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구상탐방
경기 일산 하엽공구&우주상사
목표를 두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은 아름답다. 경기도 일산 ‘하엽공구백화점’의 정하엽 실장도 그런 사람이다. 그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하엽공구백화점을 성장시킨 이후 자신의 꿈을 새롭게 찾아 정진하고 있다. ‘폐쇼파가죽 안전장갑’이라는 아이디어로 청년사관학교에 입학하고 제품 제작을 시도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하엽공구백화점이 위치한 경기도 일산에는 쇼파 제작 공장이 많다. 이런 쇼파공장에서는 매일 질 좋은 자투리 가죽이 쓰레기로 배출되고 있다. 비록 자투리지만 성인 남성의 손바닥 보다 훨씬 큰 면적의 가죽이다. 정하엽 실장은 산업폐기물이 될 수 있는 자투리 가죽을 활용해 품질 좋은 안전장갑을 제작 한다.
“보통 용접장갑은 돈피, 그러니까 돼지가죽으로 제작이 됩니다. 그런데 돼지가죽은 가격이 저렴하지만 생각보다 내구성이 떨어집니다. 반면 좋은 쇼파 가죽은 질 좋은 소가죽으로 제작되거든요. 가격도 돼지가죽보다 비싸죠. 어차피 쇼파공장에서 버리는 폐기물을 활용한 것이니 지구 환경에 도움 되고요. 시중에도 소가죽으로 제작된 용접장갑이 유통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쇼파 공장에서 사용하는 가죽만큼 후처리 가공을 잘해서 출시 된 장갑은 없어요.”
그가 제작한 장갑을 착용해보니 가볍고 손에 딱 맞는 느낌이다. 사람 피부에 접촉하는 쇼파에 사용하는 가죽으로 제작해서 움직임도 부드럽고 화학약품 냄새도 나지 않는다.
보통의 2세 공구인들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공구상을 물려받아 일하거나 아버지로부터 배운 공구지식을 발판삼아 자신의 가게를 세우는 경우가 많다. 그가 안전용품 제조에 뛰어든 계기가 궁금하다.
하엽공구백화점 정철대표는 공구장사를 평생 해왔다. 그래서 그의 아들 정하엽 실장도 어린 시절부터 공구상이 친숙하고 공구를 사려고 찾아오는 손님을 가족처럼 느꼈다. 군대를 다녀온 뒤에는 아버지와 함께 공구장사를 하느라 제대로 쉬는 날도 없이 20대 청춘을 보냈다. 매일 보는 단골손님은 그에게 있어 친구이자 가족과 마찬가지였다.
“저희 가게에 방문하시던 단골손님이 산업재해로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놀라기도 하고 충격을 받았지요. 물론 어떤 사람들은 산업재해는 안전용품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운명이라 하기도 하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말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납득이 안가더라고요. 성능이 부족한 안전용품을 어떻게 안전용품이라고 부를 수 있고 판매를 합니까. 아무리 돈이 좋아도 저는 양심상 그렇게는 못해요. 조사를 해보니 대한민국은 산업재해로 돌아가시는 작업자분들이 매년 늘어나고 있습니다. 다른 선진국 작업자 엔지니어들도 한국에서 만큼 산업재해가 일어나느냐면 그것도 아니고요. 전부 안전용품이 사고를 막는 성능을 못 내거나 기업이나 나라에서 좋은 작업 설비, 안전장치를 작업자에게 제공하지 못해 벌어지는 일입니다. 저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으로 공부하기도 했어요. 기존 제품보다 안전하도록 디자인한 제품 설계도를 제조공장이나 대형 유통사에 보여주며 문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한번 시작해보자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나 스스로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았다. 우선 벤처기업 ‘우주상사’를 차렸다. 그 순간부터 그는 아버지 밑에서 일하는 공구상 직원이 아니었다. 벤처기업이자 스타트 제조기업 CEO가 된 것. 빌게이츠가 아버지의 차고에서 사무실을 차린 것처럼, 그가 세운 우주상사는 하엽공구백화점 2층에 자리 잡았다. 곧이어 가게 근처에 있는 쇼파공장에서 자투리 가죽을 받아와 장갑을 제작한다. 경영과 제조를 위한 공부를 하며 시제품을 만들고 주변의 공구인들에게 제품을 선보이니 품질이 좋다는 호평과 함께 수 백 만원 주문이 바로 들어왔다. 지금은 주문을 맞추기 위해 보다 넓은 창고를 빌려 본격적인 공장을 세우는 중이다.
가족은 그가 제조업을 하는데 도움을 주는 든든한 후원인이다. 그는 군 전역 이후 가업인 공구상에서 10년 넘게 일을 했다. 10년 동안 각종 전동공구 수리를 할 정도로 기술도 익혔다. 그런 그가 공구상을 하지 않고 제조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은 반대하지 않았다. 생각이 많고 신중한 그를 믿었기 때문이다.
“제가 생각해도 제가 가진 돈을 전부 투자해서 제품을 제작하는 것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제조와 경영을 배울 것인지 고민하고 조사를 했죠. 또 실패 할 수 있으니 생각을 거듭해서 각종 대응책을 준비하고 도움 받을 수 있는 기관을 찾았어요. 그러다 청년사관학교라는 제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준병 교수님으로부터 제조에 필요한 많은 지식과 경영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죠. 이제는 공구상 경영자들도 경영에 대한 깊은 지식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저는 청년사창업사관학교에서 시제품 제작부터 거래를 위한 전문 용어와 절차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저 이외의 다양한 창업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여러 노하우를 얻을 수 있었죠. 아이디어가 좋다며 심사를 통과해 창업자금을 지원 받기도 했어요. 사실 저 이외에도 많은 공구인들이 창업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아이디어만 있다고 물건이 바로 뚝딱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더군요. 안정적인 원자재를 확보해야 하고 모든 공정을 다 내가 할 수 없으니 외주작업을 줄 부분을 찾아야하고 또 협상도 해야 했죠. 그러나 저도 몰랐습니다. 자금이 없다고 기술이 없다고 안된다고 포기하지 마세요. 이곳 저곳 두드리고 배우면서 시작하면 결과가 나옵니다. 포기하거나 주저하면 변화는 없어요.”
많은 공구인들이 자신의 공구 브랜드를 가지고 싶어 한다. 그래서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외국의 유명한 브랜드 제품을 수입해서 판매하기도 하고 해외 공장에 OEM으로 제작한 자신의 제품을 선보이기도 한다. 지금까지 공구업계에 사회적인 기능을 가진 제조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폐쇼파가죽으로 제작한 용접장갑이 의미 있는 이유다. 그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 한다. 5년 후에는 보다 큰 공장에서 다양한 안전제품을 선보일 것이라고. 사람에게 주어지는 환경은 저마다 다르다. 그러나 노력하고 배움을 멈추지 않는 사람은 보다 발전한다. 큰 꿈을 가진 정하엽 대표의 미래를 응원한다.
글·사진 _한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