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나와 공구상을 꿈꾸다
연 대표이사의 ㈜탑공구가 1호선이 지나는 군포역 2번 출구 근처에 둥지를 튼 지도 3년이 넘었다. 이곳은 연 대표이사가 구로, 시흥, 안양 유통상가를 거쳐 마침내 자리 잡은 소중하지만 치열한 삶의 터전이다.
“다른 사람들의 성공 스토리를 들어보면 다들 대단하시던데, 제가 과연 그럴 위치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연 대표이사는 자신이 인터뷰를 할 만한 깜냥이 될지 모르겠다며 겸손한 태도로 첫 인사를 건넸다.
연 대표이사는 지난 1986년 한 대기업 공작기계회사에서 영업기술직으로 처음 근무를 시작했다.
“94년도까지 약 8년 간 회사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대기업에 근무하는 금형 전문가 외에는 CNC를 다루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습니다. 그래서 회사를 나와서 CNC기계를 사람들에게 교육하는 전문 학원을 세워야겠다고 계획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처럼 쉽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전 회사와 작은 마찰과 오해로 인해 바로 그의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다. 당시 친구와 여러 분야의 사업이야기를 나누던 중 때마침 유행했던 한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을 차리기로 즉흥적으로 마음먹었다.
“정말 갑자기 결정된 것이었어요. 요식업을 시작했는데 흐름과 맞았는지 생각 외로 잘 됐죠. 그래서 회사를 나오고 2년 정도 요식업으로 외도 아닌 외도를 하게 됐네요.”
하지만 공구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욕망을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대기업에서 공작기계 대리점을 제안받기도 했단다.
“퇴사한 회사에서도 1년 정도 지나자 저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오해의 감정들을 다 정리했더군요. 제가 인간관계나 신용을 잃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공구업으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저를 많이 도와줬어요.”
공구영업의 노하우 경험으로 체득
지인의 도움으로 구로유통상가 2층에서 임대로 첫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 장사를 시작하면서 연 대표이사는 엔지니어부분에 대해서만 알고 있다가 공구영업에 관한 많은 현장지식들을 배울 수 있었다고 했다.
“공구가격이 형성되는 구조에 대해서 우선 알게 됐어요. 회사에 있을 때는 공장에서 60원에 나가는 A라는 공구가 최종 소비자에게 100원에 나가는 것을 보고 이윤이 참 크게 남는다고 생각했어요. 그 중간단계들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죠. 하지만 현장에 나와 보니 이윤은 생각했던 것 보다 크지 않았어요.”
자금유통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고 했다.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장 흔히 봉착하게 되는 문제 중 하나가 자금유통의 어려움인데요. 회사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을 전혀 할 수 없는 것이죠. 월급쟁이였으니까요. 하지만 가게는 달랐어요. 매입처 결제 날짜에 맞춰 제 수중에 돈이 꼭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으니 말이죠.”
이런 자금유통의 어려움을 연 대표이사는 IMF시절 제일 많이 겪었다고 한다.
“그때 교육 보험, 적금 등 모아두었던 돈을 많이 깼어요. 다행히 공구업계는 IMF의 경제위기 상호아이 그리 길게 가지 않았죠. 그래서 제가 그동안 모아 두었던 돈을 가지고 신용을 지킬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 사이에 가게 매출은 뚝 떨어져 있었죠.”
처음 밑바닥부터 시작해 5천~6천만원까지 올려놓은 월 매출이 1천500만원까지 떨어지게 된 것. 연 대표이사는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사업에 임해야만 했다.
“다행히 신용이 담보가 되니 물건을 받는데 어려움은 없었어요. 이런 일을 겪으면서 공구업을 하려면 신용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죠.”
10년간 동업 끝 진정 홀로서기
그가 회사를 나와 처음 일을 시작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을까.
“거래선 제로에서부터 시작했어요. 회사만 다녔지 제가 뭘 알았나요? 회사 동료들이 다행히 같은 계통의 친구들인 탓에 친구들을 통해 거래처를 소개받았어요. 그리고 그 분들이 저희 가게와의 거래를 마음에 들어하면 또 다른 거래처를 소개시켜 주고요. 이렇게 차근차근 늘려나갔다고 봐야죠. 저희 가게 영업 중 도매가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을 훨씬 넘는 것도 다 이렇게 영업을 해 나갔기 때문이죠.”
영업에 대해서는 서툴렀지만 기계에 대해서는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그에게 큰 장점으로 작용 했다.
“우선 영업적으로 제가 약한 것은 맞지만 기계에 대해 깊이 들어가면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이 상당하니까 손님들과 심도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었어요.”
지금 현재 자리로 옮겨오기 전에 연 대표이사는 동업자와 함께 99년도까지 안양유통상가에 있었다.
“품목을 늘리는 차원에서 지인과 동업을 했었죠. 시너지 효과는 분명히 있었어요. 거의 10년이 넘는 세월을 동업했습니다. 별 탈 없이 잘해나갔죠. 동업은 사실 우리 업종에서는 드문 편인데 전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의견차이로 인해 갑작스럽게 동업을 정리하게 됐다고 했다. 발등에 갑자기 불이 떨어진 셈이다. 한 달 사이에 새로운 곳으로 자리를 잡아야 했는데 지금 자리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참 이상한 일이죠? 지금 가게 위치가 제가 들어오기 직전까지 거의 1년 가까이 비어있었다고 해요. 근데 제가 이 자리가 보이는 지하철 노선을 매일 타고 다녔었죠. 한 번도 제 눈에 들어오지 않던 가게 몫이었어요. 그런데 가게를 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자마자 이 자리가 내 눈에 띈 것이에요. 시기가 좋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죠. 신기하죠?”
직원들과 연매출 100억 목표를 위해
현재 그는 총 5명의 여직원과 남직원을 두고 있다. 그가 사람을 고용할 때 보는 조건은 단 하나. 회사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며 성실하고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전 사람 뽑을 때 고민을 크게 하지 않아요. 그리고 직원을 뽑으면 믿고 맡기죠. 물건을 매입할 때도 이윤에 대해서 직원들이 오히려 철저히 따져 볼 정도에요. 그리고 스트레스를 직원들에게 주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하루 종일 손님을 상대하는 것 만해도 지치고 힘들텐데 나까지 화를 내 스트레스를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회사를 옮기면서 3년 동안은 매출을 올리려고 무리하게 애쓰기 보다는 현 상황을 유지, 관리하는데 더 중점을 줬다는 그. 3년이 지난 지금 그에게 생긴 새로운 목표는 무엇일까.
“회사가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봅니다. 처음 2천만원 정도였던 월 매출도 10배 이상 뛰었습니다. 지금은 연매출 100억 달성과 함께 지점을 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남들은 은퇴를 고려할 나이에 여전히 열심히 일할 수 있음을 감사히 여긴다는 그. 직원들의 도움이 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다며 겸손해 할 줄 아는 그. 성실한 삶을 살아온 그와 그의 직원들에게 늘 좋은 날만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