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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진정밀
저울은 무게를 측정하는 데 사용하는 기구다. 저울은 크게 기계식과 전자식으로 나누어진다. 현재 우리 일상 속에서는 전자저울을 많이 접하지만 산업현장은 기계식 저울을 선호하는 곳이 많다. 국내 기계식 저울 브랜드 중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협진정밀을 알아보자.
협진정밀이 제작하는 기계식 저울의 정체성은 내구성이다. 전자식 저울이 따라가지 못하는 튼튼한 내구성의 기계식 저울을 협진정밀은 제작한다. 1999년 협진정밀을 창업한 유기청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기계식 저울이라고 해서 전자식에 비해 성능이 모자란 것이 아니에요. 기계식이나 전자식이나 저마다 장단점이 있는 것이 저울입니다. 방향성이 다른 거죠. 다만 거친 산업현장에서는 전자식보다 기계식을 더 선호하는 현장이 있습니다. 우선 기계식 저울은 전기가 필요하지 않아요. 반면 전자식은 전원을 연결해야 하거나 배터리 같은 건전지를 사용해야 하죠. 내구성도 전자식에 비해 기계식 저울은 더욱 뛰어납니다. 전자식은 충격, 수분과 습기에 약하죠. 물론 아주 섬세한 측정이 필요한 깨끗한 현장에는 전자식이 더 맞다 생각합니다. 환경에 맞춰 알맞은 저울을 사용하는 것이 맞죠.”
협진정밀 제품을 많이 찾는 대표적인 현장은 수산물을 다루는 현장이다. 유기청 대표의 아들 유석준 대표의 말에 따르면 수협 같은 곳은 습기와 충격에 강한 저울이 사용되어야 한다고. 수산물 경매 시장 같은 곳에서는 전자식 저울을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불편하다.
“커다란 플라스틱 상자에 꽃게를 가득 담으면 무게가 50킬로까지 나가거든요. 수산물 경매 시장 같은 경우 재빨리 무게를 측정해야 합니다. 저울 고장이 두렵다고 무거운 상자를 조심히 내려놓지 않아요. 갈고리에 상자를 걸어서 거의 내던지다시피 저울에 내려놓고 무게를 측정합니다. 그러니 내구성과 습기에 강한 기계식 저울을 선호하는 거죠. 수산물 이외에도 각종 농산품, 원자재, 고철 등 다양한 현장에서는 기계식 저울을 선호합니다. 내구성이 좋으니까요. 전자식은 검교정 기간이 1년인데 기계식은 2년인 것도 장점이고요. 가격도 기계식이 전자식보다 저렴하고요.”
과거 국내에는 기계식 저울을 제작하는 기업이 다수 존재했었다. 그러나 2024년 현재 지금까지 기계식 저울을 제작하는 기업은 손에 꼽힌다. 품질로 경쟁하는 것이 아닌 가격경쟁을 하면서 많은 업체가 사라졌다고. 협진정밀은 가격경쟁을 한 적이 없다. 적정 가격을 고집스럽게 지키며 품질 하나로 승부했다. 그 결과 협진정밀의 제품은 비싸도 사람들이 찾는 제품이 된다.
“언제부터인가 업체들끼리 가격경쟁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가격경쟁을 하면 아무래도 제품 부품에 들어가는 제작 단가를 줄여야 합니다. 물가는 올라가는데 제작 단가를 줄이면 제품이 보다 얇아지고 가벼워지겠죠. 얇고 가벼워지면 아무리 잘 만들어도 내구성은 떨어지게 됩니다. 기계식 저울의 장점이 강한 내구성인데 그 장점을 버리게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가격경쟁에 뛰어들지 않았어요. 제품의 본질을 훼손시키면서까지 경쟁하고 싶지 않았고 또 제가 만든 저울이 자신 있었으니까요. 저울은 정확해야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적정 단가 이하로 제작된 제품 품질이 적정 단가로 제작된 제품 품질을 이기기란 어렵죠. 소비자들은 싸다고 다른 저울 써보면 품질차이를 금방 알게 됩니다. 결국 떠났던 고객도 다시 돌아오게 되고요. 결국 살아남은 것은 저희 협진이죠.”
유기청 대표가 기계식 저울을 처음 접한 날은 57년 전이다. 만 16세가 되어 친척 어른의 소개로 어느 기계식 저울 제조사 직원으로 일하게 된 것이 저울과의 첫 만남이었다고. 그는 여러 저울 회사를 다니며 열심히 일했고 저울 관련 자격증도 취득한다. 그렇게 30대 후반이 되자 기술자로 인정받고 동업 하자는 창업 권유를 받는다.
“당시 내가 30대 후반에 자식들도 어렸는데 자금이 없으니까 회사를 세우기 어려웠죠. 그런데 동업하자는 상대방은 돈을 투자할 수 있었고. 그런데 막상 함께 사업을 시작하니 사업이 잘 안되더라고요. 결국 그렇게 첫 동업자와는 헤어지고 나만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죠. 혼자서 사업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어요. 시장에서 사겠다는 사람들이 없어서 힘껏 만들었지만 제품이 팔리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결국 남의 공장 한 구석에서 월세 내며 저울을 만들었어요. 나도 나이 50살 될 때까지 내 이름으로 된 공장 한 칸 마련하지 못했죠.”
73세 유기청 대표의 손에는 여러 상처가 많다. 57년의 세월 동안 직원으로 일하면서 또 사장으로 일하면서 다양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의 상처보다 아팠던 것은 믿었던 사람의 배신과 제품이 시장으로부터 외면 받았을 때라 말 한다.
“손이 프레스 기기에 찍혀 큰 상해를 입어도 그 아픈 것보다 더 아픈 것이 있어요. 내가 자신있게 만든 저울이 외면당했을 때에요. 손가락이 뭉개지는 사고를 당해도 내 마음은 위축되지 않았어요. 손만 아픈 거지. 오히려 자신 있다 생각했는데 제작했던 저울이 시장에서 팔리지 않을 때, 믿었던 거래처가 날 속였을 때 더 괴롭고 의기소침해집니다. 저희 협진은 많은 대리점을 두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함께 운영해온 대리점과 의리, 신뢰가 있으니까요. 저희 제품을 인정하고 믿어준 고객분들께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거죠. 그것이 장인정신 아닐까요?”
과거에는 기계식 저울을 제작하는 사람은 자격증이 있어야 했고 만들어진 제품은 KS인증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인증 제도나 절차가 사라진 상황이라고. 그 결과 누구나 기계식 저울 제조에 뛰어들 수 있게 되었고 기계식 저울 품질은 하락 평준화 되었다고 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협진정밀은 예전 방식 그대로 고품질의 제품을 생산한다. 5년 전 부터는 유기청 대표의 아들 유석준씨가 공동 대표가 되어 협진정밀의 명성을 이어나가고 있다.
“기계식 저울 제작 기술은 쉽게 보여도 쉽게 익힐 수 있는 기술이 아닙니다. 저울에 대한 기본 원리에 대해 깊이 이해를 해야 합니다. 감도와 감량, 정확도와 정밀도, 불규칙적인 오차 발생 원인을 바탕으로 제작해야 하죠. 이런 지식을 바탕으로 원칙을 지키며 제작하니 서투르게 원가를 절감하지 못한 면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것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된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만 마음이 쓰이는 것은 기계식 저울 시장의 미래가 성장산업이 아니라는 점이죠. 생산 인구가 줄어드니 사람이 사용하는 아날로그 저울의 사용도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듭니다. 그래도 앞으로도 계속해서 원칙을 지켜가며 고객이 주신 믿음 지켜 나가겠습니다. 별다른 마케팅 활동 없이도 고객들이 기억해준 협진정밀의 이름을 지켜나가야죠.”
글·사진 _ 한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