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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상탐방

서울 부일기기

 

구로기계공구상가 세월 44년 나는 공구거리의 시인

 

서울 구로구 부일기기 김유봉 대표

 

구로기계공구상가의 부일기기는 40년 넘는 세월 변치 않고 같은 자리를 계속 지켜온 공구상이다. 
평생 공구인의 삶을 살다가 최근 시 쓰기를 시작한 김유봉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부짓갱이


김유봉

 

굴뚝이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면
아궁이가 볏짚을 태우느라
바람길 내는 부짓갱이 손놀림이 분주하네

오른손으로 돌리고 왼손은 던져 넣는
풍구의 왕겨날엔
어느샌가 높이 솟은 불구덩이를 꾸짖는
부짓갱이의 다스림이려니

산림감시원 눈 피해 바적 한가득 솔방울 나뭇짐엔
툭툭거리며 잘도 타다 밖에 나온 한 녀석에
부짓갱이 굿샷이 안겨진다

늦가을 찬바람에 소담스런 솔기울 한 삼태기는
오케스트라 지휘봉이 된 부짓갱이 무한대의 꿈나라!

 


 

부일기기는 구로공구상가를 가로지르는 큰 길 사이에 위치해 있다.

 

공구 다루는 사람도 따뜻한 감성 남기고파


부일기기는 서울 구로기계공구상가에서도 손꼽히는 오래된 공구상이다. 44년 동안 부일기기를 운영해온 사람은 1952년생 김유봉 대표다. 70대에 접어든 그는 오늘도 공구가게에 나와 손님을 맞이한다. 어쩌면 공구유통업계의 그는 최근 몇 편의 시를 쓰기도 했다.


“사실은 공구 유통도 생명하고 관련이 있는 직업인 것처럼 느껴야 하거든요. 공구유통업계 밖의 사람들은 우리를 보면서 조금 거칠게 보는 것 같았어요. 우리 공구인들은 공구라는 물건을 건네어 줍니다. 그런데 그 공구가 연장이 되어 기계의 생명을 늘려주고 또 기계나 설비를 되살리고 결과적으로 조직 시스템을 되살려요. 그런 관점에서 우리도 그런 따뜻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보니 시가 나오더군요.”

 

 

시 창작의 시작, 동무들에게 보내는 편지


김유봉 대표가 늦은 나이에 시를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초등학교 동창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시작이다. 초등학교 동창들과 정기적으로 식사 모임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오랜 친구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다. 3만원의 모임 식대를 대신 내어주는 것은 누군가에는 부담이거나 마음의 짐으로 남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편지를 쓴다.


“친구들과 모임을 할 때 우선은 회비를 걷고 그 대신 회비를 제가 보상 해줬죠. 새 돈을 은행에가 서 찾아와서 회비를 봉투에 넣는데 편지도 한 장 써서 같이 넣어 줬어요. 고심해서 옛날을 추억하며 편지를 썼더니 그 편지를 받고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또 그 편지글을 다듬으니 시가 되는 것 같더라고요.”

 

부일기기 공구상 곳곳에는 예쁜 인형들이 숨어 있다.

 

휴대폰에 기록한 순간순간 내게 온 단어들


서울 구로공구상가의 70대 공구인이 쓰는 시에는 따뜻함이 담겨 있다. 자신도 이렇게 시를 쓰게 될 줄은 몰랐다고.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시를 짓느냐 물으니 어느 순간 순간 찾아온다고 말했다. 최근에 기록한 시도 기차를 타고 지방에 볼일을 보고 올 때 찾아와 휴대폰에 적어 보관하고 또 나중에 다음고 프린터로 출력해 살펴본다고.


“내가 1년 전에 쓴 ‘부짓갱이’ 같은 시는 우리 인생이 하잘 것 없는 것 같아도 자기만 열심히 하면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순간 순간 생각이 나고 찾아오는 어구는 기록하는 것이 어렵죠. 그런데 그런 시구절이 생각이 나니까 기록해보고 나중에 보니까 또 그냥 그런대로 좋아요. 참고로 부지깽이이지만 부짓갱이라고 일부러 표현한 것이에요. 나는 부짓갱이라는 어감이 더 좋은 것 같더라고. 아무튼 일하다가 주변 친한 사람들에게 시를 쓴 것도 보여주고 그런거죠.”

 

44년 롱런의 비결, 욕심 없이 하는 것


김유봉 대표에게 공구유통업계에 입문하게 된 과정을 물으니 그저 내게 주어진 것이었다고 말 한다. 요즘은 다들 삶에 여유가 있으니 직업을 선택 할 수 있지만 1980년대의 자기는 직업을 선택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고.


“내가 공구유통을 선택한 것이 아니죠. 내가 그저 속해진 것이지. 44년 업계에서 일해보니 공구유통업계와 주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 하고 싶어요. 나는 부모님께 크게 받은 것 없이 시작해 두 딸 키워 결혼 시켰고. 구로공구상가에 운 좋게 내 가게도 마련하게 되었으니 그걸로 나는 만족하고 감사하게 생각해요. 찾아오는 고객들에게도 최선을 다합니다. 가까운 거래처에는 무언가 더 주려고 노력하죠.”

 

 


 

학교길


김유봉

 

신작로 길에는
이른 아침부터 불도저가 다듬고 지나간다

싸리문 담장길 돌아나와
안길, 뒷길 거쳐 골목길 나서니
논두렁 밭두렁 넘어 행길에서 모두 만나네

발 맞춰 걷는 가로매기 한 사내애들
허리매기 한 여자애들의 책보에서
빈 밴또 짤 그랑 소리도 함께 장단 맞춘다

삘기 뽑아 먹으며 맞이한 새학년!
별 그려진 마대자루 눌러쓰고
소낙비 오는 등교길 함께 하던 친구들
언 몸 움츠리며 줄 맞추며 걸어오던 겨울길

그 길에 처음 외쳐 외우던 외국어
“헬로우! 쵸코레트 기브 미”는
아프고 아련한 추억이 되고…

 


 

꾸준히 하면 기회 있어 희망 가지길


부일기기의 주요 고객은 소매 손님이다. 72세의 김유봉 대표는 지금도 방문하는 손님을 직접 응대한다. 그가 말하길 최근 공구유통업의 추세는 판매가 중심이지만 과거의 공구유통은 서비스업이었다 말 한다. 공구가 필요한 사람에게 최고의 공구를 추천해주기 위해 공구에 대해 잘 알고 연구해야 했다고.
“공구 유통업에 종사하고 있어서 70대인 내가 지금도 나와서 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저와 부일기기는 큰 욕심 없이 꾸준히 걸어왔어요. 월세를 내던 매장을 매매로 구입하게 된 것도 운이 좋았고요. 한 자리에서 30년 월세를 내면서 일했는데 가게가 매물로 나오더군요. 고민 끝에 가게를 인수하고 내 매장에서 가게를 하게 되었죠. 꾸준하게 한 자리에 했기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 합니다. 열심히 살다보면 행운도 오는 거죠. 그래서 모든 공구인을 응원합니다.”

 

글·사진 _ 한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