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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드릴 스탠드 대원산업

 

100% 국내 생산기술 마그드릴 스탠드로 독보적 입지

 

대원산업

  

 

 

 

마그드릴 스탠드로 유명한 대원산업. 생산자와 소비자가 상생하는 기업문화를 추구하며, 한번 판매한 제품은 
폐기 때까지 사후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

 

 

성능 좋고 가성비 높은 제품 공급


“제조기술과 품질관리의 남다른 노하우라면 오랜 경험과 노하우 갖춘 직원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직원이 두 명이지만 실력이 뛰어나요. 처음부터 함께 일해서 벌써 11년간 함께 하고 있네요. 동반자와 같은 우리 직원들과 호흡도 잘 맞고, 마감처리, 도색 등 품질개선도 지속하고 있어요.”
대원산업 김영규 대표는 생산자의 입장이 아닌 사용자의 입장에서 고민하며 판매한 제품은 폐기할 때까지 책임진다고 말한다. 이는 철저한 사후관리에 그 비결이 있다. 

 

 

판매한 제품은 폐기 때까지 책임


“자동차도 10년 쓰면 바꾸지만 저희 제품들은 기본 10~20년 써요. 최소한의 비용으로 사후관리 해드리면 고객이 좋은 제품을 더 오래 쓸 수 있으니까요. 물론 물건을 빠른 주기로 순환시키는 게 저희에겐 이익이지만, 성능이 우수한 제품, 가성비 좋은 제품을 공급하는 게 제 사명이라 생각합니다.” 
김 대표의 말처럼 대원산업은 착한 기업, 생산자와 소비자가 상생하는 기업을 추구한다. 이런 자세는 전 직장에서부터 가졌던 고객에 대한 신념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크레텍 전동팀 4번 타자 


그는 군장교 출신이다. 육군3사관학교에서 교육받고 소위가 됐다. 전투병과학교를 거쳐 부대배치 후 최전방에서 중대장 생활만 43개월 했다. 그렇게 10년간 공직생활 후 대위로 제대했다. 그 후 1992년 크레텍에 입사하게 된 김 대표는 2년 6개월간 영업현장에서 근무 후 1995년부터 2009년까지 마케팅 팀장생활을 했다. 
“당시 전동팀에 있으면서 카탈로그, 가격표 만드는 것 다 제가 했어요. 전동팀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군대생활이 도움 됐어요. 군대는 모든 게 보고에서 보고로 끝나니까요.(웃음) 17년간 근무하는 동안 4번 타자로 불리기도 하며 승승장구했어요. 당시 월 매입액 5천만원에서 한달 매출 20~25억을 만들었으니 크게 성장시킨 거죠. 전동공구산업의 성장과 궤를 같이하며 저 또한 현장에서 많이 배운 시기이기도 합니다.”

 

대원정밀 인수하며 제조업 뛰어들어


김 대표는 2009년 대원정밀을 인수하며 제조업에 뛰어들게 됐다. 대원은 원래 매입을 담당하던 거래처였는데, 퇴사 후 쉬고 있을 때 기존 사장님이 인수제안을 해 온 것. 
“제가 담당할 당시 대원정밀 매출액이 높았어요. 사장님이 고맙다고 제게 참 잘해주셨죠. 당장 돈 없어도 여기 제품들 그대로 두고 팔아 원가만 주고, 나중 돈 벌면 갚으라고 하셨어요.”
가족과 상의하며 한 달 고민 후 해보겠다 했다. 그러나 계약서를 쓰지 않은 게 큰 실수였다.
“17년 근무한 퇴직금으로 설비와 재고에 대해 지불하고, 일부는 나중에 갚겠다 약속했죠. 11월 30일부로 인수했는데, 다음해 1월 되니까 돈 안 갚는다고 난리더라고요. 갑자기 1억이나 되는 나머지 금액을 갚으라고요. 눈앞이 캄캄했어요. 결국 6월까지 매월 분할정리하기로 합의를 했지만, 처음 제안했을 때와 너무나 상황이 달라져서 모든 걸 잃나 싶었죠. 인수대금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공장 부지까지 부동산 시장에 내어놓고 저보고 인수하라는 겁니다. 인수할 능력은 없고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면 공장 이전 등 어려운 일들이 발생할 것이 두려워 많은 고민하다가 형님께 대지를 구매해 달라 부탁해 사업을 이어오게 됐습니다.”

 

마그드릴 스탠드 인수로 기지개


어렵게 사업을 이어가던 시절 거짓말처럼 기회가 주어졌다. 2011년 7월 개성테크노로지스로부터 마그드릴 스탠드를 인수하게 된 것.
“개성의 정동원 사장님이 먼저 제안해주셨어요. 개성에서 마그드릴 스탠드는 몇 년 전부터 단종시키려던 제품이었는데, 저보고 가져가라 하시더라고요. 물론 많은 분들이 탐냈죠. 혹자들은 제가 친척이라도 되는 줄 아시던데, 전혀 아닙니다. 정 사장님이 그만큼 저를 믿어주신 거라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인수하고 싶다고 당장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인수자금이 필요했는데, 3분의 1을 먼저 드리고, 나머지는 분할해서 갚겠다고 했다. 그래봤자 절반 값이었지만, 흔쾌히 받아주셨다. 그렇게 마그드릴 스탠드가 대원의 효자상품이 됐다. 

 

 

국내 주물 방식, 100% 국내생산


“정말 우리나라 최고의 제품입니다. 마그드릴 스탠드가 없었다면 대원산업은 진작 문 닫았을 거예요. 물론 인수 후에 전 제품의 인지도를 많이 상승시켰다고 자부합니다.”
개성에서 금형, 기술, 판매권을 인수하며 생산시스템도 그대로 이어받았다. 국내 주물 방식도 그대로 유지하며 국내에서 전량 생산한다. 
“저는 기독교인인데, ‘한 알의 밀알이 되라’란 문구를 좋아해요. 내가 죽어 밀알처럼 썩어지면 수십 배, 수백 배의 결실을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 항상 조금 손해본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어떨 때는 저를 이용하는 사람도 있고, 정 사장님처럼 도움 주시는 분들도 있죠. 물론 거의 대부분의 분들이 오히려 제게 도움을 주셨어요.”

 

주요 부품은 직접 제작


마그드릴 스탠드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30개의 부품이 필요하다. 재고관리가 까다롭다고 알려진 이유가 부품 하나라도 떨어지면 제품을 만들 수 없어서 기본적으로 제품제작에 적어도 한 달 이상이 걸린다. 숙련된 직원들이 생산을 맡고 있지만 김 대표도 손을 놓고만 있지는 않게 된 게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마그드릴에 들어가는 부품 중 전자석은 제가 직접 만들어요. 원래 형님께서 도와주시다가 연세도 있고 해서, 손이 많이 가는 일이지만 핵심부품이라 직접 챙겨요. 많은 물량은 아니니까 할 만 합니다.”
이것 역시 마그드릴 스탠드를 인수하면서 배워온 기술이다. 시간도 걸리고 육체적으로 힘든 부분도 있지만 경비절감 차원에서 즐겁게 임하고 있다.

 

초창기 성장 후 최근 어려움 겪어


2011년부터 15년까지 잘 성장해왔지만 최근 매출이 많이 줄어든 상황이라 경영이 쉽진 않다.
“환율이 많이 올라 업계에서 가장 먼저 가격을 인상했죠. 매출이 적더라도 마진이 높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그 여파가 지금까지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올 6월 전까지만 해도 50%까지는 달성했는데, 요즘은 30%대까지 매출액이 떨어졌어요. 휴가기간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아요. 지금은 최대한 경비를 줄이면서 주5일 근무하며 버티고 있어요. 경기가 활성화되면 영업사원도 뽑고 새롭게 정비해야죠.”

 

 

수리비 줄여 고객사 호응


대원산업의 주요제품으로는 마그드릴 스탠드와 고속절단기, 대형절단기, 바이스, 만력기, 오스타 등이 있다. 대부분 전문업체에서 외주 가공하여 조립생산하고 있다. 여기에 AS부분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마그드릴 스탠드의 경우 수리비가 비싸요. 전자석 하나 바꾸는데 비용이 많이 들거든요. 제가 맡으면서 새 부품이 아니라 재생을 써서 수리해요. 최소한의 비용으로 수리해드리는 거죠. 전자석은 코일이 생명인데, 제가 직접 만들어 에폭시로 채우는 등 정성을 들입니다. 껍데기만 재활용하는 거죠. 최단기간 내 거의 새제품으로 수리해드려요. 정직하게 해드리니 고객들 호응도 좋아요.”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기업


유통과 제조업계에서 잔뼈가 굵어진 만큼 공구업계에 대한 애정이 크다. 반면 아쉬움도 있다. 
“보통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제대로 교육을 시키기도 전에 현장에 투입해버립니다. 저 또한 아무것도 모른 채 이리 뛰고 저리 뛴 경험이 있기 때문에 경험 부족한 직원들을 잘 다독이는 분위기가 정착되면 좋겠어요. 제조사와 대리점, 고객 모두가 상생하는 업계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제가 먼저 노력하겠습니다.”
김 대표는 요즘 많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경쟁사와의 경쟁에 뒤쳐지지 않도록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해보겠다며 포부를 밝힌다.
“제 삶의 철학은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예요. 요즘 참 엄중한 시기를 지나고 있어요. 이 상황을 잘 극복하게 되면 수도권 쪽으로도 진출할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고객분들이 언제나 만족하실 수 있는 제품공급으로 더욱 새롭게 도약하는 대원산업이 되겠습니다.”

 

글·사진 _ 김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