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 하나로 서울로 진출
그렇게 몇 년간 성장하던 리빙엔젤은 1992년부터 정체기를 갖게 된다. 사업이 잘 안되었던 것. 고민하던 송준화씨는 서울로 진출을 한다.
“일단 제품을 만들었는데 물건이 더는 잘 팔리지 않았던 거예요. 아무래도 다른 업체에서 비슷한 제품을 생산을 하기에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서울로 진출하기로 마음을 먹게 됩니다. 물건에 대한 자신은 있어 서울 각 지역의 철물점에 찾아가 직접 영업을 하고 그랬어요. 위기를 다시 영업으로 극복 한 거죠.”
그러나 영업 하기란 쉽지 않았다. 또 주위에서는 지방에서 서울로 가서 성공하는 사람이 드물다고 만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송준화씨는 되려 오천만원을 투자하여 서울에 사무실을 세우고 본격적인 영업을 한다.
“그때 제가 자식 셋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오천만원을 투자하여 서울로 진출하였지만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실패하더라도 오천만원 손해 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울 영업소의 매출증가에 힘입어 잘나가던 사업이 IMF 때문에 97년 또 한번의 시련으로 완전히 또 망했죠. 또 다시 역경의 세월을 집념 하나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리빙엔젤을 이끄는 송영근 대표
IMF이후 안정적인 성장을 계속한 리빙엔젤은 2000년에 들어오면서 송준화씨의 아들인 송영근씨가 대표직을 맡게 된다.
“계속 왼손만 쓰니 몸이 많이 불편하죠. 뼈주사를 3개월에 한 번 씩 맞으며 사업을 했죠. 자식이 장성하여 사업을 접으려고 했는데 아들이 한번 해보려고 하더군요. 그래서 더욱 제조를 하는데 더욱 구색을 갖추었어요. 또 아들인 송영근 대표가 열심히 하고 잘 하고 있어요. 작년에 갑상선 암 수술을 받으면서 이제 아들에게 모든 것을 다 넘겼죠.”
지금도 송영근 대표는 경리업무와 배달을 다 한다. 신제품을 내고 디자인을 생각하고 팔방미인이 다 된 것. 송영근 대표의 말을 들어보았다.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하죠. 해도 될 일을 선택을 잘해서 집중을 한 것이 강점 아닐까 합니다. 저도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한지 10년이 넘었는데 위험하다 싶은 것은 하지 않았어요. 예전에는 중국산이 강세를 띄었지만 지금은 중국산보다 국산을 고집하는 분들이 많아요. 중국산 품질 문제와 더불어 출하량 조절이 안되는데 저희는 항상 꾸준하게 적정재고를 유지하고 물건을 판매한다는 것이 강점이죠. 지금 현재 리빙엔젤은 영업은 안하지만 배달 납품, 경리, 회계를 제가 다합니다. 그게 또 강점이 아닐까요? 시장조사는 전국 총판이나 대리점 사장님을 만나 어떤 물건이 필요한지 알아내고요. 저희는 그렇게 시장이 필요한 제품을 잡아 제조를 하죠. 금형을 제작하는 기술력이 있어서 가능합니다. 물건이 하나 있으면 어떤 물건도 만들 수가 있죠.”
송준화씨는 6살 때부터 했던 고생이 자신의 밑거름이라고 말한다. 항상 어려울 때를 생각하면 못할게 없다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강한 집념을 가지면 못 이룰 것이 없다는 송준화씨와 그의 든든한 아들인 송영근 대표가 있는 리빙엔젤은 앞으로도 강한 제조기업으로 살아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