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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상탐방

서울 강산기업 김은혜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 모습 지금은 존경하고 사랑하죠

 

강산기업 김은혜

 

 

강산기업 김성환 대표와 함께하는 딸 김은혜씨

 

나의 아버지는 요비선으로 유명한 강산기업 김성환 대표님이시다. 어렸을 때 내가 본 아버지의 모습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어렵고 답답한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제일 사랑하고 존경하는 남자다. 32살의 나는 이제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오직 일 밖에 모르시는 나의 아버지


사람마다 자신이 믿고 따르는 것이 있다. 누구는 종교를 믿고 누군가는 정치인을 따르고 누군가는 가족이나 친구를 믿고 따른다. 나는 세상에서 나 자신을 가장 믿고 내가 내린 결정을 믿고 중요시한다. 그만큼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신중하게 구분하고 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잘하고 싶다. 반면 나의 아버지는 ‘일’을 중요시한다. 아버지는 평생 ‘강산기업’이라는 회사에 헌신했고 자신이 키운 회사를 삶의 중심이자 중요 부분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나를 믿고 아버지는 일을 믿는다. 나의 마음과 결정을 중요시하는 나, 회사 강산기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버지. 우리의 차이는 그런 것 같다.

 

까라면 까는 문화는 NO, 명분 이유가 중요해


나는 모 여자대학 생활체육학과를 졸업했다.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 출신인 내가 체육고등학교 출신 선수들과 경쟁해 입시를 뚫는 것은 꽤 큰 노력을 필요로 한다. 아버지의 응원, 어머니의 관심, 그리고 나의 땀 흘리는 노력을 통해 원했던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대하고 시작한 대학 생활은 마냥 즐겁지는 않았다. 의미 없는 서열문화, 줄 세우기 문화, 군대 문화가 체육대에는 아직 남아 있었다. 나는 이것이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대학 졸업 후 사회에 나와 보아도 그런 비슷한 현상이 보여진다. 왜 우리가 이것을 해야 하는지 합당한 이유, 명분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따를 것이다. 이해할 수 없고 옳지 않은 서열문화, 까라면 까라고 무턱대고 요구하는 사람을 ‘꼰대’라고 한다. 상대방이 여자라고 나이가 어리다고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이 아직 많다. 어리고 약해도 생각이 있고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있다. 우리 사회 조금은 더 변해야 한다.

 

말 없어 때로는 무서운 아버지 그래도 사랑해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강산기업에 들어가 일을 시작했다. 내 기억에 나의 의견이나 나의 감정이 우선되어 아버지의 회사에서 시작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어느 공구인 2세가 그렇겠지만 갑자기 아버지의 사업을 돕는 일은 흔하다. 물론 나도 강산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싫지 않았다.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하지 못했지만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신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가 경영하시는 강산기업도 큰 애정이 있다. 사실 지금도 나는 아버지와 이야기하는 것이 어렵다. 나의 생각이 아버지와 다를 수 있고 나의 결정과 생각이 아버지에게 아픔이나 실망으로 다가갈 수 있어서다. 내가 본 아버지는 현명하고 강한 사람이지만 표현을 잘하시는 분이 아니다. 때때로 당장 대답하기 힘든 질문을 건네곤 한다. 그래도 아버지를 사랑한다.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아버지는 내게 너무 소중한 사람이다.

 

 

지게차 & 화물차 몰던 24살 아가씨


32살이 된 지금의 내가 생각해도 24살의 나는 너무 순진했던 것 같다. 대학 졸업 후 아버지의 말에 따라 나는 다마스 화물차를 몰고 올림픽 대로를 타고 서울에서 경기도 광명에 위치한 허허벌판의 공장까지 출퇴근을 했다. 대학 시절 운전면허를 따려고 했을 때 아버지가 화물차 운전이 가능한 1종 보통 면허를 따라고 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출퇴근과 물품 배달은 화물차로 하고 회사 안에서는 지게차를 몰았다. 설비 고장 방지를 위해 틈틈이 구리스 기름을 기계에 칠하는 것은 기본이다. 대학에서 함께 공부하던 몇몇 친구는 운동으로 다져진 멋진 몸매를 인스타그램에서 자랑하며 주목받는데 나는 허허벌판에 자리한 공장에서 작업복 입고 요비선 조립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자신의 정체성 잃어가는 것 가장 힘들어


아버지가 대표이사인 회사에 자식인 2세가 출근하면 편안하고 쉬운 일만 할 것 같지만 현실은 드라마와 다르다. 나는 아버지의 이름과 체면을 손상시키고 싶지 않아 더욱 노력해야 했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도 아버지의 자식인 나를 어려워하고 은근히 거리를 둔다. 2세의 경우 창업자이자 경영자인 아버지 눈치를 보는데 동시에 주변을 보아도 아래를 보아도 속마음을 털어 놓으며 함께 일할 사람이 없다. 그렇다고 큰 보상이 바로 있는 것도 아니다. 나와 비슷한 대학 동기들은 더욱 좋은 환경에서 더욱 좋은 조건으로 일하는데 친구들과 비교해 나만 뒤처지는 느낌을 받곤 했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하지 못하니 내가 누구인지 잊게 되고 나의 꿈을 현실에서 놓치게 되었다.

 

필라테스 강사로 자리 잡은 지금의 나


2년 동안 일했던 강산기업을 떠나면서 나는 내 꿈을 찾아 여러 가지 도전을 해보았다. 처음에는 대형 헬스장에서 헬스 트레이너로 일했고 지금은 필라테스 강사로 자리잡아 일하고 있다. 뒤늦게 사회에 나와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나의 한계도 체험하고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다양한 사람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사회의 현실을 겪어보니 아버지의 마음이 이제는 이해가 된다. 거친 세상 속에서 내가 앞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갈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앞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열심히 하며 지금보다 더 발전한 모습을 갖추도록 노력하리라 다짐한다.

 

아버지 이해하고 나의 방식으로 돕고파


32살이 된 나는 요즘이 인생에 있어 중요한 순간이라고 본다. 결정해야 하는 일,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리고 아버지와 강산기업의 일도 다시 도와드리고 싶다. 다만 내가 모든 것을 하지 못하니 내가 할 수 있는 분야에서 도움 드리고 싶다. 그것이 내 마음이다. 나도 그동안 아버지께 내 마음을 많이 표현하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도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응원한다. 항상 날 걱정해주고 응원 해주는 엄마도 내게 너무 소중하다. 하나뿐인 내 남동생도 아버지를 돕고 있어 고맙고 다행이라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올케님과 곧 이어 태어날 조카에게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강산기업을 사랑해 주시는 공구인 분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많은 분들이 강산기업 제품을 애용해주셔서 우리 가족이 행복하고 편안한 삶을 살아 온 것 같다. 공구인 여러분 감사합니다. 모든 분들이 행복하시길.

 

_ 김은혜 / 정리 _ 한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