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도 권위 내려놓는 시대
리더십은 달라져야 한다
새로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십에 국민들이 열광하고 있다. 손수 커피를 따라 마시며 참모들과 스스럼없이 토론하고, 슬픔에 빠진 사람을 껴안고 눈물을 흘리며, 청와대 경비 절감에 앞장서는 모습에 지지자들은 아이돌에 버금가는 팬덤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뭘까? 그것은 바로 이런 리더십이 지금 이 시대의 트렌드이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경영전략가이자 경영사상가로 불리는 게리 하멜(Gary Hamel)은 사람들이 소셜 웹(social web)에 열광하는 이유를 분석하며 이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을 제시한다.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서든 대등하게 경쟁한다’, ‘자격이 아니라 의견이 중요하다’, ‘권위가 아래에서 위로 형성된다’, ‘리더는 주인 역할이 아니라 하인 역할을 한다’ 등이 소셜 웹의 특성이라며, 한마디로 ‘탈관료제’가 바로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이다. 그럼 21세기 탈관료제 시대에 리더들은 어떤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지 살펴보자.
탈권위:
권위는 스스로 갖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로부터 주어지는 것
세계 최대의 유통업체 월마트(Walmart)의 창업자 샘 월튼(Sam Walton)은 아무 수행자도 없이 마치 이웃집 노인과 같은 헙수룩한 복장으로 수시로 월마트 매장에 나타나 직원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그는 고객들과 상품 및 서비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매장 관리자 및 부서 책임자들과 월마트 방식으로 일해 나가는 것에 대해 오래 대화하곤 했다. 또 서비스 데스크에서 마이크를 잡고 특유의 순박한 스타일로 즉흥 연설을 하기도 했다. ‘노친네’가 나타날 때면 직원들은 크게 고무되었다.
“권위 있어 보이려고 애쓰는 사람보다 스스로 권위를 내려놓는 사람이 훨씬 권위 있어 보입니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직전에 출간한 《문재인이 드립니다》 라는 책에 실린 문재인 대통령의 글이다. 문 대통령은 이 글처럼 스스로 권위를 내려놓음으로써 오히려 권위를 보이고 있다. 리더들이 갖는 잘못된 신념 가운데 ‘자신은 남들보다 우월한 존재이며, 자신의 판단이나 의견이 다른 사람보다 항상 옳다’고 믿는 이른바 ‘갓 콤플렉스(God Complex)’라는 게 있다. 이런 콤플렉스를 가진 리더는 ‘갓(God)’이라는 말이 의미하듯이 심한 경우 자신이 무지몽매한 구성원들을 구원해주는 구세주라고 착각한다.
이러한 갓 콤플렉스를 가진 권위적인 리더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인다. 첫째, 권위를 지키는 데 지나치게 목을 맨다. 그래서 매우 거만하게 군다. 이러한 리더는 자신이 최고이며 다른 사람은 모두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취급한다. 둘째, 판단하는 말을 자주 쓴다. “당신은 소극적이야!”, “당신은 끈기가 없어!”, “당신은 소신이 부족해!”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며, 비판하는 말을 쉽게 내뱉는다. 셋째, 상대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면서 자신에 대한 비판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이러한 리더는 회의에서 발언을 장악하며, 당연히 반대 의견은 상상할 수 없다. 넷째, 끊임없이 영향력을 행사하며 통제하려고 한다. 그리고 상대가 자신의 영향력을 벗어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권위는 스스로 갖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로부터 주어지는 것임을 리더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소통:
아무리 매체가 발달해도 ‘면대면(face-to-face)’ 소통이 필요
“나는 최고 리더 1,300명을 만나기 위해 준비했다. 그들 중에는 이곳에 참석하려고 지구 반 바퀴를 날아온 사람도 있었다. 5년 만에 처음으로 전 세계 총지배인이 모이는 자리였다. 내 손으로 고른 후임자이자이자 새 CEO인 안 소렌슨이 나를 소개했다. 행사장이 떠나갈 듯이 박수가 쏟아졌다. 서둘러 무대에 오르자 모두가 기립했다. 나를 둘러싼 수많은 얼굴을 쭉 돌아보다가 문득 내가 그 연회장에 있는 모든 사람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들이 일하는 호텔을 방문했고, 하역장을 걷고 주방을 둘러보고 객실 점유율을 물었으며, 그들이 회사를 위해 훌륭한 성과를 낼 것이라고 믿었다. 우리는 함께 불황을 견뎌내고 비용을 걱정하고 대형 계획을 실행했으며, 전 세계에 아름다운 호텔을 지었다. 수백 번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고, 그들의 배우자나 자녀에 대해, 그리고 개인적인 희망이나 고민까지도 알게 된 경우가 많았다.”
2012년 80세를 맞아 40년의 현장 경영을 뒤로 하고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난 글로벌 호텔 체인 메리어트 인터내셔널(Marriott International)의 빌 메리어트(J. W. Bill Marriott, Jr.) 회장이 은퇴식에서 남긴 말로, 그가 얼마나 ‘면대면(face-to-face)’ 소통을 중시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자리에 앉아서 문서나 전화로 소통을 했다면 어떻게 1,300명이나 되는 간부의 이름을 전부 알 수 있었겠는가.
‘메라비언의 법칙(Law of Mehrabian)’이라는 게 있다. 한 사람이 상대방으로부터 받는 이미지는 언어가 7%, 청각이 38%, 시각이 55%에 이른다는 법칙이다. 이는 UCLA 심리학과 명예교수인 메라비언(Albert Mehrabian)이 1971년에 출간한 저서 《Silent Messages》에 발표한 것으로, 소통에서 매우 중요시되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소통에서 말의 내용, 즉 텍스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7%로 그 영향이 미미한 반면, 목소리의 톤이나 음색처럼 언어의 품질과 관계되는 청각의 비중이 38%, 자세와 용모, 제스처 등 시각의 비중이 55%를 차지한다. 사실상 ‘말의 내용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요소가 93%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기술 발전으로 예전에 없던 다양한 매체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면대면 방식보다 좋은 소통은 없으며, 앞으로 기술이 더 발전하더라도 직접 대면하고 공감하는 소통을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리더는 끊임없이 구성원들과 소통하되 할 수 있는 한 면대면 방식으로 소통해야 한다. 그래야 구성원들의 의견을 제대로 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뜻과 의지를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다.
공감:
이 시대의 리더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역량
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세계적 광업기업인 앵글로아메리칸(Anglo American plc)의 최초 여성 CEO로 취임한 신시아 캐롤(Synthia Carroll)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악명 높은 루스텐버그(Rustenburg) 광산을 방문하여 어둡고, 후덥지근하고, 축축하고, 험난한 채굴 현장이 있는 수백 피트 지하까지 직접 내려갔다. 보수적인 조직문화를 고려할 때 가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신시아는 현장의 열악한 상황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지금까지 어떤 CEO도 내리지 못했던 결단을 내렸다. 문제를 개선할 때까지 자발적으로 광산의 문을 닫기로 한 것이다. 그 결정은 단지 참혹한 근로 현장을 그냥 넘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세계 최대이자 가장 수익성이 높은 백금 광산이 무려 9주 동안이나 폐쇄되는 일이 일어났다. 기존의 조직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한 일이었다.
과거 산업사회가 효율성(생산성)을 추구했다면, 지식정보화사회를 넘어 창조사회로 전환되고 있는 지금은 효과성(창조성)이 요구되는 시대다. 그리고 많은 학자들이 말하듯 이러한 창조사회에 있어 리더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이 ‘공감 능력’이다. 공감(empathy)은 상상력을 발휘해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보고, 다른 사람의 느낌과 시각을 이해하며, 그렇게 이해한 내용을 활용해 자신의 행동지침으로 삼는 기술이다. 공감은 고객, 동료, 파트너, 공급 업체의 동기를 이해하고, 사람들과 정서적인 유대를 더 강력하게 맺는 데 이용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지금처럼 고객 중심적인 시장에서는 큰 도움이 된다. 영업사원은 고객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관리자는 직무를 잘 이행하는 팀을 구성하기 위해, 디자이너는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제품을 디자인하기 위해 이 특성을 이용할 수 있다.
공감 능력이 부족한 리더의 일반적인 징후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구성원들이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지시나 메모, 명령을 내려 보내는데, 이는 구성원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둘째, 리더의 위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구성원들의 의견과 정서를 무시하고 무턱대고 화를 낸다. 셋째, 구성원들의 어려움에 감정이입하지 못하고 외면하거나 냉담한 태도를 보인다. 그래서 혁신과 같은 두려운 상황에 처했거나 궁지에 몰린 구성원들을 보살피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논리로는 안 된다. 권위로는 더욱 안 된다. 이 시대의 리더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역량은 공감 능력이다.
솔선수범:
모범을 보이는 것이 진정한 카리스마
세계적인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발행인인 리치 칼가아드(Rich Karlgaard)가 비즈니스차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Bill Gates)와 1주일간 여정을 함께 했다. 어느 늦은 밤, 델타항공 이코노미석에 앉아 보스턴에서 뉴욕으로 가는 길에 칼가아드가 게이츠에게 물었다.
“회장님처럼 높은 분이 왜 이코노미석을 타십니까?”
그러자 게이츠가 대답했다.
“CEO인 스티브 발머(Steve Ballmer)가 결정한 대로 따르는 겁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직원 출장 시 이코노미석 항공비만 지원합니다. 원하면 1등석을 타도되지만 추가 비용은 개인적으로 부담하도록 출장비 지급 규정이 정해져 있습니다. 숙박도 포시즌스호텔이 아니라 힐튼호텔의 비용만 지원합니다. 차는 캐딜락이 아니라 포드 렌터카를 지원하지요. 저는 발머가 정한 비용 규정을 지켜야 합니다. 제가 안 지키면 아무도 안 지킬 겁니다.”
요즘처럼 혼란하고 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리더의 중요성이 더욱 크다. 리더의 잘못된 판단 하나가 조직의 미래에 걷잡을 수 없는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기에는 어떤 리더십이 필요할까?
흔히 격변의 시기에 필요한 리더십으로 ‘카리스마’를 꼽는다. 조직을 일사불란하게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지난 대선 때에도 이와 관련된 얘기들이 나돌았다. 모 후보는 자칭 ‘스트롱맨’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또 유권자들 가운데에는 어떤 후보를 두고
‘다 좋은데,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등 말이다.
그렇다면 대체 카리스마란 무엇인가? 카리스마는 쉽게 말해 ‘사람들을 강력하게 끄는 힘’이다. 이렇게 볼 때 모범을 보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카리스마라고 할 수 있다. 모범을 보이는 행동에는 ‘내가 앞장설 테니 나를 믿고 따르라!’는 리더의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앞서는 것 이상으로 카리스마 넘치는 행동이 어디 있겠는가.
목소리 크고 거칠게 행동하는 리더가 득세하는 시대는 지났다. 지나도 한참 지났다. 그런 리더십은 왕조시대에나 통했고, 산업사회 때까지 일부 통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아직도 그런 ‘스트롱’ 리더십이 통한다고 생각한다면 시대착오도 이런 시대착오가 없다. 구성원들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은 리더의 말이 아니라 행동에서 나온다.
진행_장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