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 먼 땅끝. 이곳에는 누군가가 원하는 물건을 말하기만 하면 그게 뭐가 됐든 찾을 수 있는 가게가 있다.
동네 주민들은 그 가게를 영전백화점이라 부른다.
시골에 백화점은 무슨 백화점? 와보면 놀랄 걸!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지도를 보면 요즘은 웬만한 시골 동네 앞마당이라도 ‘로드뷰’가 찍혀 나온다. 마치 현장에서 보듯 사진으로 도로 주변을 확인할 수 있는 로드뷰. 그런데 이 로드뷰에도 나오지 않는 깊은 시골도 있으니 바로 해남 땅끝마을 바로 앞 영전리 같은 곳. 그런 시골 마을에 백화점이 있다면 믿겠는가?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영전리 영전백화점은 정말이지 그 ‘백화점’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은 잡화상이다. 동네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껌, 과자부터 시작해 각종 철물공구는 물론 근처 바닷가에서 물질할 때 필요한 석화 조새(갈고리)며 색색깔의 페인트들, 여러 종류의 PVC파이프 심지어는 스마트폰 충전기까지 없는 게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이 곳을 운영하는 올해 일흔 둘 나이의 김병채 대표도 가게 안에 물건이 도대체 몇 개나 있는지 모른다 말한다.
“요즘도 하루에 100명 정도는 손님들이 방문하는 것 같아. 찾는 것들 가운데 아마 없는 건 없을 거야. 요즘은 철물 쪽 상품들을 많이 찾더라고. 여기 없으면 차타고 멀리 면소재지까지 나가야 하니까 다들 우리 가게에 먼저 들르지. 나도 철물이 좋아. 유통기한이 없잖아?”
가게의 이름으로 ‘백화점’을 추천한 것도 근처 주민들이다. 여러 가지 물건들을 다 판매하니 그랬을 테다. 그렇게 원래 가게의 이름이었던 ‘영전상회’를 ‘영전백화점’으로 바꾼 건 불과 10여년 전의 일이다.
“광고사에 가서 영전백화점 간판을 써 달라고 하니까 시골에 무슨 백화점이냐고 안 만들어 준대. 그래도 내가 해달라고 했지. 그래가지고 붙여논 것이 영전백화점이야.”
18살부터 반백년… 54년째 운영해 온 가게
시골마을 백화점에 놀라운 것은 수없이 많은 물건의 종류 말고도 또 있다. 바로 대표의 장사 햇수. 나이 열여덟,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도 않은 앳된 나이부터 지금까지 무려 54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자리에서 장사해 왔다.
“내가 다섯 살 땐가, 목포로 갔다가 17살에 다시 고향으로 왔어. 원래는 아버지가 이 자리에서 장사를 하고 계시다가 그때 군산으로 김 하러 갔어. 그래서 빈 자리를 내가 와서 하게 된 거야. 목포상고 2학년까지 다니다가 졸업도 못 하고 내려와서 그때부터 가게 보기 시작했던 것이 지금까지 보고 있네. 하하하.”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영전리는 시골 치고는 나름 큰 마을이었다. 지금은 폐교가 된, 영전백화점 바로 옆의 초등학교 학생 수는 그때만 해도 2000명은 훌쩍 넘었다고 한다. 그 아이들에게 학용품이며 불량 식품을 팔았다. 그리고 300여 호나 되던 마을의 집과 그 집에 살던 청년들. 수협 직원들이 수확해 갔던 김 값을 주려고 자전거를 타고 와 사람들에게 현금을 나눠줄 때면 마을의 가맥집들은 명절 못지않은 호황을 봤다. 그랬던 영전리에 지금 남아있는 사람들은 나이든 이들 몇몇 뿐이다.
“당시에 영전리 하면 개가 오천 원 짜리 물고 다닌다고 했었어. 아직 만 원짜리가 안 나왔을 때. 지금은 젊은 사람들 다 돈 벌러 도시로 나가고 근처 장사들도 문 닫고. 옛날에는 나도 밤 아홉 시까지 팔았는데 지금은 해만 지면 사람이 없어.”
그래도 농사 짓고 바닷일 하는 동네 주민들과 땅끝에서 펜션 하는 이들이 방문하는 영전백화점이다.
재고 확보는 광주·부산에서 오는 나까마에게서
문을 열고 왁자지껄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몇몇 사람이 가게에 들어왔다. 주인과는 다들 친한 듯 가벼운 인사를 나누며 몇 가지 물건을 물어 찾는다. 갯벌 일에 필요한 도구들과 도시에 사는 딸애에게 보낼 해산물을 담기 위한 스티로폼 아이스박스. 대표는 가게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방문객이 찾는 물건을 꺼내 온다.
“우리 마을에서 사람들이 찾는 건 뭐가 됐든 다 챙겨 뒀어. 어디다 쓰는 건지 모르는 것들도 찾으면 다 갖다 뒀지. 저 쪽 광주에서 물건 가져오는 사람이 있어. 일주일에 한 번씩 트럭에 이것저것 가득 싣고 꼭 와. 그 사람한테 필요한 걸 말해 두면 챙겨 오는 거지. 그리고 부산에서 오는 이도 있어.”
가장 물건이 잘 팔리는 시기는 곧 다가올 농번기다. 마늘 농사를 많이 짓는 주변 주민들은 필요한 것이 생기면 언제든 영전백화점으로 달려온다. 김병채 대표가 찾아 온 물건을 받아든 방문객들은 가게 안 플라스틱 원형 테이블에 앉아 마른안주와 맥주를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아직 시간은 한낮이다.
몸 아파 드러누울 때까지 할 생각
일 년 365일, 영전백화점은 문을 닫는 일이 없다. 대표가 부인과 사는 곳이 바로 영전백화점 안의 너른 방이다. 일요일도 문을 열어 두고 손님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면 방 밖으로 나가 맞이한다. 일을 쉬지 않는 늙은 부모가 안쓰러웠는지 3년 전 막둥이 아들이 ‘둘째 넷째 월요일은 쉽니다’라고 적힌 네온사인을 만들어 걸어 뒀다. 하지만 네온사인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힘들지. 쉬는 날이 없잖아. 그래도 손님이 와 주는데 팔아야지 어떻게 문 닫고 있겠어. 쉬어야 하는 건 아는데 못 쉬지. 또 돈 벌에서 손주들한테 용돈 주는 것도 좋으니까. 이 나이 먹은 부모가 돈 벌어서 손주들한테 용돈 주니까 걔들 부모도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 하하하.”
앞으로 언제까지 가게 운영을 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대표는 한 10년이나 더 할까, 라고 대답한다. 언제가 됐든 몸 아파 자리에 드러눕기 전까지는 영전백화점 운영을 계속할 거라 말하는 김병채 대표다
글·사진 _ 이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