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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방기구제작소
소화기는 이제 우리 주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일상용품이 됐다.
주거공간에서부터 산업현장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안전을 지키는 소방기기 무엇이 있을까.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소화기는 ‘ABC분말소화기’다. 그러나 모든 화재에 ABC분말소화기가 사용되진 않는다.
“소화기 품목이 범주가 넓어요. 대부분 초기 진압에는 축압식 빨간색 소화기를 쓰지만 주방화재에는 K급 소화기를 써야합니다. 그 외 기술개발에 따라 여러 품목으로 확대되어 발전해왔어요. 생각보다 시장규모는 적어요. 소화기산업은 산업발전과 생활수준에 비례합니다. 최근 생활환경이 좋아지면서 소방설비와 안전장비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졌어요.”
88서울올림픽 이후 아파트 건설붐이 일면서 소방산업 역시 급격하게 발전했다.
“1990년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아파트 200만호 공급 정책을 폈어요. 소화기 공급이 늘어나다보니 제조업체도 많이 생겼죠. 연구 활동도 많아졌어요. 처음에는 스프링클러 시스템이 적용됐는데, 문제가 생겼어요. 주방에 기름이 많다보니 오히려 기름이 온 사방에 튀어 화재를 키우는 결과를 가져왔지요.”
주거공간에서 가장 불이 많이 나는 곳은 주방. 정수환 대표는 주방 불을 잡아보자는 생각으로 연구에 매진해왔다.
“강제로 불을 끄는 소화기는 없을까란 생각이 시작이었죠. 그래서 개발한 제품이 ‘주거용 주방 자동소화기’예요. 온도를 감지해 100도가 넘어가면 공급가스를 차단하고 경보를 울려요. 자동으로 소화기가 터지는 거죠. 작동원리는 온도감지 열센서, 가스감지기, 자동컨트롤러 등이에요. 1995년 판매를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효자상품이죠.”
약제도 분말에서 포말형태로, 공간에 맞는 약제형태로 발전되어왔다. 최근엔 ‘스마트후드 소화시스템’도 개발했다. 후드와 가스, 전기레인지 회사가 달라도 자동식 소화기로 연동되는 IoT 제품으로 매연을 차단하고 화재를 예방한다. ‘스마트조명 소화장치’도 같은 원리다.
한국소방기구제작소의 발걸음은 한국 소방기기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소화기는 역사적으로 해군, 군부대 등에서 많이 개발되어왔고, 특히 미국, 영국, 유럽 등의 기술력이 뛰어나다.
“옛날에는 중고를 팔았죠. 아버님이 자전거 타고 제품을 어깨에 메고 팔러 다니셨어요. K2 공군 소방대에 계실 때 처음 소화기와 소방호스를 접하셨대요. 원래 섬유기술을 갖고 계셨는데 군 제대 후 소화기사업을 시작하게 되신 거죠.”
고 정유택 회장은 1961년 대구 칠성동에서 한국소방재료상사란 이름으로 창업, 사업의 기초를 닦았다. 처음에는 유통만 하다 직접 제조까지 하게 됐다.
“당시 우리나라엔 소화기 개념이 없었어요. 그저 미군을 따라가는 형태였죠. 초창기에는 파이프를 잘라 만들었어요. 파이프를 잘라 용접한 후 약을 넣었는데 잘 안 되었어요. 당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가 군부대 포탄껍데기였어요. 초기에는 기술이 없다보니 제품 수명도 짧고, 흔들어 섞어 팽창압을 이용해 분사하는 식이었죠.”
1976년 경상북도 소방설비업체 1호 허가를 취득했다. 당시 서대구 이현공단에 공장다운 공장을 처음 지었다고. 여기에 달성2차산업단지와 경북 군위에도 생산공장을 두고 있다. 지난해엔 국가산업단지에 신사옥을 지으며 새롭게 본사를 이전했다. 지금의 한국소방기구제작소란 사명은 1978년 변경한 것이다. 연간 130만대 소화기를 생산, 판매하고 있는데, 주요 거래처는 건설회사다. 주로 아파트에 적용되는 소화시스템이 주요 사업분야다.
“옛날엔 10층까진 소방차로 화재진압이 되니까 11층 위로만 자동소화기를 달았어요. 그러다보니 실제 화재가 났을 때 소방차 출동이 늦은 감이 있었죠. 2000년대 들어와서 아파트 전 층, 각 복도에 다 설치하게 됐어요. 일반 분말소화기도 가정에 한 대씩 두게 됐고요. 아파트 뿐만 아니라 고층건물이 많이 생기면서 소방시스템화로 시장이 확대되었습니다.”
정 대표는 공학박사다. 연구원 출신이다 보니 연구개발하지 않으면 기업 수명은 끝이라 생각한다.
“저는 1997년에 회사에 합류했어요. 이미 형님이 1991년부터 대표이사로 계셨고, 저는 경북대 박사학위 받고 일본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중이었죠. 부모님이 원하셔서 회사로 들어왔는데, IMF 위기가 닥친 거죠. 당시 아파트 계약을 많이 해놨는데 1군 브랜드 외는 다 부도가 나버렸어요. 기술개발보다 영업을 일으키는 게 시급했죠. 3~4년간 온 힘을 기울였어요. 그렇게 시장이 재편성되면서 주문생산시스템으로 전환됐어요. 그리고 완강기, 소방호스 등 새로운 아이템 개발도 시작했고요. 있는 거 팔아서는 매출 올리기 힘들어요.”
그렇게 사업이 안정되어가던 중 또 한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힘든 시기였는데 아버님이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 결국 돌아가셨어요. 늘 ‘남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제품을 팔아라, 제품에 혼을 불어넣으라’고 말씀하시며 큰 기둥이셨던 아버님의 갑작스런 부재로 참 힘들었어요. 터무니없는 소문이 나기도 하고요. 다행이 그 일을 계기로 남동생까지 서울영업총괄로 합류하면서 삼형제가 힘을 모을 수 있게 됐어요. 최근엔 건설 뿐만 아니라 전기차 분야로 사업을 확대하며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전기차 화재는 동력원인 리튬이온배터리가 과충전, 냉각장치 손상 등의 원인 등으로 발생한다고 한다.
“배터리 셀들이 각각 드러나 있어 하나가 터지면 연쇄적으로 폭발이 일어나요. 소방관들도 접근하기 쉽지 않아요. 저희가 지금 연구하는 게 이동용 수조예요. 불을 끄면서 계속 냉각시키면서 발열을 방지하는 거죠. 이를 ‘전기차배터리 소화기시스템’이라고 해요. 30억 규모 정부 프로젝트로 사업을 추진 중입니다.”
전기차 화재진압 원리는 우리 몸에 센서를 달아 징후를 찾아내듯 배터리에 센서를 적용해 징후를 발견하고 소화약제를 뿌리는 것이다. 지능형 로봇시스템으로 고안돼 있어 어디서 과충전돼 부풀어 오르는지 찾아내 조기에 화재를 진압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최근 동해안 산불이 크게 나서 참 안타까웠어요. 원래 불이 나면 옆집도 물을 뿌려줘야 해요. 산불도 마찬가지죠. 그 불만 끄는 게 아니라 불길이 이동할 수 있는 경로를 찾아 방지해주는 게 팁이죠. 최근 드론을 활용했다고는 하지만 산불정보만 알려줄 뿐 실제 드론으로 불을 끈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소방로봇산업 역시 실용화까진 아직 갈 길이 멀어요. 더 많은 연구와 개발, 투자가 필요한 실정입니다.”
산업현장의 에너지저장장치(ESS)도 화재가 잦다. 발화지점에 대한 원인파악은 물론 화재예방시스템을 사전에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소방기구제작소는 AS서비스를 위한 홈페이지를 별도로 운영하며 고객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연락처와 고장증상 등을 간단히 메모해 남기면 된다. 매출규모는 700억, 현재 165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올해는 창립 61주년이다. 100년 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해 다시 갓난아기가 됐다는 정 대표.
“원자재도 오르고 여러 변수도 많지만 우리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으니 열심히 매출해서 회사를 단단하고 책임감 있게 다시 만들자는 생각입니다. 우리 직원들과 롱런하고 싶어요. 변화가 있으면 그 흐름에 맞춰 변화해야 해요. 투자비용도 물론 늘어나겠죠. 올해는 아주 건강하게 우리 사업을 잘 유지하는 게 목표입니다. 다시 크게 점프할 날을 꿈꾸면서요.”
글·사진 _김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