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전체메뉴 열기

MAKERS

케이시시정공㈜

 

자동화부품 국산화로 장비제조사 공압기기 90% 대응

 

케이시시정공㈜

 

 

유공압부품 국산화를 넘어 2차 전지 제조용 특화 유공압실린더, 솔레노이드밸브 등 
공압기기  생산으로 새로운 미래를 열고 있는 케이시시정공을 찾았다. 

 

 

동종업계 최초 클린룸 도입


케이시시정공은 공장 자동화라인과 산업현장에 널리 쓰이는 유공압부품 제조 전문기업이다. 유공압실린더를 비롯해 공압밸브, 청정화기기, 진공펌프, 피팅, 압력센서 등을 생산하고 있다. 1992년 가나시스템으로 시작, 1997년 대구공장과 대구지사 설립, 이후 대전, 부산, 울산, 광주 등 전국 6개 지사 및 2005년 군포공장을 지으면서 본격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특히 군포 공압밸브 공장은 국내 동종업계 최초로 클린룸을 도입해 품질관리 고도화를 이뤄냈다. 

 

 

주요제품은 유공압실린더와 밸브


유공압실린더는 공장 내 기계, 전자, 반도체, 철강설비 등 이송라인이나 전력회사의 발전설비, 제철, 제강, 토목건설, 타이어 설비, 대형 보일러 설비 등 시스템 설비에 많이 사용된다. 케이시시는 고객요구에 따라 특수목적형 실린더를 제작 공급하며 신뢰를 쌓아왔다. 밸브 역시 주문 제작이 많다. 특히 운반 장비에 사용되는 내한성(-20℃) 밸브, 제철이나 발전설비용 고온용 밸브, 국산업체 중 최대 유량크기를 자랑하는 대형 밸브를 주로 생산한다. 최근 신규 출시한 에어 클린 유니트의 경우 품질개선과 다양한 옵션사양, 미려한 디자인을 장점으로 공기압기기 분야 시장점유율을 높이려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유능함을 판단하는 척도는 생산현장


제품개발을 지속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박덕규 대표의 뚝심 있는 경영철학에 기인한다. 
“일선에서 영업이나 판매활동이 아무리 유능해도 유능함을 무능함으로 바꾸는 건 생산현장에 있다고 봐요. 제가 아무리 개발이나 품질을 주장해도 구성원 전체가 공감해야 해요. 공장에서부터 곧 영업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케이시시에는 오래 근무한 직원들이 많다. 정년을 연장한 직원도 꽤 있다. 
“사업은 제품을 잘 만드는 데서부터 시작해요. 품질만 좋으면 고객은 있어요. 그래서 사업의 기본은 ‘정직’입니다. 개발 열심히 하고 품질, 성능관리 잘하면 아무 문제없어요.”

 

박덕규 대표이사가 윤주태 상무와 도면을 확인하고 있다.

 

일본 연수하며 부품 국산화 결심


박 대표가 기술개발의 중요성을 인지한 건 1980년도. 일본으로 2개월간 유공압 기술연수 갔을 때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잘 대해주었지만 일부의 경우 한국인을 무시하는 정서가 있었다. 당시 한국은 산업기반이 없고 일본과 소득격차가 컸기에 언젠가 내 손으로 우리 제품을 꼭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당시 일본어가 능숙하지 않았기에 질문을 노트 한 가득 적어갔어요. 열흘간은 질문만 했죠. 무조건 물어보고 습득하고 반복이었어요. 당시 대성산업 기계사업부 연구소 소속이었는데 제가 공압부서 책임자였어요. 사수가 없었죠. 제가 우리나라 유공압 분야 1세대거든요.”

 

2016년 에베레스트 등정 후원 

 

업력 30년, 진심은 통한다


수입, 판매만 하는 회사에서 근무하며 국산화에 대한 열망은 점점 커져갔다. 
“남의 발자국만 따라가기보다 나만의 꿈을 펼치고 싶었어요. ‘개발보국(開發報國)’의 사명감으로 대한민국의 자동화 장비에 사용되는 유공압기기 분야 애국기업을 만들고 싶었죠.” 
창업당시만 해도 한국은 유공압산업 불모지였다. 국내시장은 일본과 미국, 독일 등 수입산이 100% 차지하고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수입산 점유율이 70~80% 달할 만큼 갈 길은 멀다.
“2007년부터 수출을 시작했죠. 현재 20여개국에 매년 200만불 이상 수출하고 있어요. 국내 업계에 제일 크게 기여한 건 바로 장비 원가를 낮춘 거죠. 한국에서 장비를 만들어도 관련 부품은 대부분 외국에서 수입해요. 그러면 단가가 올라가잖아요? 국내기업이 실컷 장비를 개발해놔도 돈은 외국으로 나가니까 손해죠. 부품 국산화로 원가경쟁이 되면 장비도 남들보다 더 빠르게 개발할 수 있겠죠. 저희가 오히려 장비 품질을 업그레이드시키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우리 직원들을 애국자라 그래요. 사실은 나라가 할 일을 우리가 하고 있거든요.”

 

해외전시회 참가 모습


공장 설립하며 IMF, 금융위기 맞아


그렇다고 케이시시가 꽃길만 걸어온 건 아니었다. 1997년 대구에 제1공장 설립 후 IMF직격탄을 맞았고, 2005년 군포공장 설립 후 1년 만에 금융위기를 겪었다. 
“우리 제품은 움직이는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 마모가 되고 또 이물질이 들어가면 못써요. 새로 교체해야 되죠. 위대한 혁신은 위기를 통해 탄생한다고 하잖아요? 품질향상이나 국산화를 위해서는 R&D가 중요하다보고 매년 전체 매출의 10~15%를 투자하고 있어요. 리스크는 크지만 미래성장을 위한 밑거름이라 봅니다. 개발에 투자하지 않으면 당장의 회사이익은 늘어나겠지만 미래를 담보할 순 없겠죠.”
혁신을 거듭하며 세계 제1의 유공압기업이 되어보자는 임직원들의 꿈이 위기를 이기고 오늘에 이르는 원동력이 됐다. 

 

 

일본 기술자를 고문으로 발탁


케이시시의 현재 직원수는 190명 정도. 그 중 20여명이 연구소 소속이다. 
“우리가 100명 안됐을 때도 15~16명이 연구진이었어요. 피가 계속 흘러가듯 멈추면 죽는다는 신념으로 계속 개발해왔어요. 계속 하던 것만 하면 기업은 없어집니다. 고객이 요청하는 게 무엇이든 적극 대응해야해요. 그러면 방향성도 제시돼요. 새로운 에너지가 되는 거죠.”
3년 전부터는 오랜 시간 교류해오던 일본 기술자를 고문으로 모셔와 그 노하우를 개발에 반영하고 있다. 박 대표는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살아남지 못한다고 말한다. 
“우리 같은 중소기업이 개발을 지속하기 쉽진 않아요. 데이터도 확보해야 하고, 가치창출을 위해 검증 인프라도 조성돼야 해요. 상당한 비용손실을 부담해야하기에 해외 선구 업체들의 취약점을 분석하거나 주문제작을 통해 쌓은 노하우를 총동원합니다.” 

 

 

전 직원의 엔지니어화


제품개발은 설계부터 샘플제작, 내구성 테스트, 양산, 재고확보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들이 쉽지 않다. 1년부터 3년까지 소요되는 기간도 다양하다. 
“제품 하나가 세상에 나와서 시장에 제대로 안착하려면 5년은 돼야 해요. 저희는 영업소 여직원들도 10년 이상 근무자예요. 다 기술자죠. 전 직원의 엔지니어화를 기본 전략으로 즉각적인 AS서비스는 물론 견적 의뢰시 방문영업, 개발부서 동행방문을 원칙으로 합니다.”
혹여나 납품 후 문제가 생길 시 그저 덮어달라고만 하진 않는다. 
“단순히 잘 봐 달라고 하기보다 품질 개선해서 다시 오겠다고 해요. 고객중심 정도경영을 고집해왔듯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죠.” 

 

2013년 우수자본재 개발유공자 산업포장

 

모든 제품 도면 공개


박 대표는 일본 교세라 창업자인 이나모리 가즈오의 ‘아메바 경영’을 성공모델로 삼고 있다. 
“제게는 ‘사람의 가치’가 최우선입니다. 이를 위해 직원교육을 아끼지 않아요. 회사를 퇴사하더라도 케이시시에서의 경험이 세상에서 인재가 되는데 보탬이 되도록 하는 게 제 목표예요. 회사에 있는 동안 무조건 많이 배우라고 해요.”
최근 2차 전지용 제품생산에 박차를 가하면서 지난 한해 18% 매출성장을 이뤘다. 
“저희는 모든 생산제품에 대한 도면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어요. 자동화장비 제조사에서 필요로 하는 공압기기 90% 이상 대응이 가능해요. 그만큼 국내 최다품목을 생산 공급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부품 하나 없어서 기계를 못 돌리면 안 되잖아요? 무엇이든 문의해주세요. 호환이나 납기 등 저희만의 노하우로 고객만족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글·사진 _ 김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