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서비스로 고객감동
전북 순창 유성철물백화점 유재원 대표
물 맑고 공기가 깨끗한 청정지역인 전북 순창은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소규모 가내수공업 형태의 고추장 제조공장이 설립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순창군 내의 전체 공장 가운
데 절반 정도가 식품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곳이다. 유명한 순창고추장을 생산하는 이 지역
의 식품공장들은 공구가 필요할 때 어느 공구상을 찾아갈까? 그 곳은 바로 유성철물백화점. 순창군을 대표하는 공구상 유성철물백화점을 알아보자.
화물차 한 대로 특별 서비스
유성철물백화점의 유재원 대표는 1953년생으로 올해로 61세지만 타고난 건강을 자랑한다. 깨끗한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순창군에서 태어나 살아왔기 때문이다. 지금의 유성철물백화점을 세운 것은 1990년대 초반으로 공구상을 경영한 지는 20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중장비 사업을 했었습니다. 친가 쪽이 부유한 편이였거든요. 30살 때 사업을 시작했는데 10년이 지나니 아, 이거 안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중장비 사업을 접고 공구업을 시작했지요. 사실 공구업을 시작했을 때도 돈을 빌려서 시작한 것이었어요. 돈 50만 원을 빌려 어떻게든 성공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었죠.”
유성철물백화점의 유재원 대표는 이전 중장비 사업 실패로 자본금도 없이 공구업을 시작해야 했다. 어떻게 보면 죽기 살기로 도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유성철물백화점 만든 차별화된 서비스를 보여줄 수도 있었다.
“그때 당시에 귀했던 화물차를 제가 가지고 있었거든요. 90년대 초반에는 화물차 가진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물건을 배달해 줄 수 있었죠. 설사 우리 가게에 물건이 없더라도 다른 지역의 공구상에 가서 물건을 사와 배달을 해 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초창기에 크게 성공한 원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없는 물건 찾아 삼만리
불과 50만 원에 시작을 했지만, 화물차가 한 대 있었고 유재원 대표가 성실하게 일을 했기에 힘들었지만 빨리 가게를 정상화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지방에 위치한 공구상인 만큼 구색을 가리지 않고 있는 대로 늘린 것이 유효했다.
“일차적으로 물건이 없으면 구해다가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구상을 찾았는데 그 물건이 없다고 손님을 돌려보내면 안되죠. 예전에 농촌에서는 멍키스패너 하나가 마을에 하나 정도 있었어요. 그런데 90년대 이후로 사람들이 경제력이 생기면서 멍키스패너가 필요하다면 빌리는 것이 아니라 구매를 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걸 놓칠 수는 없잖아요. 마찬가지로 가뭄이 들어 양수기가 필요하다면 공구상은 양수기 회사에 전화를 걸어 물건을 사러 가야죠. 그런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로 합니다.”
실제로 유성철물백화점은 1990년대 인터넷도 없었던 시절 필요한 물품을 사기 위해 전화번호부를 뒤져 제작회사에 전화하는 열정을 보였다. 정보를 구하기 어려운 때에 노력하여 손님의 요구에 부응한 것이다.
“다행히 중장비 사업을 하면서 전국 각지에 길을 잘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전국에 흩어진 제조공장에 찾아가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죠. 남들은 장거리 운전을 하면 피곤하다고는 하지만 워낙에 익숙해져 있었으니까. 조금 쉬었다가 다시 일하고 그럴 수 있었어요. 한참 경기가 좋아 찾는 손님이 많을 때는 가게에서 쪽잠을 자고 다음날에도 일하고 일요일에도 나와서 일을 하고 그랬습니다.”
아르헨티나 보며 IMF 대비해…
그렇다면 유성철물백화점에 위기는 없었을까. 물론 유성철물백화점에도 IMF 같은 위기가 찾아왔다. 그러나 유재원 대표는 예전 중장비 사업을 하며 쌓은 사업 감각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남미의 아르헨티나가 경제 위기를 겪는 것을 본 일이 있었어요. 그때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더라고요. 물건을 사기 위해서 가방에다 돈을 가득 싣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때 느꼈죠. IMF가 오면 돈이 소용없으니 물품 많이 사다 놓고 때를 기다려야겠다고. 그래서 경제위기다. 주식이 떨어진다 할 때, 잘 나가는 수입품 위주로 물건을 많이 구매해 놓았고 IMF가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덕분에 그동안 노력해서 벌었던 재산을 보전할 수 있었고요. 쉽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거죠.”
성실하게 사업을 운영하면서 주위 환경까지 돌아봤기에 이런 대비가 가능했다. 아무리 바빠도 세상이 돌아가는 소식을 알기 위해 뉴스나 신문을 봐야 하는 이유다. 그렇게 유성철물 백화점은 IMF라는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다.
감동으로 단골 만들어…
그래서인지 유성철물백화점은 빨리 가게가 정상화되고 다시 가게가 급속한 속도로 커질 수 있었다. 또 이러한 것에는 서비스 정신도 한몫했다고.
“아내가 서비스 정신이 있었던 것이 장사가 잘될 수 있었던 비결이죠. 아내가 계산대를 보고 손님 응대 하고 그랬습니다. 나는 물품 배달하고 물건 구매하고 그런 일이 적성에 맞았거든요. 각자의 성격에 맞추어 일한 것이죠. 또 아내는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거든요. 단 한 번 본 사람이라도 이름을 기억해 이름을 부르며 상대하면 사람들은 감동을 합니다. 자신을 기억해 주니까요. 그만큼 아내는 서비스 정신이 좋았지요. 덕분에 단골들을 많이 만들 수 있었습니다.
또 저희는 저질 상품을 배제하고 오직 1등 상품 좋은 상품을 우선 취급합니다. 구매 당시는 비싸지만 견고함과 실용성을 따져가며 물건을 권하거든요. 저희를 믿어주는 고객분들이 실망하면 안 되니까요. 그것이 성공 비결이 아닐까요?”
이런 서비스 정신에는 근무 시간에도 나타난다. 1,500평 규모의 공구상을 운영하면서도 아침 6시에 개점을 하여 오후 8시까지 일을 하는 것. 또한, 일을 마친 유재원 대표는 오늘 하루도 대박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기도를 매일 밤 한다고. 간절한 마음으로 공구상을 가득 채운 공구들을 보며 기도를 하는 유재원 대표이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