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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곽숙철의 혁신이야기] 11月에는 사업계획 세워라


11月에는 사업계획 세워라
 

타성 버리고 원점에서 검토하라      
 
신문은 상당히 오랜 기간 지금의 일반 신문과 같은 큰 종이를 써왔다. 그 이유가 뭘까? 그냥 큰 종이에 인쇄하면 돈이 적게 들어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겠지만 진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712년에 영국의 신문사들은 신문의 페이지 수에 따라 세금을 내야 했다. 그래서 편집자들은 페이지 수를 줄이려고 지금과 같은 크기의 종이를 선택했다. 1855년에 세금이 없어졌고 큰 종이에 신문을 인쇄하려면 엄청난 추가 비용이 드는데도 신문사들은 기존의 방식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오랫동안 기존의 신문 크기를 바꾸지 못한 걸까? 정말로 그동안 아무도 작은 종이에 인쇄하려는 생각을 못했을까? 물론 그런 생각을 품은 사람은 많았다. “작은 종이에 신문을 인쇄하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한 사람들은 꾸준히 있었지만 늘 외면당했다. 신문사들은 한결같이 “어느 신문사에서 그렇게 하느냐?”며 핀잔을 주었고, “독자들이 아마 싫어할 것”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이러한 현상을 ‘집단적 타성(collective inertia)’이라고 한다. 이유도 모른 채 타성에 젖어 다수의 선택을 무조건 추종하는 것이다.
사업계획을 수립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많은 기업들이 사업계획 수립을 으레 실시하는 연례행사로 인식하고, 별다른 고민 없이 타성에 젖어 매년 같은 패턴으로 계획을 짠다. 물론 오랜 기간을 거치면서 이런 방식의 효과성이 검증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껏 이 방식이 효과적이었다고 해서 계속 그럴 수는 없는 법. 지금도 이 방식이 타당한지 원점에서 재검토해봐야 한다.
방식뿐 아니라 업무도 마찬가지다. ‘만약 이 사업을 지금 새롭게 시작한다고 해도 이런 방식으로 할까?’, ‘첫 해외시장 진출이라고 해도 이 국가를 택할까?’, ‘지금 새로 공정을 설계하더라도 이러한 프로세스로 할까?’, ‘이 일을 꼭 이 부서에서 해야만 할까?’, ‘만약 새로운 의사결정자가 와도 지금과 같은 전략을 구사할까?’ 이렇듯 기존에 해오던 모든 일을 원점에서 살펴봐야 한다.
 
모든 구성원 참여시켜라      
 
대학 연구진이 복권을 가지고 실험을 했다. 실험 참가자들의 절반에게는 숫자가 이미 적힌 복권을 나누어 주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숫자가 적히지 않은 복권을 주면서 알아서 숫자를 적게 했다. 그리고 당첨 번호를 추첨하기 직전에 참가자들에게 주었던 복권을 모두 되사겠다고 말했다. 그런 다음 두 집단의 사람들에게 복권 값으로 얼마를 줘야 할지 물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두 집단 사이에는 차이가 없어야 한다. 복권에 당첨되는 것은 순전히 운이기 때문이다. 직접 선택한 번호든 할당받은 번호든 모든 숫자는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 엄밀히 따지면 복권에 직접 숫자를 써넣은 사람에게 돈을 덜 줘야 옳다. 숫자가 중복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과는 의외였다. 국적이나 성별, 나이와 상관없이 복권에 직접 숫자를 써넣은 사람들이 최소 다섯 배나 더 많은 돈을 요구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 그것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관여한 사람들이 그 일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인간의 본성에 기인한다. 자신의 노력이 들어간 만큼 자기 일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사업계획 수립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든 구성원을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시켜야 한다. 구성원들은 이 과정에서 경영방침과 목표를 명확히 인식하고, 환경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공감하게 된다. 그래야 계획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불만이 없어지고, 책임감이 높아져 보다 주체적으로 행동한다. 예컨대 이러한 과정 없이 부서의 목표를 일방적으로 예상보다 높게 제시하거나 특정 예산을 삭감해버린다면 구성원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하겠는가?
 
언제, 어디서 구체화 시켜라     
 
심리학자 피터 골위처(Peter Gollwitzer)는 학생들에게 크리스마스가 시작되기 전 연휴 동안 해야 할 일을 각각 두 개씩 정하라는 과제를 주었다. 하나는 식구들과 모여 식사하기, 스포츠 활동하기처럼 쉬운 과제여야 하고, 다른 하나는 식구끼리의 의견 충돌 중재하기, 세미나에 발표할 자료 만들기 등과 같은 어려운 과제여야 했다. 그런 다음 A그룹의 학생들에게는 각자가 정한 두 개의 과제를 각각 ‘언제’, 그리고 ‘어느 곳’에서 실행에 옮길 것인지를 과제와 함께 제출하게 했고, B그룹의 학생들에게는 구체적인 때와 장소를 요구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연휴가 끝나고 학생들이 얼마나 과제를 완료했는지 점검하자 때와 장소를 정했던 A그룹이 그러지 않았던 B그룹보다 어려운 과제를 실행한 비율이 훨씬 높았다. A그룹의 3분의 2가 어려운 과제를 실행한 반면, B그룹은 4분의 1만 실행했다. 쉬운 과제에 대해서는 두 그룹 모두 80% 이상의 실행률을 보여 별 차이가 없었다. 이 실험 결과는 목표를 정할 때 그것을 ‘언제 실행에 옮길지’, ‘어디서 수행할지’ 등 명확히 할수록 실행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업계획을 수립할 때도 마찬가지다. 각 목표 항목별로 실행의 주체가 누구인지,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기준으로 성과를 측정하고 평가할 것인지 등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래야 실행률이 높아진다. 이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이 성과평가 기준을 명확히 하는 일이다. 사람은 어떻게 평가받느냐에 따라 태도와 행동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달성 건수를 평가 기준으로 삼을 경우 질적인 것은 아예 평가되지 않는 것인지 등을 확실히 해두지 않으면 실행하는 과정에서 혼란이 따를 뿐 아니라 자칫 보여주기 식의 활동으로 흐를 수 있다.
 
장기계획은 시간낭비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점포수를 자랑하는 세븐일레븐에는 중장기 계획이 없다. 1년 후의 경제 상황은커녕 1주일 후의 환율조차 읽을 수 없는 변화의 시대에 중장기적인 목표는 아무 의미가 없으며, 목표를 설정하면 그 목표수치가 중심이 되어 숫자 맞추기에 급급해진다는 것이 스즈키 토시후미(鈴木敏文) 회장의 생각이다. 그는 “경영은 숫자를 짜 맞추는 경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점쟁이가 아닌 이상 장기 사업계획을 세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시장 조건과 경쟁사, 고객, 경기 등 우리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요인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요즘 같이 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사업계획을 세우면 이런 요인을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착각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래에 관해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다가올 장애물을 어떻게 다룰지 고민하는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사업의 큰 흐름을 점검해보되, 단지 장기 계획까지 세우지 말라는 말이다. 애써 두툼한 장기 계획서를 써봐야 어차피 구닥다리가 되어 서류함에 처박힐 게 뻔하다. 그러니 예측할 수 없는 먼 미래까지 억지로 추측하여 장기계획을 세우지 마라. 시간 낭비다.



글 · 곽숙철
경영혁신 전문가. 강의 및 기고, 자문 활동을 하고 있으며 CnE 혁신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그레이트 피플>, , <경영 2.0 이야기에서 답을 찾다> 등이 있다.