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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상탐방

경기 안성 청년공구철물

 

반도체회사 근무하다 창업
“공구상은 든든한 인생 놀이터”

 

경기 안성 청년공구철물 이은철 대표

 

 

 

 

반도체 설계 회사에서 근무하던 이은철 대표는 자신의 적성과 취미를 살려 공구상을 오픈했다. 
그에게 공구상은 매장이라기보다 노후를 위한 놀이터다.

 

 

반도체 설계회사에서 근무했던 대표


우리나라의 총 수출액 가운데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 그만큼 반도체는 우리나라 산업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경기도 평택시에는 총 건설비 180조 원의 세계 최대 면적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여섯 기가 건설 중이다. 평택시는 물론, 근처 용인시와 안성시에는 삼성전자뿐 아니라 각종 대형 반도체 회사와 중간 벤더 회사들이 상당수 위치해 있다.
경기 안성 청년공구철물 이은철 대표(47)는 공구상 창업 전 반도체 설계회사에서 근무했다. 회사에서 반도체 설계 및 제작 생산관리 및 기술영업 업무를 맡아 수행했다. 퇴사 전 마지막으로 맡았던 업무는 삼성전자의 폴더블 폰 설비 가운데 한 공정 장비의 오더를 따 생산까지 진행했던 것. 어려운 업무였다. 제작 설비를 구축하려면 사전에 케파(생산 능력) 분석도 해야 하고 세계적 트렌드도 알아야 하고 또 구입량도 예측해야 하는데 그게 너무 힘들었다고 대표는 말한다.


“회사는 과장까지 올라갈 때까지가 재밌었어요. 시키는 것만 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직책이 높아지면서 책임자가 되다 보니 부담이 커지더라고요. 제 능력적인 면에서도 한계가 왔고요. 그러다 보니 탈이 나고 하니까 핑계 아닌 핑계를 대고 퇴사했던 거죠.”

 

 

취미와 적성 살려 창업한 공구상


2021년 12월에 회사를 그만둔 대표는 작년 9월 청년공구철물을 오픈했다. 오픈한 자리는 대표가 회사에 근무하던 때 구입해 둔 부지. 땅 구입 전 대표가 생각했던 세 가지 조건이 있었다. 100평 정도의 면적, 버스 다니는 길 바로 옆, 그리고 주택가. 이 세 가지 조건을 갖춘 곳이 바로 지금 청년공구철물 자리다. 땅을 구입할 때까지만 해도 대표의 머릿속엔 공구상이 아니라 원룸 건물이 들어있었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건축비가 어마어마하게 상승해 상대적으로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원룸 건물을 짓는 것은 힘들어졌다. ‘그럼 원룸 말고 노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하는 물음이 떠올랐고 그간 해보지 않았던 소매점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소매점 가운데 대표가 관심 있고 또 잘 할 자신 있던 것이 바로 공구상이었다.

 


“제가 공구 쪽을 좀 다룰 줄 알거든요. 각종 집안 시설이나 가전 수리같은 것도 할 줄 알고요. 매장 건물 2층이 저희 집인데, 집안 시설 꾸릴 때도 정수기부터 변기, 매립TV, 인덕션까지 전부 다 제가 했어요. 저는 그런 게 재밌더라고요.”


회사를 퇴사하고 아내의 응원에 공구상 창업을 결정한 대표는 아내로부터 나온 의견에 따라 ‘청년공구철물’이라는 간판을 달고 오픈 후 1년 째 매장 운영 중이다.

 

이은철 대표는 원래 출장수리 업무를 중심으로 매장을 운영하려 했다.

 

모든 제품에 가격표… 부가세 추가도 없어


앞서 말한 것처럼 공구 사용의 ‘준 전문가’수준인 이은철 대표는 처음엔 자신의 취미와 적성을 살려 출장수리 중심으로 매장을 운영할 계회이었다. 매장에는 직원을 두고 자신은 출장 수리 주문을 받아 그것을 주 업무로 하려 했던 것. 그런 이유에서도 청년공구철물 매대에 전시되어 있는 모든 상품에는 가격표 바코드가 붙어 있다. 직원이 공구에 대해 잘 몰라도 바코드만 찍으면 판매가 가능할 것이므로. 하지만 포스기를 다루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 포스기가 어려워요. 저희 와이프도 못 하겠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출장 수리는 다른 수리하시는 사장님들 네 분에게 번갈아 가면서 들어오는 일을 드리고 있어요. 수수료도 없이요. 대신 그분들이 저한테 필요한 물건을 구입해 가시죠.”


가격표 바코드를 붙인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오늘 들은 공구 가격이 내일 가서 물어보면 달라지는 타 공구상의 판매 방식이 대표는 싫었다. 또한 현금 구매 시 가격보다 카드로 구매하면 10%의 부가세가 추가되는 것 역시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현재 청년공구철물에서는 현금으로 구입하든 카드로 구입하든, 가격표의 가격 그대로 결제가 이루어진다.

 

 

창업 컨설팅 회사 도움받은 초도물량 입고


공구에 관심이 있고 다룰 줄 알았다고는 하지만 그것과 공구상 창업은 엄연히 다른 문제. 어떤 공구를 들여놓아야 판매가 될지 판단하는 것은 공구 판매 경험이 없던 대표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표는 공구상 창업 컨설팅 회사의 도움을 받아 무엇보다 힘든, 디테일한 공구상 구색 갖추기를 진행했다.


“물량 처음에 들여올 때도 너무 재밌었어요. 제가 정리정돈을 좋아하고 뭔가 구색을 갖춰두는 걸 좋아하거든요. 업체 사장님과 정말 재미있게 했어요. 그 분이 저한테 자기 후계자로 오라고까지 그러더라고요. 하하하.”


현재 우리나라에는 유명한 공구상 창업 컨설팅 회사 다섯 곳이 있다. 그 가운데 한 업체의 도움을 받아 청년공구철물 문을 열었다. 컨설팅 회사에는 매장 면적과 원하는 금액에 따라 정해진 품목 리스트가 있다고 한다. 그것을 그래도 들여놓기만 하면 되는 것이 컨설팅 회사와 함께하는 창업의 장점이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처음 그렇게 도움을 받아 들여놓는 공구의 가격이 비싸고 품질 관리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고객에게 감사하는 것이 곧 마케팅


현재 매장을 방문하는 하루 평균 고객 수는 4~50명 정도. 매장 부지와 건물도 전부 이은철 대표 소유이고 직원도 대표 혼자이니 전기세 말고는 따로 나갈 비용이 없어 수익은 쏠쏠하다고 대표는 말한다. 웬만한 월급쟁이들 벌이보다 훨씬 낫다고.
청년공구철물이 자리한 안성시는 현재 개발 열풍이 불어닥친 지역이다.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던 개발이 이제야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청년공구에도 수많은 작업 현장으로부터 납품 요청이 들어왔고 또 들어오는 중이다. 하지만 대표는 그런 요청을 거절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공구상으로 큰돈 벌 생각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큰돈을 벌려면 무조건 현장 납품 잡아야죠. 그런데 저는 그럴 생각 없거든요. 공구상을 차린 이유도 돈 벌 목적이 아니라 노후에 제가 시간 보낼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거거든요. 노후의 제 놀이터를 마련하려는 거죠.”


나이 들어 퇴직하고 집에만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손님 오면 이야기도 나누고 와이프 눈치도 보지 않을 수 있고 또 물건이 팔리면 파는 놀이터와도 같은 공간. 그 공간이 바로 대표에게는 공구상이다.
대표는 자신의 놀이터를 방문해 물건을 구입해 가는 고객들이 그렇게 고맙단다. 그런 고마움을 대표는 청년공구철물을 방문한 고객들이 포털 사이트 지도에 남긴 리뷰에 하나하나 꼼꼼하게 댓글을 남기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정말 고맙잖아요. 저희 매장에서 물건도 구입해 주시고 홍보도 직접 해 주시는 거니까요. 저는 당연히 고맙죠. 돈 드는 것도 아니고요. 사실 마케팅 업체들로부터도 연락을 많이 받았어요. 돈 얼마 주면 홍보해 주겠다고요. 그런데 안 한다고 했어요.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이은철 대표의 공구상, 아니 놀이터 청년공구철물에 앞으로 더 많은 고객들이 놀러 오길 기대해 본다.

 

글·사진 _ 이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