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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하는 아버지 vs 바꾸려는 아들



이 부자(父子)가 사는 법

고수하는 아버지 vs 바꾸려는 아들

고양 하엽공구백화점 정철·정하엽 부자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운영하고 있는 경기도 고양의 하엽공구백화점. 원래 사장인 정철 씨와 '작은
사장'으로 불리는 아들 정하엽 씨가 옥신각신 이야기 중이다.
“아버지, 이 물건은 들여야 해요.”
“글쎄, 우리 매장에서 그게 팔릴까.”
서로 의견이 팽팽하지만 열에 아홉은 아버지가 물러난다. 오래된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스타
일로 바꾸어 가려는 아들의 도전을 밀어주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오래된 공구상 대부분이 2대가 함께 운영하거나 2세에게 공구상 경영을 물려주어야 하는 시기를 맞이하는 지금, 정철, 정하엽 부자의 독특한 운영방식이 눈길을 끈다. 투닥투닥 끊임 없이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정철,정하엽. 이들 부자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아들 이름 딴 하엽공구백화점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성석동에 위치한 ‘하엽공구백화점’.
“‘하엽’이 무슨 뜻이죠?”
거래처에서 가장 먼저 하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이거다.
“우리 큰 아들 이름이예요. 하하”
호탕하게 웃어 보이는 정철 사장. 그 옆을 지키며 분주하게 일하는 청년이 바로 아들 정하엽 씨다. ‘작은 사장’으로 불리며 4년째 실질적인 매장 운영을 도맡아 하고 있는 신세대 사장이다. 처음에는 의견차로 많이 다퉜지만 아들의 의견을 존중한 결과 최근 몇 년 사이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청계천 출신으로 잔뼈가 굵은 정 사장의 눈에는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지만 흐뭇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먼저다.
“한번씩 이건 아니다 싶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일일이 지적하고 대립하기보다는 묵묵히 있어 줍니다. 아들도 의도한 바가 있고 시대가 바뀐 만큼 그 흐름에 맞는 새로운 스타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시행착오 겪으며 안정적인 소매로


정철 사장이 공구상을 시작한 시점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구의 소개로 도.소매를 연결하는 중간 소매업자로 청계천에 발을 들였다.
“구식 포니 자동차로 소매상 곳곳을 다녔는데 차가 느려서 원하는 만큼 들리지 못하겠더라고요. 게다가 외상이 점점 늘어나니까 이것보다 가게를 운영하는 게 수익이 낫겠다 싶었어요.”
5년 동안 모은 돈으로 영등포에 공구상을 차렸다. 당시는 공급은 적고 수요가 많았던 시절이라 경기가 좋았다. 하지만 워낙 사람을 좋아하고 믿는 성격 때문에 외상을 수없이 떼였다. 지금이야 요령이 생겼지만 그동안 공구상 운영하면서 크고 작은 손해를 많이 봤다.
“이제는 외상 거래가 필요한 업체는 직접 찾아가서 상태를 파악한 뒤에 결정합니다. 시행착오 겪으면서 돈 주고 배운 거죠.”
채무 관계가 생겼을 때 큰 액수라면 신용보증회사를 통해 해결할 방법이 있지만 작정하고 도망가는 경우도 많았다.
“어차피 못 받는 돈이라면 마음에서 영영 지우는 게 낫겠다 싶어 서류를 찢어버리기도 했어요. 그러면 마음이라도 편해지거든요.”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히자 일산 능곡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서는 꽤 큰돈을 벌었다. 승승장구 자신감이 생기고 아이들 교육에도 신경을 쓰게 됐다. 마침 미국에 살고 있던 처제를 통해 아이들의 유학을 생각하게 됐고, 잘 나가던 공구상을 큰 고민없이 팔아 버리고 가족 모두가 훌쩍 미국으로 떠났다. 그때만해도 6개월 뒤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을 못했다.
“아이들 영주권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더라구요. 6개월 후 다시 한국에 들어와서 다시 공구상을 알아봤죠. 그땐 경기가 괜찮았으니까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도난에 외환위기 덮쳐 설상가상

이번에는 김포시 풍무동에 터를 잡았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터졌다.
“한날 가게에 도착했는데 잠겨 있어야 될 문이 열려 있는 겁니다. 이상하다 싶어 들어가 보니 물건이 싹 다 사라졌어요. 근방에 아는 사람 소행이었어요. 어떻게든 물건 되찾을 방법이없나 알아봤지만, 답십리 쪽으로 물건이 빠져나가서 현금화되면 끝이래요. 주변에서는 포기하라 더라고요.”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설상가상 외환위기가 덮쳤다.
“연이어 IMF 터지고 1년 동안 쪽박 찼죠. 물건 들일 돈이 없어서 앞에는 실제 물건 놓고 뒤에는 빈 상자 진열해서 있는 것처럼 속이고. 그렇게 오래 버티기가 힘들더라고요. 마지막 남은건 집 하나뿐인데. 그래서 아내와 진지하게 상의했죠.”
외곽지에 매장을 얻고 영업 위주로 사업을 다시 시작하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용인, 수지, 능산 등 지방으로 돌아다녔지만 작은 평수는 구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몇 개월을 괴롭게 보냈다. 그렇게 다시 내린 결론은 공구상이었다.
“다른 일을 해보려고도 생각했지만 재고가 아까워 어떻게 할 수도 없겠더라고요. 다시 잘 해보자고 이를 악물었죠.”
집을 담보로 곳곳에 수소문한 결과 일산 덕이동에 적당한 곳을 찾아냈다. 게다가 2차선 도로를 끼고 있어 잠재고객이 곧바로 매장으로 연결되는 위치였다. 다행히 예상대로 차곡차곡 매출이 올라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빚 갚고 여유를 찾을쯤 또 위기가 닥쳤다. 2차선 도로가 4차선으로 확장되면서 가게로 들어와야 할 손님이 물 흐르듯 흘러지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외환위기 이후 10년 동안 보금자리였던 곳을 떠나 현재 위치로 이동했다.


디자이너에서 공구상 경영자로…

시대가 변하면서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운영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매출도 높지 않았다. 아들 정하엽 씨도 아버지와 같은 마음이었다. “장사의 핵심은 이윤을 남기는 건데 그게 막혀버린 거죠. 원래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는데, 내 전공을 살릴지 이 가게를 살릴지 고민이 컸어요. 전공과 전혀 다른 일에서 재미나 비전을 찾을 수 있을까 라는.”
하엽씨는 지인으로부터 넓은 안목으로 자신의 삶을 디자인해보라는 말을 듣고, 해야 할 일을 외면하지 않고 그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을 살려가야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신기한 게, 매장 운영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니까 재미를 느끼게 됐어요. 이제는 이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된 거죠.”
지금까지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바꾸려는 아들과 기존 방식을 고수하는 아버지. 서로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정철 사장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아들의 입장을 어느 새 수긍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아들에게 전권을 일임했다. 하엽씨는 그렇게 3년 동안 자신의 생각과 스타일대로 차근차근 매장 운영에 변화를 줬고, 그 결과 최근 1년 사이 매출이 확 늘어났다. 가게도 두 배로 확장했다.



진열, 구색, 납품 등 총체적 변화 시도


일단 가게의 진열 구조부터 재정비했다. 진열 방식은 마트 매장에서 힌트를 얻었다. 진열대도 마트용 진열대를 도입했다. 
“같은 업종의 좋은 점을 응용하고 아이디어를 얻는 거죠. 그런 점이 디자인의 재창조 방식과 비슷해요.”
물품 진열의 첫 번째 원칙은 고객이 주로 찾는 물건을 손님이 찾기 가장 쉬운 곳에 눈높이를 고려해 놓는 것이다. 공구상에서 손님들이 주로 찾는 물건은 가위, 줄자, 칼, 니퍼 등의 수공구. 그것을 진열장 가장 앞에 두고 나머지를 활용 빈도나 용도에 맞게 재구성했다.
매출과 가장 직결되는 매입도 큰 고민이었다. 아버지 정철 사장은 사람을 잘 믿고 의리를 지키는 성격 때문에 매입처를 바꾸기 쉽지 않았던 것. 매입처 또한 5~6곳이 전부였다. 하엽씨는 여러 곳에서 품목과 단가를 비교해보고 매입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아버지의 인맥과 기존 매입처는 유지하면서 품목에 따라 다른 매입처를 하나둘 늘려간 것이 지금은 50~60곳 정도로 늘었다. 가격 또한 손님이 직접 물건값을 볼 수 있도록 정찰제로 값을 매겨 라벨링했다. 구색 맞추기가 가장 까다로웠다. 가짓수도 물론 중요하지만 막연히 늘리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맞추기로 했다. “이제 물건 구하기 어려운 시대는 지났어요. 구색이 많다고 잘 팔리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맞는 구색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죠.”
근처 상권에 어떤 사업체가 있나 일일이 돌아다니며 조사했다. 알고 보니 물류창고도 많고 무대설치업자도 있었다. 하엽씨는 이런 시장 상황에 맞게 포장용품과 목공구 중심으로 구색을 먼저 맞춰갔다. 예상은 적중했고 매출은 증가했다.거래처와의 신뢰도 중요하다. “업체 납품을 지속하려면 단가보다 속도가 우선이에요. 한번은 납품업체에서 대구 현장에 공구를 공급해야 하는데 매우 급하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 시간 안에 도저히 맞출 수 없어서 일단 근처 공구상에서 결재해서 쓰면 내가 그 값을 물겠다고 했죠. 어떤 상황이든 내가 공구를 공급하기로 했다면 그 공구를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어야 하니까요. 물론 손해가 났죠. 그런데 상대방 업체도 그것을 알고 있어요. 그 신뢰 때문에 거래가 지속되는 거죠.”


사은품, 문자메시지 등 고객 밀착 서비스

하엽공구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는 고객 밀착형 서비스를 개발한다는 것이다. 고객 감사 선물 이벤트도 그 중 하나.
“대형마트나 백화점처럼 나도 주요 고객에게 사은품을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성의의 표시죠.”
작은 선물 하나도 고민을 해서 결정했다. 마트나 백화점이 주부 고객이 대부분이라면 공구상은 현장에서 일하는 남자 손님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필요한 비트, 장갑, 코마개 등을 제공하기로 했다. 특히 코마개는 용접 등 때 마스크 대신 쓸 수 있는 것으로, 의약용으로 나온 제품을 직접 약국에서 사와서 제공했다. 라이텍스 장갑도 초창기 알려지지 않았던 제품이지만 좋다는 말을 듣고 사은품으로 나눠줬다. 품질이 좋다보니 손님이 정식 구매 요청을 하기도 한다. 또 다른 특징은 문자 발송 서비스. 수리가 끝났거나 물건이 도착했을 때 등 곧바로 고객에게 문자를 보내 준다. 라벨 달아서 해당 고객의 물건을 잘 구분해 두는 것은 당연하다. 처음에는 수리 의뢰가 적었는데 문자 서비스 반응이 좋아 수요가 점점 늘고 있다.
하엽씨는 소매상이 인터넷 시장을 뛰어넘을 수 있는 요소는 많다고 말한다.
“백화점이 비싸지만 고객이 찾는 이유가 있듯이 소매상도 인터넷 시장이 공급하지 못하는 장점을 활용해야 해요. 철저한 A/S, 물건에 대한 실질적인 정보 제공, 접근성 등으로 경쟁력을 키우면 승산이 있어요.”



세대교체는 업계가 겪어야 할 과정


현재 가게 발전에 가장 필요한 것은 전산화 시스템. 재고 상황을 한눈에 알 수 있으려면 바코드 관리가 절실하다. 앞으로 이런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주먹구구식 운영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하엽공구도 아직 엄두를 못 내고 있지만 반드시 필요하고 결국에는 모든 공구상이 해야만 하는 작업이라고 부자가 입을 모은다.
청계천 소매상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몇 년 후 청계천 소매상들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어요. 산업발전에 이들이 공헌한 비중은 매우 큽니다. 그렇게 업계를 일군사람들이 허무하게 현장을 떠나게 하면 안 돼요. 그들이 세월속에서 비축한 노하우와 저력을 전수할 기회가 있어야 합니다.”
하엽씨는 또래 젊은이들에 대한 고민도 크다.
“제 나이 때 사람은 선뜻 이런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아요. 게다가 새로운 공구상을 새로운 방식으로 여는 것은 쉬울 수 있지만 기존 공구상을 이어 받아서 변화를 거듭하는 것은 더 힘들수 있어요. 하지만 이 업계가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힘든 시절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납품업자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잊지 않는다. 공구상을 하는 이상 그 의리를 끝까지 지키겠다는 것이 하엽씨의 다짐이다. 그림자처럼 물심양면으로 아들을 지원하는 아버지, 새로운 구상과 스타일로 변화를 일으키는 아들. 두 부자의 성공적인 세대교체가 앞으로 하엽공구를 어떻게 탈바꿈시켜갈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