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전체메뉴 열기

공구상탐방

서울 영등포구 범진철물

 

서울 영등포구 범진철물 김종철 부장

 

유튜브 220만 조회수 영상 우리 가게에서 찍었어요

 

 

유명 유튜버 영상에 배경으로 등장해 홍보 효과를 쏠쏠히 보고 있는 범진철물. 공구상을 꼭 물건 파는 장소로만 생각하지 말자. 물건 판매 외에도 매장 홍보 및 수익을 낼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이 있다.

 


 

유명 유튜버의 공간 임대 요청


시작은 바로 그날이었다. 2024년 4월 17일 수요일. 범진철물 문을 열고 들어온 살짝 통통한 몸매의 남자는, 매장을 스윽 한 바퀴 둘러본 뒤 명함을 건네며 이곳에서 영상을 촬영하고 싶다 말했다. 명함에는 ‘너덜트 PD’라는 직책명과 남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범진철물을 운영하는 김종철 부장은 그 말을 듣고서야 공간 임대 사이트에 올라가 있는 글을 보고 찾아온 것임을 깨달았다.

 

너덜트 채널 ‘철물점’영상의 유튜브 섬네일

 

“처음엔 너덜트가 뭔지도 몰랐죠. 알고 봤더니 상당히 큰 유튜브 채널이더라고요. 그쪽 코미디 영상 채널 중에서는 구독자가 제일 많대나 어쩐대나.”


범진철물 매장을 공간 임대 사이트에 올려둔 건 김종철 부장의 딸 김지민 양. 인하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한 김 양은 매장 운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 영상 촬영하는 이들이 촬영 공간을 찾는 사이트에 글을 올려 두었다. 그 글을 보고 구독자 수 193만 명의 유명 유튜버 너덜트 팀이 범진철물을 찾은 것이다.

 

 

이름난 배우도 출연한 영상


처음 대여 요청을 받았을 땐 거절했다고 한다. 빈 공간이 아닌 아무래도 장사를 하는 곳이나 보니 공간을 빌려주고 시간을 할애하기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 하지만 너덜트 팀에서는 꼭 범진철물이어야만 하겠다며(저희들도 다 찾아다녀 봤는데 여기만한 곳이 없어요) 사정을 거듭했다. 딸과 함께 이틀을 고민한 김 부장은 마침내 임대를 허락했다.
4월 24일 오전 10시 시작된 너덜트의 철물점 영상 촬영은 오후 6시가 되어서야 마무리되었다. 출연진은 너덜트 팀 배우들 그리고 ‘부산행’ ‘극한직업’ 등 영화에 출연한 김의성 배우도 촬영에 함께했다.


“김의성 배우가 인상 쓰면 무섭잖아요. 인상을 보니 진짜 장사할 때 느낌 나더라고요. 여기 근처가 대림동 차이나타운이잖아요. 종종 일용직 중국인들이 서너명씩 들어오는데 살짝 주눅들곤 했어요. 물론 별 문제는 없었지만요.”


범진철물의 매장과 카운터 사이에는 좁은 틈이 있다. 어쩌면 그 틈이 너덜트 팀에서 꼭 범진철물 촬영을 고집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틈을 사이에 두고 배우들의 매서운 눈빛이 오고갔다.

 

영상의 핵심인 매장과 카운터 사이의 틈

 

영상 촬영이 불러온 나비효과


촬영이 끝난 후 입금된 대여료는 약 100만 원. 기본 대여료는 시간당 5만원 정도이지만 거절됐던 공간 임대를 사정에 사정을 거듭해 이루어진 임대이기도 하고 또 장사하는 매장을 임대한 것이기도 해 웃돈이 붙었다.
하지만 김종철 부장은 돈보다 매장이 홍보되었다는 게 더욱 큰 이득이었다고 말한다.


“우리 딸애도 영상에 나오면 홍보될 거라고 하고 또 너덜트 팀에서도 자기네랑 촬영하면 가게 알리는 데 도움될 거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더라고요. 영상에 간판이랑 전화번호도 나갔으니까 그거 보고 왔다는 손님들이 많아요. 특히 젊은 손님들이요.”


매장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을 뿐 아니라 거래처 사람들의 대응 역시 달라졌다. 김 부장의 말로는 거래처를 방문하면 ‘살짝 유명인을 대하듯’ 태도가 부드러워졌다고 한다.
너덜트 촬영 이후 매달 한두 건씩 임대 문의 연락이 오고 있다. 최근에는 독립영화제에 출품할 팀이 찾아와 영상을 촬영해 갔다. 역시나 너덜트 채널을 보고 찾아왔던 것이다.

 

 

영업하는 매장, 촬영 임대도 괜찮아


범진철물은 약 1년 전쯤부터 블로그에 게시물을 올리며 매장 홍보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김 부장은 영상 하나 딱 올라간 것이 블로그 1년 게시물보다 훨씬 더 홍보 효과가 크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당연하게도 장사가 먼저. 범진철물 매장 대여 연락이 오는 이들에게 김종철 부장은 무엇보다도 장사가 우선이라는 말을 반드시 전한다. 다행인 건 지금까지 한 번도 장사에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는 사실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매장 대여를 허락했던 일은 잘 한 일이었던 것 같다고 김종철 부장은 이야기한다.

 

(왼쪽부터) 김종철 부장, 모친 박창순 여사, 부친 김범배 대표, 딸 김지민 양

 

농기구에서 공구, 공구에서 유튜브


서울시 영등포구에 위치한 범진철물은 김종철 부장의 아버지 김범배 대표가 차린 매장이다. 원래 농기구 쪽 일을 하던 김범배 대표는 우리나라 농기구 판매 1세대로, 80년대 초 대림동에 자리잡아 지금까지 매장을 운영 중이다. 큰아들 김종철 부장이 90년대 군 제대하고 함께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공구 판매를 시작했다. 매장이 위치한 대림동 인근은 80~90년대 공구 나까마(차량 도매 중개상)들의 집결지였다. 1.5톤부터 5톤 트럭까지 200여 대의 나까마 트럭들이 대림동에 모여 물건을 싣고 전국으로 흩어져 공구며 각종 물건들을 판매했다. 90년대에 접어들며 우리나라의 물류 사정이 나아지고 IMF이후 물류가 완전히 대기업 쪽으로 넘어가면서 나까마 상인들은 일을 접거나 혹은 고향으로 돌아가 공구상을 차린 이들이 많았다. 그런 시대 흐름과 사회 변화 속에서 범진철물은 80대 연세의 김범배 대표에서 50대 김종철 부장으로 이어져 왔고 판매 제품도 농기구에서 공구철물로 전환되었다. 이어 김종철 부장의 딸 김지민 양은 물건 판매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튜브 영상에 매장이 등장할 길을 만듦으로써 새로운 공구상 홍보의 문을 열었다. 공구상 운영의 세대 전환은 이런 방식으로도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너덜트 채널의 ‘철물점’ 영상.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철물점에 들어와 톱과 망치를 찾는 손님. 철물점 주인 눈에는 뭔가 사건을 일으킬 것처럼만 보인다. 긴장감 넘치는 눈빛을 교환하다 결국 경찰을 부르는데… 영상 마지막에 등장하는 반전이 궁금하다면 QR코드 촬영으로 확인해 보자.

 

 


 

 

글·사진 _ 이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