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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연금술사 3M을 가다
생각의 연금술사 3M을 가다
크레텍(회장 최영수)이 3M 미국본사로부터 공식초청을 받아 지난 4월 5일부터 11일까지
미국 휴스턴과 미니애폴리스 3M 본사를 다녀왔다. 휴스턴에서는 3M이 공식 후원하는
ISA(Industrial Supply Association) 행사를 참관하고, 미니애폴리스에서는 3M의 가치와 역사, 제품을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꼽히는 3M을 본지 독자에게 소개하고자
크레텍의 3M 미국본사 방문기를 싣는다.
스누피, 고르바초프, 그리고 3M
만화 스누피, 가수 프린스, 고르바초프,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바로 미니애폴리스다. 스누피의 작가인 찰리슐츠의 고향이며, 이 고장 출신 프린스가 미네소타에 내리는 비를 보며 우울과 환각 속에서 노래 ‘퍼플레인’을 만들었다. 1990년 미소정상회담을 마친 고르바초프는 미니애폴리스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크레텍 일행이 도착한 시간은 4월의 해질 무렵. 노을이 짙게 깔려 실제 색을 짐작키 어려울 정도로 착시가 일어난다. 이 도시에서 예술가와 정치가가 혼재할 수 있는 까닭이다.
미네소타주의 역사를 보면 1800년대 중반 미국서부 골드러시 시기에 미네소타 남자들 일부는 몬태나주로 떠났다. 이후 산업혁명의 바람이 불자 1902년 다섯 명의 남자 헨리 브라이언, 윌리엄 맥고나글, 던레인 버드, 존 드완, 허몬 케이블은 미네소타주에서 광산회사를 설립했다. 사명은 미네소타광산제조회사(Minnesota Mining and Manufacturing Company), 앞글자를 따면 오늘날의 3M이 된다. 서부로 향하던 황금의 시대와 작별하고 산업혁명기 현대과학기술과의 접점에서 3M은 출발했다. 이 물질의 연금술사들은 의식의 연금술까지 꿈꾸었다. 이른바 발명가들의 3M이다.
60만평 대지… 본사 아닌 캠퍼스라 불려
3M 본사는 총 60만평 대지에 일명 3M 캠퍼스로 불린다. 배우고 발명하고 더 나아지도록 개발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다국적기업인 3M은 의료용품, 전자·전기·통신 관련제품, 사무용품, 자동차·조선 부문 제품, 보안제품 등 5만 5,000여 가지 제품을 생산한다. 지구촌 내 3M 직원 수는 9만3,000명, 매출은 약 36조원으로 이곳 미니애폴리스 본사에만 1만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이중 1,000명이 연구원이다.
제품군별 따로 상담 말고 통합구매 가능
3M은 크게 4개 사업군 즉, 안전&산업, 교통&전자, 헬스케어, 생활용품 사업부로 이뤄져있다. 안전&산업군은 개발도상국에서, 교통&전자는 아시아, 헬스케어와 생활용품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 매출비중이 높다.
1902년 연마재 휠 제조용 미네랄을 채광하기 위해 설립되었는데, 광물질이 품질 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사암으로 판명됨에 따라 이후 샌드페이퍼 사업에 집중하게 된다. 1921년 세계최초로 방수용 샌드페이퍼를 개발해 자동차 제조과정에서 공중의 먼지를 줄이는 효과를 낳았다. 현재 안전 및 산업용 비즈니스 그룹의 주부서로는 연마재 제품팀(ASD), 개인 안전 제품팀(PSD), 클로져&마스킹 솔루션 제품팀(CMSD), 산업용 테이프 및 접착제 제품팀(IATD)이 있으며, 기존에는 각 담당부문별로 판매 및 관리를 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고객의 편의를 위해 통합 구매 및 상담을 할 수 있는 ISMC(Industrial & Safety Markets Center)를 출범시켰고, 한국의 경우 약 2년 반 전에 이 비즈니스모델을 도입했다. 3M 측은 “아시아, 특히 한국시장에 시범적으로 적용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원형돔 스크린에서 홍보영상을… 한국어로도 상영
3M에서 27년간 근무한 브루스 씨(Bruce C. Pearson)는 얼마 전부터 외부인들에게 이노베이션센터를 안내하고 회사의 역사와 스토리를 들려주는 일을 총괄하고 있다. 3M이노베이션센터에는 연간 4만 명의 방문객이 온다. 그는 먼저 3M 캠퍼스 전체 규모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총 40개 건물이 있고 이중 20개가 실험실이고 20개가 업무동입니다. 3M에는 46개의 핵심기반 기술을 중심으로 기술포럼이 많이 열리며, 따라서 이곳엔 제조시설이 없습니다. 제조는 미국 한국 등 총 52개국에서 이뤄집니다. 사실 3M이라하면 많은 사람들이 소비재를 떠올리지만 3M 매출 중 소비재는 15%밖엔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항공 우주 건설 에너지 선박 등에 쓰이는 산업재입니다.”
그를 따라 가장 먼저 간 곳은 홍보영상 상영관. 앉아서 보는 게 아니고 150도 정도 누워서 본다. 돔형 천정에서부터 곡선 스크린이 보는 이의 사방을 둘러 쌀 정도의 크기로 영상이 펼쳐진다. 직접 우주를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이 영상은 총 6개국어로 서비스되며, 한국어는 10년 전 포함됐다. 브루스 씨는 “한국시장이 중요하고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어 서비스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실패하라, 협업하라, 세상에 공헌하라
3M에는 오늘날의 3M이 있도록 토대를 마련한 CEO가 있다. 윌리엄 맥나이트(William McKnight, 1929~1949년 회장 재임). ‘미네소타에서 탄생한 돌연변이’라고 불릴 만큼 변화와 혁신을 시도한 CEO였다. 잭 웰치와 비견되며 포춘지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CEO이기도 하다. 실패예찬론자인 그는 “아무 것도 안하는 것보다 무슨 일이든지 벌여 실패하는 게 낫다”는 말로 유명하다. 실패를 포용함으로써 ‘사원의 창의를 바탕으로 한 기술개발’이라는 3M만의 독특한 혁신문화를 낳았다. 이 결과가 포스트-잇을 비롯해 스카치테이프, 각종 연마재와 접착제, 안전용품 등의 제품들이며, 실패에서 기인한 독창적 상품군들은 3M이 100년이 지나도 끄떡없을 자산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은 철학을 반영하듯 3M의 수상제도는 이채롭다. 기술개발 분야 수상인 칼튼 소사이어티(Carlton Society)는 역사상 3만5,000명의 기술개발자 중 180명만 수상했다. 미국 야구에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확률보다 세 배 어렵다. 이 상의 수여 조건은 첫째, 기술적으로 우수하고 둘째, 다른 동료들을 끌어주고 도와주는 역량이 좋아야하고, 셋째, 그 기술이 회사나 업계를 떠나 산업전체에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
마스킹 테이프, 스카치 테이프… 3M이 만든 일반명사
브루스 씨는 수상자 중 한명인 리처드 드류(Richard Drew 1899-1980)를 꼭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드류 씨가 근무하던 1915년경엔 3M에서는 연마재 밖에 없었어요. 자동차에 색을 칠하려면 연마재를 쓰는데 작업자들에게는 힘든 일이었죠. 당시 사람들은 자동차에 두 가지 색을 칠하는 것을 선호했나 봐요. 자동차 바디 작업자들이 페인트로 두 가지 색을 배치하려면 여간 손이 가는 게 아니었거든요. 드류 씨는 연마재 대신 붙였다 떼는 테이프를 만들자고 회사에 건의했어요. 2년의 시간이 주어졌죠. 2년이 지나도 성과가 없자 회사에서는 그만두라 했습니다. 하지만 드류 씨는 별도로 연구를 진행했고, 그래서 개발된 것이 바로 마스킹 테이프입니다.”
그가 개발한 마스킹 테이프는 사실 상품이름이었으나 오늘날엔 도색 시 붙였다 떼는 테이프의 총칭으로 불린다. 3M에서는 이외에도 고유명사를 일반명사화 한 경우가 많다. 마스킹 테이프 개발 후 1929년엔 스카치테이프를 개발했고, 오늘날 문구류에서 가장 쉽게 보는 포스트-잇도 3M이 최초 개발 상품화했다.
3M 장갑 끼면 야구타격 4% 향상
이외에도 3M의 혁신적 제품들은 생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과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육상 400미터를 제패한 미국의 육상영웅 마이클 존슨. 당시 나이키의 후원을 받고 있었는데 뛰는 내내 신발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다음 시드니 대회 때는 맨발로 뛰겠다’는 말로 후원사인 나이키를 곤혹스럽게 했다. 이에 나이키는 3M에 개발협조를 구했고, 3M은 금 24캐럿을 함유한 특수반사소재를 제공했다. 마이클 존슨은 이 운동화를 신고 금빛질주를 해 육상 2연패를 이뤘다.
두바이 호텔의 창문에는 몇 개의 나사와 볼트가 있을까? 답은 ‘없다’이다. 고온과 소금기에 견뎌야 하는 고층 두바이 호텔의 창문은 3M의 양면 폼테이프로 고정돼 있다. 12년 후 연구진이 현장을 방문해 남긴 말이 있다. “창문이 없어질지언정 폼테이프는 그대로겠어.” 두바이라는 극한환경 속에서도 시공 당시의 성능을 12년 넘게 그대로 유지한다는 말이다. 현재 캠핑 트레일러나 선박, 항공기에서도 3M의 접착기술은 나사와 볼트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브루스 씨는 “접착제가 나사를 대신하면 제조공정이 훨씬 빨라져 생산성이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에도 3M이 있다. 공포영화의 고전인 엑소시스트(The Exorcist)는 유혈이 낭자하며 관객의 심장을 얼게 만드는데 3M이 만든 진짜 같은 가짜 피가 단단히 한몫을 했다. 덕분에 오스카상 소품상을 받았다.
장갑도 스포츠의 기록을 바꿔놓았다. 야구그립의 경우 3M 것을 사용하면 타격이 4% 커지는 효과를 낳고, 골프에서는 3미터 이상 거리를 늘린다. 실제 시합에서는 3M 장갑 착용금지령이 내렸다 한다.
10만 건의 특허… 모두 사람을 향한다
2014년에 3M은 10만 번째 특허를 획득했고 매년 3,000건의 특허를 받고 있다. 브랜드 마케팅 담당인 에이미 뉴튼(Amy Newton)은 “이 모든 기술과 연구노력은 사람의 삶을 향하고 있다”며 “삶을 더 나아지게 하고, 편하게 하고, 완벽하게 만드는 것에 개발의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크레텍 일행은 이노베이션센터 투어를 마친 후 다음날엔 연마재와 마스크 실험실로 가서 실제 사용 및 착용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연마재의 경우는 동종 다른 제품에 비해 힘이 덜 덜고 효과가 2-3배 높다는 점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 한국시장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더욱 현장에 맞게 개발된 제품들을 볼 수 있었다. 포장재와 테이프의 경우 아주 가벼워 제품의 중량에 영향을 끼치지 않으면서도 접착력은 최고인 제품들이었다.
혁신이란 눈처럼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
3M본사가 있는 미니애폴리스에는 한 집 건너 한 집 꼴로 3M과 관계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기업이 주민들의 의료 교육 주거까지 영향을 끼친다. 최근 미국의 아마존 신사옥 유치를 두고도 지역과 기업의 상생 모델로 이 미니애폴리스와 3M의 공존사례가 꼽힐 정도다.
일정의 마지막 날엔 미니애폴리스에 눈이 내렸다. 4월인데도 60센티 이상의 폭설이었다. 3M 캠퍼스는 눈으로 덮였고, 미국에서 살기 좋은 곳 두 번째로 꼽히는 도시답게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눈을 보지 않으면 미니애폴리스의 진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이렇듯 혁신은 완전히 새로운 무엇이 아니라 눈이 대지를 향하듯 기존의 것에서 출발해 새로운 아름다움을 꿈꾸는 것이다. 기술과 꿈이 공존하는 기업 3M은 한국시장에 더 나은 도전을 준비할 것이다.
글·사진 _ 서상희(크레텍 커뮤니케이션팀 부장) / 취재도움 _ 3M, 한국쓰리엠(이재구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