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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보관문화를 바꾼다, 중앙브레인


대한민국 보관문화를 바꿨다

중앙브레인 김화석 대표





금형제작 전문업체가 사출성형

중앙브레인은 각종 보관함 생산으로 유명하지만 처음부터 보관함을 제작하던 업체는 아니었다. 창업당시인 1985년에는 중앙정밀이라는 상호를 가진 플라스틱 금형제작 전문업체였다. 경남 양산에서 지금까지 중앙브레인을 설립하고 운영해온 김화석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985년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의 저희 회사는 금형을 제작하는 업체였습니다. 1988년에 들어서서 중앙브레인이라는 법인을 설립하고 동시에 다용도 부품박스를 개발합니다. 저는 기계공고를 나와서 사출 금형 기술을 익혔어요. 결혼하고 100일도 안된 첫째 딸아이를 데리고 조그만 창고에서 사업을 시작했죠. 지금은 양산이 무척 발전한 신도시이자 산업도시지만 30년 전의 양산은 시골이나 다름없었죠. 그래서 적은 자금으로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작한지 몇 년 안되었는데 불경기가 찾아오더라고요. 도무지 일거리를 받아 올 수 없었습니다. 있던 거래도 끊겨 직원들 월급도 못주는 상황이 되니까 이래서는 안되겠다. 뭔가 제품을 직접 만들어 팔아야 직원들 제대로 월급도 주고 밥도 먹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때부터 사출 성형을 시작하게 된거죠.”
금형관련 일거리가 떨어지면서 직원을 놀릴 수는 없기에 시작한 제품제작이지만 중앙브레인이 첫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투자한 금액과 시간은 결코 적지 않다. 그렇게 개발한 제품이 큰 호응을 얻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기도 했다. 
 
사람들이 낯설어한 부품보관함
 
“옛날에는 부품을 커피병에 담아 놓거나 목공소에서 사각통을 짜 부품을 관리하고 그랬습니다. 저희들도 금형 제작을 하다 보면 부품이 많은데 부품 관리가 잘 안되요. 그래서 밥그릇에 부품을 담아 놓고 그랬죠. 부품함이 없으니까요. 이것을 바꿔보고 싶어 처음에는 몸체를 만들고 서랍을 투명이 아닌 시커먼 통으로 만들었어요. 그때 당시에는 투명한 제품이 별로 없었죠. 제품이 나왔는데 막상 영업사원이 없었어요. 그때 전체 직원이 나 포함해서 6명이었거든요. 영업사원 둘 형편도 아니었고. 그래서 제가 혼자 트럭에 물건을 싣고 공구상에 방문하고 그랬는데 시장 반응이 처음에는 좋지 않았어요.” 
제품을 구매해 진열해 놓으면 보기도 좋고 편리하지만 너무 제품이 고급스럽다는 평이 많았다고. 굳이 비용을 들여 부품이나 공구를 관리 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지인을 통해 유럽 수출을 위한 샘플을 보내기도 했다. 
“그때 샘플을 배로 보내면 운송 기간만 보름에서 20일 걸렸어요. 2, 3달이 지나도 반응이 없는 겁니다. 나중에 들려온 반응이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하더군요. 따져보니 제품가격보다 운송료가 더 비싸요. 수입을 하느니 차라리 거기서 만들어 사용하겠더라고요. 그렇게 수출도 안 맞더군요.”


외면받던 제품 대기업 관심 가져
 
다행이 기존에 하고 있던 금형사업이 잘되고 있어 회사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뒤로 몇 개월이 흐르고 무작정 서울 코엑스 전시회에 나가게 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자전기관련 전시회에 나간 것이다. 
“그때 당시에 서울에 큰 업체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큰 기대하지 않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간 것이었는데 반응이 너무 좋은 겁니다. 거의 포기했다시피 했던 부품보관함이 삼성전자와 LG전자와 같은 대기업 관계자들로부터 꼭 필요했던 제품이라며 반색을 하더군요. 생각해보면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에서 좋아할만한 제품이었습니다. 부품을 습기나 먼지로부터 보호하고 찾기도 쉽고 보관도 쉬우니까요. 그 자리에서 수주를 받고 제품을 생산해 판매를 하고 그랬죠.” 
그 때 당시에는 주문받는 만큼 생산하던 시점이었다. 대기업 관계자의 호응을 얻고 주문도 받게 되자 잃었던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몇 개월 이후에 2번째 전시회에 나갔더니 한 업자가 지역 독점판매권을 달라는 요청도 받는다.


 
부도어음 문제로 위기 겪어
“한 업자가 제게 와서 말하길 선불금을 줄 테니 자신에게 독점으로 공급을 하라고 해요. 그때가 1992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저 스스로 제품을 판매해본 경험은 별로 없고 판매 교두보도 없으니 대리점을 주고 독점을 주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트럭 한가득 당시금액으로 500만원을 받고 물건 보내줬죠. 그때 당시 500만원은 적은 돈이 아니었거든요. 2번째 한 트럭 가득 실은 제품을 보내니 자금이 안된다고 어음을 주는 겁니다. 6개월 정도 어음을 준거 같아요. 그때 어음이 보통 5,6개월이거든요. 그때 당시 3개월 어음은 고급 어음이었습니다. 별 생각 없이 받았죠. 그런데 그것이 큰 화가 되더군요. 제품이 판매된다는 사실에 너무 기뻤던 것 같아요.”
6개월 납품하니 받은 어음도 커졌지만 그 어음이 부도 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6개월 동안 받은 어음이 부도가 나면서 그동안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사용했던 재료비와 운송비를 받지 못했다. 어마어마한 위기였다. 설상가상으로 부도어음을 내준 업자는 그동안 받은 중앙브레인의 제품을 창고에 숨겨두고 저가로 판매했다. 사기라는 생각이 들어 형사고발도 했지만 범인을 잡는 것은 쉽지 않았다. 

 
보유한 금형만 1000여벌

“그렇게 위기도 있었지만 IMF에 우리는 성장합니다. IMF인 1997년에 저희들은 월 매출이 1배 반 정도 늘었던 것 같아요. 그때 당시에 의약분업화가 실시되었거든요. 의약분업화를 하니 약국이 커지고 약을 하나하나 보관해야 하니까. 업자들이 제품을 달라고 아침부터 회사에 방문하는 겁니다. 그때 한단계 도약할 수 있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한 품목을 개발해 밀고 나가니 결과적으로 그 노력이 돌아오더군요. 그 이후로 반도체 공장 쪽에서 저희 제품을 또 찾더군요. 그 이후로 저희 제품을 보고 흉내내 비슷한 제품을 제작하는 업체들도 생겨났어요. 잘 팔리는 제품만 선별해서 저희 제품을 따라가려고 하는 업체도 생겨났구요.” 
중앙브레인은 특허를 많이 가지고 있다. 새로운 제품을 꾸준히 개발했기 때문이다. 해외 전시회에 참석해 트렌드를 분석하고 고객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개발한 제품군이 무려 200여가지가 넘는다. 이 제품군을 보유하기까지 사용한 금형비용은 어마어마하다. 현재 보유한 금형이 1,000여벌이 넘어섰다. 그렇게 개발한 제품들 중에는 특수한 기능을 가진 제품들도 적지 않다. 
“전자 제품, 반도체 부품을 담아 놓았는데 그 안에서 스파크가 일어나게 되면 그 안의 내용물이 파손 됩니다. 그래서 정전기가 발생하지 않는 부품 보관함이 필요합니다. 반도체 공장에서는 정전기 방지를 위해 바닥에 정전기 방지 카펫을 깝니다. 그것에 힌트삼아 정전기가 일어나지 않는 제품을 개발했어요. 그것을 개발하는데도 1, 2년 걸렸던 것 같아요. 덕분에 저희들은 삼성 아이마켓 납품업체입니다. 저희를 통해 아이마켓에 들어가고 각 계열사가 아이마켓을 이용해서 저희 제품을 구매하죠.” 
중앙브레인의 제품은 지금도 중국산과 비교해 가격과 품질면에서 경쟁력 우위에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서울 사무소에 무역부를 개설해 수출시도를 다시 하고 있다. 
“수출이 쉽지는 않은데 의미 있는 결과는 있습니다. 그동안 저희 제품을 사용해온 국내기업이 해외로 많이 진출 했어요. 해외로 나간 국내 기업이 저희 회사에 제품을 요청해 해외로 수출이 이루어지더군요. 앞으로도 해외수출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신호탄으로 생각합니다.”  
중앙브레인은 작년 12월 새로운 건물을 세우고 완전히 이주를 했다. 직원들을 위한 환경도 예전에 비해 많이 개선되었다. 중앙브레인은 처음 제품을 선보였을 때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제품을 개발하여 지금은 큰 인기다. 중앙브레인의 도전정신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글·사진 _ 한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