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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공구인 칼럼] 전통 시장과 모던 채널의 공존


전통 시장과 모던 채널의 공존




나를 이끈 전동공구시장의 매력

 
1997년, 처음 청계천 공구상가를 찾아 갔을 때의 수많은 놀라움은 아직도 생생하다. 가장 먼저,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쉽고 간단하게 구멍을 뚫고 못을 박으며 굵은 철근도 자를 수 있는 편리한 전동공구들이 너무나 다양하게 판매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대리점의 매장 규모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좁고 작은 가게가 한 달에 몇 억의 매출을 달성하는 도매 대리점이라는 것은 좁고 잡은 가게에 대한 그 동안의 편견을 깨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러한 점을 알게 된 뒤부터 나는 대리점을 개설할 때 아무리 작은 소규모 매장도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세 번째는, 대리점주들과 직원들의 탁월한 기억력이었다. 손님이 어떤 제품을 문의하면 겹겹이 쌓여있는 수천 가지의 제품들 속에서 신속 정확하게 그 제품을 찾아내었고 가격표도 없이 바로 가격을 제시하는 것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전동공구 시장의 변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 
 
요즘 방송에서 자주 나오는 뉴스가 있다. 소위 ‘모던 채널(Modern Channel)’이라 일컬어지는 거대 백화점과 할인 매장의 체인점들이 작은 동네까지 파고들어 전통 시장(Traditional Market)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 단체가 대형 마트 영업을 제한하고 환경을 개선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재래시장을 지키고 있는 상인들 자체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결국엔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자명한 일이다. 
이미 전동공구 시장은 여러 가지 변화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내가 처음 공구 시장을 접했을 때만 해도 공구 재고는 대리점의 규모와 명성을 가늠하게 해 주는 척도 중 하나였다. 겹겹이 쌓여있는 제품들은 대리점 매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였고 가격표 없이 직원들의 기억에 의존하는 판매 가격에는 20%~30%의 이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당시 많은 재고는 높은 매출과 직결되었고 매출은 충분한 이윤을 창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IMF 이후 시장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공구는 썩지 않고 언젠가는 판매 할 수 있다”는 대리점주들의 철칙도 차츰 무너져 갔다. 어음 대신 현금 결제로 재고 회전율을 높여야 했다. 여기에, 인터넷 판매의 등장이 판매 이윤을 대폭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여 문제점을 야기시켰다. 
 
발전하는 전동공구시장, 변화 촉진해
 
다른 한편으로는 전동공구의 혁신적인 기술 개발이 소비자의 구매 패턴을 바꾸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8V의 9Ah 배터리를 가진 충전 해머드릴은 2kg과 3kg급의 해머드릴이나 그라인더 등의 전문가용 유선 공구시장을 빠르게 교체시키고 있는데, 이러한 흐름은 더 좋은 제품을 더 빨리 구매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이 해외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직접 구매하도록 만든다. 또한, 소비자들이 구매 전 제품의 성능, 가격 등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대리점을 방문하는 추세로 변화하였다. 이는 과거 판매자 중심의 경영에서 소비자 중심의 운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요즘 각 지역 대리점들을 방문할 때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공구 시장의 노력들이 느껴진다. 이미 몇 전 전부터 대형 공구 유통 업체들은 시스템 구축에 수억 원을 투자하고 있고 이러한 흐름은 중도매 대리점 심지어 작은 소매점까지 이어져 가고 있다. 
 
재고 전산화 관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
 
재고의 전산화 관리는 원가 절감 효과를 가져다 주고,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데이터와 정보들을 제공한다. 재고 전산화 관리는 이전의 문제점들을 크게 해결할 수 있다. 전산화 관리 이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재고가 판매 기회를 놓쳐 악성 재고가 될 확률이 높았다. 장기 재고는 곧 자금의 유동성을 저하 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 되기 때문에 결국 경영 악화를 초래하였다. 또한 낮아진 이윤 하에서 재고를 분실할 경우 바로 마이너스 마진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경영 문제를 가중시킬 수 있었다. 재고 전산화 관리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공구 시장의 노력 중 하나다. 이것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품목별, 제품군별로 잘 진열된 현대화된 매장은 소비자의 구매 충동을 자극하고 바코드 시스템으로 정리된 정찰 가격은 소비자에게 굳건한 신뢰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동시에 불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으므로 효율적인 방법으로 더 큰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
 
따뜻함과 냉철함이 공존하는 전동공구 시장
 
과거, 선배 공구인들이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몸소 부딪치며 지금의 공구 시장으로 발전시켜 왔기에 과거 판매 방식이 그릇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은 변화에 대한 유연한 대처와 점진적인 투자가 필요한 시기라 판단된다. 작년 말, 우리 회사는 공구협회 회관 건립에 조그마한 힘을 보태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차세대 공구 경영인들이 변화에 신속하게 대처 할 수 있도록 체계적이고 복합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절실하다고 느꼈기에 기부를 결정하였다.  
우리는 지금 결코 쉽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지만 나는 여전히 전통 시장의 따뜻함과 모던 채널의 냉철함이 공존하는 변화된 전동공구 시장을 꿈꿔본다.

글·박용범 (유)밀워키 AEG 한국법인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