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 깬 초대형 공구상
안성 대풍건재 이연수 대표
안성 외곽에 위치한 죽산면에는 믿기 어려울 만큼의 대형 공구상이 자리 잡고 있다. 안성 대풍건재가 바로 그 주인공. 공구상이 아닌 공장이라 착각할 정도의 큰 공구상인 대풍건재에는 차량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대풍건재의 목표는 없는 것이 없는 공구상. 기존의 공구상을 넘어서는 초대형 공구상으로의 성장 비결과 이연수 대표의 성공비결을 들어 보았다.
2만 6천원으로 시작한 사회생활
첫 사회생활을 중장비 기사로 시작한 이연수 대표는 고향을 떠나 10년이 넘게 직장생활을 하며 자본금을 모았다. 직장생활을 하던 당시만 하더라도 이연수 대표 스스로 자신이 공구상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고향을 떠나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때 당시 어머니가 치마 속에서 꺼내어 내 손에 쥐어 준 돈이 2만 6천원이었어요. 그 돈을 손에 쥐고 사회에 나온 것이죠. 중장비를 모는 일을 했기에 젊은 시절에는 지방을 전전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둘 생기자 지방을 전전하는 일은 그만 두어야겠다고 느꼈죠.”
직업을 바꾸려고 할 때 이연수 대표는 자신이 다니던 사무실 근처의 철물점이 가게를 내 놓는다는 말을 듣는다. 그길로 달려가 가게를 인수하고 장사를 시작했다. 대풍건재의 시작이다.
구색 갖춰 회전율 높였죠
경기도 용인의 원삼이라는 동네에서 철물점을 막 시작한 이연수 대표의 나이는 서른 다섯. 당시 아내와 함께 사업을 시작한 이연수 대표는 돈을 벌기보다는 물건의 품목을 늘리는데 주력했다. 그래서 처음 3년 동안 고생이 참 심했다고.
“돈을 만지기보다 일단 구색을 갖추는 것이 나는 좋다고 생각을 했어요. 구색을 갖추면 사람들이 찾게 되고 또 사람들이 찾으면 일반적으로 나가는 물품의 회전율이 올라가니까요. 그리고 가게 한 가득 있는 물건을 보면 뿌듯하잖아요. 대신 주머니에 만원 한 장 나가는 것도 아쉬운 시절이었죠.”
차곡차곡 물품을 늘려 나가자 가게도 커지기 시작했다. 구색을 갖추자 가게는 확장에 확장을 거듭했고 그만큼 자산도 증가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연수 대표는 지금의 대풍건재 모습을 그렸다고 한다.
많은 품목으로 천 오백평 채워
“10년 전부터 지금의 대풍건재 모습을 그려나가기 시작했어요. 없는 게 없는 공구상이면서 동시에 넓은 면적을 보유하고 있는 마트형 공구상. 그래서 수시로 크고 유명한 공구상이라면 혼자 찾아가 보기도 했죠. 또 외국의 공구상도 참조 했습니다. 여러 곳을 보면서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버리자 지금의 모습이 그려지더군요.”
지금 현재의 대풍건재는 용인을 벗어나 안성시 외곽에 자리 잡고 있다. 시 외곽에 위치한 것은 도심에서는 지금의 규모로 공구상을 운영하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현재 대풍건재가 사용하는 면적은 천 오백평. 시외에 위치한 대풍건재지만 엄청난 금액을 땅값으로 투자해야 했다. 그리고 천 오백평을 투자한 만큼 일반 공구상보다 몇 배나 많은 품목과 재고를 들여야 했다고. 그래서 땅을 사고 건물을 짓고 물건을 들이기까지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대풍건재 사정거리, 반경 50km
15년 동안 용인에서 공구상을 하던 이연수 대표가 안성으로 가게를 옮길 때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했다. 용인에서 가게를 키울 만큼 키우다가 더 이상 확장이 어렵다는 판단이 들 때 안성으로 새롭게 출발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생각해 보면 굳이 옮기지 않고 기존의 공구상을 유지만 하더라도 생활과 미래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과 같은 초대형 공구상을 굳이 운영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과 초대형 공구상을 운영하고 투자할 자금으로 차라리 편안한 노후를 즐기며 사는게 어떠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사실 그래요. 누구나 보더라도 이렇게까지 공구상을 운영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죠. 그런데 나는 이렇게 큰 공구상을 만들고 싶었어요. 없는게 없는 공구상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만족하는 그런 공구상요. 공구상이 꼭 작고 모여 있어야 하는 것인가요? 그리고 어차피 이 업계에 발을 들여 놓았으면 최선을 다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일까 대풍건재는 가게를 중심으로 주위 일대 50킬로미터 안의 산업용품 및 자재는 모두 책임지고 있다. 멀리 충청도지방에서도 소문을 듣고 주문을 하기도 한다고. 나사 볼트부터 벽돌 파이프까지. 없는게 없는 공구상으로 소문이 났다.
매입처를 잡으면 손님도 잡혀
이연수 대표가 말하는 대풍건재의 성공의 원동력은 물건을 매입할 때 물건에 하자가 있더라도 일단 결제부터 하는데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사실 장사라는 것인 물건을 잘 사고 잘 파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간혹가다 물건이 잘못 들어오거나 물건이 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혹은 수량이 적을 때도 있어요. 그렇지만 장사를 사업으로 만들려면 일단 우선 결제를 해야 합니다. 잘못되고 서운한 것이 있더라도 일단 돈을 주고 따져야 해요. 돈을 주기 전 따지는 것은 돈을 깎자는 일로 오해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돈을 주고 난 후에 따지는 것은 불만사항을 전달해서 더욱 좋은 거래를 하자는 뜻이거든요.”
불황이 길어질수록 많은 공구상들은 손님에게만 신경을 쓰다가 매입처와의 관계가 소홀해지곤 한다. 그러나 대풍건재는 매입처와의 돈독함을 무기로 내세워 급할 때 마다 도움을 받았다고. 대풍건재는 중요한 손님이 가게에 없는 물건이나 가진 재고가 넘는 숫자의 물품을 요구할 때 잘 대처할 수 있었다.
무리한 확장 피해 위기 없었죠
대풍건재와 같은 초대형 공구상을 만들고 운영하는데 위기는 없었을까. 그러나 이연수 대표는 위기는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무리한 확장은 하지 않고 성실하게 일했기 때문이다.
“무리한 확장은 하지 않았어요. 공구장사는 딴 짓만 하지 않으면 허덕이지 않습니다. 술을 하거나 노름을 하거나 돈을 빼서 딴 짓을 하면 공구상 운영이 힘들 수 밖에 없어요. 물건 100만원 어치를 팔았을 때 물건 구입은 똑같이 되어야 운영이 가능하거든요. 그런데 물건 구입 후 한달 뒤 결제를 못해서 쩔쩔 매는 사람을 보면 뭔가 경영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골프에 빠졌다던가 소비가 심하다던가. 큰 돈을 굴리더라도 한달 뒤 매입처에 줄 돈. 그리고 인플레이션으로 물건 값이 오르는 것을 생각하며 한 달 한 달을 열심히 장사하고 아끼면서 사는 것 그게 위기를 피하는 비법인 거죠.”
대풍건재의 성공비결과 위기를 극복하는 비결은 별 다른 것이 없다. 천 오백평 규모의 공구상을 운영하면서도 푸른색 작업복을 입고 손님을 미소로 대하는 이연수 사장의 모습이 바로 성공 비결이다. 초대형 공구상 대풍건재의 앞날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