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열, 구색, 납품 등 총체적 변화 시도
일단 가게의 진열 구조부터 재정비했다. 진열 방식은 마트 매장에서 힌트를 얻었다. 진열대도 마트용 진열대를 도입했다.
“같은 업종의 좋은 점을 응용하고 아이디어를 얻는 거죠. 그런 점이 디자인의 재창조 방식과 비슷해요.”
물품 진열의 첫 번째 원칙은 고객이 주로 찾는 물건을 손님이 찾기 가장 쉬운 곳에 눈높이를 고려해 놓는 것이다. 공구상에서 손님들이 주로 찾는 물건은 가위, 줄자, 칼, 니퍼 등의 수공구. 그것을 진열장 가장 앞에 두고 나머지를 활용 빈도나 용도에 맞게 재구성했다.
매출과 가장 직결되는 매입도 큰 고민이었다. 아버지 정철 사장은 사람을 잘 믿고 의리를 지키는 성격 때문에 매입처를 바꾸기 쉽지 않았던 것. 매입처 또한 5~6곳이 전부였다. 하엽씨는 여러 곳에서 품목과 단가를 비교해보고 매입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아버지의 인맥과 기존 매입처는 유지하면서 품목에 따라 다른 매입처를 하나둘 늘려간 것이 지금은 50~60곳 정도로 늘었다. 가격 또한 손님이 직접 물건값을 볼 수 있도록 정찰제로 값을 매겨 라벨링했다. 구색 맞추기가 가장 까다로웠다. 가짓수도 물론 중요하지만 막연히 늘리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맞추기로 했다. “이제 물건 구하기 어려운 시대는 지났어요. 구색이 많다고 잘 팔리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맞는 구색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죠.”
근처 상권에 어떤 사업체가 있나 일일이 돌아다니며 조사했다. 알고 보니 물류창고도 많고 무대설치업자도 있었다. 하엽씨는 이런 시장 상황에 맞게 포장용품과 목공구 중심으로 구색을 먼저 맞춰갔다. 예상은 적중했고 매출은 증가했다.거래처와의 신뢰도 중요하다. “업체 납품을 지속하려면 단가보다 속도가 우선이에요. 한번은 납품업체에서 대구 현장에 공구를 공급해야 하는데 매우 급하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 시간 안에 도저히 맞출 수 없어서 일단 근처 공구상에서 결재해서 쓰면 내가 그 값을 물겠다고 했죠. 어떤 상황이든 내가 공구를 공급하기로 했다면 그 공구를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어야 하니까요. 물론 손해가 났죠. 그런데 상대방 업체도 그것을 알고 있어요. 그 신뢰 때문에 거래가 지속되는 거죠.”
사은품, 문자메시지 등 고객 밀착 서비스
하엽공구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는 고객 밀착형 서비스를 개발한다는 것이다. 고객 감사 선물 이벤트도 그 중 하나.
“대형마트나 백화점처럼 나도 주요 고객에게 사은품을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성의의 표시죠.”
작은 선물 하나도 고민을 해서 결정했다. 마트나 백화점이 주부 고객이 대부분이라면 공구상은 현장에서 일하는 남자 손님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필요한 비트, 장갑, 코마개 등을 제공하기로 했다. 특히 코마개는 용접 등 때 마스크 대신 쓸 수 있는 것으로, 의약용으로 나온 제품을 직접 약국에서 사와서 제공했다. 라이텍스 장갑도 초창기 알려지지 않았던 제품이지만 좋다는 말을 듣고 사은품으로 나눠줬다. 품질이 좋다보니 손님이 정식 구매 요청을 하기도 한다. 또 다른 특징은 문자 발송 서비스. 수리가 끝났거나 물건이 도착했을 때 등 곧바로 고객에게 문자를 보내 준다. 라벨 달아서 해당 고객의 물건을 잘 구분해 두는 것은 당연하다. 처음에는 수리 의뢰가 적었는데 문자 서비스 반응이 좋아 수요가 점점 늘고 있다.
하엽씨는 소매상이 인터넷 시장을 뛰어넘을 수 있는 요소는 많다고 말한다.
“백화점이 비싸지만 고객이 찾는 이유가 있듯이 소매상도 인터넷 시장이 공급하지 못하는 장점을 활용해야 해요. 철저한 A/S, 물건에 대한 실질적인 정보 제공, 접근성 등으로 경쟁력을 키우면 승산이 있어요.”
세대교체는 업계가 겪어야 할 과정
현재 가게 발전에 가장 필요한 것은 전산화 시스템. 재고 상황을 한눈에 알 수 있으려면 바코드 관리가 절실하다. 앞으로 이런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주먹구구식 운영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하엽공구도 아직 엄두를 못 내고 있지만 반드시 필요하고 결국에는 모든 공구상이 해야만 하는 작업이라고 부자가 입을 모은다.
청계천 소매상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몇 년 후 청계천 소매상들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어요. 산업발전에 이들이 공헌한 비중은 매우 큽니다. 그렇게 업계를 일군사람들이 허무하게 현장을 떠나게 하면 안 돼요. 그들이 세월속에서 비축한 노하우와 저력을 전수할 기회가 있어야 합니다.”
하엽씨는 또래 젊은이들에 대한 고민도 크다.
“제 나이 때 사람은 선뜻 이런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아요. 게다가 새로운 공구상을 새로운 방식으로 여는 것은 쉬울 수 있지만 기존 공구상을 이어 받아서 변화를 거듭하는 것은 더 힘들수 있어요. 하지만 이 업계가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힘든 시절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납품업자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잊지 않는다. 공구상을 하는 이상 그 의리를 끝까지 지키겠다는 것이 하엽씨의 다짐이다. 그림자처럼 물심양면으로 아들을 지원하는 아버지, 새로운 구상과 스타일로 변화를 일으키는 아들. 두 부자의 성공적인 세대교체가 앞으로 하엽공구를 어떻게 탈바꿈시켜갈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