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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상탐방

30년 세월이 만든 신뢰로 성장 부산 사상 태일공구종합상사 임진택 대표



30년 세월이 만든 신뢰로 성장
 
부산 사상 태일공구종합상사 임진택 대표




신뢰는 하루아침에 쌓이는 게 아니다. 꾸준하고 일관된 성실함만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신뢰를 만든다. 이 신뢰는 서부경남일대의 관공서와 공업고등학교에서 태일공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명성을 낳았다. 30여년 되는 세월이 빚은 신뢰로 공구상을 운영하고 있는 임진택 대표. 끊임없는 손님들의 발길로 늘 활기가 넘친다.


태일공구 모르면 간첩
 
3층 규모의 태일공구종합상사에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공구들이 진열돼 있다. 1층에는 절삭공구를 비롯해 수공구, 전동공구 등이 주를 이루고 있고 2층에는 공작기계류, 3층에는 잡자재류가 자리하고 있다.
서부경남 공업고등학교에서는 모르는 곳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절삭공구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태일공구종합상사에서는 다른 곳에 없는 절삭공구가 웬만해서는 다 있기 때문이다.
“관공서, 중소기업, 공업고등학교에 저희가 물건을 많이 납품합니다. 조달청을 통해서요. 조달청도 다른데서 물어봤는데 없었던 공구가 우리집에만 물어보면 다 있으니까 우리에게 자주 요청하는 편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각종 공구가 다 있어요.”
“남편이 재고욕심이 조금 있어요. 그래서 우리집에는 늘 물건이 여유롭게 있는 편이죠. 수익도 의식주에 대한 생활비를 제외하고는 고스란히 가게 물건 사는데 들어가는 편이거든요.” 아내 석경자 씨의 말이다.
“가게가 꾸준히 성장했던 것 같아요. 어려운 적도 몇 번 있었지만 다 슬기롭게 극복했죠. 처음에 시작할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왔네요.”



이름 붙이고 공부하며 쌓은 지식
 
임진택 대표가 처음부터 공구상을 한 것은 아니었다.
“자영업을 여러 종류 해왔어요. 꽤 이것저것 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 사촌형님이 공구상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해서 시작하게 됐지요.”
전기관련 일을 하던 사촌형이 공구상에 대한 성장을 예감하고 임 대표 부부에게 권한 것. 하던 자영업을 다 정리하고 2~3천만 원가량 되는 돈으로 7평짜리 가게를 임대해 공구상을 차렸다.
“공구에 대해서는 수공구 몇 종류 외에는 부부가 전혀 몰랐어요. 이런 걸 누가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죠. 처음에는 정말 아무런 지식이 없었어요.”
주경야독이라고 했던가. 노트에 공구 이름들을 적어놓고 해당 공구에 펜으로 크게 공구 이름을 써 붙이며 공구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나갔다.
“한 3년 정도 공부를 하니까 손님들과 대화가 어느 정도 되더라고요. 손님이 원하는 공구가 뭔지 대답도 할 수 있게 되고 좋은 물건을 추천할 수 있게 되고……. 물론 그때는 공구상이라기 보다는 철물점이라는 말이 더 맞았겠네요.”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공구상 문을 연 시기도 잘 맞았다.
“부산 사상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사상구에 가게를 열었어요. 80년대 중후반이니까 그때만 해도 사상구는 허허벌판이었거든요. 다랭이 논이라고 아시죠? 그런 논밭이 펼쳐져 있었어요. 와전 시골이었죠. 그런데 그때 신시가지 개발과 함께 개발붐이 불어 닥쳤어요. 여기저기 공사가 시작되고 공사에 필요한 다양한 자재를 조달해야만 했죠. 생각해보세요. 아파트와 주택단지가 들어섰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문고리만 해도 어마어마하잖아요.”


부지런함이 신뢰를 낳고
 
태일공구종합상사는 이 시기 다른 어떤 곳보다 일찍 문을 열었다. 새벽 5시만 되면 어김없이 가게 셔터를 올렸다.
“공사현장은 더워지기 전부터 일찍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러니까 새벽 5시라는 이른 시간에 문을 열어도 손님들이 늘 왔었어요. 나중에는 우리가 그렇게 일찍 연다는 것을 아니까 더 많은 손님들이 왔던 것 같아요. 정말 장사가 잘됐어요.”
공구상이 자리한 위치도 하나의 이점이 됐다
“주변에 공구상이 저희랑 또 한군데 밖에 없었어요.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하니 장사가 그만큼 잘 됐던 거죠.”
석경자씨의 말에 따르면 당시 150만원에 전세 계약을 했었는데 사상구 주변 땅이 1평에 3,000원 정도라고 했다. 그게 현재 평당 300만원에 이를 정도니 엄청난 개발이 이뤄졌음을 어림잡아 짐작해볼 수 있다.
“그때 가게 계약 안하고 땅을 샀어도 우린 부동산 부자가 됐을 거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해요. 물론 후회는 안 해요. 이게 우리에게 맞는 옷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공구는 저희의 둘도 없는 자산인걸요.”
태일공구종합상사의 이런 흐름은 90년대까지 이어졌다. 그 사이 우리나라는 88올림픽을 치르고 온 국토가 개발붐으로 들썩이고 있을 때였다.
“당시 사상구에는 금형 공장이 활성화가 됐었어요. 그래서 저희는 절삭위주의 품목을 취급하게 됐죠.”



가게 확장과 재고 확보
 
지금 자리 잡은 태일공구종합상사 자리는 8년 전 옮겨온 자리다. 2층 건물을 사들여 3층으로 증축하고 이사했다. 20년 넘게 공구상을 해온지라 정리해야 할 물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가정집 이사처럼 이삿짐센터를 불러 하루 만에 뚝딱 끝내버릴 그런 양이 아님은 누가 봐도 자명한 것.
“이사하고 정리해서 대충 자리 잡는데 만해도 4~5개월이 걸렸어요. 옮겨오면서 재고 자체도 엄청나게 늘어났다고 봐야죠. 어림잡아 2배 이상은 늘어났을 겁니다. 지금처럼 물건이 자기자리를 찾아가는 데는 거의 1년의 시간이 걸렸죠.”
가게를 확장이전 하고나서 임 대표가 가장 먼저 한 일 역시 재고 확보. 늘어난 공간만큼 새로운 공구가 또 그렇게 쌓여갔다.
“저희 남편이 재고욕심이 조금 있어요. 저희가 IMF때 재고 덕을 봤거든요. 그때 물론 다들 힘이 들었죠. 저희도 수억대의 부도 어음 때문에 가슴앓이를 했고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만큼 경기가 불황이었기 때문에 공구 자체도 귀해졌어요. 공급이 절대적으로 줄어들어버린 상황에서 수요는 그래도 있었기 때문에 이 시기 공구 값이 천정부지로 솟았어요.”
쉽게 예를 들자면 전날 1,000이었던 공구가 다음날 1,200원이 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재고가 어느 정도 있었던 태일공구종합상사에게는 이 시기가 오히려 기회로 다가왔다.
“부도 어음이 헤집고 지나가버린 자리를 이런 식으로 메웠던 것 같아요. 가지고 있던 재고가 우리 가게를 살렸다고 봐야겠죠. 그래서 저희는 재고를 중요한 자산으로 생각해요. 그래서 다른 집에서는 찾을 수 없는 귀한 공구도 우리에게 문의하면 다 있어요.”
임 대표는 재고는 자산이라는 생각을 늘 한다고 했다.
“공구 가격은 웬만해서는 내려가는 법이 없어요. 저희 경험 상 1년이 지나면 평균 십 퍼센트는 오르는 것 같아요. 그러니 재고량만큼 매년 자산이 늘어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 셈이죠.”


꾸준히 늘어나는 거래처
 
한번 견고해진 믿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태일공구종합상사와 거래처간의 믿음이 이와 같았다.
“2년 전 조선소들이 어려워질 때 거래처 어음이 부도가 난적이 있었습니다. 4억 정도 되는 금액이었죠. 그때 주변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원래 거래처 손님이 하청업
가지고 있던 재고가 우리 가게를 살렸다고 봐야겠죠. 그래서 저희는 재고를 중요한 자산으로 생각해요. 92
체로 독립을 해 우리 물건을 써주시고 그들의 지인이 또 우리에게 물건을 요청하고, 문어발식이라고 할까요? 주변의 많은 도움이 있었기에 부도 어음을 지금은 어느 정도 수습한 상황입니다.”
이처럼 견고한 신뢰에 대해 이들은 정확한 납품 기일과 정품 납입이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했다.
“항상 납품 날짜를 맞춰주고 정품을 취급했던 게 가장 큰 요인인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같은 브랜드라도 짝퉁이 있고 어디에서 제조했는지에 따라 가격차이가 납니다. 물론 이 같은 가격 차이는 제품의 성능 차이와도 직결되죠. 그런 의미에서 저희 물건은 손님들에게 만족도를 준 것 같습니다. 물건이 정직하니까 가격 면에서 다른 공구상보다 조금 비싸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거죠. 이렇게 쌓인 신뢰 덕분에 지금까지도 거래처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고정 거래처만 해도 150여 군데가 되는 것 같네요.”


2세 경영을 위한 준비
 
임진택 대표는 현재 태일공구종합상사는 2세 경영을 위한 준비 중에 있다고 했다.
“딸이 두 명 있습니다. 큰 딸은 경영대학원을 나왔고 작은 딸도 대학에서 경영을 전공했죠. 현재 시집간 큰딸의 사위가 가게에 나와서 일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조선소에서 일했던 사위를 저희가 불러들였어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공구상은 여자 혼자 감당하기 벅찬 곳이거든요.”
임 대표와 부인 석경자 씨는 옛날과 달리 요즘에는 공구상 경영에도 전문지식이 필요한 시대라고 강조했다.
“우리야 아무것도 몰라도 공구상을 시작했고 하면서 하나씩 터득해 나갔죠. 하지만 지금은 그래서는 어림도 없어요. 관련 지식이 있어야 해요. 가게를 어떻게 운영해 나가고 재고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고……. 이런 지식 없이 시작하면 힘들어요. 딸들도 가게를 물려받겠다는 생각을 전부터 하고 있었기에 대학 전공도 경영을 선택했죠.”
실제로 전자상거래와 같은 부분에 있어서는 딸들의 도움을 지금도 많이 받고 있는 편이라고 했다.
“딸과 사위가 잘 해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실제로 지금도 잘 해주고 있고요. 그렇기에 우리가 분점을 계획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무탈하게 2세에게로 경영권이 넘어간다면 지금으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노후준비까지 완벽하게 해놓았다는 임진택 대표. 자신에게 맞는 업이라고 생각하고 성실히, 확실히,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지금의 태일공구종합상사가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