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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공구인칼럼] 대한민국 공구의 독립선업


대한민국 공구의 독립선언





공구업계에 남은 일본어 순화해야

나는 저가의 중국산 망치와 고급 이미지의 일본산 망치 속에서 꿋꿋이 3대째 대한민국 망치로 맞서고 있는 제조업체 대표다. 12년 전 본격적으로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우리 회사의 주력제품은 ‘빠루망치’와 ‘냉가망치’였다. 망치는 알겠는데 ‘빠루’가 무슨 말이고 ‘냉가’가 무슨 말인지 나에겐 너무 생소한 단어들이었다. 빠루라는 말은 우리나라 말로 ‘노루발 못뽑기’였고 냉가라는 말 또한 일본말로 구운 벽돌이라는 뜻이다. 빠루망치는 ‘장도리’라 부르고, 냉가망치는 ‘벽돌망치’라고 명칭을 변경해야 한다. 이 외에도 야스리는 ‘줄’, 노미, 다가내는 ‘정’, 바라시는 ‘철거’등 현재 건설현장에 쓰이는 용어나 각종 공구의 명칭에는 일본 언어의 잔재들이 많이 남아 있어 순화할 필요가 있다. 지금도 위안부문제에 대해 사과도 하지 않고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역사 교과서를 왜곡하는 일본을 싫어하면서도 공구업계 현실에서는 일본이 남긴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회사는 이러한 용어 문제를 타파하고자 냉가망치를 ‘벽돌망치’라 명명해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었다. 하지만 계속된 거래처의 주문은 냉가망치였고 신규 직원은 냉가망치가 벽돌망치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해 주문이 와도 그런 제품은 없다고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이렇듯 한 번에 바꾸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제품이 유명해지면 제품명이 따라오게 되듯 새로운 제품의 명칭에는 조금씩 한글화로 명명하기 시작했다. 
 
선진국과 맞먹는 한국의 제조기술

안타깝게도 건설현장에서는 아직까지도 일본 공구하면 품질이 우수한 제품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공구 제작 기술도 역사를 보나 능력으로 보나 일본 제품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고구려가 건국되고 그 영토를 중국지역까지 확장했을 때는 전략과 전술도 뛰어났지만 철을 다루는 우수한 기술이 그 밑바탕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를 증명하듯 고구려의 건국을 주제로 했던 드라마 ‘주몽’에서도 기술자였던 ‘모팔모’의 기술이 많은 도움이 되었었다. 얼마 전 방문했던 공주박물관에서 백제의 유물을 보았을 때도 금속을 다루는 기술이 예전부터 뛰어났었다는 것을 알 수 었다. 현재 삼성이 일본 기술을 벤치마킹해 일본의 기술을 뛰어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기술력은 일본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어렵게 공구를 제작하는 것보다 일본 제품이나 중국산 저가 제품을 수입 판매하는 것이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한다. 그로 인해 많은 공구 제조업체들은 문을 닫아야 했다. 이제는 오랜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대장간의 명맥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필자의 제조업체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예로 신제품을 개발하면 중국에 가서 모방된 공구를 수입해 저가로 판매되고 있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저가로 시장에 판매해야 한다. 제품 개발한 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우리 회사는 제품에 대한 품질을 높였다. 망치 업계 최초로 ‘수출인증자’를 획득해 루마니아로 망치를 수출한 실적을 가지고 있다. 또한 KOTRA를 통해 제품을 선보이니 이스라엘, 폴란드 등 해외 공구 유통회사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제품에 대한 품질뿐만 아니라 PISDIC이라는 디자인 개발업체와 손잡고 충청남도에서 주관하는 디자인 개발사업을 같이 했기 때문이다. 디자인 융복합을 통해 단순히 망치가 ‘못’만 박는 것이 아닌 기존 틀에서 젊은 감각의 디자인을 덧붙여 멋있는 공구를 만들 수 있었다. 우리 회사 뿐만 아니라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수공구들은 많이 있다. 
 
수출만이 살길… 멀리보고 가자

우리나라는 내수시장이 작기 때문에 수출을 하지 않으면 제조업체들이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다. 그래서 정부도 제조업체들의 수출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예전 일본의 문화가 개방되었을 때 문화적 지배를 받을 것이라 걱정을 많이 했지만 우리나라는 ‘한류’라는 바람을 타고 오히려 한국 문화를 전세계적으로 알리고 있다. 우리 문화의 독립이라 볼 수 있다. 윤봉길 의사나 유관순 열사 같은 수 많은 독립 운동가를 기억하면서 나 자산의 안위와 행복만이 최우선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부끄럽지 않고 자부심을 느끼며 국위선양을 하는 것이 진정한 독립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망치를 만들고 있지만 나는 스스로 중국과 일본 등 여러 나라의 제품들과 경쟁하는 국가대표라 생각한다. 우수한 제품을 개발해 전 세계로 수출해 뛰어난 우리나라의 수공구 제조 기술을 해외에서 인정받는 것이다. 
일본의 아베정권은 일제의 만행이었던 위안부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지난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역사왜곡에 앞서고 있다. 또한 독도를 일본의 영토라 주장하고 있다.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으로서 이러한 현재의 모습을 인정할 수 없다. 더이상 일제의 잔재에 휩싸여서는 안된다. 31세의 나이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일본의 갖은 고문과 압박에도 당당했던 그리고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안중근의사의 어록 중에 ‘인무원려 난성대업(人無遠慮 難成大業)’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멀리 내다보질 못하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는 말이다. 어떤 일이던 멀리 보고 그 길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간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공구인의 작은 움직임 하나가 대한민국 공구 독립운동의 시작이며 독립 운동가들의 헌신과 희생에 우리 후손들이 보답하는 길이다. 

글·이건우 영창단조공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