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전체메뉴 열기

MAKERS

나노 다이아몬드코팅 - 티앤씨샤크(주)


국내 최초 나노 다이아몬드 코팅

TnC SHARK(Tool and Coating) 티앤씨샤크㈜





티앤씨샤크의 역사는 의외로 깊다. 티앤씨샤크는 과거 나사절삭공구를 제작하던 기업 삼흥정밀공업사의 후신이기 때문이다. 삼흥정밀공업사는 1962년 서울 수색동에서 시작된 기업으로 2004년 시작된 티앤씨샤크의 뿌리기업이 된다. 티앤씨샤크를 이끄는 ‘조성강’대표로부터 티앤씨샤크의 기술과 더불어 대한민국 절삭업계의 역사를 들어 보자.  




대한민국 절삭의 시작 ‘순풍공업사’
 
티앤씨샤크가 자랑하는 기술은 바로 나노 다이아몬드 코팅기술이다. 구 소련의 우주과학 기술로 그 특허권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전세계에서 나노 다이아몬드 코팅기술을 상용화한 나라는 미국과 한국뿐이다. 한국에서도 오직 티앤씨샤크만 가지고 있다. 이처럼 티앤씨샤크는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는 강소기업으로 매년 높은 매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티앤씨샤크’조성강 대표이사의 부친은 과거 나사 절삭 공구로 유명한 삼흥정밀을 창립했던 ‘조순흥’대표다. 티앤씨샤크의 탄생을 알기 위해 우선 삼흥정밀의 역사, 대한민국 절삭제조업의 역사를 들어보았다.    
“부친께서 절삭공구업계의 1세대셨어요. ‘삼흥정밀공업사’의 ‘조순흥’ 대표라고 하면 절삭제조 쪽에서는 유명하신 분이셨지요. 부친께서 경영하시던 ‘삼흥정밀공업사’도 본래 이름은 ‘순풍공업사’입니다. ‘순풍공업사’는 서울 수색동에서 처음 시작 했습니다. 왜 수색동에 절삭공구회사를 세웠느냐면 당시 수색동에 철도 기지창이 있었어요. 1960년대에 시중에 나돈 철 중에서 제일 좋은 철은 바로 철도 레일이었습니다. 수색동은 그런 폐 레일을 쉽게 받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때 그 철도 레일로 환봉을 만들고 그 환봉으로 절삭공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때는 절삭공구 만들어 달라는 것은 다 만들었습니다.”
티앤씨 샤크의 최초 전신 기업인 순풍공업사는 당시 절삭업체 중에서 손에 꼽히는 큰 회사였다. 당시에는 기계 설비가 적고 수작업이 많았기에 직원 수만 400명 가까이 되었었다. 그때 순풍공업사는 절삭공구를 취급하는 많은 공구상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순풍공업’이 ‘삼흥정밀공업사’로 성장해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당시 아버님이신 ‘조순흥’ 대표께서는 친했던 공구상들이 많으셨나 봅니다. 청계천의 공구상 대표님 중 한 분이 제조업을 하고 싶어하셨고 아버님과 동업을 하기로 한 거죠. 그분 성함 끝이 ‘삼’자예요. 저희 아버님이름 끝이 ‘흥’자고요. 그분과 저희 아버님과 함께 법인을 세워 ‘삼흥정밀공업사’를 만드셨어요. 그런데 여러 사정으로 그분이 지분을 정리해야겠다고 하셔서 1978년 순풍공업사와 삼흥정밀공업사를 합병시켰어요. 그런데 법인에 일반사업자가 합병 되어도 일반사업자에 법인이 합병되기는 힘들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회사이름을 
‘삼흥정밀공업사’로 가게 됩니다. 이후 사업을 계속 하는데 서울시에서 시 외곽으로 이전하라는 정책을 폈어요. 결국 1978년 경기도 고양 쪽으로 이사를 했어요. 그때는 고양시가 아닌 군이었죠. 그런데 고양에도 신도시가 들어오면서 1992년 다시금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이번엔 북쪽인 경기도 파주지역에 터를 잡았죠. 부친께서는 정부사람들과 협조해서 파주 문발공업단지를 만드시게 됩니다.“ 
삼흥정밀공업사의 공장 이전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 및 수도권의 발전과 그 흐름을 같이 한다. 서울에 인구가 몰리고 안정된 주거지를 필요로 하면서 삼흥정밀은 1978년 경기도 고양군으로 이전을 해야 했다. 이후 세월이 흘러 1992년 경기도 고양군이 고양시로 승격되면서 삼흥정밀은 또 다시 경기도 파주로 이전 하게 된다. 

 
유명한 ‘삼흥정밀공업사’가 바로 ‘티앤씨샤크’
 
당시 경기도 파주로 이전을 할 때도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파주는 지금의 시가 아닌 군이었고 공업단지 자체가 없었다. 공무원들을 설득해 허가를 받고 공업단지를 만들어야 했고 공업단지를 만들기 위해 삼흥정밀은 다른 기업의 입주까지 신경을 써야 했다. 그래서 사실상 파주의 문발지방공단은 삼흥정밀공업사가 아니었으면 생겨나지 못했을 지역이다. 
“그런데 1998년도에 IMF가 터졌어요. 그때 삼흥정밀공업사가 IMF 터지기 1년 전에 투자를 많이 했거든요. 기계설비를 비롯해 투자를 많이 했는데 자금을 외화로 대출 받았습니다. 달러로 기계를 사야 했으니까요. 이자랑 원금을 갚아야 하는데 갑자기 환율이 2배로 오르니 갚아야 할 돈도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더군요. 부친께서는 IMF를 겪으시면서 이러다가는 직원 퇴직금도 제대로 못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셨나 봅니다. 당시의 삼흥정밀주식회사는 제작하는 품목이 나사절삭공구뿐이었습니다. 그동안 함께 일하고 성장해온 직원들이 독립하면서 생산품목을 하나씩 나누어 주다보니 삼흥정밀은 나사절삭공구만 만들게 되었죠. 저희 아버님이 일본 나사 절삭공구 만드는 회사와 무척 가까우셨죠. 결국 1999년도에 자산과 설비를 매각 하게 됩니다. 그때 당시에 저의 형님이 사장으로 있었고 아버님이 회장으로 계셨어요. 저는 다른 회사에 직장을 다니고 있었구요. 회사를 정리하신다고 저보고 도와달라고 하시더군요. 다른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아버님이 은퇴를 하시기 위해 부르시니 어쩔 수 없이 도와드려야 했어요.” 
 
나노 다이아몬드 코팅 기술의 ‘티앤씨샤크’
 
기업을 정리하는 것은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 공장의 자산인 기기나 설비 등을 헐값에 판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성강 대표가 삼흥정밀주식회사 자산을 정리해 부친의 노후자금으로 사용하니 얼마 안되는 종자돈과 사무실과 책상하나만 남아 있었다.  
“부친 은퇴하시는 것 도와드리고 나니 회사 이름은 물려받았는데 당시 삼흥정밀은 기기나 설비가 없는 페이퍼 컴퍼니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다행이 저는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연구소에 일을 했었어요. 생산기술에 대해서도 알고 그래서 기계나 절삭에 대해 모르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삼흥정밀 이름 그대로 사업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고객분들이 자꾸 나사절삭공구를 찾더군요. 나사절삭공구를 생산하지도 않고 생산할 생각도 없었기에 고민을 하다가 지금의 ‘티앤씨샤크’로 회사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나노다이아몬드 코팅기술을 러시아로부터 기초기술을 들여올 수 있었습니다. 상용화 한 것은 우리나라 최초이구요. 세계에서는 두 번째로 성공한 기술입니다. 저희의 기술 경쟁력이죠. 이 기술을 적용한 브로치 캇타로 이름이 새롭게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나노 다이아몬드 코팅기술을 가한 제품은 내마모성과 경도, 내부식성이 올라간다. 또한 마찰계수를 감소시킨다. 결과적으로 제품의 전체적인 내구성과 성능이 올라가게 된다. 티앤씨샤크는 이 기술을 적용한 ‘브로치 캇타’(Broach Cutter)로 새롭게 성장한다. 이 제품은 일반 드릴에 비해 월등하게 뛰어난 천공능력을 갖추고 있어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최고의 제품을 가장 싸고 빠르게
 
티앤씨샤크 임직원들은 다음과 같은 구호를 매일 외친다. ‘우리는 세계 최고 품질의 제품을 가장 싸게 즉시 공급한다. 고객이 진실이다. 고객을 평생고객으로 삼기위해 가치를 창출한다. 고객은 가장 소중한 내 친구다’ 티앤씨샤크 임직원들이 외치는 구호는 고객들에게 보다 훌륭한 서비스를 하겠다는 다짐이다.  
“솔직히 저희가 품질은 자신 있습니다. 제품 품질과 기술력 모두 성숙했다고 자부합니다. 보다 차이가 나는 것은 가격과 서비스입니다. 고객의 입장에서 제품에 문제가 있으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저희가 바로 찾아가서 같은 제품을 교환해주면서 작업이 진행되도록 도와드리는 것이죠. 좋은 제품과 더불어 뛰어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저희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AS도 하나의 경쟁력이다 품질은 기본이고 사후 서비스까지 완벽해야 시장에서 살아남는다. 
티앤씨샤크의 제품은 그렇게 시장에서 살아남았고 이제는 제품을 해외로도 수출 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는 성장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해외로 진출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는 티앤씨샤크의 미래가 기대된다. 

 

글·사진_한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