한 공구를 사러 와 가게를 북적이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건설 경기의 침체로 그 흐름은 멈췄다. 남은 손님은 식당이나 원룸 사는 주민들이 수전 고장 같은 자잘한 수리를 위해 찾아오는 경우뿐이다.


“예전에는 오전엔 건설 쪽에서 오고, 오후엔 조선소 쪽에서 와서 나름 균형이 있었는데, 지금은 오전이 거의 비어요. 그나마 조선소 매출이 있다는 게 다행인 것 같아요. 조선소 없었으면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조선소 역시 경기가 썩 좋지는 않다. 수주는 들어와도 인건비 문제로 외국인 노동자가 대거 채워지면서 내수 소비는 줄고 있다. 게다가 조선업은 기후 변수에도 취약하다. 


“비 오면, 바람 불면, 바로 공정 멈추니까 그날 장사는 끝이에요.” 


조선소와 건설이라는 두 산업 사이, 외줄타기 하듯 장사하는 섬 공구상은 늘 ‘오늘’에 의지해 살아간다. 어제 장사가 잘 됐다고 오늘도 잘 되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거제도는 우리나라 조선업의 황금기였던 2000년대 중후반, 전국 각지의 기술자들이 몰려들며 인구 30만 명 가까이 되기도 했으나 7년 넘게 연속으로 인구가 줄어들고 있어 현재 인구는 25만 명에 못 미치는 실정이다.

 

 

마케팅은 어디든 동일… 뭐든 찾아드려요!


거제공구가 손님을 부르는 이유는 단순한 가격 경쟁이 아니다. 고객이 찾는 물건이 매장에 없더라도 어떻게든 찾아드리는 것. 이런 마케팅 방식은 육지의 여타 잘나가는 공구상들과 동일하다.


“저희 매장은 삼성중공업 조선소 가는 길에서 처음 만나는 공구상일 거예요. 그게 장점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고객이 찾는 물건은 있든 없든 어떻게든 구해드리자는 마음이죠.”


당장 물건이 필요한 고객은 어쩔 수 없겠지만 하루이틀 기다릴 수 있는 고객이라면 어떻게든 찾아내 주문해 반드시 전달한다. 거제공구의 그런 신뢰가 쌓여 고객은 단골이 되고 단골은 또 다른 손님을 데려온다.
뿐만 아니라 깔끔한 매장 진열 역시도 고객들이 거제공구를 찾는 이유다.


“상품이 지저분하게 배치돼 있으면 손님들이 찾지 못하고 직원들을 부르잖아요. 그러지 않아도 되는 것 역시 저희 매장의 장점인 것 같습니다.” 


또한 육지에서 먼 섬 특유의 ‘긴급성’에 대응하는 것도 필요하다. “조선소에서 바로 필요하다고 전화 오면 최대한 빨리 가져다드려요. 납품은 안 하지만, 최대한 가까이 가 있어야 하니까요.” 이런 유연한 응대가 섬마을 공구상의 생존법이다.
어제가 잘 됐다고 오늘도 잘 되지 않는 게 장사라고 말하는 이선민 실장. 거제공구는 그렇게 늘 준비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조용히 문을 열고 매장을 찾는 고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글·사진 _ 이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