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른 가게, 깔끔한 진열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려 준비하던 시각, 오후 5시가 되서야 해남 땅끝공구에 도착했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 자리한 땅끝공구는 인근 공구상들 가운데서 단연 돋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 공구상들과 비교해 가장 큰 점포규모를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행길에 공구상을 찾지 못할까봐 전날 미리 걱정했던 것이 바보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가게 문을 열고 고개를 빠끔히 내밀었다.
“안녕하십니까.”
쭈뼛쭈뼛 안에 들어서서 주위를 살폈다. 밖에서 봤던 짐작했던 것보다 실제 안에서 살펴본 2층 규모의 내부는 훨씬 더 컸다.
“아,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대충 가게 좀 정리하구요.”
‘암, 그렇고말고요. 얼마든지 기다려드릴 수 있습니다’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주변구경에 푹 빠졌다. 여기저기 설치된 CCTV 카메라. 종류별로 나란히 정돈된 공구들, 쓰임새에 따라 정확히 구분된 진열장. 오랜 세월에 허름하고 낡은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무참히 깨버린 가게 모습이었다. 혼자서 가게 구경만 해도 꽤나 시간이 걸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직원으로 보이는 한 사람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여기 규모가 어떻게 되나요?” “아마 300평은 족히 넘을 겁니다.” “그럼 진열된 물건들을 모두 합하면 그 값어치는 얼마나 될까요?” “글쎄요. 정확히 셈할 수 없어도 15억 원 정도는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억~!’소리가 절로 나올 뻔 했다.
수공구, 자동차공구, 배관공구, 에어공구, 전기전자, 철물자재, 목공구, 측정공구, 유압공구, 절삭공구 등등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분화된 공구들이 보기 좋게 정리돼 있었다. 나중에 세어보니 구분된 종류만 17가지가 넘었다. 카운터 뒤편에는 AS실로 보이는 수리장소가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구경했을까.
“자, 이제 한숨 돌렸네요. 많이 기다리셨죠?” 최계송 사장이 인사를 건넸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공구를 택하다
무뚝뚝하지만 ‘젠틀’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올해로 15년째 공구상 일을 하고 있다는 최 사장은 공구상과는 전혀 인연이 없었던 사람 중 하나였다.
“서울에 있는 대학의 호텔경영학과를 나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쑥스러운데요. 그때는 단순히 호텔에서 일하는 것이 멋져 보여서, 깔끔하고 고급스러워 보여서 선택했던 학과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이상과는 달랐다.
“공부를 해보니 나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벨보이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이렇게까지 일하는 게 맞나 생각이 들었어요.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화순에서 섬유와 관련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일은 쉽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대가 짊어지기에는 다소 많은 액수의 빚까지 생겼다. 덜컥 겁이 났다.
“지금으로선 별것 아닌 액수였을지도 모른데 그때는 젊은 나이에 빚이 생기니 걱정이 됐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고향 선배가 제안을 했어요.”
선배가 한 제안은 다름 아닌 ‘자신이 일하는 공구상에 직원으로 들어와서 일을 도와주면 빚을 다 갚아주겠다’는 것이었다.
“당시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빚을 어서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여서 선배와 함께 일을 하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