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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혁신이야기] 새로운 생각이 주업인 3M


새로운 생각이 주업인 3M



“세계에서 가장 창조적인 기업이 어딥니까?”
창조력을 주제로 강의를 할 때마다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3M이라고 대답한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애플 등 창조적인 기업으로 정평이 난 IT 기업들을 제쳐놓고 굳이 3M이라고 답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창조력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시되는 제조업계에서, 100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모든 직원의 창조력을 끌어내어 차별화된 가치를 계속해서 창출하는 기업이 바로 3M이기 때문이다.



업종의 한계를 정해놓지 않은 회사

3M은 한동안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가 2015년에 발생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인해 다시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른바 ‘메르스 마스크’로 불리는 N95 마스크 주력 생산 업체였기 때문이다. 3M 마크가 박힌 의료용 마스크를 보고 사람들은 “어! 3M에서 이런 것도 만들어?” 하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115년 전인 1902년, ‘미네소타 광공업 회사(Minnesota Mining and Manufacturing Co.)’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3M은 초기에 주로 샌드페이퍼(사포)와 연마제를 취급했으나 이후 깜짝 놀랄 만큼 줄줄이 제품의 범주를 확장하여 지금은 55,000종 이상의 제품을 취급하고 있다. 종업원 수가 약 80,000명이니 제품 대 직원의 비율이 거의 1:1인 셈이다.
B2B 사업에 주력하다 보니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되는 대로 나열해도 3M 제품으로는 컴퓨터 터치스크린, 주방용 스펀지, 정수 필터, 가로등, 얼룩 방지 직물, 리튬 이온전지, 주택 단열재, 치과용 충전재, 의료용 마스크, 파스 등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분야에서 혁신성과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 제품들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전혀 없다. 3M이 개척했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이에 관해 공동 연구를 책임지고 있는 부사장 래리 웬들링(Larry Wendling)은 이렇게 말한다.
“저희는 특이한 회사입니다. 어떤 틈새시장도, 특정한 초점도 없으니까요. 기본적으로 저희가 하는 일은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게 전부입니다. 그게 무엇이냐 하는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지요.”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것이 주업인 기업, 모든 직원이 분야에 상관없이 매일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상품화하는 기업, 그래서 업종의 한계를 정해놓지 않은 기업이 바로 3M이다.

갑’의 횡포 벗어나 ‘슈퍼 을’ 된 비결은 기술력
 
B2B 회사는 구매 기업들이 단가를 일방적으로 후려치는 등 ‘갑’으로부터 공공연하게 횡포를 당한다. 이른바 ‘갑질’이다. 그렇다면 3M의 경우는 어떨까? 3M은 세계적인 거대 기업들과 거래를 하고 있지만 ‘갑’의 횡포에 휘둘리기는커녕 오히려 ‘갑’에게 당당하게 요구하는 ‘슈퍼 을’로 통한다. 그것은 남들도 다 만들 수 있는 제품들로 거래하지 않기 때문이다. 3M은 차세대 기술에 기반한 제품들로 협상한다. “이런 게 당신들이 원하는 제품인가? 당신들이 꿈꾸는 미래의 제품은 무엇인가? 우리 기술 중 당신들이 원하는 기술이 뭔지 한번 살펴보자”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가격은 문제가 안 된다.
이처럼 3M이 ‘슈퍼 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경기가 좋지 않을 때도 R&D 투자를 줄이지 않고 남들이 따라오지 못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2008~2009년 경제 위기 때 3M 역시 비용을 줄여야 했지만 처음부터 ‘연구개발비와 개발 인력만은 줄이지 말자’고 결정했다. 그래서 일부 감원도 하고 사업 부문을 축소하기도 했지만 이 두 가지는 건드리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로 3M은 20%를 넘는 높은 영업이익률을 자랑하는데, 여기에는 수직 통합형 비즈니스 모델도 한몫하고 있다. 3M은 46개의 기술 플랫폼을 바탕으로 사무용품부터 비행기 부품까지 만들어내기 때문에 비용은 줄고 이익은 늘어난다.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인 셈이다. 예컨대 접착제의 경우 원천 기술 하나로 3가지 완전히 다른 제품군을 만든다. 첫째는 포스트잇과 스카치테이프이다. 둘째는 비행기에 쓰이는 접착제이다. 셋째는 상한 치아를 덮어씌우는 크라운(치관)이다. 하나의 원천 기술 기반으로 포스트잇부터 비행기까지 쓰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 지속적인 신제품 개발을 들 수 있다. 3M은 매출의 3분의 1 이상을 5년 내 개발된 신제품에서 거둔다. 단가가 높은 신제품이 기존 제품을 계속해서 대체하기 때문에 이익이 증가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슬림한 조직 운영이다. 3M은 조직의 최상층부터 최하 단위까지 계층 구조를 최소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직원들의 창조적 아이디어 끌어낸 ‘15% 룰(Rule)’
 
3M의 신제품 개발 과정은 크게 두 가지 프로세스로 운영된다. 하나는 ‘OEM 사양(OEM specification)’이라고 부르는 프로세스로, 부품과 소재를 공급하는 특정 고객사의 요구에 맞춰 개발하는 형태다. 다른 하나는 ‘고객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혁신(customer inspired innovation)’으로, 소비 시장에 초점을 맞춘 혁신이다. 중요한 건 둘 다 3M의 R&D 연구소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 고객에게서 시작된 것이라는 점이다.
3M은 1920년대부터 연구원들이 자기 시간의 15%를 창조적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신상품, 신기술을 연구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는 이른바 ‘15% 룰(Rule)’을 운영하고 있다. 3M은 이러한 시간을 활용해 혁신적 아이디어를 제안한 직원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직접 프로젝트로 진행할 수 있도록 최대 10만 달러 이내에서 일정 금액의 펀드를 제공해 주는 ‘제너시스 그랜트(Genesis Grant)’ 제도를 1984년부터 활용하고 있다. 3M은 이 제도를 통해 수많은 사내기업가(Intrapreneur)를 키우고 있는데, 이 제도의 구체적인 운영 방식은 다음과 같다.
직원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사내의 기술전문가 및 과학자로 구성된 패널이 1차적으로 아이디어를 심사하고, 이를 통과한 아이디어는 시니어 기술전문가, 마케팅, 경영관리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패널에서 2차 심사를 한다. 2차 심사에서는 ‘이전에 유사한 아이디어가 있었는지, 시장에서 경쟁우위가 있는지, 데이터 분석은 가능한지’ 등을 중점적으로 검토한다. 이렇게 1, 2차 심사를 통과하면 그랜트를 부여하며, 그랜트를 부여받은 직원은 자신이 아이디어 챔피언이 되어 프로젝트를 구성하여 팀원을 모집한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 팀은 계획 수립에서부터 개발, 마케팅 테스트 등 일련의 과정을 주도적으로 수행한다. 통상 매년 약 15개 정도의 그랜트를 제공하는데, 그동안 이를 통해 스카치 팝업 테이프, 3M 비퀴티(Vikuiti), 다층 광학 필름 기술 등이 개발되었으며, 매년 약 10억 달러의 매출을 일으키고 있다.
3M이 오랜 기간 이 제도를 운영하여 성공을 거두자 이후 많은 회사가 이와 유사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구글에서는 ‘20% time’이라는 이름으로 엔지니어들에게 근무시간의 20%를 현재 맡고 있는 일과 상관없는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하고 있으며, 오스트레일리아의 소프트웨어 회사 아틀라시안(Atlassian)과 고어 앤드 어소시에이츠(Gore and Associates), 유리제품 회사인 코닝(Corning) 등에서는 연구원들에게 10%의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아이디어 교류 플랫폼 기술 포럼(Technical Forum)
 
3M에는 ‘15% 룰’ 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다른 직원들과의 연결을 맺어주는 
‘기술 포럼(Technical Forum)’이다. 아이디어란 무작정 낸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업무적으로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통해서 별안간 새로운 생각이 떠오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1951년부터 60년 이상 이어오고 있는 3M의 ‘기술 포럼’에는 9,000명이 넘는 3M의 연구개발 인력들이 매년 9월 미국 본사에 모여 자신들이 진행 중인 연구와 개발 중인 제품을 발표하는데, 평균 3,000여 명이 참석한다. 이 행사가 중요한 이유는 이 자리를 통해 다양한 기술과 제품이 융합되기 때문이다. 기술 포럼은 또 다른 효과도 있다. 누가 어떤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해준다는 것이다. 연구를 하다 보면 필요한 기술이 막혀 진도를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누가 어떤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정보를 공유하자는 것이 이 포럼의 또 다른 목표다.
그런데 3M이 이런 방식을 잠시 접은 적이 있다. GE 출신 제임스 맥너니(James McNerney)가 CEO로 영입되었을 때다. 그는 GE에서 배운 ‘식스 시그마’ 기법을 전사적으로 도입했다. 그 결과 영업이익이 연평균 22%씩 증가했다. 하지만 이런 조치로 인해 3M의 도전정신은 약해지기 시작했다. 이후 새로운 CEO 조지 버클리(George Buckley)가 부임하면서 이 포럼을 부활시켰다. 3M의 정신은 낭비를 줄이는 효율적 기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혁신하면서 진화하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후 이 포럼은 지금껏 계속 이어지고 있다.

3M 과학 생활에 적용되다
 
3M은 굴뚝산업 시대의 아이콘이었으며, 한때 사람들은 3M을 혁신과 동일시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자리를 IT 기업들에게 내어주고 혁신적 순위에서 밀렸다. 그렇다고 해서 3M의 혁신이 중단된 것은 아니다. 단지 IT 기업들이 하는 혁신과 3M의 혁신이 다를 뿐이다.
3M은 재료과학에 기초한 회사다. 그래서 최근에 슬로건을 ‘3M 과학, 생활에 적용되다(3M Science. Applied to Life)’로 바꿨다. 이는 젊은이들에게 3M이 과학에 기반한 회사임을 알리고, 그들이 일할 만한 회사임을 알리는 목적도 있다. 이 슬로건을 두고 ‘과학’이라는 단어가 회사 슬로건으로 쓰기에 좀 무겁지 않은가 하는 얘기가 있지만, 세계 경제를 추동하는 힘인 기술은 결국 과학에서 나온다는 게 3M의 믿음이다. 비즈니스에서 필요한 건 예술과 과학 두 가지인데, 먼저 과학으로 새로운 걸 만들어내고 다음으로 사람들이 제품에 대해 갖는 느낌을 창조해낸다는 것이다.
 
직원들이 가진 창조력을 잘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최대의 경쟁력이라고 굳게 믿고 B2B 사업의 한계를 극복하며 100년 이상 뚜벅뚜벅 혁신을 이어가고 있는 기업 3M. 앞으로 한국에도 이런 기업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